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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6

       

       

       “···오랜만입니다, 사령관님.”

       

       

       숙소로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와 일행들은 쉽다 못해 어이가 없을 정도로 간단하게 사령관을 만날 수 있었다.

       

       이게 맞나?

       

       설마 이 세계의 높으신 분들은 이렇게 쉽게 만날 수 있는 게 정상이야?

       

       내가 이상한 건가 싶어 주변을 둘러보며 일행들의 반응을 살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이상한 것이 아니라고.

       

       다들 경악한 표정이었거든. 이렇게 쉽게 만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은 표정이었다.

       

       

       “···사령관님?”

       

       “저 아이들이 궁금한 게 많아 보이는데. 그것부터 해결해주고 이야기하지 않겠나?”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는 듯, 인자한 표정을 지으며 사령관은 우리를 바라보았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새하얗게 탈색된 머리카락과 수염. 그리고 얼굴의 주름이 조화를 불러왔다.

       

       추하다기보다는 연륜이 깃들어있는 모습이구나.

       

       인자한 듯한 표정이 더욱 그렇게 생각하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이렇게 쉽게 만날 수 있는 거죠?”

       

       

       다들 정말 말해도 괜찮은지 우물쭈물하고 있을 무렵.

       

       아멜리아가 당돌하게 질문했다.

       

       

       “너무 이상해요. 사령관이라면 분명 이곳의 핵심 인력인데, 아무도 지키는 사람이 없다니.”

       

       

       그래. 그것이 모두가 생각한 의문이었다.

       

       이 인자한 할아버지는 사령관이다.

       

       사람들을 다루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고.

       

       심지어 이곳은 최전방. 강력한 마수들이 있는 건 둘째치더라도, 이곳에는 죄수들이 있다.

       

       인력이 부족하기에 억지로 채워 넣은 죄수들.

       

       누구더라?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하율의 친구를 죽인 그 빌런도 이곳에 머무른 적이 있었다.

       

       이런 곳에서 탈출하고 나서도 민간인을 죽이고 다니는 쓰레기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물론 작가님의 설정 변경 탓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작가님이 설정하지 않은 부분은 개연성에 맞게 돌아갈 텐데, 그런 사람들이 이 주변에 한두 명만 있을 리가 없었다.

       

       분명 이런저런 잡음이 있을 테고, 그렇다면 사령관에게 해를 끼치려는 사람이 없을 리가 없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죄수들이 가만히 사령관의 말을 듣는 장면은 생각나지 않았다.

       

       이 할아버지의 목을 베고 나서 도망치는 장면이라면 모를까.

       

       

       “···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군요. 모를 거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네요. 제 실수네요. 죄송합니다.”

       

       “괜찮단다. 그리 중요한 사실도 아니고.”

       

       

       중요한 사실이 아니라고?

       

       의문을 표하는 우리에게, 하율은 웃으며 말했다.

       

       

       “여기서 제일 강한 사람이니까요. 고작해야 잡혀서 이곳으로 넘겨진 범죄자들에게 당할 정도는 아닙니다.”

       

       “···아빠보다 강해요?”

       

       “그럼. 네 아버지보다는 훨씬 세지. 그런 놈에게 지면 내 체면이 말이 아니란다.”

       

       

       여자애들 홀딱 벗고 다니는 소설이나 읽고 다니는 놈에게 지면 수치심에 목매달고 죽어버려야 할 게야.

       

       그렇게 말한 할아버지가 수염을 쓰다듬으며 인자하게 웃었다.

       

       

       “그렇게 따지자면 죽을 사람 참 많은데···. 아니, 그게 아니라. 그런데 왜 우리가 몰라요?”

       

       “음?”

       

       “그렇게 강한 사람이라면 소문이 나지 않을 리가 없잖아요. 적어도 언론에 한 번이라도···.”

       

       “여긴 최전방이란다. 사람들에게 말하지 못하는 비밀도 참 많은 곳이지.”

       

       “···.”

       

       “아직도 물어보고 싶은 게 많은 모양이지만, 여독을 먼저 푸는 게 어떻겠니?”

       

       

       표정을 바꾸지 않은 채로 웃고 있는 할아버지가, 우리에게 제안했다.

       

       아니, 제안이라기보다는 사실상 통보겠지.

       

       이 상황에서 싫다고 말할 사람은 딱히 없을 테니까.

