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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6

        

         스르륵 하고.

         내려오는 길에는 간헐적으로 덜컹거려 쓸데없는 분쟁의 도화선을 당길 뻔했으면서, 정작 목적지에 도착하니 흔한 긁히는 소음 하나 없이 승강이 문이 미끄러지듯 열렸다.

         

         그렇게 해서 정면에 나타난 건 기다란 직선 통로.

         

         설비된 조명이 무슨 구식 백열등인가 착각할 정도로 어슴푸레하다는 점을 빼면 반대편에 출구도 제대로 보이고 다수의 인기척도 느껴지는 게 그다지 공포할 거리는 없어 보였지만.

         

         이런 지형을 보자마자, 엘리베이터 전원이 차단되고 앞을 틀어막으면 안에 있는 사람들이 굉장히 곤란하겠다~는 불길한 감상부터 가지는 내 뇌는 이미 지나친 사건사고와 갑작스러운 전투에 과하게 절여진 걸지도 모르겠다.

         

         설령 든든한 방패가 있다해도. 좁은 통로에서 화망을 뚫어내는 게 얼마나 거지같은 지 실체험한 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더 그런 걸 수도 있고.

         

         ……설마 다른 인간들이 들어온 출입구도 다 이딴 식은 아니겠지?

         

         “무슨 문제 있나?”

         

         “딱히…?”

         

         임원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블랙마켓의 유능한 중간 관리자에게 차마 ‘여기 왜 이렇게 뭣같이 열악해요~’ 같은 질문을 내던지기는 뭐했기에 얼버무렸는데.

         

         아무래도 찝찝한 내 감상을 읽어냈는지 레오나르 경이 친절한 서술을 곁들여 주셨다.

         

         “…통로가 비좁은 건 이해해주게. 한 번 써먹고 폐쇄할 아지트에 과투자할 정도로 마켓이 씀씀이가 크진 않아서.”

         

         “……그렇다면야.”

         

         어색한 헛기침과 함께 길을 선도하는 그에게 나를 포함한 일행들은 선선히 수긍했다.

         듣고 보니 확실히. 입구에서 쫓겨나거나, 막판에 변심해서 돌아간 사람들도 있을 텐데. 꽤 구체적인 위치는 물론 입장 방법도 노출된 모임 장소를 재활용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암시장이 기업과 사회 전반에 암암리에 공존하는 회색 세력이긴 해도 너무 튀어나오면 두들겨 맞을 명분 차고 넘쳤으니까.

         

         텅… 텅….

         

         거침없이 나아가는 일행들의 뒤를 따라 통로를 지나가려니 무슨 콜로세움에 입장하는 검투사나 노예가 된 기분이다.

         

         가까이 갈수록 웅성거리는 기색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는 걸 보면 우리가 좀 늦게 도착한 모양인데… 제일 앞에 선 게 저거여서야 얼마나 구경거리가 될지 상상만 해도 끔찍했지만.

         

         

         “씨~발!! 안내인 형씨들! 그래서 그 시험 담당자라는 인간은 대체 언제 오는데?!”

         “야, 여기 화장실은 어딨냐? ……저 구석으로 가보라는 게 무슨 뜻이야.”

         “으으으으… 사람이너무많아머리아파내가왜이런꼴을당해야해…!”

         

         

         실상 이 자리에 찾아온 참가자 모두가 동물원에 수용된 원숭이 신세라면 이쪽을 신경 쓸 여력도 없지 않을까 싶었다.

         

         “…어우.”

         

         탁 트인 광장으로 나서자. 기다림이 너무 길었는지 시험장스럽지 않은 무질서함에 지배당한… 혹은 그걸 열심히 흩뿌리는 인간들이 잔뜩 보였다.

         

         떠들고 기다리는 시간 또한 정산에 포함됨에도 불구하고 인내심이 바닥난 아저씨.

         생리 현상이 임계점에 이른 와중, 상당히 곤란한 안내를 받아 선 채로 정신이 나간 청년.

         여유 공간이 있음에도 사람이 몰린 것 자체가 불편한지 발작 일으키기 일보직전 상태의 넷 폐인.

         

         마지막으로 그들을 어르고 달래기 위해 바쁘게 뛰어다니는 관계자들까지.

         

         개개인으로만 따져도 이정도였고, 따로 무리지어 상황을 주시하는 집단과 얼굴 맞대고 입으로 떠든다는 선택지조차 없는지 단말기에 고개를 처박고 있는 것들도 합쳐야 현 광장 풍경이 완성된다.

