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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6

       카앙! 카앙! 카앙!

       

       드디어 이 개고생의 끝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힉! 히익! 아, 아냐! 그런 거 아니니까! 진정해 봐 리디아…!”

       

       “변명은 경비 앞에서 해.”

       

       혹은 베니의 평판이 끝장나는 소리던가.

       

       차갑게 얼어붙은 표정. 그리고 이와 상반되는 뜨겁게 타오르는 오러를 피워올린 리디아가 연신 대검을 휘둘러댄다.

       

       카앙! 캉! 카득!

       

       가로막는 건 뭐든 부숴버릴 것처럼 패도스러운 기운이 담긴 검이었지만 페도(아님)취향의 베니가 만든 철창 또한 만만치 않게 튼튼했다.

       

       몇 번이고 리디아의 검격을 받아내는 철창. 다만, 베니의 상태가 썩 좋지 않을 때 시전한 마법이라 그런 걸까.

       

       슬슬 철창에 금이 가며 삐걱이기 시작했다.

       

       “야! 요나! 뭐라고 좀 해봐! 리디아가 진짜로 나까지 베어 죽일 기세잖아!”

       

       “네? 뭘 뭐라고 해요? 베니가 자기 속옷을 벗은 뒤에, 제 속옷을 벗긴 건 사실이잖아요?”

       

       “뭐어…?”

       

       “거기에 제 허벅지에 얼굴을 비벼대기까지…어휴. 달게 받으시죠.”

       

       “그거 전부 요나 네가 하자고 한 거잖아!”

       

       “네네. 알아요. 난 잘못 없어, 네가 유혹한 거잖아! 라는 거죠? 그런 말은 법정에서 하세요.”

       

       “이, 이익! 이이잇!”

       

       분을 못 이긴 베니가 잇소리를 내며 발을 동동 구른다. 좋아. 이제 충분히 놀렸으니 슬슬 오해를 풀어볼까.

       

       “뭐, 농담이지만요.”

       

       카앙!

       

       “…응?”

       

       대검을 휘두르다 말고 멈칫한 리디아. 그런 그녀를 향해 활짝 웃으며 방금 지어낸 변명을 입에 담았다.

       

       “사실 모르가나의 마법에 당해 저희가 공간째로 절단당할 뻔했거든요. 베니 덕분에 저항할 수 있었지만…그 대가로 허물 벗듯이 옷이 한 꺼풀씩 베여나갔어요.”

       

       “진짜…?”

       

       “진짜로 진짜예요.”

       

       탈의 도박이 아니라 기기괴괴한 마법전의 여파로 인한 결과…라는 주장을 밀고 나갔다.

       

       대충 요약하자면 피하지 못하면 무조건 통째로 절단되는 마법을 베니가 재치 좋게 카운터 쳐서 몸뚱이 대신 옷을 베게 만들었다는 식이다.

       

       마지막에는 속옷 차림으로 다니느니 노팬티 차림이 더 낫다고 판단해 속옷을 우선적으로 날려버렸고, 방금은 마법이 붕괴하며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 나를 우선적으로 지키려 한 결과라는 말을 덧붙여서 말이다.

       

       진실과 거짓을 4:6 비율로 적절히 섞은 증언에 잠시 고민하던 리디아가 천천히 대검을 내렸다.

       

       “…미안. 내가 착각했나 봐.”

       

       “어? 아, 응. 그, 그럴 수도 있지.”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이쪽을 노려보는 베니. 그 눈빛이 어째 조금 전보다 훨씬 날카로웠다.

       

       단순히 식겁할 만한 장난을 친 내게 삐져서 그렇다기엔 뭔가 근본부터 단단해진 것 같은 느낌이….

       

       “앗.”

       

       모르가나의 마법이 붕괴되며 리디아가 들어왔다는 소리는 그녀가 억지로 마법을 부수고 진입했다는 소리다.

       

       정확한 원리는 모르겠지만, 조금 전에 보았던 리디아의 그 파괴적인 오러 덕분이 아닐까?

       

       다만, 여기서 마음에 걸리는 건 어떻게 같은 게 아니다.

       

       “샤….”

       

       “샤도우!”

       

       내가 입을 여는 것과 동시에 베니가 말을 가로챘다. 아마 나보다 한 박자 빠르게 위화감을 느낀 것이리라.

