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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6

       * * *

       

       

       막말로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그 말을 믿을 수 있을까. 심지어 지금 나 조차도 그걸 믿지 못한다. 

       

       왜? 역사가 바뀌었으니까. 

       

       이 바뀐 역사에서는 그가 대통령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러시아의 심기를 건드리는 일을 할 수도 있고. 

       

       

       “예. 폐하. 한국인은 결코 은혜를 잊지 않습니다. 한국을 해방시켜주시면, 이후 친러국가로서 아시아의 동맹이 될 것입니다.”

       

       

       그래 원래 역사를 생각해도 그랬지.

       

       명나라의 만력제가 도와줬을 때도 그랬고. 중국이 분열되면 중국 눈치 볼일도 없으니 우리가 해방시키면, 확실한 친러국가가 될 것이다.

       

       선전포고 없이 뒤통수치는 일본놈과는 다르지.

       

       하지만 말이야. 그건 내가 한국인이라서 이해가능한 부분이지 보통이라면 말도 안 되는 개소리다.

       

       제 삼자가 보기에는 고작해야 식민지 약소국의 망명정부 아닌 망명정부 따위가 차르에게 든든한 우방이 되어주겠다는 헛소리를 하는 거니까.

       

       조금 더 괴롭히기로 했다.

       

       

       “고작 일본 따위의 식민지나 되는 반도의 나라가 감히 러시아의 우방이 되겠다고? 감히 네놈들이 뭔데 주제도 모르고 우리 러시아의 우방이 되겠다는 소리를 하는 거지?”

       “폐하의 심기를 어지럽혔다면 죄송합니다. 그러나 그만큼. 한국인들은 절실하기 때문입니다. 해방시켜 주신 것만으로도 한국인들은 큰 은혜라 여길 것이며, 그 어떤 상황에서도 러시아의 편으로 남을 것입니다.”

       

       

       그래. 저 말은 잘했다.

       

       결국 정리하면 한국인들은 러시아가 해방시켜줄 경우,  그 은혜를 갚기 위해 진정 러시아를 위해 극동을 지킬 방패가 되어주겠다는 소리니까.

       

       

       “그렇게 우리가 도와 너희가 독립하고 힘을 키운다치자. 우리 러시아의 극동을 노리지 않는다는 법이 어디 있나?”

       “침략을 하지 않은 한국의 역사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일찍이 명나라의 황제 만력제가 조선을 구원하여 수백년에 걸쳐 그 은혜를 섬겼습니다. 또한, 해방 후, 중국도 있을 것인데, 어떻게 러시아의 극동을 노리겠습니까? 무엇보다 한국은 중국을 상대하면서 러시아의 극동까지 전선을 넓힐 만큼의 인구도 역량도 없습니다.”

       

       

       침략을 하지 않은 한국의 역사라.

       

       정확히는 약하니 못했다고 보는 게 맞겠지. 고구려라면 모를까. 조선은 통일 중국을 상대로 사대만 했었지.

       

       뭐 그럴 듯한 말이지만, 그건 됐고. 친러 국가가 되면 결국 자원도 어디서 가져오겠나? 러시아에 의지하게 될 것이다.

       

       자원으로 옥죄기만 해도 한국은 힘들걸.

       

       일본이 당하는 걸 두 눈으로 볼 텐데.

       

       그나마 한국에서 나오는 자원을 뜯어낸다면 텅스텐 정도겠지만. 한국이 유지하기도 힘든 극동 먹겠다고 러시아에 반기를 들기보다는 차라리 러시아와 협력하는 걸 택하겠지.

       

       수천만의 인구라면 중국도 분열될 테니, 전후 아시아에서 중국과 싸울 이스라엘의 뒤에서 균형자 역할 정도는 가능하겠지.

       

       내 원래 계획대로 말이다.

       

       나는 빙긋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좋다. 차라리 그러는 것도 좋겠지. 보라. 운게른 대장, 호르바트 총독. 이 정도면 러시아의 극동 헌병으로 나쁘지 않을 거 같은데.”

       “감히 차르 폐하께 무례를 범한 것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확실히 그 일본놈들보다는 마음에 드는군요.”

       “더군다나 일본 놈들이 감히 전쟁 때 그런 약은 짓을 했다는 것도 알려주었으니, 이건 둘도 없는 명분을 주었다 할 수 있습니다.”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지만.

