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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6

       땅굴 안에 지어진 마을의 중앙 광장으로 사제복을 입은 사제 한 명이 나타나 일장연설을 늘어놓는 기묘한 광경이 펼쳐지고.

         

       그 사제는 ‘귀족으로 태어난 놈들은 다 죄인들이고. 우리는 힘이 없어서 당하고 사는 거다, 그러니 힘을 얻고 귀족이란 자들은 전부 다 때려 죽여야 한다!’란 기적의 논리를 펼친다.

         

       광란이란 말로도 부족한 현장에 두 사람이 아찔해 하는 것도 잠시, 이한은 곧….

         

       “아, 암살조직이요?”

       “그래, 아무래도 내가 아는 애들 같다.”

         

       이한은 태창이 녀석에게 자신의 과거 일부를 밝혔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같은 동향 사람이자 비슷한 비밀을 품고 있는 그라면 상담하기 적합하기 그지없으니까.

       다행스럽게도 다른 동료들은 뿔뿔이 흩어진 상태이니 지금이 대화를 나눌 적절한 타이밍이기도 할 테고.

       그리고 이러한 이한의 전직 사이비(일지도 모를) 커밍아웃을 듣고 그는.

         

       “…….”

       “왜 그렇게 보냐?”

       “아, 아니요. 그냥 교관님 인생이 순탄하지 않았다는 걸 새삼스럽게 인식해서요….”

         

       뭔가 나름 납득했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러니 특성이 그렇게 많지’ 라고 중얼거리는 태창이었고, 이한은 피식거렸다.

       이 녀석다운 반응이다 싶어서.

         

       그러더니 돌연 태창이는.

         

       “음, 일단 제가 봤을 때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납치당해서 어쩔 수 없이 암살조직원이 됐던 사람한테 ‘너도 죄인’이라고 단정하는 사람이 오히려 비정상일 테니까요.”

       “흠, 그런가?”

       “…뭐, 왕도에는 그런 비정상적인 발언을 하는 정신 나간 인간들이 많을 테지만, 그래도 교관님은 그런 건 그다지 걱정하지 않으시잖아요?”

       “…넌 나에 대해 너무 많은 걸 알게 됐어.”

       “하하.”

         

       녀석의 말대로 이한은 솔직히 자신이 속한 조직이 사이비건 뭐건 그다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물론 어느 정도 충격이 있긴 하지만, 그것도 처음뿐이지 조금 냉정해지니 그다지 큰일은 아니었다.

         

       ‘내가 무슨 사람을 죽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이비 포교 활동을 한 것도 아니니까.’

         

       애초에 검은 달에 납치당하고 몇 년은 훈련과 세뇌 교육만 받다가, 첫 임무를 수행하기도 전에 조직이 망해버리고 만 상태였다.

       이후 자유의 몸이 되었으니 찔리는 것도 없다.

         

       …하지만 만약 태창이의 말대로 그의 전직이 밝혀진다면 트집 잡는 인간들이 없지는 않을 터.

         

       기사의 약점을 이용하려는 이들은 널리고 널렸으니까.

       허나 만약 그런 이들이 있다면.

         

       “다 때려 부순 다음 튀어야지. 동부 대륙이나 북부 대륙으로 건너가면 되겠네.”

       “망명 루트 타시려고요?”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으음, 가실 때 저한테 귀띔 좀 해주세요. 같이 가게.”

       “너는 왜?”

       “교관님 없으면 어차피 왕국은 망할 것 같아서요.”

       “아서라, 넌 나를 너무 높게 평가해. 나 같은 놈이 없어도 왕국은 잘 돌아가, 이 녀석아.”

       “글쎄요….”

         

       아닐 것 같은데?

         

       녀석은 눈으로 그리 말했고, 이한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세상 무서울 것 없는 그였지만, 때론 이러한 고평가가 부담스럽게 다가오는 것을 보면 그도 어쩔 수 없는 소시민이긴 한가 보다.

         

         

         

         

         

         

         

       “-어, 어쨌든, 큰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아요. 설사 밝혀진다 한들, 교관님을 지지해 줄 사람이 제법 있잖아요?”

       “음, 지지해 줄 사람들이라…. 하나같이 다 미덥지가 않은데?”

         

       그를 도와줄 이들이 몇몇 떠오르긴 하지만 그다지 영 신뢰는 안 간다.

         

       오히려 자신을 이용해먹을 인간들이 더 많지.

         

       “하하…, 그, 그래도 제이크 경이나 요르드 경 같은 사람도 있잖아요. 그분들은 끝까지 교관님을 믿어주겠죠.”

