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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6

       땅거죽이 들썩였다.

       폭풍이 공터를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갔다.

       흙과 돌멩이들이 크게 튀어 올랐다가 가라앉았다.

         

       엘라를 향해 달려가던 서커스단 단원들은 다들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멈춰 섰다.

       그들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은 경악이나 절망이라는 말로도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다.

         

       마귀는 확인 사살이라도 하듯 그가 쓰러트린 마차의 측면을 두 팔로 힘껏 내리쳤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마차 프레임이 주저앉았다.

         

       혹시나 하는 희망조차 부수는 광경이었다.

       인간의 몸으로 저런 충격을 연이어 버틸 수 있을 리 없었다.

       엘라가 살아있다 한다면, 처음부터 피하는 것 외에는 답이 없었다.

         

       단원들은 일말의 기대감을 담은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그녀가 어디선가 평소의 자신만만한 모습으로 불쑥 나타날 것 같았다.

         

       가능성 있어.

       우리 부단장.

       엄청 재빠르잖아.

       피했을지도…….

         

       그들은 필사적으로 그녀가 살아있다는 증거를 찾으려 했다.

       그러나 그들의 바람은 잔인한 방식으로 보답받았다.

         

       누군가가 불길함이 가득 담긴 탄식을 내질렀다.

       그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무너진 마차 잔해의 가장자리를 가리켰다.

         

       모두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두꺼운 원목 자재가 종잇장처럼 찢겨나가 있었다.

       철제 구조가 휘어지고 끊어져 있었다.

         

       그곳에……

       피가 흐르고 있었다.

       몸 밖으로 갓 쏟아져 나온 것 같은 새빨간 피였다.

         

       피는 멈추지 않고 경사를 따라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그것은 인간의 몸에서 짜낼 수 있는 양의 한계에 달했다.

         

       이것으로 확실해졌다.

       엘라는 죽었다.

         

       비틀거리는 유라크네의 몸을 옆에 서 있던 밴딕이 받쳐주었다.

       전신에 붕대를 칭칭 감은 그는 부서진 마차와 피 웅덩이를 번갈아 바라봤다.

         

       괴물 단원 중 가장 냉정한 그였다.

       그런 그도 붕대 사이로 눈물이 흐르는 걸 멈출 수 없었다.

         

       세쌍둥이는 바닥에 주저앉아 알아듣기 힘든 욕을 중얼거렸고, 난쟁이는 땅에 얼굴을 파묻고 오열했으며, 해골은 넋이 나간 듯 입을 닫고 서 있었다.

         

       그들 모두 엘라를 좋아했다.

         

       마야가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서커스단에서 유일하게 평범한 인간이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들을 만난 순간부터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그들에게 살갑게 굴었다.

         

       -식비는 안 들고 좋네. 환영해, 가성비 단원!

       -얼마나 있냐고? 음, 당신들이 들어오면 인원이 2배로 불어나지.

       -대신 조건이 있어! 매일매일 붕대를 갈 것! 사람이 청결하게 살아야지!

       -좋아요. 특별히 아줌마가 아니라 언니라 불러드릴게요.

       -키가 작은 정도로 우리 단원들 앞에서 ‘특이하다’라고 말할 수 없을걸?

       -10살? 어린 애네. 너 감당할 자신 있어? 아니, 무슨. 그런 거 말고. 막내 생활하는 거.

         

       비록 서커스에 관해서는 잔소리도 많고 가혹하게 굴던 그녀였지만, 세상과 단절되어 살던 그들에게 무대 위에 서는 방법을 가르쳐 준 것도 그녀였다.

         

       그녀는 그들의 마음을 어둠에서 건져준 구원자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그녀가……

       그들의 부단장이……

       죽어버렸다.

         

       모든 단원이 각자의 방식으로 슬픔을 표현했다.

         

       그중 우몬만큼 격렬하게 감정을 발산하는 이는 없었다.

         

       “크오오오오!”

         

       그는 포효를 터트리며 무기를 집어 들었다.

       그가 적혈귀를 연기할 때 쓰는 사각도였다.

       공연용이라 날은 무뎠지만, 이 정도 크기에 날은 있으나 마나였다.

