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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6

       *** ***

         

       어제 쏟아 부은 덕택인지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많은 사천인들이 걱정하던 날씨는 쾌청했고 수많은 색등과 색지가 달린 끈들이 사천성을 가득 메웠다.

         

       “사천성 영웅들의 개선이오!”

         

       와아아아!!!!

         

       개선식이 열렸다.

         

       잠봉문에 대한 일도 황금가에 대한 일도 전 사천성 사람이 알 만한 일은 아니었다. 낭인들이 잠봉문을 습격한 일이 구설수에 오르기는 했지만 그냥 사천낭인이 사천낭인스러운 행동을 했다 욕을 하고 있을 뿐.

         

       황금가에 포고문이 떨어지고 변고가 생겼다는 일 정도야 사천성에 퍼졌을지 모르나. 역시 자세한 내막을 모를 일이었다.

         

       사마염은 사천의 사람들이 산적들을 처리한 기쁨을 누리게 시간을 준 뒤 황금선, 유지경, 개명부가 저지른 악행에 대해 밝힌다고 말했으니까.

         

       사천성의 부를 좌지우지하던 황금가가 완전히 몰락할 것이고 꽤 영향력이 큰 잠봉문 역시 몰락할 것이니 사천성에도 그 여파가 상당하겠지.

         

       “토벌군 대장! 당도경! 부대장 당도연 개선이오!”

         

       와아아아아!!!

         

       각자 옆에 왕맹호와 해물파를 둔 당도경과 당도연을 선두로 개인 참가한 협객들이 상기된 표정으로 뒤를 따랐다.

         

       “멋지다!”

         

       “사천의 영웅! 사천의 자랑!”

         

       사방에서 쏟아지는 환호성. 거리를 가득 메우다 못해 개선로 주변의 건물은 층과 옥상을 가릴 것 없이 사람들로 가득했다. 이루 헤아릴 수조차 없는 사람들이 자신을 위해 환호성을 보내는 기분은 어떨까.

         

       나로서는 모를 일이었다.

         

       “다음으로는 사천성 문파들의 행진이요! 산적 토벌에 제 일 공헌을 한 문파는 바로…! 묵주문! 팔보채 채주 중식당 외 산적 28명을 생포하는 성과를 거두었소!”

         

       묵주문! 묵주문!! 묵강탄! 묵강탄!!

         

       포박된 산적들을 거느린 묵주문 무인들이 나타나자 환호성을 절정에 달했다. 최선두에 선 묵강탄은 초절정 고수이자 문주로서의 위엄을 갖추려 노력했지만 입꼬리가 연신 씰룩이고 있었다.

         

       “과연 사천의 자랑 묵주문이다!”

         

       그 뒤로 플래티넘 확정 문파들의 행진이 이어졌다. 1위 묵주문. 2위 자장문. 3위 경수문. 4위 광양문. 그리고 5위가 잠봉문이었다.

         

       개선식임에도 불구하고 잠봉문주와 문도들의 안색은 어두웠다. 뭐 잠봉문으로서는 만족스러운 성과는 아니겠지. 어쩌면 문파의 변고를 들었을지도.

         

       플래티넘 문파 현판을 달기도 전에 문파가 사라질지 모를 일이었다.

         

       그 뒤로 골드 문파들의 개선식이 이어졌다. 골드 문파들은 대체적으로 신이 난 분위기였다.

         

       “아니. 야철문이 저 정도 저력이 있었다니 놀랍군…!”

       

       “음. 아들을 도동파에 보내야 할지도 모르겠어!”

         

       증명할 길이 없었던 문파의 역량 증명에 성공했으니 당연히 기쁘겠지. 문주부터 말단 문파원까지 모두 함박웃음을 지으며 사천인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며 기뻐했다.

         

       실버 문파들의 반응은 각양각색이었다. 아쉬워하는 기색의 문파. 만족하는 문파. 예상 이상의 성과에 기뻐하는 문파까지.

         

       브론즈 문파까지는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인원수가 적음에도 산적들의 포획을 성공한 문파들은 사람들에게 저력을 인정 받았으니까.

         

       그러나 강철의 문파들은…무려 수십 명이 한두 사람의 산적을 앞세워 행진하거나 민망하게도 한 사람의 산적도 없이 개선하는 문파들도 있었다.

         

       “힘내라! 잘했다!”

         

       “영영문도 우리 사천의 자랑이다!”

         

       그런 문파들에게도 사천인들은 환호와 격려를 보냈다. 성과가 좀 없어도 저들이 사천성의 숨통을 틀어막은 산적들을 토벌해 준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아이언 문파들도 성과가 없어 풀이 팍 죽어 있다가 사람들의 환호를 받고는 기운이 났는지 어깨를 펴고 씩씩하게 개선 행진에 참여했다.