       “걔들? 음, 의리 있는 녀석들이긴 한데, 걔들한테 뭘 기대할 게 있나?”

       “있죠. 요르드 경은 훗날 기사단장까지 오를 사람이고, 제이크 경은 군부의 장군까지 될 인재니까요.”

       “…?”

       “나중에 무조건 출세할 사람들이란 거예요. 교관님 인맥은 가끔 보면 미래의 거물이 많더라고요.”

       “허어….”

         

       이한은 진심으로 놀랐다.

       제 친구와 후배가 그 정도로 거물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까.

         

       지금으로선 잘 상상이 안 되지만….

         

       ‘역시, 사람 앞날이란 건 모르는 거구나.’

         

       이한이 그렇게 놀라움을 느끼고 있었으나, 태창이의 다음 발언에는 더욱 충격적인 정보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말이죠, 교관님이 받은 실험 내용이 밝혀진다고 해도 딱히 문제는 없을 거예요. 교관님은 마인이 아니니까.”

       “그것도 스킬로 확인한 거냐?”

       “네에, 마인이나 반마인이면 종족명에 뜨는데, 교관님은 ‘물음표’로 뜨거든요. 그러니 적어도 마인은 아니에요.”

       “오히려 더 불안한 정보 같은데?”

         

       …내 종족이 사람이 아니었어?!

         

       금일 최고의 충격.

         

       이한은 아찔했다.

         

       허나 녀석은 그를 안심시키려는 말을 이었다.

         

       “마, 마인이 아니란 게 중요한 거죠. 어, 어쩌면 신비종족의 핏줄이 섞였을지도 모르니까요! 그, 그러니 안심, 하, 하세요….”

       “…왠지 더 불안하다만.”

         

       이한이 영 못미덥다는 눈빛을 주기 무섭게.

         

       “그, 그리고! 귀, 귀족들도 양심이 있으면 교관님이 마물의 유전자를 이식받은 것 가지고 트집 잡으면 안 되죠! 오히려 그 사람들이 가장 질타 받아야 옳을 텐데.”

       “…?”

       “모르세요? …아, 맞다. 투기법을 익히신 적이 없지, 참….”

       “뭔데?”

         

       색다른 정보가 나왔고, 이한은 눈을 끔뻑였다.

       대체 뭔가 싶어서.

         

       그리고 이어지는 말에서 이한은 왜 귀족의 양심 운운하였는지를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도 그럴게.

         

       “…귀족들이 익히는, 소위 명문가의 투기법이 [고위 투기법]으로 분류되는 이유는요, 마물의 마석을 섭취하는 덕분이거든요.”

         

       오물을 덕지덕지 바른 개들 주제에 겨 묻은 개를 모욕할 자격은 없을 테니까.

         

       다만.

         

       ‘와, 벌집, 아니 역린 아니야, 이거?’

         

       이한은 왜 고위 투기법이 비밀에 부쳐지며 평민 중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지 이유를 깨달았다.

         

       ……아는 놈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테니까.

         

       때론 몰라도 되는 비밀이란 것이 있는 법이었다.

         

       * * *

         

       다소 잡담이 길어졌지만. 이한과 데릭이 맡은 바 일도 하지 않으며 농이나 주고받는 것은 아니었다.

         

       “허허, 수고하셨습니다, 형제님.”

       “무얼요. 신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어찌 수고란 표현을 쓰겠습니까, 허허.”

       “그것도 그렇군요, 하하!”

         

       남몰래 사제의 뒤를 쫓고 있었지.

         

       ‘이것들, 진짜 제집처럼 구조를 파악하고 있네.’

         

       사제인지 선동가인지, 아니면 세뇌 전문가인지 모를 놈은 마을을 벗어나 미로와 다름없는 땅굴을 거침없이 나아갔다.

       막다른 길조차 그에겐 별문제가 아니었고, 그가 지나가는 곳에는 이상하게 웜이 출몰하지 않았다.

         

       ‘역십자가가 마물을 쫓는 효능이 있다는 게 사실이었네요.’

       ‘그러게.’

         

       로이 반트가 지니고 있던 물품은 크게 다섯 가였는데, 비약 3개와 역십자가, 그리고 찢어진 종이 등이었다.

         

       비약 3개는 각각 마물의 살점으로 만들어진 것과 마약 등이 들어 있는 것으로 구분되었고, 찢어진 종이는 용도를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역십자가는….

         

       ‘마물이 싫어하는 파장을 내뿜는다. 정확한 정보였네….’

         

       중급 마물은 모르겠지만, 하급 마물까진 쫓아낼 수 있다는 역십자가.

