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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6

     

    “휴고, 이렇게 대조하면 어때?”

     

    그 후 나는 당분간 휴고 팀과 저주 연구 업무를 우선으로 진행했다.

     

    황제의 케이스나 카밀라 전에서 생긴 데이터도 많아서 대조군이 꽤 생겼다.

     

    지금은 무엇보다도 아셀라를 수술하고 싶은 생각이 가장 컸다.

     

    “이 가정은 어떻습니까? 접착부위의 형태가 효과를 결정한다고 생각하면. 변성 패턴이 보이지 않습니까.”

     

    “과연, 가능성 있는 가설이야. 다른 케이스 바로 검증해 보자고.”

     

    그래도 휴고 덕분에 연구가 꽤 진행되었다.

     

    곧 아셀라가 가진 저주의 실체를 낱낱들이 분석해 대응법을 정립할 수 있겠다 싶었다.

     

    “일단은 아셀라의 긴급 발작에 대응할 수단을 마련하고 싶은데.”

     

     

    [No. 101 : 마력폭주 13% → 14%]

     

     

    아셀라의 증상은 조금씩 악화 중이다.

     

    지금이야 내가 만든 진통제로 버틸 수 있지만 언제까지 들을지도 모를 일이고.

     

    “내가 직접 먹여줘서 효과가 잘 듣는 것도 있어.”

     

    내게는 [처방] 스킬이 있다. 내가 없을 때 아셀라가 혼자 약을 먹으면 효과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아셀라에게 24시간 붙어있을 수도 없으니 좀 더 강한 약제가 필요하다.

     

    “재료의 문제야. 버드나무 껍질로는 한계가 있어.”

     

    아무리 성질변화나 합성을 쓴다 한들 무에서 약을 만들 수는 없으니까.

     

    최고의 진통제라고 하면.

     

    “결국 마약인데.”

     

    일반적인 진통제가 통증을 전달하는 신경을 무뎌지게 하는 원리라면, 마약성 진통제는 뇌가 통각을 인지하지 못하게 특정 수용체를 망가뜨린다.

     

    위험하지만 효과는 확실하다. 당장 죽을 것 같이 몸부림치던 환자도 언제 그랬냐는 듯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필요악이다.

     

    “모르핀은 중독성이 없긴 해. 의료용으로 만들면 내성 증가도도 최소한으로 억제할 수 있고.”

     

    양귀비를 찾아볼까.

     

    그리 생각하니 황제로부터 호출이 들어와서 천황궁을 내방하게 됐다.

     

     

    “흑마술사 토벌전의 공을 치하하겠다, 고트베르크.”

     

    “황공할 따름입니다, 폐하.”

     

    굳이 시간을 내서 직접 불러다 칭찬할 정도면 상당한 영광이었다.

     

    고향에 돌아가면 두고두고 술안주로 써도 될 이야기다.

     

    “권터도 겨우 정신을 차렸더군. 자네들 내의원을 키운 건 올바른 선택이었다.”

     

    “폐하의 혜안이셨습니다.”

     

    앰브로시아가 추임새를 넣었다.

     

    “아셀라도 함께 부르고 싶었다만 몸이 안 좋다지. 카밀라가 그렇게까지 악의에 차들었을 줄이야. 진작 짐이 손을 썼어야 했는데 물렀었다.”

     

    황제가 혀를 찼다.

     

    “들었던 대로 카밀라는 짐이 변덕으로 주웠었다. 흑마술을 숭배하는 영암국을 멸할 때였다. 그녀의 마을이 국가의 제물이 되던 상황이었지. 카밀라는 마지막 생존자였다.”

     

    “과연, 그러했군요.”

     

    “지금 생각하면 일방적인 제물이 아니라 흑마술사 세력 간 다툼이었던 모양이지. 카밀라 역시 나이는 어렸어도 흑마술사였던 게야. 처음엔 그녀도 선했다. 짐에게 은을 갚기 위해 제국에 헌신했다.”

     

    저 황제의 판단이니 틀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카밀라도 원래 악인은 아니었던 건가.

     

    “그녀는 유능했다. 분명 제국에 이익도 많이 가져왔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짐은 위험하다고 직감해 그녀를 멀리했다. 아셀라에게 애정을 주지 않은 것도 카밀라 때문이었다.”

     

    “언제부터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아셀라를 낳은 후부터 카밀라는 불안정해졌다. 때때로 뭔지 모를 사악함이 느껴졌지. 그리고 11년 전부터는 이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짐은 그때부터 카밀라를 월광궁에 보냈다.”

     

    흠.

     

    11년 전에는 한 가지 사건이 더 있었다.

     

    바로 아셀라가 두 번째 마법 재능과 함께 디버프인 저주도 얻은 사건이다.

     

    대마녀의 혼이 이 황실에 나타났다.

     

    이건 좀 파고들어 봐야겠어.

     

    “짐이 카밀라를 사랑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다만, 짐은 그만큼 샤를로트와 헬레아드도 사랑한다. 짐을 적대하겠다면 애정을 줄 필요는 없지 않은가.”