         

       아이언 문파들도 축제만큼은 즐겁게 즐겨야지.

         

       문파 티어 테두리는 사천 사람들과 토벌에 참여한 사람들이 모두 즐기고 난 뒤에나 수여될 예정이니까. 티어 걱정은 축제가 끝나고 난 뒤의 이야기였다.

         

       나는 대로변을 벗어나 관청으로 향했다.

         

       개선식은 사천성의 대로를 모두 순회하며 관청으로 향하는 경로였다. 어쩌다보니 당도경과 개인 참여자들이 딱 관청에 도착한 때였다. 완벽히 태수의 복장을 한 사마염이 단상에 올라 있었다.

         

       사마염이 당도경과 당도연에게 영웅건을 건넸다. 붉은 건에 황금 테두리가 수놓아진 영웅건이다. 이 거리에서 보이지는 않았지만 건의 끝에는 [산적토벌 사천영웅]이라는 문구와 함께 태수의 직인이 찍혀 있겠지.

         

       와아아아아!!!

         

       당도경과 당도연이 영웅건을 두르자 사람들이 환호성을 터트렸다. 사실 영웅건의 디자인과 재질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말이 많았다. 영웅건의 소재가 너무 가볍고 길이가 긴 것이 아니냐는 당도경과 사마염의 의견이 있었지만 내가 밀어붙였다.

         

       애초에 끈은 길고 잘 펄럭일수록 간지가 살아나는 법이다.

         

       바람에 펄럭이며 흩날리는 금테 영웅건의 간지는 내가 그렸던 것 이상이었다. 뭐 옷걸이가 당도연과 당도경이니 그렇기도 하겠지.

         

       사마염은 개인 참여자들에게 영웅건과 수실을 하나하나 수여해 주었다. 개인 참여자들은 영웅건을 펄럭이며 자신의 지인, 가족, 연인들에게 달려갔다.

         

       나 역시 당도연과 당도경을 축하해 주기 위해 관청 안으로 들어갔다.

         

       “호 형.”

         

       “일을 무사히 잘 끝마친 모양이로군요. 축하합니다.”

         

       “별거 아닌 일이었습니다.”

         

       “사천성에서의 일은 잘 처리되셨는지요.”

         

       “음…”

         

       나는 뒷머리를 긁었다. 두 사람은 의아한 기색이었지만 더 이상 묻지는 않았다.

         

       “대체적으로 잘 풀렸지요.”

         

       “음, 그렇습니까.”

         

       “피로연까지 시간이 남았으니 그때까지 쉬시지요. 토벌 수고하셨습니다.”

         

       당도연과 당도경은 사양하지 않았다. 무려 5천명을 통솔하는 일이었다. 거기에 문파들은 좋은 티어에 배치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을 테니 목소리를 높였을 테고 수많은 문파의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그들을 제어하는 일 역시 보통은 아니었겠지.

         

       오백의 산적을 수용해서 데리고 오는 일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초절정이니 체력이야 괜찮았겠지만 정신적 피로는 상당했는지 곧바로 숙소로 들어갔다.

         

       숙소라.

         

       여일예의 병문안이나 가볼까.

         

       똑똑.

         

       “들어오시지오.”

         

       어쩐지 작은 목소리인지라 행동을 조심하게 된다. 살며시 문을 열고 들어가니 여일예와 혁기린이 있었다. 혁기린은 아무래도 여일예의 곁을 지키다가 잠든 모양이었다.

         

       여일예의 얼굴에 난 상처를 보고는 우리 모두 깜짝 놀랐다.

         

       그리고 혁기린은 여일예를 붙잡고 울었다. 목놓아 서럽게 울고 또 울었지. 밤새 여일예에게 붙어 있는 것 같더니 방전되어 잠이 든 모양이다.

         

       “음.”

         

       여일예의 왼눈에 감겨 있는 붕대를 보니 나도 모르게 침음성이 나왔다.

         

       “대사형이 주무시니 잠시 산보라도 나갈까요.”

         

       “괜찮겠소? 상처가…”

         

       “괜찮습니다.”

         

       나와 여일예는 말없이 숙소 앞 정원을 걸었다.

         

       “상처는 좀 어떠시오.”

         

       “태수께서 불러주신 의원의 말로는 며칠 정양하면 흔적도 없이 나을 것이라는군요. 물론 눈은 돌이킬 수 없겠지만 말입니다.”