       그 무게만으로 충분히 치명적이었다.

         

       “네놈이 엘라 누나를!”

         

       우몬의 두 눈은 분노로 이글거렸다.

       그는 뿔을 앞세우며 마귀를 향해 달려들었다.

       거친 파공성이 그와 함께 쇄도했다.

         

       “끼끽!”

         

       자카누바가 돌진해오는 그를 보며 웃음을 흘렸다.

       단순하기 짝이 없는 식칼의 궤도.

       몇 번 안 되는 부딪침만으로 그는 상대의 전력을 모두 파악했다.

         

       단순한 완력은 그가 자신보다 앞섰다.

       하지만 속도, 기술, 전투 경험, 모든 것이 자신보다 한참 모자랐다.

         

       그는 바닥에 납작 엎드려 땅을 박차 손톱으로 그의 허벅지를 베고 지나갔다.

       서걱.

         

       “크아악!”

         

       피가 바닥을 적셨다.

       우몬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는 풀리려는 다리에 더욱 힘을 주고는 뒤돌아서서 칼을 재차 휘둘렀다.

       그러나 마귀는 그것 또한 피해내고는 그의 반대편 다리에 손톱을 찔러 넣었다.

         

       “크흑!”

         

       그렇게 자카누바는 그의 다리를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그의 식칼과 절대 부딪히려 들지 않았다.

         

       자신의 전투능력에 자신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위험을 최소화하고 철저하게 이득을 취하는 것이다.

       사냥꾼다운 행동이었다.

         

       정면으로 맞부딪치지만 않는다면, 저 힘 덩어리는 그의 적수가 아니었다.

         

       쿵.

       계속되는 공격에 결국 우몬은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는 상반신만 움직일 수 있는 상태에서도 계속해서 칼을 휘둘렀지만, 자카누바는 경계 밖에서 빙빙 돌며 그를 비웃을 뿐이었다.

         

       그러다 그의 손이 느려지고 그가 자신의 움직임을 한 박자 늦게 잡는 순간이 왔다.

       자카누바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막 손톱으로 그의 목을 내려치려는 순간.

       어디선가 올가미가 날아와 그의 손목을 휘감았다.

         

       “이잇! 모두 저를 꽉 붙잡으세요!”

         

       올가미를 날린 것은 유라크네였다.

       그녀가 원더스타인에게 받은 마법의 올가미는 밧줄을 손에 쥐고 있으면 원하는 방향으로 잡아당길 수 있었다.

         

       그녀의 반대쪽 팔을 세쌍둥이가 붙잡고 섰고, 그 뒤로 모든 단원이-심지어 지금까지 숨어 있던 랫맨들도 튀어나와-합세하여 단단히 버티고 섰다.

         

       자카누바는 저들과 괜한 힘겨루기를 할 생각이 없었다.

       그는 밧줄을 직접 붙들고 있는 이는 유라크네 하나라는 걸 알아챘다.

         

       그는 손목의 스냅을 이용해 줄을 홱 잡아당겼다.

       줄이 여자의 손에서 쓸려 나올 거라 예상했다.

         

       그러나 줄은 유라크네의 손바닥에 달라붙은 듯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익! 제 인스피라는 절대로 놓치지 않아요! 그러니 있는 힘껏 잡아당기세요!”

         

         

       특성: 인스피라-벽 타기

       적용 대상: 유라크네의 손바닥

       효과: 그녀의 손바닥에 가해진 힘만큼의 인력이 작용합니다.

       요구 자원: 유라크네의 호감도 30

         

         

       그녀의 호감도 30 보상은 그녀가 장미풍차 카바레에서 보인 거꾸로 벽 타기를 보고 키르쿠스가 내려준 축복이었다.

         

       손바닥에 가해진 힘만큼 인력이 작용한다는 것은 그녀의 손바닥에는 어떠한 피해도 주지 않고 어딘가에 매달리거나 붙어있을 수 있다는 의미였다.

         

       그녀의 팔과 다리가 힘에 의해 찢어질지언정 적어도 손바닥의 마찰력이 부족해 쓸려나가는 일은 절대 없었다.

         

       당황한 자카누바가 주춤할 때.