       

       “리디아! 샤도우는 어떻게 했어?! 바깥에 있었을 텐데….”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베니. 안에서는 분명 샤도우를 떼어놓느니 마느니 했으면서도 정작 무슨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불안한 모양이다.

       

       베니의 서슬 퍼런 기세에 흠칫한 리디아였으나, 이내 말없이 한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리고 그곳에는.

       

       “어이. 이제 이야기는 다 끝난 거지? 이제 놔도 되는 거지?!”

       

       -크르릉!

       

       처음 보는 야만인 차림의 여자가 샤도우를 힘으로 제압하고 있었다.

       

       ***

       

       “이야. 솔직히 말해서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 꼬마 베니야. 평소에는 힘을 억누르고 있었던 거구나?”

       

       “어, 아, 으응? 그렇지?”

       

       분명 샤도우와의 연결이 강해져 평소의 기세등등함을 되찾았을 베니건만, 지금만큼은 질린 표정으로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게 전부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몸이 샤도우와 맞다이를 뜬 것 치고는 너무 멀쩡했기 때문이다.

       

       물론 아주 상처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드문드문 붉게 달아오른 피부, 옅은 멍 자국, 그리고 꾹 눌린 이빨 자국.

       

       이게 그녀의 몸에 남은 상처의 전부였다. 그나마도 빠르게 회복하고 있었고.

       

       아마 산성 체액도, 촉수도, 뿔도, 이빨도, 눈에서 쏘아지는 광기의 파장도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 모양.

       

       물론, 샤도우 혼자가 아니라 베니와 세트로 묶어서 고위 모험가가 된 것이니 저 여인이 이긴 건 이해한다.

       

       하지만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제압한 건 놀랍네. 심지어 리디아의 이야기를 듣자하니 샤도우는 폭주하던 상태라 했는데 말이다.

       

       대체 뭘 먹고 자라야 저게 가능할까 싶은 마음에 찬찬히 그녀를 뜯어 보았다.

       

       거칠게 기른 검은색 머리카락. 그 위에는 사자 가죽으로 만든 망토 겸 후드를 눌러 썼으며, 두꺼운 가죽으로 중요 부위만 가리고 있었다.

       

       자연스레 드러나는 몸매는 굳이 말하자면 가녀린 편이었으나, 전신에서 뿜어내는 사나운 기세와 허리춤에 묶어둔 두꺼운 몽둥이를 보면 연약하다는 인상이 싹 가신다.

       

       바바리안과 아마조네스를 반반 섞은 뒤, 헤라클레스를 한 스푼 떨어뜨린 것 같은 모습.

       

       그 특이한 외형에는 짚이는 것이 있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어. 혹시 히폴리테 님이신가요?”

       

       “엉? 아, 네가 그 엘리 씨의 남편 후보이자, 리디아와 베니의 파티원 후보라는 녀석인가? 분명 이름이….”

       

       “요나라고 해요.”

       

       “그래. 만나서 반가워 요나. 나는 히폴리테다. 내 이름을 아는 걸 봐서 내가 누군지도 알겠네?”

       

       “대충은요.”

       

       내가 히폴리테에 관해 알고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우선 그녀는 현시대의 가장 유명한 모험가 중 한 명이기 때문.

       

       그냥 판 그레이브에서 살다 보면 종종 홀로 미궁을 씹어먹는 야만 전사의 이름이 들려오곤 한다.

       

       하지만 나는 사실 판 대륙에 떨어지기 전부터 그녀를 알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히폴리테 또한 내가 설정한 캐릭터기 때문이다. …원작 시작 시점에선 이미 죽은 엑스트라지만.

       

       히폴리테는 엘리와는 정반대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운이 미친 듯이 좋아, 온갖 권능을 몸에 둘렀고, 미궁의 성장도 필요한 것만 딱딱 주어졌으며, 천재적인 재능마저 타고났다.

       

       강해질 수 있는 모든 조건을 타고났으며, 야만 부족 출신답게 누구보다도 용맹하기까지 했으니.

       

       히폴리테는 모두의 선망을 받으며 빠르게 고위 모험가의 자리에 올랐다.

       

       …자신의 능력과 운을 과신한 나머지, 미궁에서 허망하게 목숨을 잃지만 말이다.

       

       신에게 사랑받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인 사람도 미궁에서 방심하면 얄짤 없이 죽는다.