         

       나는 말을 아꼈다. 여일예는 어제 황금가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두 이야기 해 주었다. 구현수의 등장에 나는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 들었다. 은퇴한 낭인 구가경이 떠올랐다. 그리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데면데면한 사이는 또 아니었다.

         

       여일예가 사천성에 올 일이 얼마나 있었을까. 당연히 그 기회가 흔치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기회마다 우연히 사천낭인을 만난다는게 말이나 될까. 나는 이 점을 진작부터 수상하게 여겨야 했다.

         

       그냥 여일예가 낭인을 싫어한다는 정보를 가지고 있었으니 사천성에 들릴 때마다 낭인을 찾아서 족친다고 생각했을 뿐.

         

       여일예를 만난 날, 내가 광양문에 비무첩을 전달하게 된 일 역시 황금선이 꾸몄던 일이었을까.

         

       일이 이렇게 돌아가리라는 것을 암시한 단서는 많았다.

         

       영지후열도 결국 여일예에 대한 원한을 잊지 않았음을 암시했으니 다른 낭인들 역시 마찬가지였을 터. 정말 여일예에게 살심을 품고 나타난 낭인이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여일예는 죽었다. 그리고 난 그 가능성을 완전히 놓쳤고.

         

       여일예가 사천성에 올 일이 많지 않음에도 여일예가 어떻게 그리 많은 낭인을 만날 수 있었는지 의구심을 가지거나.

         

       영지후열이 여일예에 대한 감상을 나타냈을 때 위화감을 눈치채거나.

         

       혹은 황금선에 대한 감시를 최후의 최후까지 놓지 않았거나.

         

       그랬다면…

         

       “은인께서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계시는군요.”

         

       정신을 차려보니 여일예가 걸음을 멈춘 채 날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여일예를 보고 깜짝 놀랐다.

         

       여일예의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가 떠올라 있었으니까.

         

       여일예가 웃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싸늘한 조소를 짓는 것은 몇 번 보았던 것 같지만…그런 걸 웃었다고는 할 수는 없겠지.

         

       “은인께서는 선인도 신도 아니지 않습니까. 놓치시는 일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리고…무엇보다도 제가 제 손으로 저지른 업보였습니다.”

         

       “…소저.”

         

       “마주 보고 넘어야만 하는 것들이 있는 법입니다. 은인께서는 증오로 인해 멀었던 눈을 다시 뜨게 해 주셨습니다. 비록 간수를 제대로 하지 못해 한쪽 눈은 다시 감겨 버렸지만…한 눈으로도 세상을 보고 나아갈 수 있지요.”

         

       여일예는 만족스러워 보였다. 눈을 잃었음에도 어떻게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어제 대사형이 저를 위해 밤새 울어주었습니다. 본인의 부상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씩씩한 사람이 절 위해 그렇게 울어주더군요. 울어주고 간호해주고…그렇게 버티고 버티다 간신히 잠이 들었는데…그 모습을 보니 절로 미소가 나오더군요.”

         

       “세상에 나를 위해 이렇게 진심으로 울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눈앞에서 보고 있자니 참으로…기뻤습니다. 그리고 창피했지요. 저는 이런 사람을 곁에 두고도 지금까지 몰랐으며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으니까요.”

         

       “이 여일예의 인생에 불행한 사건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분노에 눈이 멀었던 저를 품어주었던 점창이 있었고 그런 제가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걷지 않도록 막아준 대사형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은공도 만났지요.”

         

       여일예는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은공. 은공께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것을 받았습니다. 깨달음을 주셨고 복수를 도와 주셨으며…저를 끌고 이것저것 많은 것을 알려 주셨지요.”

         

       “…그리 과분한 인사를 받을 이유가 없소.”

         

       “후후후. 그리 말할 줄 아셨습니다. 그러나 제가 드린 은원패마저 저를 위해 사용해 주신 분이 그런 말을 하시는 건 아니지요.”

         

       “크흠.”

         

       “그러니 제가 드릴 수 있는 건 이런 것밖에는 없을 듯 합니다.”

         

       여일예가 가까이 다가왔다. 반사적으로 한 걸음 물러났지만 여일예가 더 빨랐다. 두 손이 내 양 겨드랑이로 들어와 내 등을 부드럽게 붙잡았다.

         

       “무…”

         

       무슨 짓이냐. 뭐 하려고 했냐. 이런 말을 하려고 했던 내 입술에 여일예의 입술이 닿았다. 내 입을 벌리고 자연스럽게 들어오는 설육에 깜짝 놀라 거리를 벌리려 했지만 여일예의 부드러운 손은 단단히 내 몸을 붙잡고 있었다.