       쓰러져 있던 우몬은 그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남은 힘을 모두 쥐어짜 식칼을 자카누바를 향해 날렸다.

         

       맞는다면 그를 한 방에 박살내버릴 일격필살의 공격.

         

       그러나 그는 우몬의 공격을 예상했다.

       애초에 그에게 피해를 가할 수 있는 사람은 우몬밖에 없었기에 모든 경계심을 그쪽으로만 향하고 있었다.

         

       우몬이 날린 식칼은 자카누바의 뺨을 아슬아슬하게 스치며 공터 반대편에 날아가 박혔다.

         

       쿵.

       그의 혼신의 힘을 담은 공격이 땅에 꽂히는 것을 보고 자카누바는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끼르르!”

         

       그의 승리였다.

         

       우몬은 뭐라도 해보기 위해 그를 향해 애처롭게 떨리는 팔을 뻗었다.

         

       마귀는 그를 비웃었다.

       무의미한 저항이었다.

         

       자카누바는 밧줄로 묶인 팔의 반대편 팔을 들었다.

       이제 끝이었다.

       그는 우몬을 향해 손톱을 휘둘렀다.

         

       부우웅. 콰직.

       두개골이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그의 뒤통수가 반으로 쪼개졌다.

       피와 뇌수가 바닥에 흘러내렸다.

         

       우몬은 뻗었던 팔을 떨구었다.

         

       자카누바는 천천히 고개를 뒤로 돌렸다.

         

       밧줄을 붙잡고 있는 유라크네와 그녀를 붙잡고 있는 단원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뒤쪽에.

       우몬이 날린 식칼이 꽂혀 있어야 할 자리가 텅 비어 있었다.

         

       그것이 어디 갔는지 그는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현재 그의 뒤통수에 박혀 있었다.

         

         

       특성: 인스피라-칼날 저글링

       적용 대상: 우몬이 마지막으로 던진 것

       효과: 대상의 이름을 속으로 외치면, 대상을 다시 손으로 불러들입니다.

       요구 자원: 우몬의 호감도 15

         

         

       그의 호감도 15 보상이자 장미 풍차 카바레에서 그가 보인 식칼 투척에 대한 찬사로 키르쿠스가 내려준 축복.

         

       우몬이 아까 던진 대형 식칼은 그의 인스피라에 의해 그의 손을 향해 직선으로 되돌아왔다.

       그렇게 날아온 식칼은 그 사이에 있던 자카누바의 뒤통수에 그대로 박혔다.

         

       “끼르…….”

         

       자카누바는 마지막까지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다는 듯 의문에 가득 찬 눈동자를 한 채 앞으로 쓰러졌다.

         

       마귀가 죽었다.

         

       반쯤 누워 있던 우몬은 땅을 짚고 일어나 앉았다.

       밧줄에 매달려 있던 단원들도 몸에서 힘이 쭉 빠지더니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다들 살아남았다.

       거기다 무시무시한 마귀를 쓰러트렸다.

         

       그러나 그 사실에 기뻐하는 단원들은 없었다.

         

       그들은 하나둘 일어서더니 무너진 마차 잔해로 다가갔다.

       다리를 쓰기 힘든 우몬은 다른 단원들이 부축해주었다.

         

       단원들은 아무 말 없이 잔해를 치우기 시작했다.

       엘라의 유해라도 수습해서 넋을 달래주기 위해서였다.

         

       다들 소리죽여 슬픔을 삼키는데 유라크네가 입을 열었다.

         

       “엘라…….”

         

       그녀의 목소리에는 슬픔과 동시에 반가움이 약간 담겨 있었다.

       단원들이 그녀의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그녀가 발견한 것이 부단장의 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마차의 잔해 속에서 희끄무레한 사람의 형체가 떠올랐다.

         

       그것은 그들에게 너무나 익숙한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오, 엘라……맙소사…….”

       “찍찍! 부단장 유령이다!”

       “성불……성불하소서…….”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흑, 조, 좋은 곳으로 가야 한다…….”

       “누나……. 자, 잘……흑, 자, 잘 가요…….”

         

       단원들은 그녀의 유령을 향해 각자 작별인사를 건넸다.