     

    최강대국의 황제는 여자를 사랑하는 법도 상당히 남달랐다.

     

    나는 절대 못 따라 할 것 같네. 한 사람으로도 머리가 벅차지 않을까.

     

    지금이야 엔딩을 바꾸는 일이나 의사로서 일이 우선이니 별로 생각해본 적 없기도 하고.

     

    “아셀라는 애정을 줄 시기를 놓쳤지.”

     

    황제가 수염을 쓰다듬었다.

     

    “그녀는 자네에게 맡기겠다, 고트베르크.”

     

    잠깐, 제가요?

     

    아셀라와 황제가 평소에 부녀관계 티도 전혀 안 내고 남남처럼 굴어서 잠깐 잊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 사람이 현재 상황에서는 내 장인어른이었다.

     

    아셀라와 연애 약혼도 했으니 황제도 철썩같이 믿고 있겠구나.

     

    지금 발언은 나를 어엿한 사위로 인정했다는 뜻인가.

     

    ‘큰일 났네.’

     

    이러면 파혼했을 때 황제가 잡으러 쫓아오는 거 아니야?

     

    뭐, 원래 안전장치를 좀 더 마련할 생각이긴 했지만.

     

    그건 내가 이번에 포상으로 요청할 내용과 관련이 있다.

     

    “고트베르크, 그간의 공적을 치하해 훈장과 포상을 내리마. 무엇을 원하는가. 아, 지난 번에는 의학의 공표를 바랐었지. 앰브로시아, 그쪽 준비는 어떠한가.”

     

    “곧 검토가 끝나 주치의 대회의가 열릴 예정이옵니다.”

     

    “알겠다. 고트베르크, 발언해라. 산더미 같은 금화든 토지든, 새 궁이라도 주겠다.”

     

    나는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외람된 요청이 되겠사옵니다, 폐하.”

     

    “무엇인가?”

     

    “고트베르크 가문의 독립군사권을 원합니다.”

     

    “음.”

     

    황제가 진중하게 턱을 치켜들었다.

     

    내가 요청한 건 어떤 돈이나 땅과도 바꿀 수 없는 어마어마한 권리다.

     

    중앙통치체제인 제국에선 황실만이 여단 단위의 기사단을 가지는 게 허락된다.

     

    그 슈바르츠슈바이크 서부대공조차 군사력은 아주 강하지 않다. 모험가도 섭외해 국경지대에서 왕국과 싸우는 실정이다.

     

    이유는 당연히, 큰 군사력을 가진 귀족은 국가로 독립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대국이 유지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다.

     

    나는 국가체제를 위험하게 할지도 모를 불안요소를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되면 좋고 아님 말고로 던지긴 했어.’

     

    아셀라는 내 가문에 군사권을 줄 리가 없으니 최대한 힘을 키워놓으려면 지금이다.

     

    나중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 평생 가문을 제국 밑에 둘 수도 없는 노릇이다.

     

    갑자기 게오르크가 차기 황제가 되어서 제국이 망할 수도 있지 않겠어.

     

    아, 그러면 마왕군도 못 막긴 하겠네.

     

    뭐 어쨌든.

     

    마족이나 야만족에게서 가문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군사력은 필요하다.

     

    후작령을 키워서 후국으로 독립하는 게 가장 좋은 그림이긴 하다. 십 년 후쯤의 이야기니 눈치 볼 황제도 없고.

     

    기사 수급처야 천천히 생각해도 권리가 없으면 시작도 못 한다.

     

    어쨌든 황제에게는 꽤 말도 안 되는 요청이긴 한데.

     

    “좋다. 고트베르크 가문에 군사권을 주마.”

     

    아주 쿨하게 받아들이셨다.

     

    이걸 주네.

     

    “대양과도 같은 폐하의 은덕에 감복하여 큰절을 올립니다.”

     

    “앞으로도 제국을 위한 활약을 기대하마.”

     

    “부응하겠습니다.”

     

    이미 타냐도 있겠다, 기사는 천천히 구하기로 했다.

     

     

     

    “오후에 대회의를 진행하고자 하오만.”

     

    알현을 마치고 나니 앰브로시아가 그리 전해왔다.

     

    전에 청문회가 있었던 회의실에서 진행하게 됐는데, 이번엔 상석에 앉으니 꽤 기분이 남달랐다.

     

    “고트베르크 선생의 옆자리는 나요.”

     

    “어허, 찬물이 위아래가 있지. 내 자리니 썩 비키시오.”

     

    팔켄하인과 알베리치가 부산스럽게 구는 것 말고는 만족스러웠다.

     

    “이번 회의 진행을 맡은 보이슈 금서궁 주치의입니다. 의제는 내의원에서 의학을 기초제로 병용 채용하는 건입니다만.”

     

    라우가의 주치의, 보이슈가 포문을 열었다.