         

       혀와 혀가 뒤엉켰다.

         

       놀라 숨을 크게 쉬니 달콤한 향기가 느껴졌다. 여일예의 살 내음일까. 희미하게 섞인 약초 냄새가 여일예의 내음을 더 부각시켰다.

         

       그렇게 숨을 몇 번이나 쉬고 나서야 여일예는 나를 놓아주었다. 여일예는 입과 입이 떨어지면서 늘어진 타액을 닦아내듯이 입술을 핥았다.

         

       나와 시선이 마주친 여일예가 큭큭 웃었다.

         

       …어지간히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었던 것일까.

         

       “너무 부담가지지 마시지요. 생각할 시간은 충분할 테니 말입니다.”

         

       “…무슨 뜻이오.”

         

       “아직 원수들을 다 잡지는 못했으니 말입니다. 남은 자들을 정리해야지요. 예상치 못한 일들이 생기면 꽤 오래 걸릴 수도 있는 일입니다.”

         

       여일예의 눈이 부드럽게 휘며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 그때동안 이 여모를 잊지 말라는 뜻으로 침을 발라 두었습니다.”

         

       나는 그런 여일예의 모습을 멍하니 보며 생각했다.

         

       여일예가 이런 표정도 지을 줄 아는구나. 늘 딱딱하게 미간에 주름을 잡고 공허한 기색을 풍기며 때로는 구름처럼 흩어져 버리는 것이 아닌가 싶은 사람이었는데.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어깨에 짊어진 것이 저리 많았는데, 괴롭고 힘들었는데 어떻게 사람이 웃을 수 있을까. 그저 멍청하게도 나는 그런 여일예를 보며 본래 저런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을지 모를 일이었다.

         

       나는 대체 여일예를 뭐라고 생각하고 있었을까. 그냥 게임 속의 모습이 선입견이 되어 본래 그런 사람이라고 받아들이고 있었을 뿐이었다.

         

       눈앞에 사람이 있었는데, 몇 번이나 대화를 하고 합을 맞췄음에도…나는 게임이라는 틀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을지 모른다.

         

       “은공. 제가 지금까지 몰랐던 사실이 있습니다.”

         

       여일예가 다가와 내 가슴팍에 손을 올렸다. 또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일까.

         

       “무엇이오?”

         

       “은공은 멍청한 표정이 매력적이시로군요.”

         

       “무슨소….읍!”

         

       다시 한 번 맥없이 입술을 빼앗겼다. 다시 한 바탕 설육이 휘감기는 감각이 몰아쳤다.

         

       입술이 떨어졌을 때는 뭐라고 따질 기력도 없어서 여일예를 바라만 보았다.

         

       “머리에 그리 생각이 가득하시니…이 여모가 제대로 그 머릿속에 파고들었는지 확신이 서지 않아서 한번 더 침을 발라 두었습니다.”

         

       여일예가 손가락 끝에 살짝 침을 찍으며 말했다.

         

       “아직도 부족하신지요?”

       

       “….차고 넘치오.”

         

       잡념이 싹 날아갔다. 그래. 나는 지금까지 여일예라는 사람을 제대로 마주한 적이 없었다. 어떻게 행동할지만 관심이 있었지. 무림천하는 수천 판이 넘게 플레이했고 게임을 진행하는 동안 마주쳤던 여일예라는 캐릭터에 대한 지식만으로 안다고 여겼다.

         

       그러고는 이해할 수 없다고 여겼다. 깨달음을 얻은 이후의 여일예의 행동을 모르겠다고 생각했지. 모르는 사람의 행동을 예측할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는데 나는 무림천하의 경험만으로 여일예의 모든 것을 아는 사람처럼 굴었다.

         

       멍청한 짓이었다. 눈 앞에 이리 생생한 사람이 있는데 대화를 나누고 눈을 마주볼 수 있는 상대가 있는데 그깟 게임 속의 지식을 가지고 ‘이 사람을 이해했다’고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머릿 속에 있는 [무림천하] 속의 캐릭터, 여일예를 깨끗하게 지웠다.

         

       깨달음을 얻었음에도 원수에 대한 증거를 잡지 못해 점창파의 품 안에서 그저 홀로 분노를 삭히던 여일예를 지웠다. 그저 분노와 증오에 사로잡혀서 낭인들을 베고 다니던 홍죽군협도 지웠다.

         

       그리고 여일예를 바라보았다. 이 여일예는 낭인일지라도 깨달음을 주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은공으로 깍듯하게 모시던 자였다. 복수를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질 수도 있는 자였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저지른 과오 앞에서는 그리 중히 여기던 복수와 자신의 목숨까지도 포기하며 용서를 구할 수 있는 자였다.