       

       그런대로 정치적인 이유로 이들도 한국을 독립시키는 쪽으로 받아들였다.

       

       

       “들어라. 솔직히 말해 그대들이 내 치맛자락을 붙들고 무조건 도와달라. 이러면서 매달렸으면 뒤도 안 돌아보고 일본에 던질 생각이었다. 러시아에 필요한 것은 제 나라 독립시켜달라 군대를 빌려달라는 약소국 따위가 아니라 최소한 제 몫을 할 든든한 아군이니.”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잊지 않을 것입니다.”

       

       

       이강이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런데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말했듯, 한국 해방 이후 한국의 해방은 임시정부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다를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말만 나온 것이다. 앞으로 너희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조선반도에는 현지인들로 정부를 구성해 우리 괴뢰국으로 만들 수도 있다.”

       

       

       이건 진심이다.

       

       다시 말하지만, 나 혼자 모든 걸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지금까지 국가 두마가 잘도 나를 잘 따랐지만, 이건 이거다.

       

       일본을 밟는 게 당연하다고 해도, 국가두마는 그 과정에서 한국인들의 외침을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일본은 일본이고 한국 독립은 한국 독립이니까.

       

       그냥 일본을 밟는 김에 한반도를 전리품으로 가질 수도 있다.

       

       그러니 최소한 한국이 러시아에 도움 되는 우방으로 남게 하려면 목줄은 채워야지.

       

       설령 그렇다 해도 원 역사보다는 훨씬 나을걸?

       

       미국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남만주+한반도에 러시아산 자원이 들어오면 나쁘지 않을 거다.

       

       

       “그것을 어찌 모르겠습니까.”

       “독립하면 확실히 친러 국가로 남아야 할 것이다. 나라의 재건 비용은 지원해주겠으나. 목줄은 채워둘 거야.”

       

       

       목줄이란 말에 이강과 안창호의 눈이 부르르 떨렸다.

       

       뭐 러시아가 식민지라도 만들 거로 생각했나.

       

       부동항은 개꿀이긴 하지만, 솔직한 말로 지금도 항구는 충분히 있다.

       

       목줄을 채운다는 건 말했다시피 자원이다.

       

       

       “목줄이라하면,”

       “나라가 살아날 수 있게 자원을 지원하지. 다만, 우리가 그 줄을 끊으면 재건된 한국은 경제 위기를 맞이할 정도가 되겠지.”

       

       

       오로지 러시아에서만 수입하게 만들고. 러시아에 의존하게 만들어서 최소한 러시아를 적대하는 일이 없도록 만들어야지.

       

       어쨌든 한국은 해방 후 직접 영토를 마주하게 될 테니까.

       

       

       “그것은.”

       “미리 말하는데, 아무리 내가 내전의 영웅이고 다시금 러시아의 군주가 되었으나 국가의 이익이 우선이다. 더군다나 국가 두마는 너희 한국인들이 독립시켜달라는 주문 사항만 보겠지. 그러니 설득할 만한 대가는 있어야 한다. 아닌 말로 굳이 너희를 해방시키지 않아도 경우의 수는 많으니까.”

       

       

       즉, 결론만 말하면 완벽한 친러국가로 만들겠다는 소리.

       

       그렇게 된다고 해도 결국 한국이 러시아를 등지지 않는 이상. 한국은 원 역사보다 더 발전할 것이다.

       

       이 정도면 남는 장사 아니냐.

       

       원래 역사도 중국, 미국이 작정하고 건드리면 한국은 쫄딱 죽잖아.

       

       그럴 거면 차라리 이 역사에서는 러시아에 의지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이게 싫다면 적당히 이용만 하다가 현지 정부를 꾸려야겠지.

       

       

       “받아들이겠습니다.”

       “총독부와 아시아 기마사단 아래에서 조선인들을 군대로 길러주지. 후일 그날이 오면 그들을 너희의 군대로 삼고 한반도로 남하하라.”

       

       

       우리가 지원군은 내줄 것이지만, 그래도 군대는 길러둬야 그 군대로 먼저 입성하고 독립뽕맛은 내겠지.

       

       러시아 군대도 피해를 최소화하고 말이다.

       

       적어도 원역사처럼 수백명의 독립군으로 서울 진공작전을 벌여서 각도시와 연계하여 일본군을 격퇴하겠다는 희망회로를 돌리는 것보단 훨씬 나은 역사다.

