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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7

    세희 연구소 실험 가운을 입은 직원들이 사람들을 안내하고 있었다.

    “자자, 이쪽으로 천천히 움직여 주세요!”

    세희 연구소는 갑작스럽게 나타난 사람들로 붐볐다.

    그 사람들을 이끄는 것은 황금 사신들이었다.

    뚜방뚜방.

    귀엽고 당당한 걸음걸이로 나타난 황금 사신이들의 뒤로 수많은 사람이 따라 나왔다.

    트리니티 연구소에 감금되어 있었다가 구출된 사람들.

    구출된 사람들의 말은 충격적인 사실을 내포하고 있었다.

    [트리니티 연구소가 사람들을 강제로 가뒀다.]

    [연구원들이 괴물로 변했다.]

    [푸른 사신이가 사람들을 구해줬다.]

    [회색 사신이 우리들을 여기로 보냈다.]

    그 말을 들은 우리들은 심상치 않은 사건임을 느끼고, 협회와 경찰에 연락했다.

    감금되었다가 풀려난 사람들은 세희 연구소 안뜰에 도착하자, 긴장이 풀렸는지 자리에 주저앉고 울음을 터트렸다.

    황금 사신이들은 그런 사람들이 생기면 후다닥 달려가서, 눈물을 닦아주면서 볼을 토닥거려 줬다.

    물론 그건 어른들의 이야기.

    아이들은 생소한 세희 연구소에 도착해서도, 황금 사신을 손에 들고 놀면서 즐거워했다.

    아이들이 활짝 웃으면서 양손을 번쩍 들어 올리면, 황금 사신들도 똑같이 웃으면서 양손을 번쩍 들었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푸른 사신은 손에 잡히면 아파하면서 도망가 버리는데 황금 사신이는 그렇지 않다면서 더욱 좋아했다.

    뭐, 황금 사신이가 좀 튼튼하긴 하지.

    코끼리가 밟아도 멀쩡할 것 같은데, 어린애들 악력쯤이야….

    “세희 언니, 아귀가 벌써 3차 저지선을 돌파했대요.”

    예린이가 보기 드물게 진지한 얼굴로 TV를 가리켰다.

    “그냥 예상 경로를 비워버리는 편이 좋지 않을까요? 사신이가 아니면 막지 못할 것 같은데….”

    TV에서는 마치 전쟁이라도 난 것 같은 분위기로 긴급 속보를 송출하고 있었다.

    [현재 아귀가 서울 한복판을 질주하고 있습니다. 현재 3차 저지선마저 무너졌습니다.]

    아귀는 인간이 준비한 온갖 방해를 모조리 무시하고 질주를 거듭하고 있었다.

    폭탄이 터져도 상처 하나 없었고, 강철로 만든 바리케이드가 종이짝처럼 찢겨졌다.

    특히 트리니티에서 생산, 제공한 바리케이드가 힘을 쓰지 못했다.

    <아귀급 물리력 차단!>이라는 캐치프레이즈가 무색했다.

    [현재 4차 저지선을 구축 중이지만, 막아낼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최근에 아귀의 위험 등급을 낮춰야 한다는 연구 결과가 많이 나왔었습니다만, 그 모든 결과를 부정하는 듯한 아귀의 질주입니다.]

    사실 아귀가 탈출하기 불과 몇 분 전에도 난리가 났었다.

    하늘을 찢어버린 거대한 상흔. 

    충분히 문제가 될 만한 스케일의 일이었지만, 훨씬 직접적이고 충격적인 아귀 탈출 사건이 터지면서 흐지부지되었다.

    아마 아귀 사태가 해결된 뒤에나 조명될 것 같네.

    [아귀는 지금 송파구 싱크홀에서 나와서 서쪽으로 계속 이동 중입니다.]

    뉴스에서는 태풍 예보를 하듯이 예상 궤적을 표시하고 있었는데, 그 궤적의 중간에는 ‘트리니티 연구소’가 있었다.

    “역시, 아귀의 목적지는 ‘트리니티 연구소’가 아닐까요? 사신이에게 리벤지 매치를 신청하러 열심히 뛰어가는 것일지도 몰라요!”

    세상이 사신이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믿고 있는 예린이는 이번에도 만물 사신이설을 주장했다.

    어수선한 안뜰에 앉아서 쉬고 있는 우리에게 세희 연구소 직원이 찾아와서 보고했다.

    “세희 연구소장님. 지금 정문에 오브젝트 협회가 도착했습니다.”