         

         “이것도 오랜만이네~ 하긴 따로 이런 행사가 없으면 다들 밖으로 안 나오니까…. 아, 저기 저것들. 팀 사이퍼 사이코(Cipher Psycho)아냐? 자기들끼리 무슨 뇌파를 공명 시켰다더니, 제복도 아니면서 옷도 비슷비슷하게 입었네?”

         

         “……저쪽엔 제미니 노드(Gemini Node) 남매도 있어. 전에 같이 일할 때, 카메라로 본 기억이 나.”

         

         “…응. 그렇구나.”

         

         마리나나 켄은 중간중간 낯익은 얼굴이나 아는 인상착의가 보일 때마다 나지막이 경쟁자들에 대한 정보를 공유해주었다.

         

         …사실 당연히 나도 알 거라고 여긴 건지, 이름만 덜렁 던져준 거라 아무런 도움은 안 됐다.

         

         그… 미안. 내가 실전에만 강한 타입이라 이론은커녕 업계 상식도 좀 많이 없어서.

         나중에 잘 할게…!

         

         이제 막 광장에 합류한 우리가 떠들거나 말거나.

         어찌되었건 이런 난장판을 휘어잡으려면 누구나 납득할 만한 카리스마를 가졌던, 이 못난이들을 찍어 누를 권위와 실력이 있는 인재가 투입되어야 할 텐데….

         

         어쩐지 명색이 연구자라는 양반이 이런 직접적인 관련도 없는 일에 왜 딸려 나왔나 했더니, 혹시 이것까지 예상한 인선인가?

         

         그렇다면 블랙마켓의 평가를 조금 상향 조정 해야겠다. 수수료나 떼먹으면서 피곤한 일로부터는 발 쏙 빼는 놈들에서, 크레딧 받아먹는 값은 하는 것들로.

         

         쿵!!

         

         자연스럽게.

         인파 근처에 멈춘 우리 일행을 내버려둔 채, 계단 올라가는 첫걸음을 강하게 내디뎌 단번에 좌중의 이목을 끌어 모은 레오나르 경이 준비된 단상-그래봐야 평평한 콘크리트 언덕위에 마이크만 덜렁 있는 열악한 무대-에 올라섰다.

         

         “…….”

         

         지금부터 수행해야 하는 거추장스러운 역할이 마음에 안 드는지 무표정했던 가면이 또 우는 형태로 마구 일그러진다.

         다른 참가자들은 이 개성 넘치는 인간들 사이에서도 독보적인 기괴함에 오싹한 표정을 지었지만. 고 잠깐 동행한 사이에 익숙함이 쌓였다고 내 눈에는 그의 미묘한 애환이 읽혔으니.

         

         그나마 아까 한바탕 욕지거리를 퍼붓느라 목은 충분히 풀렸기에, 장갑 끄트머리로 마이크를 톡톡 건드려 방송 음질만 확인한 후 그의 말문이 트였다.

         

         “…거두절미하고 요점만 말하지. 마켓은 요청에 따라 시험만 준비했을 뿐, 이후 클라이언트와의 본계약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 그러니 돈 문제 같은 Inutile… 쓰잘데기 없는 건 나한테 묻지 말도록.”

         

         “”…….””

         

         ‘요점만 말하신다더니 그건 그냥 본인을 더 귀찮게 하지 말라는 거 아닌가요.’ 라는 목 끝까지 차오른 지적을 겨우 삼켰다.

         

         나와 같은 생각을 품은 사람들이 꽤 많아 보였으나, 딱 봐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인간과 기계 사이 괴생명체에게 먼저 대들려는 간 큰 인간은 없는지 광장은 여전히 조용했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좋군. 규칙은 간단하다. 여기 들어온 순서대로 이미 너희들에겐 번호가 할당되었다. 그건 알아서 자기 ID를 통해 확인하고. 곧 ‘과제’가 배송되는 대로 시험을 시작. 내가 호명하면 그 번호가 부여된 Connard…가 아니라 놈은 팀원이던 보모던 모조리 끌고 나와서 함께 테스트에 임한다.”

         

         “성공하면 종료, 그대로 비키고 다음 팀이 시험을 치면 된다. 그리고… 기권도 가능하다. 단, 공정한 평가를 위해 중복 참여는 인정되지 않으니까 누울 자리를 잘 보고 눕도록!”

         

         “……이상이다.”

         

         굉장히. 존나 부실한 설명이다.

