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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6

       클락의 허리에 매여있는 은장검 살살이.

        아니, 한때 백가의 상위 서열이었던 프란츠 가문 적녀이자 ‘파도의 소환사’라 불리던 마법사 헤르헤 소롯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드디어 악마가 기억을 되찾았다.

        즉, 자신이 이 빌어먹을 쇳덩어리로부터 벗어날 때가 되었다는 뜻이었다.

       

        애초에 그가 정말로 기억을 잃어버린지조차 확신할 순 없었다.

        저 인간 같지도 않은 말종의 성격대로라면 자신에게 한 말을 지키지 않기 위해 지금껏 연기를 하고 있다 해도 충분히 설득력 있었으니까.

       

        언젠가 44층에 다시 가게 된다면 몸을 되찾아주겠다는 약속.

        현재 그는 천변의 방을 통과하고 40층대인 ‘허무의 층’에 진입하며 공역(空域)에 입장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이전처럼 급행 열차를 타고 결계를 뚫지 않아도 얼마든지 보물방에 들어갈 수 있다.

        시련을 빠져나오자마자 기억상실증 환자 행세를 하지만 않았다면 진작 그를 닦달해 그곳으로 향했을 것이다.

       

        ====

        ID : 44층에갇혀있어요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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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4층에 갇혀 있어요 제발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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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4층에 갇혀 있어요 제발 도와주세요]

       

        관리자 메뉴(커스텀 가능)

        1. 분탕 3일 차단

        2. 주딱의 검 슬래쉬!!(살살이전용비기)

        3. 게시판 임시폐쇄

        4. 가면 ON

        5. (버튼) – 1,700,000P(비활성화)

        6. 파멸의 날 프로토콜(절대! 누르지 말 것!)

        ====

       

        주딱이 멋대로 바꿔놓은 관리자 메뉴 5번에 존재하는 1,700,000포인트짜리 버튼.

        토비의 머리카락 1천개를 대가로 그녀가 30분간 자유를 되찾을 수 있는 버튼이지만 클락의 해주 마법으로 원래대로 되돌아올 수 있는 지금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니었다.

       

        — 주ㄷ닥!!

        — 속ㅎㅣ 복구ㅣ!!

       

        검에 묶어놓은 위치노트의 조각이 너무 작아 바보같은 문장 구사력을 갖추게 되었지만 그녀는 엄연히 마탑 상층에 발을 들인 마법사.

        백가 내에서도 큰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던 프란츠 가문을 단신으로 서열 3위까지 올려놓은 장본인이기도 했다.

        현재 공석이나 다름없는 소환학파의 칠현자 지위까지도 노려볼 수 있는 천재 중의 천재를 괴롭히는 건 단 하나밖에 없었다.

       

        바로 돈.

        한평생 그녀를 괴롭혀왔던 지긋지긋한 재화.

        소환학파는 대대로 찢어지게 가난하다.

        전 칠현자가 빚더미에 파묻혀 죽었다는 소문까지 돌 정도니 오죽하겠는가.

       

        프란츠 가문은 그중에서도 재정상태가 최악이어서 마음껏 쓸 수 있는 소환물이라고는 트라팔가 호수의 물밖에 없었다.

        그마저도 지금은 니플헤이르에게 빼앗겨 버렸고.

        헤르헤가 ‘현재 마탑에서 가장 주목받는 마법사 랭킹!’ 프로그램에 나갔던 것도, 빈센트의 꾀임에 넘어가 공역에 발을 들였던 것도 다 돈을 마련하기 위함이었다.

       

        허나 주린 배를 물로 채웠던 날도 이제 끝이었다.

        다시 탑을 오를 기회를 얻는다면, 그런 치욕스런 삶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테니까.

       

        — 44층!!

        — ㄴㅏ ㅈㅏ유!!

        — 그동안 ㅇㅣㄹ한 포ㅇㅣㄴ트도 골ㄷㅡ로 호ㅏㄴ급!

        — 1 0ㄷㅐ 1, 아ㄴㅣ 100 ㄷㅐ 1 로도 좋으ㄴㅣㄲㅏ!

       

        그동안 자신이 정당하게 노동한 대가를 요구하는 그녀.

        나러자 분명 메시지를 읽은 클락은 아무렇지도 않게 노트를 덮으며 중얼거렸다.

       

        “음, 이상한 데서 온 스팸이 많네. 광고도 있고…… 대체 여기 운영자는 관리를 왜 안 하는 거야?”

        — 주ㄷ닥!!!

       

       

       

        * 

       

        이 정도로 자연스러웠으면 의심받지는 않겠지?