       

       

       “예. 감사합니다.”

       “명심하라. 우리는 너희가 불쌍해서 동정으로 은혜를 베푸는 것이 아님을. 제 몫을 하지 않으면 한반도 합병은 아니더라도 내 입맛에 맞게 정부를 구성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이강과 인창호는 긴장한 얼굴로 대답했다.

       

       손을 말아 쥔 것을 보면 내 말을 허언으로 들은 건 아닐 것이다.

       

       제 주제를 알고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지.

       

       

       * * *

       

       

       이강과 안창호가 물러나자마자, 운게른이 찝찝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일단 목줄은 채운다고 하였습니다만, 여전히 저는 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차라리 조선을 핀란드처럼 만들어 버리시고 폐하께서 조선 황제를 겸하시면 되지 않습니까?”

       “그렇게 해서 받아들일 만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2, 3천만이란 숫자가 다른 열강 국가에 비하면 밀리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만한 머릿수도 아니고. 무엇보다 합중국 국민이 인정을 하겠나요? 러시아의 차르가 동양의 황제를 겸한다?”

       

       

       물론 영국령 인도 제국도 그렇고 어쨌든 열강국가가 식민 국가의 군주를 겸하기도 했지만, 그건 식민지여서 가능한 것이다.

       

       핀란드식으로 내가 조선 황제를 겸한다치면. 퍽이나 한국인들도, 러시아인들도 퍽이나 받아주겠다.

       

       핀란드도 자신들이 동양의 조선과 같은 급이라는 사실에 분개할지도 모르고.

       

       한국인들은 당장 이왕가에 실망했을 텐데, 기껏 독립했더니, 다른 민족의 황제가 자기네 군주를 겸한다더라.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며, 러시아인들은 다른 의미로 화가 나겠지.

       

       감히 한국인들이 뭔데, 우리 차르를 군주로 모시고 있는가- 하고 말이지.

       

       

       “아쉽군요. 몽골제국의 대칸과 동로마의 황제도 전부 겸하셨는데, 동양의 군주를 겸하지 못한다는 것이 참.”

       

       

       이 사람 세묘노프한테 옮은 거 아닌가.

       

       아니면 사실 미친남작 설이 진짜였다거나.

       

       어우. 그렇다면 정말 끔찍한데.

       

       

       “뭐 하지만 우리 국민이 찬성하고 한국인들이 원한다면야 불가능할 것도 없겠죠. 가능성은 낮겠지만 말입니다.”

       “호오. 그 말씀은.”

       “혹시라도 임시정부를 압박해서 조선 황제 자리 얻어낼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마십시오.”

       “크흠.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의심스럽긴 하지만, 설마 그러지는 않겠지.

       

       

       “그보다. 호르바트 총독. 조선인들로 총독부 군대를 키우면, 일본이 반발할 우려가 있을 테니, 총독부 측에서 잘 처리하셔야 합니다.”

       “그들도 항의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애초에 러시아 극동군이라 할 수 있는 아시아 기마사단은 몽골과 중국 국경에 주로 많지만, 총독부 군대는 그 숫자가 굉장히 적습니다. 일본도 의심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건 잘 되었군요.”

       “무엇보다 만철군의 지휘를 맡은 무타구치 렌야란 자는 보기보다 담대한 인사더군요.”

       “담대하다고요?”

       “자기들 뒤통수를 칠 군대가 북만주에서 키워지는 줄도 모르고 조선인들을 계속 보내고 있으니 말입니다. 하하하하하!”

       

       

       대체 뭔 일을 어떻게 하면 무타구치 렌야는 벌써부터 그런 취급인가.

       

       그래. 뭐 상관없겠지.

       

       그 인간 실제 역사를 생각하면 북만주 총독을 안심시켜 반대로 러시아 뒤통수를 치겠다. 라는 생각은 못할 거다.

       

       

       “그래도 솔직히 이 운게른은 좀 불안하긴 했습니다.”

       

       

       운게른이 대뜸 삼인칭 귀여운 척을 하고 있다.

       

       물론 그런 의미는 아니겠지만. 지금 저 인간 입에서 나온 단어가 불안하다. 라는 부분에서 좀 많이 그래.

       

       

       “운게른 대장이 불. 뭐라고요?”

       

       

       이 사람이 불안한 것도 있어?