       저들이 마냥 죽고 싶어서 땅굴을 아지트로 삼은 게 아님을 알 수 있는 바였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도착한 사제의 목적지를 보며….

         

       “??”

         

       진심으로 놀라고 말았다.

         

       “세, 세상에…. 흐읍…!”

         

       놀란 건 이한만이 아니었고, 데릭은 실수로 육성으로 경악성을 내뱉다가 제 실수를 깨닫고 다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허나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Krrr]]].

         

         

       ……저놈, 샌드 웜의 울음 때문에 아무것도 들리지 않을 테니까.

         

         

       ‘110미터’ 크기를 자랑하는 샌드 웜이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 * *

         

       사람은 믿지 못할 것을 보면 뇌가 미처 따라오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무척이나 큰 건물이나 생물을 보면 발이 굳는 생물의 본능처럼.

         

       ……지금이 그러했고.

         

       ‘나, 남부의 샌드 웜은 30미터가 한계인 거로 아는데….’

         

       원래 사막에 서식하는 샌드 웜은 성체가 되면 80~100미터까지 크는 경우가 있다.

       허나 이건 사막에서도 드문 경우이며, 100미터를 넘는 샌드 웜이 나오는 건 백 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일이었다.

         

       허나 남부의 샌드 웜은 다르다.

         

       남부 대륙에서 비료를 키워내기 위해 가져온 만큼 개량을 거쳤고, 몸집을 키우기에 적절한 환경도 아닌지라 아무리 커봤자 30미터를 넘지 않는 것이었다.

         

       물론 30미터조차 대경실색할 크기임은 맞지만, 그래도 여기까진 마법사와 기사들이 활약하면 잡을 수 있는 수준이다.

       사막에 비하면 한없이 느리고 약한 수준에 불과하니까.

         

       …하지만 저건 다르다.

         

       느리고 약할지라도 ‘크기’가….

       막대하다는 말조차 그다지 저놈을 표현하는 데 부족한 거대함이 있다.

         

       만약 저놈이 지하에서 날뛰었다간 지반이 붕괴되고 그들은 손 쓸 틈도 없이 그대로 토사에 묻혀 세상을 하직하리라.

         

       주르륵….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싸늘해지는 상상이 아닐 수 없었고, 데릭은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이거였구나! 저들이 노리는 수단이…!’

         

       데릭은 이제야 저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왕도를 혼란에 밀어 넣을 것인지 깨달았다.

         

       무슨 수단을 썼는지 모르겠으나, 거대한 샌드 웜을 키워내는 데 저들은 성공한 것이다.

       그리고 그 샌드 웜이 날뛰는 순간.

         

       ‘땅굴은 무너진다.’

         

       왕국, 아니 남부 대륙 최대의 비료생산지대가 무너진다는 것은 ‘식량’에 영향을 끼칠 일이란 뜻이었다.

       당장이야 괜찮겠지만, 그동안 비료를 쓰던 것에 비하면 농작물에 크나큰 손실이 닥칠 터.

       아마 시간이 지날수록 그 피해는 커질 것이고, 식량 문제로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식량의 문제에 가장 고통 받는 건 이 나라를 지탱하는 국민들인 바.

       하며 당연하게도 일어날 사건은….

         

       ‘…농민 봉기.’

         

       과한 예측일 수도 있지만, 만약 그렇게 된다면 왕국은 안팎으로 무너져 내릴 거다.

         

       ‘지독한 놈들…!’

         

       데릭은 저들이 정녕 왕국을 무너트리기 위해 모두를 굶겨 죽일 계략을 짰음을 인정해야 했다.

         

       허나 데릭은 언제까지고 당황할 수 없다는 듯 스킬-[위기감지]를 펼쳤고, 샌드 웜이 가진 위험도를 측정했다.

         

       “…귀왕에 비하면 두 단계 낮은 레벨이에요. 덩치는 크지만 교관님이라면 충분히 잡으실 수 있어요.”

         

       “…….”

         

       “다, 다만 단번에 죽여야 해요,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저놈이 날뛸 테고, 그렇게 되면 땅굴은….”

         

       “…….”

         

       “아, 아니면 지금이라도 지원군을….”

         

       “태창아.”

         

       “……네에?”

         

       “지원군을 부르고 싶긴 한데, 아무래도 늦은 것 같다.”

         

       “…….”

         

       “…너라도 먼저 빠져나갈래?”

         

       “…!!!”

         

       데릭은 뒤늦게야 깨달았다.

         

         

       “-더러운 쥐새끼들 같으니, 드디어 걸렸구나.”

         

         

       그들이 저들을 쫓고 있었듯, 저들 또한 그들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었음을.