        하마타면 갤러리를 본 순간 내가 누구였는지 깨달았다는 사실을 들킬 뻔했다.

       

        월급이라니.

        살살이 녀석, 그동안 간악한 흉계를 꾸미고 있었나.

        날이 긴 병장기는 거두는 게 아니라더니 먹여주고(안 먹임) 재워준(안 재움) 은혜를 이런 식으로 깊을 줄은 몰랐다.

        이불 안에서 날뛰는 녀석을 간신히 제압하고 밖으로 고개를 내밀자 화장을 지우던 시엔이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숙였다.

       

        “무, 무슨 일이야 클락?”

        “별 것 아냐. 그보다 네 스타킹 맛을 봤더니 옛날 기억이 좀 돌아오는 것 같아.”

        “지, 진짜……? 그걸로?”

        “그러니까 앞으로도 잘 부탁해.”

        “으, 으응…….”

       

        덕분에 시엔의 복사뼈 굴곡이 그대로 남은 스타킹 컬렉션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지만 마음은 더없이 무거웠다.

        이유를 설명해 무엇하랴.

        기억은 돌아왔지만 지금의 나는 말 그대로 모든 의욕을 상실한 상태.

        천변의 방에서 동분서주로 노력했음에도 ‘분탕의 왕’이라는 이명을 얻지 못한 충격에 싱싱미역 그 자체였다.

       

        그동안 나를 믿어줬던 갤러리 유저들에게 차마 얼굴을 들 수가 없다.

        기왕 이렇게 된 김에 조금 더 휴가를 즐겨보는 건 어떨까.

        물론 단순히 시간을 죽이기 위함은 아니고, 내가 사라질 때 갤러리가 어떤 식으로 유지되는지를 테스트하는 것이었다.

        앞으로도 시련에 들어가거나 이번처럼 불의의 사고가 벌어졌을 때 접속이 끊기는 일이 종종 있을 테니까.

       

        ‘아직은 괜찮은 것 같은데…….’

       

        천변의 방에서 나온 날짜가 대략 열흘 전이었으니 벌써 꽤 오랫동안 자리를 비웠다.

        그 사이 내가 없는 혼란이 생각보다 심각한 사태로까지 번지지는 않았다.

        게시판 50개가 초토화되고 모든 떡밥이 주딱의 생사로 도배되었으며 부계정으로 올려놓은 ‘창쎈짱짱맨’과 마리엘이 커뮤니티의 간자로 몰려 매달리긴 했지만 이 정도는 예상 범주 내였다.

       

        파딱 해제권을 주기로 했는데 강제로 끌어내려졌으니 소원을 이룬 게 아닐지.

       

        그보다 나머지 세 명의 파딱들이 또 한 번 잠수를 탔다는 점이 거슬렸다.

        성신제 때는 봐줬지만 이번에는 아니었다.

       

        ‘오랜만에 얼굴 좀 봐야겠군.’

       

        연회를 열어서 따끔하게 한 마디 해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우선 그러려면 장소가 필요했다.

       

        특정 학파의 소유가 아니면서도 보안이 철저해 사람들 눈에 쉽게 띄지 않고, 동시에 너무 고립되지는 않은 공간.

        대미궁처럼 갤질에 인생을 갈아넣은 파딱들이 높아서 못 왔다는 핑계를 대지 못하게 하려면 되도록 하층인 편이 좋았다.

       

        조건이 너무 많다.

        굳이 꼽자면 폐쇄된 해주학파의 라운지가 있던 20층 계단?

        하지만 거기는 제대로 앉을 곳도 없고 위엄도 살지 않는데.

       

        “이, 있잖아 클락. 기억이 돌아왔다니까 하는 말인데…….”

        “응?”

       

        특별히 떠오르는 장소가 없어 고민하던 와중, 뜻밖의 기회를 얻게 되었다.

        다름 아닌 시엔으로부터였다.

       

        “우리 시, 신혼 여행 갈 계획이었다고 말했던 거…… 기억해?”

       

       

       

        *

       

        ====

        빵이없으면포인트를먹으면되잖아

        [여자친구가 세계선으로 신혼여행을 가자고 하는데요]

       

        거기 지금 학파들끼리 소유권 얻겠다고 아주 난리인데 괜찮을까요?

        찾아보니까 안전한 구역이 따로 있는 모양인데 코스 추천 좀 부탁드려요 ><

       

        아, 그리고 거기에 저와 불륜 관계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는데 마주칠 확률이 높진 않겠죠?

       

        *참고로이글이어떤이유로든삭제되면등반은포기하고43층에서남은여생을보낼계획이에요ㅇㅅ<)V

       

        — 오우 쉣

        — 거길 간다고? 