         

       본인의 대사형을 엄청 귀여워하며 사람이 멍청한 표정을 지을 때 매력을 느낀다는 특이한 취향의 여자였다.

         

       “이제야 저를 보아주시는 느낌이 납니다.”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 여일예를 보면서 나는 그 말을 반박할 수 없었다.

         

       “일예야! 일예야! 환자가 어딜 간 게냐! 상처가 악화되면 큰일인데! 일예야!”

         

       “이런 대사형이 일어났군요. 서둘러 가지 않으면 오늘 내내 잔소리를 들을지 모르겠습니다.”

         

       여일예는 숙소 쪽으로 발걸음을 틀었다. 그러다 문득 발을 멈추고 나를 돌아보았다.

         

       “아, 그리고….그 고양이 같은 소저에게는 오늘 일은 비밀입니다. 원수에 대한 정보를 받기로 했는데 오늘 일을 알면 난리가 날 테니까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은 여일예는 소리 높여 혁기린에게 대답했다.

         

       “일예야! 환자는 절대안정이라는 것을 모르느냐!”

         

       “후후, 그저 답답해 잠시 바람을 쐬러 나왔을 뿐입니다.”

         

       “바깥을 돌아다니다가 상처가 덧나면 어쩌려고! 초절정 고수라고 해도 방심은 금물이다!”

         

       “네네, 물론이지요. 바깥에 나와서 충분히 즐겼으니…들어가시지요.”

         

       여일예는 내 쪽을 보고 의미심장하게 웃었고 그 웃음의 의미를 알 리 없는 혁기린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다가 눈에 쌍심지를 치켜 올리며 화를 냈다.

         

       “너는 어릴 때부터 엉뚱한 소리를 하면서 화제를 돌렸지! 내 오늘은 속지 않을 것이니 당장 들어가자!”

         

       “알겠습니다. 대사형.”

         

       “애초에 너는….!”

         

       성난 대사형, 혁기린의 잔소리마저 기꺼운지 웃음을 지으며 듣고 있는 여일예와 혁기린이 멀어지다가 시야 바깥으로 사라졌다.

         

       “음.”

         

       와아아아아아아!!!

         

       또 어느 문파가 관아 앞에 도착했는지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그 환호성을 귀로 들으며 마지막으로 본 여일예의 모습을 떠올렸다.

         

       “뭐…즐거워 보였으니 됐나.”

         

       사천성의 모두가 즐거운 듯한.

         

       어느 여름날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음. 사실 작가가 직접 캐릭터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좀 그렇지만 여일예 에피소드이니 비하인드 스토리나 풀어볼까요.

    아주 오래 전 이름조차 지어지지 않았던 원시 고대 [무협게임 속 고수들이 집착하는 낭인이 되었다]에서의 여일예는..여일상이라는 남캐였습니다. 전형적인 구무협 주인공 캐릭터랄까요. 뜬금없이 악의 세력에 의해 집안이 멸문당하고 점창파에서 무공을 연마해 피로 점칠된 복수길에 나서는…

    음 주인공이 현대인이니 느와르한 무협물은 연출이 불가능할테니 다른 인물을 넣자!

    지금 생각하면 하나의 작품에는 대저 하나의 큰 흐름만 있어야 하는 것이 기본인데 무고집낭은 플롯이라기보다는 그냥 망상노트였습니다. 소설 하나에 온갖 무협 뽕은 다 때려넣고 싶었던 저는 그런 건 생각하지 않고 걍 초반부터 여일예를 넣어놨습니다.

    호천안보다도 더 복합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버렸다고 해야 할까요. 뭐 그랬습니다.

    아무튼 꽤 긴 에피소드를 마무리 지었네요.

    결국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은 망상노트에서 파생된 무고집낭을 읽어 주시는 독자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겁니다.

    제가 쓰고 싶었던 이야기를 쓸 수 있는 것은 오늘도 무고집낭을 찾아주신 독자님들 덕분이니까요. 감사합니다 여러분.

    내일부터는 더 재미있는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an Outcast the Martial Arts Masters are Obsessed With

I Became an Outcast the Martial Arts Masters are Obsessed With

무협게임 속 고수들이 집착하는 낭인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Ho Cheon-an, a second-rate warrior in the martial arts game [Murim Cheonha].

To survive, I had no choice but to give enlightenment.

Martial arts masters began to obsess over me.

In Murim Cheonha, where fame means difficulty, getting attention meant death.

Please, just go away.

Please, let me 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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