       

       ···아멜리아라면 조금 다르지 않을까 생각하기는 했지만, 역시 아멜리아도 그 정도로 막 나가지는 않는다.

       

       모두가 수긍한 듯 보이자, 사령관은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로 우리에게 말했다.

       

       

       “학생들을 이런 외진 곳에 불러 미안하구나. 너희들의 도움이 필요한 부분은 최대한 빨리 끝내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하마.”

       

       “···알았어요. 감사합니다.”

       

       “하율에게 자세한 사항을 알려줄 테니, 사람이 없는 빈방에 들어가 푹 쉬고 있도록 하렴.”

       

       “서, 선생님은 인솔 역인데요?”

       

       “오랜만에 만나는 부하니까,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싶구나. 대신 할 사람을 미리 불러놓았으니 용서해주렴.”

       

       “네? 대신 할 사람···?”

       

       

       -빵!

       

       

       그 순간, 건물 밖에서 경적이 울렸다.

       

       

       “왔구나.”

       

       “하, 하지만···.”

       

       “먼저 가도록 하세요, 도로시 양. 나중에 찾아뵐 테니까요.”

       

       “···네.”

       

       

       으음, 뭔가 수상하단 말이지.

       

       나는 미심쩍은 눈초리로 사령관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보통 이런 착해 보이는 사람들이 속이 새까만 건 클리셰라고.

       

       ···아직 의심해본들 의미는 없겠지만 말이야.

       

       아직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으니.

       

       작가님이 설정을 만졌는지도 모르겠고.

       

       지금은 저 사람의 말에 순순히 따르기로 했다.

       

       정말 착한 사람일지 누가 알겠어?

       

       작가님에게 물어본들 대답해 줄 것 같지도 않고.

       

       

       

       ***

       

       

       

       “···오랜만이구나. 많이 변했어.”

       

       “역시, 눈치채셨습니까.”

       

       “모를 리가 없지. 내 능력은 너도 잘 알잖니.”

       

       

       한숨을 내쉬며 옛 부하를 바라보았다.

       

       어쩌다 이렇게 변해버렸는지.

       

       예전의 그 순진하고 남을 위하던 모습은 어디로 사라지고, 지금 남은 것은 닳디 닳은 한 명의 베테랑 영웅뿐.

       

       이렇게 된 사람들을 보는 것은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역시 이런 변화는 바라볼 때마다 가슴이 아파져 왔다.

       

       

       “결국 죽였구나.”

       

       “···역시 아시는군요.”

       

       “아까도 말했다시피, 모를 리가 없잖니.”

       

       ‘역시 저 능력은 사기라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들 내 눈앞에만 서면 그렇게 생각하는구만.

       

       생각보다 불편한 점도 많은데 말이야.

       

       생각을 읽힌다는 게 아무래도 불쾌한 면이 있을 테니 어쩔 수 없겠지.

       

       

       “···그래서? 저를 죽이시겠습니까?”

       

       “내가 뭐라고 할지 알고 있으면서 그렇게 말하는 건 그만두었으면 좋겠구나.”

       

       “역시 그렇죠. 알고 있었습니다.”

       

       

       ···아라크네라.

       

       속세도 많이 변했어.

       

       매일같이 넘어오는 골치 아픈 사고뭉치들이 요즘 줄었다 싶더니, 그런 이유가 있었을 줄이야.

       

       하율이 사람을 죽인 것 가지고 뭐라고 할 생각은 없었다.

       

       그때의 그녀를 직접 다독여준 게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었으니, 우연히 만난다면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으니까.

       

       

       “왜 꺼내주었냐고 말해도 의미 없겠죠.”

       

       “그럼. 원칙이잖니?”

       

       “예전과 바뀐 게 하나도 없으시네요.”

       

       “이래 봬도 많이 바뀌었단다. 슬슬 머리카락이 빠지지는 않을까 무섭거든.”

       

       “농담도. 아직은 숱이 많아 보이는걸요.”

       

       “그러니?”

       

       

       입에 발린 말이라는 걸 알아도 기분이 좋아져 껄껄 웃었다.

       

       옛 인연과 이야기하는 것은 언제나 즐거웠다.

       

       ···하지만 슬슬 본론을 이야기해야겠지.

       

       

       “으음, 말했다시피 원하는 건 수색뿐이란다. 나머지는 하지 않아도 괜찮아.”