    나는 그 보고를 듣고 정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으, 협회에서 또 귀찮게 굴 것을 생각하면 골치가 아팠다.

    ***

    문신투성이의 여자가 하늘을 올려다보자, 구름이 다섯 줄기로 쪼개진 것이 보였다.

    먼 과거부터 ‘마도서’를 겪어왔던 여자도 처음 보는 현상이었다.

    이 세계는 오브젝트에 대한 대처가 달라서 그런지, 세계의 흐름도 조금 다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세계는 오브젝트에 대한 대처가 무르다.

    한없이 무른데, 왠지 요즘은 그게 정답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적어도 여기는 사람 사는 곳 같기는 하니까 말이지.

    “언니, 오늘은 뭐 하는 거야?”

    “재료가 모두 모였으니까, 우리들을 지켜줄 수호자를 만들어야지.”

    “수호자?”

    여동생은 생소하게 느껴지는 말을 듣자, 고개를 갸우뚱하며 궁금증을 표했다.

    “지금 곧 완성되니까, 구경하고 있어.”

    여자는 하하, 웃으면서 여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형형색색 다양한 색깔들이 어지럽게 섞인 돌을 곱게 갈린 흙 위에 올려두었다.

    “이 돌이 수호자의 핵심이지. 좀 더 좋은 재료에 실력 좋은 연금술사라면 색이 좀 더 단순하게 나오는데, 나로서는 이 정도가 한계야.”

    여러 가지 시약을 흙과 돌 위로 흘리자, 돌에서 희미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와!”

    여동생은 그것을 보면서 감탄을 흘렸다.

    돌의 색이 화려한 만큼 돌에서는 무지개처럼 다양한 색을 뿜어냈다.

    그리고 그 빛에 닿은 흙이 뭉쳐서 귀여운 형상을 이뤘다.

    화려한 색의 얼룩을 가진 정체불명의 생물체였다.

    대형견만 한 크기.

    개구리처럼 짧은 발. 

    커다란 입.

    머리 위에 붙어있는 빛을 내는 미끼.

    “자, 이게 연금술사의 영원한 동반자인 수호자다. 단색 수호자나, 흰색 수호자에 비하면 부끄러운 수준이지만 말이야.”

    “언니. 이거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뭐였지?”

    여동생은 영문을 알 수 없는 소리를 했다.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동생은 이내, ‘몰라!’로 결론을 짓고 심각하던 표정을 풀어버렸다.

    “수호자는 이제 우리를 지켜줄 거야. 이 돌이 파괴되지 않는 한 말이지.”

    수호자는 처음에는 뒤뚱거리면서 걸어 다니더니, 어느새 적응한 건지 신나게 서울숲을 뛰어다녔다.

    여자는 쭈그려 앉아 수호자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아귀!”

    여동생이 갑자기 큰소리를 냈다.

    “아니네, 조금 다른데. 촉수 없는 미니 아귀?”

    여자는 여동생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어서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

    무거워.

    아니 무겁진 않지만, 무거워진 기분이다.

    지금 내 몸에는 푸른 사신, 황금 사신 할 것 없이 잔뜩 달라붙어 있었다.

    내 머리 위, 어깨 위, 머리카락 안쪽까지 온통 미니 사신투성이가 되어버렸다.

    헤실헤실 웃으면서 달라붙은 황금 사신들.

    <엄마, 따뜻해!>를 외치면서 달라붙은 푸른 사신들.

    푸른 사신만 부르면 위험하니까, 보디가드 겸해서 황금 사신도 불렀더니 이 사달이 난 것이다.

    뭐, 어차피 위험해 보이는 사람들은 다 세희 연구소로 보냈고 조금 뒹굴뒹굴해도 문제는 없겠지.

    다쳤던 푸른 사신을 위로한답시고 황금 사신들이 잔뜩 모여들어서 푸른 사신을 꼭 껴안아 주고 있는 것이 보였다.

    푸른 사신은 모자를 꾹 눌러쓰고 도망가고 싶은데, 해맑은 황금 사신 표정 때문인지 도망가지 못하고 있었다.

    얘네들 생각보다 상성이 안 좋아 보이네. 

    키득키득 웃으면서 푸른 사신에 달라붙은 황금 사신 하나를 붙잡아 집어 들었다.

    푸른 사신을 잡으려고 버둥거리다가, 내 쪽을 보고는 헤실헤실 웃는 황금 사신.

    너무 좋아하니까, 괜히 장난치고 싶어졌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실수할 만한 검은 점액이 안 보이네. 