         레오나르 본인은 단숨에 떠드는 파트를 넘길 수 있어서 만족스러울지 모르겠으나, 참가자들 입장에서는 정작 시험 내용도, 평가 기준도 아니고 겨우 진행 과정만 전달받은 수준.

         

         그래 놓고 ‘공정한 평가’같은 단어를 운운하는 게 어처구니없는지, 슬슬 그에게 압도되었던 외야로부터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져갔다.

         

         이대로 과제인지 뭐시깽이 인지가 도착해도 모두가 똑같이 벙찐 상태로 시작하는 만큼 생각보다 형평성은 어긋나지 않을지도 몰랐지만.

         

         역시 최소한 이것 정도는 알아야겠다는 듯 뒤늦은 질문이 던져졌다.

         

         “거… 마켓 쪽 유령대가리 씨. 다른 건 몰라도 시험이라면 채점을 어떻게 할 건지는 알려줘야 하는 거 아니오? 댁이 평가하는 거요? 아니면 사이버 엔지니어링 고시 점수라도 제출하는 거요.”

         

         “…흥!”

         

         꽤 지당한 의문에. 묵묵히 치켜세워진 검지 손가락이 위를 가리켰다.

         뭐 천장에 답지라도 적어 놨나 싶었는데, 그 표지판을 쫓아보니 위쪽 벽면이라고 생각한 곳이 묘하게 번들거리는 게 보였다.

         

         자세히 보니 벽이 아니라 반투명 유리창이 나 있는 구조물, 그것도 무슨 돔 경기장에나 있을 법한 스카이 박스(Sky Box; 일반 관람시설과 별도로 설치된 고급 관람시설) 비스무리한 게 그제서야 시야에 들어왔다.

         

         이거… 진짜 구경거리나 다름없네.

         

         “저 위에서. 잘나신 클라이언트가 직접 보고 계시니, 불만 가질 필요는 없다. 알아서 제일 잘난 폐인을 뽑겠지.”

         

         이미 눈치채고 있다가 그저 고개를 주억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머리 위를 살피는 걸 게을리하다가 화들짝 놀라는 부류도 많았다.

         

         뭐, 결국 이 번거로운 일 자체가 따지고 보면 일감 따내기 경쟁에 불과했으니.

         물주께서 마음에 드는 것들로 직접 뽑아간다는데 토를 다는 건 무의미한 항의리라.

         

         –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

         

         “어?”

         

         그렇게 정녕 여기가 나처럼 전문지식 하나 없고, 자격증은커녕 공공기관에 등록된 고시 점수조차 백지인 완전 낙하산 해커가 끼어도 되는 자리인가에 대한 고민이 깊어져 갈 때.

         

         여태 잠잠하던 제로가 돌연 앞으로 나섰고.

         

         쐐애액——.

         투콰아아앙—!!

         

         “왁?!”

         “꺄아악!!”

         

         공기를 찢어발기며 뭔가가 강하해왔다.

         폭탄이라도 터진 것 마냥 부풀어오른 흙먼지가 광장 전체를 휩쓸었고, 돌연의 사태에 곳곳에서 비명과 욕설이 터져 나왔다.

         

         나야… 깔끔하게 폭연을 가로막아준 제로 덕분에 모래 한 톨 뒤집어쓰지 않았다. 케어봇 만만세다.

         

         도중에 얼핏 보인 검고 네모난 실루엣 때문에 난 이 망할 새끼들이 예산을 아꼈다더니 기어이 승강기 안전 사고라도 났나 싶었는데.

         

         막상 뿌연 먼지구름 걷히자 내 상상과는 조금 다른 물건이 보였다.

         

         얼마나 높은 곳에서 떨어졌는지 몰라도 더러움은 좀 묻었을지언정 흠집 하나 없는 견고함.

         내부도 멀쩡하다는 걸 자랑하듯 형형히 점등하는 내장 다이오드들.

         

         바로 옆에 무지막지한 질량체가 내리 꽂혔지만 레오나르는 태연하게 오버코트를 털어 보일 뿐이었고, 물러났던 인간들은 이제야 시험 내용을 알아챈 듯 흥미로운… 혹은 경악한 표정들을 지었다.

         

         ……그래서 저게 뭐냐고요!

         

         “저건… 자료 금고(Data Vault)잖아? 그것도 최소….”

         

       

       

         “라비린스(Labyrinth; 미궁)급 금고지. 클라이언트의 최저 요구사항이다. 자, 1번부터 냉큼 튀어나오도록.”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 : 그게 도대체 뭔데 이 너드들아…!

    항상 재밌게 봐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지각은… 언제나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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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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