       

       “수색만으로 충분한가요? 전투를 도와주는 게···.”

       

       “그렇다면 물론 도움이 되겠지만, 만약 학생들이 다치기라도 하면 큰일이잖니.”

       

       

       만약 그 아이들이 다치기라도 한다면 무슨 꼴이 벌어질지 벌써 눈에 그려졌다.

       

       시위를 한다거나, 어디 인터넷에 논란이라면서 떠돌아다닌다거나 하지 않을까.

       

       우리들을 건드리려는 사람들은 별로 없지만, 그렇다고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원칙에 따라 풀려난 빌런들의 피해자들.

       

       맛있는 기삿거리를 찾아 헤매는 기자들.

       

       초인들을 싫어하는 단체들.

       

       그런 놈들에게 빌미를 주지 않으려면 문제가 될법한 것은 최대한 차단해야만 했다.

       

       수색 능력자가 갑작스럽게 병에 걸리거나, 개인적인 사정으로 오지 못하게 되어 어쩔 수 없이 학생을 데려오기는 했지만···.

       

       더 큰 빌미를 줄 수는 없지.

       

       

       “남자아이는 수색 담당으로 해두고, 나머지 학생들과 함께 다닐 수 있게 해주렴. 목적은···호위 정도로 해두면 되겠지. 친구를 생각하는 마음이 기특하구나.”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해드리죠.”

       

       “아, 그리고 잠깐.”

       

       “네?”

       

       

       전달 사항을 모두 들은 하율이 자리를 벗어나려고 하기에, 다급히 추가 사항을 전달해주기로 했다.

       

       

       “그 남자아이. 이름이···. 시우였던가? 그 아이와 아르테라는 아이는 같은 방을 쓰게 하렴.”

       

       “네? 장난하시는 거죠?”

       

       “그럴 리가 없잖니. 진심이란다.”

       

       “···시우는 남자고, 아르테는 여자인데요? 방이 없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인력난이라면서요?”

       

       “그래야 할 이유가 있단다. 부탁하마.”

       

       “···.”

       

       

       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가버리다니.

       

       내 능력으로 수락했다는 의사는 확인할 수 있기에 사소한 반항이었겠지만, 그래도 약간 상처였다.

       

       변태 영감탱이라니, 너무 심한 거 아니니.

       

       나를 믿기에 어처구니없는 말에 따라주는 것 같아서 기뻤지만, 동시에 이상한 오해를 받아 기분이 씁쓸해졌다.

       

       

       “···인형, 작가님, 주인공. 그리고 다른 세상이라.”

       

       

       의자를 뒤로 젖히며 눈을 감았다.

       

       역시, 나는 능력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들 부러워하지만, 알고 싶지 않은 비밀마저 전부 알게 되니까.

       

       

       “몰랐다면 그냥 내버려 뒀겠지만···.”

       

       

       저렇게 불안정한 아이를 그냥 내버려 두기에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미 다 죽어가는 골방 늙은이라고 한들 그 역시 초인이자 영웅이었으니까.

       

       마음이 썩어들어가는 아이를 두고 보기는 힘들었다.

       

       

       “···그래도 역시 같은 방에 집어넣은 건 너무했나.”

       

       

       아니, 그래도 두 사람의 기억을 보면 그게 정답이겠지.

       

       그녀는 그의 주변에서 큰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는 모양이었으니까.

       

       

       “크, 좋을 때다. 좋을 때야.”

       

       

       남의 옷을 끌어안고 안정감을 느끼는 여자애와, 여자아이의 사물함에 숨어들어 가는 남자아이라니.

       

       요즘은 저런 게 보통인가?

       

       ···아니, 그럴 리가 없지.

       

       그냥 둘이 천생연분이라고 생각해야겠다.

       

       딱히 틀린 말도 아니겠지.

       

       초월적인 존재가 점찍은 두 사람이라니.

       

       말 그대로 하늘이 내린 연인 사이구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너무 피곤한 나머지 몬스터라는걸 사서 먹어봤는데요.

    이게 뭐죠, 이상하다.

    분명 커피보다 카페인이 훨씬 낮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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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실눈이라고 흑막은 아니에요!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Why are you treating only me like this!

I’m not suspicious, believe me.

I’m a harmless person.

“A villain? Not at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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