         

       무수한 흑의인들이 어느새 그들을 포위하였다.

         

       * * *

         

       흑의인들이 내뿜는 기세는 심상치 않았다.

       이만한 인원이, 그것도 저만한 실력자들이 기세를 감추고 지금껏 숨어 있었다는 것 자체가 실력을 알려주는 지표와 다름없다.

         

       도합 서른.

         

       허나 개개인의 실력이 백은사자에 있던 어중이떠중이들과 비교할 수가 없었다.

         

       거기다 추가적으로….

         

       “포위해라!!”

         

       “이런 천벌 받을 놈들!”

         

       “저주스러운 팬드래건의 기사다…!!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점차 모여드는 죄수들까지.

         

       인해전술이라 하였나.

         

       장관도 이런 장관이 없었다.

         

       겨우 단 두 명을 붙잡기 위해서 이만한 인원이 몰려온 것이니 말이다.

       

        그런 대량으로 모여드는 인원들을 보며.

         

       “…흠, 어떻게 알았지? 나름 은밀하게 미행했는데.”

       “허허, 나 또한 등골이 서늘했다네. 정녕 기척 하나 느껴지지 않았거든.”

         

       이한이 물음을 던지자 뜻밖이게도 사제는 친절한 답변을 들려주었다.

         

       여유가 철철 넘치는 모습이 아닐 수 없다.

         

       “흐, 한 가지 실수를 했더군. 자네, 이런 종이를 보지 못했나?”

       “그거….”

         

       사제가 꺼낸 것은 한 장의 백지였다.

       로이 반트의 찢어진 종이와 아주 흡사한.

         

       사제는 싱긋 웃었다.

         

       “우리 쪽 사람의 신변의 문제가 생기는 순간 찢어지는 원리라네. 아마 자네는 우리 쪽 사람 한 명을 잡아서 성과를 내었다 여겼을 테지만, …어리석기 짝이 없군. ‘우리’가 그토록 허술하여 보이는가? 허허.”

         

       “그러니까,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다, 이거네?”

         

       “이제 와서 알아봤자 늦었겠지만, 그런 거라네. 하여튼 왕국의 기사란 것들은 멍청하기 그지없단 말이지, 아하하하!”

         

       사제는 기뻐 보였다.

         

       팬드래건의 기사로 보이는 자를 포위한 것도 있지만, 본인이 압도적 우위에 있다는 사실이 한없이 만족스러운 건지.

       누군가를 짓밟는 것으로 충족욕구를 얻는 듯했다.

         

       “지금이라도 투항해라. 그렇다면 고통 없이 보내주기로 하지.”

       “살려주는 게 아니고?”

       “살려줄 리가 있나. 아, 자네는 확실히 실력이 있어 보이긴 하지만, 옆에 있는 아이를 비롯하여 동료들은 확실히 죽을 걸세. 우리가, 아니 내가 반드시 그렇게 할 거거든.”

       “…….”

         

       자신들 말고도 다른 세 사람의 존재 또한 이미 알고 있는 모양.

         

       “교, 교관님….”

         

       사면초가.

         

       데릭은 상황이 그들에게 압도적으로 불리함을 깨달으며 침울한 기색을 보였다.

         

       ‘내, 내가 좀 더 조심했어야 했는데…. 빌어먹을!’

         

       스킬을 가지고 있다는 놈이 이러한 뻔한 함정에나 걸려들고, 대체 뭐하나 싶었다.

         

       자책감이 밀려오며 데릭은 품속에서 비수를 꺼낼 준비를 했다.

         

       비록 일은 모두 망가졌지만, 살릴 사람은 살려야 하는 게 아니겠는가!

         

       “도, 도망치세요, 교관님. 제, 제가 어떻게든 붙잡을게요! 마, 만천화우라면 어떻게든 이들 중 반은 데리고 갈 수 있을 거예요!”

       “아서라. 너, 사람 상대로 피 볼 수 있냐?”

       “그, 그건….”

         

       맞다.

       데릭은 지금껏 살생을 해도 그 범주는 마물에 국한되어 있지, 사람을 살생한 적은 없다.

       그가 각오를 다지지 못한 것이기도 하고, 여전히 현대인이란 증거가 아닐까 싶다.

         

       ……그래도.

         

       “해, 해야 할 때는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지금이고요.”

       “…자식, 그래도 좀 성장했네.”

         

       툭툭.

         

       “…교관님?”

         

       기특하다는 듯 그의 등을 툭툭 치는 이한이었고, 데릭은 이런 상황에서 무슨 칭찬인가 싶었다.