       

       이를 알려주기 위한 장치이자, 한 줄로 언급되고 끝나는 엑스트라. 그것이 바로 히폴리테였다.

       

       추후에는 히폴리테의 유산이라는 느낌으로 그녀가 남긴 힘을 주인공이 계승하는 에피소드도 하나 쓸 예정이었지.

       

       이젠 그 주인공이 없지만!

       

       고개를 휘휘 저으며 히폴리테에 관한 정보를 최대한 떠올려 보았다.

       

       아무튼 운이 좋고, 아무튼 능력이 좋고, 아무튼 야만 전사임.

       

       그것이 히폴리테에 대한 설정의 전부더라…….

       

       다만, 눈 앞의 히폴리테는 내가 미처 채우지 못한 빈칸 전부에 나름의 답을 채워 넣은 살아있는 사람이었다. 우선은 감사 인사부터 해야지.

       

       “감사합니다. 히폴리테 님도 저희를 구하러 와주신 거죠?”

       

       “뭐어.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되겠네. …그나저나 말 나와서 말인데 모르가나는 어떻게 됐냐?”

       

       “죽었는데용?”

       

       “엉? 뭐야. 리디아가 그렇게나 무게를 잡길래 베니가 위험한가보다 싶었는데, 전혀 아니었던 모양이구만.”

       

       “아, 베니도 죽을뻔한 거 맞아요. 다만 저희가 좀 더 운이 좋았던 거죠.”

       

       히폴리테가 나쁜 사람 같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내 비장의 한 수가 될 수 있는 풀돌 여신상과 미니 성역에 관해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그런 이유로 전투 내용에 관해서도 적당히 둘러댔다.

       

       내 개쩌는 은신 능력으로 모르가나의 신경을 분산시키고, 그 틈을 타 베니가 마무리를 지었다는 식으로 말이지.

       

       마지막으로 모르가나의 시체를 확인한 히폴리테가 미묘한 표정으로 나를 훑어보았다.

       

       그리고는 다 안 다는 듯한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꼬맹이가 시선을 끄는 사이에 꼬마가 모르가나를 끝장냈다는 소리지?”

       

       “네!”

       

       “그래. 그런 걸로 치자고. 이제 남은 건 분배인데…….”

       

       “네? 분배요? 갑자기 그건 또 뭔 소리래요? 마지막까지 목숨 걸고 쓰러뜨린 건 저랑 베니잖아요.”

       

       “너희 꼬맹이들의 공적을 부정하려는 게 아니야. 그런데 이쪽도 길드의 의뢰를 받아 움직인 만큼 시체를 넘겨줘야 한단 말이지.”

       

       히죽 입꼬리를 끌어 올린 히폴리테가 젠체하며 말을 이었다.

       

       “내가 모험가 선배로서 좋은 걸 알려주마 꼬마.”

       

       “…뭔가요?”

       

       “너도 모험가로 활동하다 보면 단순 탐사 외에도 누군가로부터 의뢰를 받는 일이 생기겠지.”

       

       “그렇겠죠? 보수나 지원도 빵빵하니 좋고요.”

       

       “여기서 팁이다. 힘겹게 목표를 달성했더라도 그냥 돌려주지 마라.”

       

       “네? 왜요?”

       

       “그야 제출하기 전에 털어먹을 수 있는 건 싹싹 털어먹어야 하니까지.”

       

       그리 말한 히폴리테가 모르가나의 시체를 향해 고개를 까딱였다.

       

       “챙길 전리품이 있으면 지금 챙겨 놔. 우리는 시체만 챙겨가면 그만이니까.”

       

       “헉.”

       

       정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이었다.

       

       방금까지는 불안정한 베니의 상태에 정신이 팔려 ‘갈무리’에 소홀하지 않았던가.

       

       상위 마법사였으니 돈 될만한 물건을 많이 들고 다닐 터. 거기에 사고 치면서까지 훔쳐 온 신물까지 생각하면…….

       

       “감사해요 히폴리테 님!”

       

       “천만에.”

       

       어깨를 으쓱이며 물러나는 히폴리테. 그와 동시에 이번에는 내가 시체 앞에 쪼그려 앉았다.

       

       모르가나야 모르가냐야.