       

       와우. 그건 정말 예상 외인데. 설마하니 몽골과 만주를 오가던 운게른이 멀리 첫 수학여행을 가는 학생처럼 불안해 했을까.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겠지.

       

       

       “불안했습니다. 생각해 보시지요. 당장 저들 폴란드에서 그런 일이 있지 않았습니까? 혹시라도 하얼빈 역에서 무슨 일이 터지지는 않을까. 좀 걱정이었습니다. 당장 선대 차르 폐하께서도 오쓰 사건을 겪으셨고. 또 하얼빈 역에서는 한국인이 일본 고관을 암살하지 않았습니까?”

       “흠 그렇긴 했지요.”

       

       

       러시아와 관련해서 좀 뒤숭숭한 일이 많았지.

       

       일본에서는 아나스타샤의 아버지인 니콜라이 2세가 암살당할 뻔했고. 러시아가 관리하는 하얼빈에서는 이토 히로부미가 안중근 의사에게 암살당했다

       

       

       “하하하. 이곳 북만주는 이제 완전히 저희 땅이고 치안도 확실합니다. 더군다나 일본 땅도 아닌데 오쓰 사건 같은 일이 일어날 리도 없고, 더더욱 도움을 바라고 북만주에 머무는 처지인 한국인이 폐하께 감히 다른 생각을 품겠습니까?”

       “아니오. 많은 볼셰비키가 이제 다 죽고 러시아 본토에서 자취를 감췄으나, 이곳 북만주에 없으란 법이 있겠습니까?”

       

       

       그렇긴 해.

       

       나를 죽일 이유가 있는 사람들은 볼셰비키다.

       

       모르긴 몰라도 도망친 볼셰비키가 북만주에도 좀 있을 만한데, 흠. 아니지.

       

       애초에 유대인의 자본이 들어오는 지역이다.

       

       설령 볼셰비키가 있어도 총독부가 진작에 틀어 막았겠지.

       

       그러고 보니 궁금해지네.

       

       나는 호르바트에게 말을 해보라는듯 눈칫을 했다. 그러자 호르바트는 약간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운게른을 힐끗 거리다 입을 열었다.

       

       

       “볼셰비키가 없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요?”

       “네. 하지만 그것도 이 도시에 유대인들이 들어오면서 제가 총독부 군대를 동원해 눈에 보이는 볼셰비키는 모조리 처단하게 한 이후부터는 종적을 감췄습니다.”

       

       

       흠, 그렇군. 어쨌든 외국인이 괜히 피해를 보면 안 되니까.

       

       그 덕에 내가 피해를 볼 일은 없었다 이 말이로군.

       

       

       “잘하셨군요.”

       “오흐라나의 정보망도 덕이었지요.”

       “좋습니다. 그럼 며칠은 좀 북만주를 둘러보다 모스크바로 돌아가야겠습니다.”

       “예. 폐하.”

       

       

       이 무렵의 조선은 어떨지 직접 두 눈으로 보고 싶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러시아 차르로서는 무리겠지.

       

       차르 입장에서는 굳이 일본이 먼저 제안하지 않는 한 가야 할 이유도 없고 말이다.

       

       일본도 자기네 열도 본국이라면 모를까 식민지에서 나를 초대하지는 않을 테고.

       

       그래도 그 사람은 꼭 보고 싶기도 하다.

       

       무타구치 렌야 말이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원래 계획이라면 만우절 표지에 맞춰서 포살당한 레닌이 깨어났더니 21세기로 온 외전을 만우절 기념으로 올리고 바로 본편 연참가려고 했었는데.

    인터넷 기사와 모뎀 가지고 좀 대화가 많아서..

    이것 저것하다 보니 못 쓰게 되었네요….

    그리고 새로운 표지도 많이 만들어졌습니다.

    오쓰 사건: 1891년 5월 11일 일본 제국을 방문 중이던 러시아 제국 황태자 니콜라이 로마노프(후일 니콜라이 2세)를 시가현 시가군 오쓰정(滋賀県 滋賀郡 大津町, 현 오쓰시)의 경비를 맡고 있던 경찰관 쓰다 산조(津田三蔵, 1855~1891)가 칼을 휘두르면서 습격하여 중상을 입힌 암살 미수 사건이다.

    선작, 추천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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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ast Princess of the Bear Kingdom

I Became the Last Princess of the Bear Kingdom

Status: Ongoing Author:
I became a Russian princess destined to die in a revol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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