         

       잔해를 다 빠져나온 반투명한 엘라는 그런 단원들을 보며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다들 뭐 하는 거야? 나 안 죽었거든!”

         

       그녀의 말을 들은 단원들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엘라…….”

       “찍찍! 부단장! 죽었다!”

       “지박령은 자신이 죽은 줄 모르고 계속 죽은 자리를 떠돌아다닌다더니.”

         

       이런 상황을 더는 견디기 힘들었던 엘라는 얼굴 반쪽을 덮고 있는 가면을 벗었다.

         

       “아니, 진짜래도! 봐!”

         

       반투명했던 그녀의 몸이 실체를 갖췄다.

       단원들을 어안이 벙벙해 그녀를 바라봤다.

         

       “뭐, 뭐야?”

       “어, 어떻게 된 거야?”

         

         

       이름: 유령의 가면

       적용 대상: 전신, 5kg 이하의 의복과 소지품.

       효과: 쓰고 있는 동안, 물질투과 반투명 상태가 됩니다. 황에 영향을 받습니다.

       요구 자원: 체력

         

         

       이것은 루즈를 떠나면서 원더스타인이 그녀에게 선물해준 것이었다.

       그는 희귀한 마도구를 가만히 모셔둘 바에 유용하게 쓸 수 있는 단원들에게 주는 게 낫다 싶었다.

         

       마법의 올가미 같은 경우는 바로 유라크네에게 주었지만, 가면은 혹시나 카바레에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까 싶어 도시를 완전히 떠난 뒤에 엘라에게 주었다.

         

       -역시 가게에서 기념품으로 샀다는 건 거짓말이었구나. 말도 안 되는 소리라 생각했지만…….

       -후후, 맞습니다. 그를 죽이고 그 능력을 여기다 담았죠.

         

       엘라는 단원들에게 가면이 가진 능력을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자신이 공격을 당하기 전에 그것을 썼다는 것도.

         

       “벽을 통과할 수 있다고?”

       “잠깐! 그러면 왜 바로 안 나온 건데!”

         

       분개하는 단원들을 보며 엘라는 뒤통수를 긁적였다.

         

       “이 능력을 발휘하는 데는 체력이 소모되서 말이지…….”

         

       물질투과능력에 소모되는 에너지는 통과하는 대상의 운동에너지만큼이었다.

         

       멈춰있는 벽을 통과하는 데는 체력이 얼마들지 않았다.

       사람이 통과하는 경로의 질량과 사람의 이동속도만큼의 운동에너지가 소모될 뿐이었다.

       무거운 물질을 통과할 때는 좀 천천히 걸으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아까처럼 마차로 내려친다거나 하면 순식간에 체력이 훅 빨리면서 기절할 수밖에 없었다.

         

       “마야 양의 스케치북도 그렇고, 유라크네 씨의 밧줄도 그렇고. 거기다 가면까지! 단장은 이런 신기한 물건이 계속 어디서 솟는 걸까.”

       “뭐든 어때? 어쨌든 덕분에 우리가 살았잖아!”

       “하하, 원더스타인 단장 만세!”

       “역시 악마도 우리 편 악마가…….”

         

       그때, 우몬이 눈을 껌뻑이며 마차 밑에 흥건히 고인 피 웅덩이를 가리켰다.

         

       “잠깐만요! 그럼 저건 뭐죠?”

       “저거? ……저 마차 뭔지 기억 안 나? 우리 식재료를 실은 마차잖아.”

         

       단원들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루즈를 떠날 때, 그들의 후원자가 화물선에 실린 토마토를 덜어 마차 하나에 가득 채워주었다.

         

       -단장님 덕분에 아이디어를 얻어 축제를 기획하고 있어요. 토마토는 얼마든지 드릴 수 있어요. 마음껏 가져가세요.

         

       토마토라면 지긋지긋한 그들이었지만, 차마 후원자의 권유를 거절할 수 없어서 받아온 것이었다.

         

       평소라면 피와 토마토를 구분하지 못할 리 없었다.

       다만, 방금은 한밤중에 마귀의 습격을 받아 혼이 빠진 상태인 데다가 주변에는 수십 구의 시체가 피 냄새를 풍겨대니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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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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