       

       너는 몇 연챠니???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사람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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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6

EP.116





       카앙! 카앙! 카앙!


       


       드디어 이 개고생의 끝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힉! 히익! 아, 아냐! 그런 거 아니니까! 진정해 봐 리디아…!”


       


       “변명은 경비 앞에서 해.”


       


       혹은 베니의 평판이 끝장나는 소리던가.


       


       차갑게 얼어붙은 표정. 그리고 이와 상반되는 뜨겁게 타오르는 오러를 피워올린 리디아가 연신 대검을 휘둘러댄다.


       


       카앙! 캉! 카득!


       


       가로막는 건 뭐든 부숴버릴 것처럼 패도스러운 기운이 담긴 검이었지만 페도(아님)취향의 베니가 만든 철창 또한 만만치 않게 튼튼했다.


       


       몇 번이고 리디아의 검격을 받아내는 철창. 다만, 베니의 상태가 썩 좋지 않을 때 시전한 마법이라 그런 걸까.


       


       슬슬 철창에 금이 가며 삐걱이기 시작했다.


       


       “야! 요나! 뭐라고 좀 해봐! 리디아가 진짜로 나까지 베어 죽일 기세잖아!”


       


       “네? 뭘 뭐라고 해요? 베니가 자기 속옷을 벗은 뒤에, 제 속옷을 벗긴 건 사실이잖아요?”


       


       “뭐어…?”


       


       “거기에 제 허벅지에 얼굴을 비벼대기까지…어휴. 달게 받으시죠.”


       


       “그거 전부 요나 네가 하자고 한 거잖아!”


       


       “네네. 알아요. 난 잘못 없어, 네가 유혹한 거잖아! 라는 거죠? 그런 말은 법정에서 하세요.”


       


       “이, 이익! 이이잇!”


       


       분을 못 이긴 베니가 잇소리를 내며 발을 동동 구른다. 좋아. 이제 충분히 놀렸으니 슬슬 오해를 풀어볼까.


       


       “뭐, 농담이지만요.”


       


       카앙!


       


       “…응?”


       


       대검을 휘두르다 말고 멈칫한 리디아. 그런 그녀를 향해 활짝 웃으며 방금 지어낸 변명을 입에 담았다.


       


       “사실 모르가나의 마법에 당해 저희가 공간째로 절단당할 뻔했거든요. 베니 덕분에 저항할 수 있었지만…그 대가로 허물 벗듯이 옷이 한 꺼풀씩 베여나갔어요.”


       


       “진짜…?”


       


       “진짜로 진짜예요.”


       


       탈의 도박이 아니라 기기괴괴한 마법전의 여파로 인한 결과…라는 주장을 밀고 나갔다.


       


       대충 요약하자면 피하지 못하면 무조건 통째로 절단되는 마법을 베니가 재치 좋게 카운터 쳐서 몸뚱이 대신 옷을 베게 만들었다는 식이다.


       


       마지막에는 속옷 차림으로 다니느니 노팬티 차림이 더 낫다고 판단해 속옷을 우선적으로 날려버렸고, 방금은 마법이 붕괴하며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 나를 우선적으로 지키려 한 결과라는 말을 덧붙여서 말이다.


       


       진실과 거짓을 4:6 비율로 적절히 섞은 증언에 잠시 고민하던 리디아가 천천히 대검을 내렸다.


       


       “…미안. 내가 착각했나 봐.”


       


       “어? 아, 응. 그, 그럴 수도 있지.”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이쪽을 노려보는 베니. 그 눈빛이 어째 조금 전보다 훨씬 날카로웠다.


       


       단순히 식겁할 만한 장난을 친 내게 삐져서 그렇다기엔 뭔가 근본부터 단단해진 것 같은 느낌이….


       


       “앗.”


       


       모르가나의 마법이 붕괴되며 리디아가 들어왔다는 소리는 그녀가 억지로 마법을 부수고 진입했다는 소리다.


       


       정확한 원리는 모르겠지만, 조금 전에 보았던 리디아의 그 파괴적인 오러 덕분이 아닐까?


       


       다만, 여기서 마음에 걸리는 건 어떻게 같은 게 아니다.


       


       “샤….”


       


       “샤도우!”


       


       내가 입을 여는 것과 동시에 베니가 말을 가로챘다. 아마 나보다 한 박자 빠르게 위화감을 느낀 것이리라.