        — 학파 별로 소유권 주장하려고 만들어놓은 마을이 몇 개 있다고 듣긴 했는데 굳이……?

        — 여친한테 뭐 잘못한 거 있냐? 아니면 보험 들었음? ㅋㅋㅋㅋ

        — 넌 여친이랑 상간녀랑 삼자대면 해도 달게 받아라~

        — 프리나나나아님 : 근데 님 뭔데 닉 글자 제한 뚫음?

         ㄴ 빵이없으면포인트를먹으면되잖아 : 포인트 상점에서 뽑았어요!

         ㄴ 프리나나나아님 : 그거 최근에 열린 적 없는데? 잠깐, 가입일 보니까 좀 이상한 거 같은…….

         ㄴ 빵이없으면포인트를먹으면되잖아 : 부관리자님 커맨드 2번 2번이요

         ㄴ 빵이없으면포인트를먹으면되잖아 : 이 사람 처리해주세요

         ㄴ 프리나나나아님 : 그게 뭔…… 글입니다』

         ㄴ 프리나나나아님 : 『삭제된 댓글입니다』

         ㄴ 『블라인드 처리 된 유저입니다』 : 『삭제된 댓글입니다』

         ㄴ 『블라인드 처리 된 유저입니다』 : 『삭제된 댓글입니다』

        ====

       

        “여기 두고 가신 노트요. 프라이버시니까 안 열어봤어요.”

        “감사합니다.”

       

        나는 마가렛에게 관리자 계정이 담긴 노트를 돌려받고 살살이가 ‘비기, 주딱슬래쉬’를 제대로 날린 것을 확인했다.

        역시 아직 몸을 되찾기 전이라 그런지 순순히 협조하는군.

        이렇게 일을 잘해 준다면 주딱이 없더라도 갤러리가 당장 뒤집어지진 않을 것이다.

        그 사이 나는 시련이 붕괴해버린 세계선으로 들어가 파딱들을 소집해 정신교육을 시키면 된다.

       

        시엔이 신혼 여행지를 그곳으로 정한 이유가 관광 때문만은 아니었으니 혼자 움직일 시간은 충분했다.

        겸사겸사 마가렛에게 공략대가 쓰는 캠핑 용품이나 보존식 등이 있으면 달라고 하니 그녀는 흔쾌히 내어주었다.

       

        “뭐, 드리는 건 어렵지 않은데…… 굳이 이미 통과한 층을 가시는 이유가 뭔가요? 해주학파가 소유권 쟁탈에 참전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으음, 이걸 말해도 될까?

        시엔이 우리 관계는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는데.

        그래도 내 목숨보다 소중한 노트를 안전하게 맡아줬으니 마가렛에게는 사실대로 이야기하기로 했다.

       

        “부끄럽지만 신혼여행입니다.”

        “네?”

        “시엔이랑요.”

        “???”

       

        그녀는 안경이 흘러내리는 것도 잊은 채 한동안 멍때렸다.

       

        “클락 씨, 혹시나 해서 묻는데 프리나에게 연락은 하셨나요?”

        “누구요?”

        “정말로 기억이 다 돌아오신 거 맞죠? 후유증이 남아있는 채로 세계선 같은 곳에 가면 위험하실 수 있어요.”

        “다 나았다니까요. 그리고 마장도 챙겨가니까 걱정 마세요.”

       

        내가 허리춤에 묶여있는 살살이를 두드리자 마가렛은 탄식을 내뱉었다.

        그러더니 이내 품에서 포션 한 병을 꺼내었다.

       

        “이것도 드릴 테니까 챙겨가세요. 정보 2과에게 세무조사 받기는 싫으니까 제가 줬다고 말하진 말고요.”

        “오, 무슨 포션인가요?”

       

        마가렛은 대답 대신 내 로브를 걷어 안주머니를 열었다.

        안쪽에는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손바닥 사이즈의 인형 하나가 들어 있었다.

        찔리면 아플 것 같은 가위를 들고 있는 인형은 마가렛이 포션 병을 넣자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옆 공간을 내어주었다.

       

        “비밀이에요. 때가 되면 알아서 먹게 될 테니 또 깨뜨리지만 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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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이세계 마탑의 갤주가 되었다
Score 3.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10 years since transfer to another world

What I do inside the Ivory Tower of Truth isn’t much different from what I did on Earth.

====

[If you missed today’s attendance for the ‘Principles and Understanding of Dimensional Glass’ course, you’ll get a penalty] If you want to kill the professor who suddenly changed the classroom with a phase transition 2 minutes before the start of class, go ahead. Haha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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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why does everyone think I’m the Tower 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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