         

       혹시 자포자기했나 싶지만, 그가 아는 한 이한이란 사람은 결코 그런 부류가 아니었다.

         

       “잠깐 비켜봐라. 내가 이런 상황에서 대처하는 방법을 알려줄 테니까.”

       “??”

         

       무언가 가르침을 주겠다는 듯이 앞으로 나아가는 이한이었고 사제와 흑의인들이 내뿜는 살기가 짙어져갔다.

         

       “어리석은 선택을 내리는군.”

         

       사제는 이한을 비웃었다.

       저 바보 같은 기사는 끝내 그들과 싸울 요량인지 품속에서 무기를 꺼내려는 듯했고, 사제는 손을 들어 공격 명령을 내려….

         

         

       “─지금 땅굴 구역 곳곳에는 화염 스크롤이 약 100장씩 매설되어 있고, 그중 절반만 점화해도 땅굴은 무너질 거다.”

         

         

       [[………?]]

         

       ……사제를 비롯한 흑의인들은 동작을 멈추었다.

         

       “…뭐?”

         

       사제는 자신의 귀가 잘못되었나 싶었다.

       지금 저놈이 무슨 헛소리를 하나 싶어서.

         

       한데.

         

       “못 믿겠어? 하긴, 말로만 해서 누가 믿겠어. 뭐, 처음은 간단하게 보여주지.”

         

       이한이 품속에서 꺼낸 건 무기가 아니었다.

       포도처럼 생긴 구슬들이 담긴 주머니였지.

         

       그리고 돌연 그는 구슬 한 알을.

         

       빠각.

         

       손쉽게 터트렸고, 다음 순간.

         

         

       ━콰아아아아아앙!!

         

         

       ……작열하는 폭발음이 지하를 덮치며 땅굴을 뒤흔들었다.

         

       고오오오오…!

         

       후두두두두둑….

         

       “…….”

         

       사제와 흑의인들은 얼이 빠졌다.

       심상치 않은 땅굴의 지진을 목도하며 그들은 아연실색함을 제대로 느끼는 중이었다.

         

       허나 그런 그들을 보고도.

         

       “아직도 못 믿겠나? 그럼 이번엔 좀 더 큰 폭발을….”

         

       “그, 그마아아안!!”

         

       사제는 절규하듯 소리쳤다.

       그의 손안에서 터져나가려는 알맹이를 보며 본능적으로 반응하고 만 것이다.

         

       “미, 믿겠다! 믿겠으니 당장 멈춰라!”

         

       “…….”

         

       “다, 다 죽일 셈이냐! 이 천하의 악독한…!”

         

       “-왜 반말하냐?”

         

       “…?”

         

       “내가 네 친구냐?”

         

       “??”

         

       “염병할 놈이, 어디서 명령질이야.”

         

       빠각.

         

       그렇게 이한의 손에서 다시금 구슬 한 알이 터졌고, 곧이어.

         

       콰아아아아아!!

         

       다시금 거대한 폭발음이 지하세계를 뒤덮었다.

         

       후두두두둑…!

         

       방금 전보다 더욱 커진 지진과 균열음.

       흙먼지가 떨어지며 모든 게 산산조각 나려고 했고, 급기야.

         

       [[[Krrr…]]].

         

       …샌드 웜이, 아니 마더 웜이 깨어나려는 듯 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사제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갔다.

         

       “어, 어어…. 어…?”

         

       사제의 뇌가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처럼 마냥 굳어버렸고, 그런 그를 향해 이한은….

         

       “또 터트리는 수가 있다. 말조심해라.”

       “어, 어찌 이런….”

       “스읍!!”

       “…….”

       “존댓말 모르냐 이 못 배워먹은 새끼야, 어디서 어린놈의 새끼가…!”

       “…….”

       “그러고 있지 말고, 빨리 무릎부터 꿇어. 다 뒤지고 싶은 거 아니면.”

       “…….”

         

       …왕국을 무너트리려는 테러범이 도리어 협박받는 초유의 사태.

         

       이질적이다 못해 어처구니없는 광경이었고, 사제는.

         

       털썩.

         

       어느새 무릎을 꿇고 말았다.

         

       “쯧, 진작 그랬어야지.”

         

       “…….”

         

         

       

       진짜 광기 앞에서 가짜 광기 따윈 명함도 내밀지 못하는 것이 정해진 순리였음이다.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환생 30년, 알고 보니 장르가 로판이었다?
Status: Ongoing Author: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the genre was romance fantasy? ...Really, how? I lived as a magician's slave, experimented on, then as an assassin, mercenary, soldier, and even a knight. This is a story where I'm in a genre all by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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