       


       “리디아! 샤도우는 어떻게 했어?! 바깥에 있었을 텐데….”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베니. 안에서는 분명 샤도우를 떼어놓느니 마느니 했으면서도 정작 무슨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불안한 모양이다.


       


       베니의 서슬 퍼런 기세에 흠칫한 리디아였으나, 이내 말없이 한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리고 그곳에는.


       


       “어이. 이제 이야기는 다 끝난 거지? 이제 놔도 되는 거지?!”


       


       -크르릉!


       


       처음 보는 야만인 차림의 여자가 샤도우를 힘으로 제압하고 있었다.


       


       ***


       


       “이야. 솔직히 말해서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 꼬마 베니야. 평소에는 힘을 억누르고 있었던 거구나?”


       


       “어, 아, 으응? 그렇지?”


       


       분명 샤도우와의 연결이 강해져 평소의 기세등등함을 되찾았을 베니건만, 지금만큼은 질린 표정으로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게 전부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몸이 샤도우와 맞다이를 뜬 것 치고는 너무 멀쩡했기 때문이다.


       


       물론 아주 상처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드문드문 붉게 달아오른 피부, 옅은 멍 자국, 그리고 꾹 눌린 이빨 자국.


       


       이게 그녀의 몸에 남은 상처의 전부였다. 그나마도 빠르게 회복하고 있었고.


       


       아마 산성 체액도, 촉수도, 뿔도, 이빨도, 눈에서 쏘아지는 광기의 파장도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 모양.


       


       물론, 샤도우 혼자가 아니라 베니와 세트로 묶어서 고위 모험가가 된 것이니 저 여인이 이긴 건 이해한다.


       


       하지만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제압한 건 놀랍네. 심지어 리디아의 이야기를 듣자하니 샤도우는 폭주하던 상태라 했는데 말이다.


       


       대체 뭘 먹고 자라야 저게 가능할까 싶은 마음에 찬찬히 그녀를 뜯어 보았다.


       


       거칠게 기른 검은색 머리카락. 그 위에는 사자 가죽으로 만든 망토 겸 후드를 눌러 썼으며, 두꺼운 가죽으로 중요 부위만 가리고 있었다.


       


       자연스레 드러나는 몸매는 굳이 말하자면 가녀린 편이었으나, 전신에서 뿜어내는 사나운 기세와 허리춤에 묶어둔 두꺼운 몽둥이를 보면 연약하다는 인상이 싹 가신다.


       


       바바리안과 아마조네스를 반반 섞은 뒤, 헤라클레스를 한 스푼 떨어뜨린 것 같은 모습.


       


       그 특이한 외형에는 짚이는 것이 있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어. 혹시 히폴리테 님이신가요?”


       


       “엉? 아, 네가 그 엘리 씨의 남편 후보이자, 리디아와 베니의 파티원 후보라는 녀석인가? 분명 이름이….”


       


       “요나라고 해요.”


       


       “그래. 만나서 반가워 요나. 나는 히폴리테다. 내 이름을 아는 걸 봐서 내가 누군지도 알겠네?”


       


       “대충은요.”


       


       내가 히폴리테에 관해 알고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우선 그녀는 현시대의 가장 유명한 모험가 중 한 명이기 때문.


       


       그냥 판 그레이브에서 살다 보면 종종 홀로 미궁을 씹어먹는 야만 전사의 이름이 들려오곤 한다.


       


       하지만 나는 사실 판 대륙에 떨어지기 전부터 그녀를 알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히폴리테 또한 내가 설정한 캐릭터기 때문이다. …원작 시작 시점에선 이미 죽은 엑스트라지만.


       


       히폴리테는 엘리와는 정반대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운이 미친 듯이 좋아, 온갖 권능을 몸에 둘렀고, 미궁의 성장도 필요한 것만 딱딱 주어졌으며, 천재적인 재능마저 타고났다.


       


       강해질 수 있는 모든 조건을 타고났으며, 야만 부족 출신답게 누구보다도 용맹하기까지 했으니.


       


       히폴리테는 모두의 선망을 받으며 빠르게 고위 모험가의 자리에 올랐다.


       


       …자신의 능력과 운을 과신한 나머지, 미궁에서 허망하게 목숨을 잃지만 말이다.