    아쉽게도 황금 사신은 집어 던져도 안 싫어하니까, 그냥 얌전히 내 어깨 위에 올려뒀다.

    느긋하게 쉬려고 바닥에 누워서 하늘을 올려다보니, 구름이 다섯 줄기로 찢어진 것이 보였다.

    내가 찢어버린 구름이었다.

    사실 저런 규모의 공격은 할 줄 몰랐는데, 화가 나서 그런지 어느새 해버렸네.

    물론 이젠 하는 방법을 알았으니 언제든지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장작 소모가 너무 심해서 별로 쓰고 싶은 기술은 아니었다.

    잠깐의 여유를 즐기며 바닥에 누워 쉬던 도중, 황금 사신들이 미어캣 같은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연구소 방향을 빤히 쳐다보는 황금 사신들.

    뭔가가 있는 건가? 

    황금 사신들의 감각은 나보다 훨씬 뛰어나니까, 뭔가가 있긴 한 거겠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연구소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

    트리니티 연구소 깊숙한 곳.

    제3 연구소장은 맹렬하게 울리는 경보음에 눈을 떴다.

    눈을 뜨니 보이는 것은 어둠과 붉은빛뿐.

    연구소 전력 계통에 이상이 생겼는지, 비상등만 붉게 빛나면서 회전 중이었다.

    [현재 모든 오브젝트 개방 절차가 진행되는 중입니다.]

    [연구소 내부에 남아 있는 인원은 모두 대피하시길 바랍니다.]

    큰소리로 오브젝트 개방 절차를 시작하는 중이라는 기계 음성이 울려 퍼졌다.

    “오브젝트를 개방한다고? 그런 짓을 허가한 기억은 없는데….”

    소장이 침대 위에서 몸을 일으켰다.

    자리에서 일어난 소장은 자기 몸 상태를 확인하고는 미소를 지었다.

    완벽했다. 

    흡수가 끝났다.

    몸 내부에서 끓어오르는 무한한 힘.

    그리고 그 누구도 자신을 물리적으로 해할 수 없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그렇군. 물리 면역인가. 이런 능력이 존재했었다니.”

    마음을 가득 메운 전능감에 저절로 혼잣말이 튀어나왔다.

    이 정도라면 회색 사신은 물론이고 아귀도 손쉽게 찢어버릴 수 있겠지.

    기대감이 어린 미소를 지은 소장은 실험 가운을 걸쳐 입고는 회복실 밖으로 나왔다.

    불길하게도 소장이 지나온 길은 지워지지 않는 그림자가 드리웠다. 

    빛조차 집어삼키는 영원히 남는 그림자.

    그리고 그 그림자 안에는 흉측한 촉수들이 잔뜩 꿈틀거리고 있었다.

    ***

    황금 사신들이 바라보는 쪽으로 계속 걸어 나가서 도착한 트리니티 연구소 내부는 난장판이었다.

    폐허와 혼돈, 그리고 그림자의 광경.

    겉에서 볼 때는 멀쩡해 보였지만, 그 내부는 심하게 파괴되었고, 한때 깔끔했던 벽과 바닥은 산산조각이 나서, 뭔가 일어났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바닥은 빛을 삼키는 블랙홀처럼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빛이 그 위로 드리워져도,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그림자들은 여전히 건재했고, 오히려 그 빛을 집어삼켜 어둠을 늘려가고 있었다.

    이 불길한 어둠의 웅덩이에서는 기괴한 촉수들이 튀어나왔다.

    촉수들은 악의적인 목적을 가지고 꿈틀거렸고, 격리실에서 풀려난 것으로 보이는 오브젝트들을 움켜쥐었다.

    촉수들은 붙잡힌 먹잇감들을 그림자의 심연 속으로 끌고 들어가 집어삼켰다.

    뼈와 살이 뭉개지고 부서지는 소리.

    그 끔찍해 보이는 광경보다 더욱 끔찍한 것은 악취였다. 

    그 그림자에서는 이제까지 보지 못할 정도로 짙은 인간에 대한 악의가 느껴졌다.

    촉수의 존재감이 연구소 내부를 가득 채워서, 공간이 비틀리고 왜곡되고 있었다.

    마치 현실이 존재할 수 없는 존재를 수용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 같았다.

    아귀급 오브젝트! 

    트리니티 연구소가 아귀급 오브젝트를 숨겨두고 있었던 건가?

    오랜만에 만나는 강적의 기척에 나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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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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