     

    “월광궁에서 전달받은 교재를 검토한 결과 교육과정 편성은 가능하겠네요. 황명이기도 하니 이견 있으신 주치의님은 안 계시죠?”

     

    보이슈가 생긋 웃었다. 누나들이 과자 들고 달려올 것 같은 매력적인 미소년 미소였다.

     

    저런데 나보다 열 살은 연상이란 말이지.

     

    “그런데 보충이 좀 필요해요, 고트베르크 선생님.”

     

    “보충이요?”

     

    “네. 다름 아닌 이 의학이라는 기술의 근본성 때문인데요.”

     

    탁탁, 보이슈가 의학 저서를 손바닥으로 쳤다.

     

    “대체 어디서 온 기술인가요?”

     

    어디서 오긴.

     

    역사적인 의사들을 주축으로 인류의 지혜가 이어서 발전시켜 왔지.

     

    아, 이 세상에는 그 역사가 없었지.

     

    고대에 민간요법이 잠깐 있었고 그게 발전한 기록은 법국이 싹 불태워서 삭제했다.

     

    “보이슈 주치의, 지금 고트베르크 선생을 의심하시는 것인가? 여태껏 얼마나 많은 환자를 치료해서 증명하셨는가!”

     

    쾅, 책상을 내려치며 알베리치가 흥분했다.

     

    “그건 아니에요. 저도 고트베르크 선생님을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주교님, 항상 금방 흥분하시는 성격 좀 고치셔요.”

     

    “으, 으음….”

     

    “그래도 내의원 치유사들이나 민간 대중이 신뢰할 만한 역사는 있어야 하잖아요. 치유술은 여신님이 내린 기술이니 누구나 믿고 쓰며 받을 수 있지요. 법전이 그걸 증명하고요.”

     

    “일리 있는 지적이오.”

     

    앰브로시아가 동의했다.

     

    나도 아예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야 의학이 발전해온 역사를 전부 알고 있지만 그들의 입장에선 어제까지 애들 장난감이었던 게 알고 보니 트랜스포머였다는 소리겠지.

     

    지금 쓰고 있는 순환기나 수술 장비도 드워프의 기술력 도움을 받긴 했지만 내 기계공학 지식도 들어갔다. 디지털 요소는 없어도 태엽 구조는 꽤 정밀하다.

     

    이 세상에서는 오버테크놀로지다.

     

    “그러고 보면 자세히 들은 적은 없었소이다. 고트베르크 선생, 분명 선생도 스승에게 배웠다 하지 않았소이까?”

     

    팔켄하인이 내게 말했다.

    내가 분명 그렇게 얘기했었지.

     

    “흠, 그렇습니다.”

     

    “스승은 한 분이오?”

     

    “그… 의사회라고 하여, 민간요법을 의학으로 발전시킨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이 계셨단 말이오? 지금은 어디 계시오이까?”

     

    “흐음. 정식 명칭은 ‘비국가 의사회’인데, 주로 치유술을 받을 돈이 없는 서민에게 다양한 의료 봉사를… 아마도요?”

     

    “훌륭한 분들이군. 꼭 만나 뵙고 싶구먼.”

     

    “소녀들이 모르는 것일 뿐, 대중에는 이미 소문이 퍼져 있을지도 모르겠소이다.”

     

    “그럼 의학의 발전 과정은 의사회와 접촉해 기록하도록 하겠습니다. 민중의 소문도 함께 모아보지요.”

     

    “동의하외다.”

     

    잠깐, 이야기가 이상하게 흘러가는데.

     

     

     

    사무실로 돌아온 나는 치유사들을 긴급 소집했다.

     

    “클로에, 만들던 민간요법 서적 있지.”

     

    “네, 네에. 고서랑 비슷하게 제작해서 대중에 배포하려던….”

     

    “대량 제작해서 당장 대륙 전역에 뿌려. 아, 백 년쯤 된 것처럼 낡아 보이게 삭혀서. 그리고 손비는 의사들.”

     

    “예.”

     

    “지금부터 이 가면 쓰고 자원봉사 다닌다. 환자가 있는 곳은 어디든 가. 치유사 없는 고립지대면 더 좋고. 텔레포트 마법사랑 경호 섭외할 지원금 줄 테니까.”

     

    우리 앞에는 까마귀를 형상화한 매부리코 가면이 주르륵 늘어서 있었다.

     

    언젠가 쓸지 몰라서 만들어놨던 소위 역병의사 마스크다.

     

    내가 강조했다.

     

    “대신 절대! 정체 들키면 안 돼. 밖으로 새면 안 되니까 기아스 한 장씩 쓰고 가.”

     

    “외근 수당은요?”

     

    “따블로 준다.”

     

    “당장 가겠습니다.”

     

    어차피 소문이야 와전되고 언제 어디서 발생했는지 애매하니까 시기는 상관없다.

     

    “서, 선생님도 다녀오시게요?”

     

    “물론.”

     

    외출 다녀오는 김에 양귀비도 찾고.

     

    어디까지나 의료 용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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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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