       


       신에게 사랑받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인 사람도 미궁에서 방심하면 얄짤 없이 죽는다.


       


       이를 알려주기 위한 장치이자, 한 줄로 언급되고 끝나는 엑스트라. 그것이 바로 히폴리테였다.


       


       추후에는 히폴리테의 유산이라는 느낌으로 그녀가 남긴 힘을 주인공이 계승하는 에피소드도 하나 쓸 예정이었지.


       


       이젠 그 주인공이 없지만!


       


       고개를 휘휘 저으며 히폴리테에 관한 정보를 최대한 떠올려 보았다.


       


       아무튼 운이 좋고, 아무튼 능력이 좋고, 아무튼 야만 전사임.


       


       그것이 히폴리테에 대한 설정의 전부더라…….


       


       다만, 눈 앞의 히폴리테는 내가 미처 채우지 못한 빈칸 전부에 나름의 답을 채워 넣은 살아있는 사람이었다. 우선은 감사 인사부터 해야지.


       


       “감사합니다. 히폴리테 님도 저희를 구하러 와주신 거죠?”


       


       “뭐어.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되겠네. …그나저나 말 나와서 말인데 모르가나는 어떻게 됐냐?”


       


       “죽었는데용?”


       


       “엉? 뭐야. 리디아가 그렇게나 무게를 잡길래 베니가 위험한가보다 싶었는데, 전혀 아니었던 모양이구만.”


       


       “아, 베니도 죽을뻔한 거 맞아요. 다만 저희가 좀 더 운이 좋았던 거죠.”


       


       히폴리테가 나쁜 사람 같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내 비장의 한 수가 될 수 있는 풀돌 여신상과 미니 성역에 관해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그런 이유로 전투 내용에 관해서도 적당히 둘러댔다.


       


       내 개쩌는 은신 능력으로 모르가나의 신경을 분산시키고, 그 틈을 타 베니가 마무리를 지었다는 식으로 말이지.


       


       마지막으로 모르가나의 시체를 확인한 히폴리테가 미묘한 표정으로 나를 훑어보았다.


       


       그리고는 다 안 다는 듯한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꼬맹이가 시선을 끄는 사이에 꼬마가 모르가나를 끝장냈다는 소리지?”


       


       “네!”


       


       “그래. 그런 걸로 치자고. 이제 남은 건 분배인데…….”


       


       “네? 분배요? 갑자기 그건 또 뭔 소리래요? 마지막까지 목숨 걸고 쓰러뜨린 건 저랑 베니잖아요.”


       


       “너희 꼬맹이들의 공적을 부정하려는 게 아니야. 그런데 이쪽도 길드의 의뢰를 받아 움직인 만큼 시체를 넘겨줘야 한단 말이지.”


       


       히죽 입꼬리를 끌어 올린 히폴리테가 젠체하며 말을 이었다.


       


       “내가 모험가 선배로서 좋은 걸 알려주마 꼬마.”


       


       “…뭔가요?”


       


       “너도 모험가로 활동하다 보면 단순 탐사 외에도 누군가로부터 의뢰를 받는 일이 생기겠지.”


       


       “그렇겠죠? 보수나 지원도 빵빵하니 좋고요.”


       


       “여기서 팁이다. 힘겹게 목표를 달성했더라도 그냥 돌려주지 마라.”


       


       “네? 왜요?”


       


       “그야 제출하기 전에 털어먹을 수 있는 건 싹싹 털어먹어야 하니까지.”


       


       그리 말한 히폴리테가 모르가나의 시체를 향해 고개를 까딱였다.


       


       “챙길 전리품이 있으면 지금 챙겨 놔. 우리는 시체만 챙겨가면 그만이니까.”


       


       “헉.”


       


       정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이었다.


       


       방금까지는 불안정한 베니의 상태에 정신이 팔려 ‘갈무리’에 소홀하지 않았던가.


       


       상위 마법사였으니 돈 될만한 물건을 많이 들고 다닐 터. 거기에 사고 치면서까지 훔쳐 온 신물까지 생각하면…….


       


       “감사해요 히폴리테 님!”


       


       “천만에.”


       


       어깨를 으쓱이며 물러나는 히폴리테. 그와 동시에 이번에는 내가 시체 앞에 쪼그려 앉았다.


       


       모르가나야 모르가냐야.


       


       너는 몇 연챠니???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사람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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