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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7

    <117 – 선배의 기숙사>

     

    “오크노디. 어떤 선배들이 너 뒤캐고 다니더라.”

    “오크노디. 선배들한테 뭐 잘못한 거 있어?”

    “오크노디. 혼자 다닐 때 조심해!”

     

    몇몇 이벤트에서 많은 학생들에게 호감을 쌓은 덕분인지 지나가는 족족 NPC들이 경고를 했다.

     

    “고마워요!”

     

    하얗게 이를 드러내며 웃으니 귀여워 죽겠다는 얼굴로 머리를 쓰다듬어주고는 NPC들이 괜히 자기 손을 내려다보고 막 흐뭇해하며 돌아간다.

    근육떡대일때의 힘으로 사람을 공포에 빠뜨리고 제어하는 쾌감을 느끼지는 못하지만, 이런 애완동물이 된 것 같은 기분도 썩 나쁘진 않다.

     

    ‘이걸 고마워해야할지는 모르겠지만.’

     

    소꿉친구 시아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날 게임세계에 보낸 건지 모르겠다.

    의문은 많지만 밝고 명랑한 몸에 들어온 탓인지 우울한 기분이나 걱정은 금방 밀려났다.

     

    문제가 생기면 하나씩 착착 해결하면 그만!

    선배들이 먼저 내 뒤를 캤으니, 나도 선배들의 뒤를 캐도 되겠지?

    학생들의 조언과 가벼운 정보수집에 힘입어 누가 내 뒤를 캐는지도 금방 알아내었다.

     

    “헤에. <페이퍼콤퍼니>랑 <박스 차우더>라고 하는 분이시구나.”

     

    둘 다 처음 듣는 이름.

    엑스트라들이다.

    각각 마법학부와 기사학부 2년생.

    나름 기프트 아카데미에 입학할 정도의 실력은 있지만 그 안에서 두각을 드러낼 정도의 재능도 없고 마나보유량도 저조하다.

    그저 1학년 때 입학시험을 통과할 정도의 실력만 그간의 노력이나 재능으로 간신히 넘어섰을 뿐, 학년평균의 실력조차 따라가지 못하는 수준.

    노력은 열심히 하지만 재능의 절대값이 낮아서 벽을 맞이해 도태당하고 있는 흔한 열등생이다.

     

    ‘먼가 뉴비들 보는 것 같네!’

     

    초보 플레이어들이 딱 저렇다.

    처음엔 아카데미에서 버티기도 급급하거든.

    그러다 주변에서 남들 한다는 나쁜 짓으로 같이 요행을 바라기도 하고.

    어쩌다 대박이 나면 한동안은 꿀을 빨지만 십중팔구는 그 꿀을 빠는 것은 자신이 아니라 다른 운 좋은 NPC가 된다.

    빨간이빨버섯 불법양식도 다르지 않았다.

    정작 마력포자낭을 섭취한 것은 자신과 교장이지 않았던가.

    있는 놈들이 더하다고 열등생들이 열심히 기른 기연은 지나가던 재능충이 냠냠하면 뺏길 뿐이다.

    이래서 불법으로 뭘 하면 안 된다.

    뺏겨도 어디에 피해보상을 요구하거나 억울함을 하소연하기도 어렵단 말이지.

     

    ‘불쌍하니까 크게 혼쭐을 내주기는 좀 그렇고 조금만 살살 괴롭혀볼까?’

     

    월요일이 되기 전.

    주말의 야심한 밤.

    2학년 남자기숙사로 슬쩍 발을 옮겼다.

     

    ‘흐응. 언제 봐도 참 보안이 허접하네.’

     

    마력으로 짜낸 그물망.

    망에 일정체온과 크기 이상의 생물체가 닿으면 즉시 사감실로 신호가 들어가는 감지마법이 펼쳐져있다.

    신입생기숙사만큼 재학생들의 안전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는 시설은 아니라서 보안이 아주 엄격하지는 않지만 범죄에 대비해 스캔정도는 해두는 것!

    그렇지만 안 걸리면 그만이다.

    133cm의 작은 키와 조그만 몸으로 마법감지패턴을 피해 창문을 등반하는 일은 간단했다.

     

    슥슥슥.

     

    도마뱀처럼 거침없이 외벽을 타고 올라가 창문 안쪽을 스윽 들여다보았다.

    외출이라도 했는지 침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잘됐네!

    창문을 슬쩍 손으로 밀어보는데 덜컹 하고 잠긴 느낌이 들었다.

    머 이럴 줄 알고 철사도 이미 가져왔다.

     

    덜컹덜컹…

    드르륵.

     

    창문을 따고 안으로 들어오자 바닥에 과자 부스러기같은 무언가가 밟혔다.

    이 선배도 참.

    자기 방을 더럽게 쓰는 편인가보다.

    서양인들은 자기 집 침실에서도 신발 신고 들어가서 잔다는 말처럼 참 동양인감수성이 부족한 기숙사야.

     

    “선배도 참. 칠칠맞게 다니시네. 너저분하게 흔적을 늘어놓고 다니고. 이렇게 더럽게 살면 쥐새끼가 꼬이는 것이 무섭지도 않으신가?”

     

    사람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방.

    남의 뒤나 캐고 다니지 말라고 따끔하게 한 마디 해주려고 왔다가 더러운 집안꼴에 너무 화가 나서 기숙사실 안을 종횡무진 돌아다녔다.

    보통은 여럿이 같이 쓰는 공용실일 텐데 운 좋게도 이 선배는 4인실 방을 혼자 쓰고 있다.

    덕분에 자유롭게 돌아다니면서도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찾을 수 있었다.

     

    슥슥

     

    열심히 쓰레기를 주워 담아 청소하다보니 침대 밑에서 빗자루에 걸리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손가락으로 잡아당겨보니 교과서가 있었다.

    그런데 보통 교과서를 침대 밑에 두나?

    페이지를 넘겨보니 아니나 다를까.

    헐벗은 여자들이 남자를 유혹하거나 그렇고 그런 일들을 하는 잡지가 있었다.

     

    ‘헤에.’

     

    이 선배 취향이 굉장하네.

    나도 남자였을 때는 이런저런 야한 매체들을 접했지만 이런 취향이 있다는 건 처음 알았다.

     

    “이런 거 들키면 죽어버릴 텐데. 킥킥.”

     

    남자였던 시절의 감수성으로 이해해드려야지.

    이걸로 막 남을 협박하고 그러는 것도 요즘은 다 성범죄다.

    남녀평등을 지키는 나, 너무 성실해!

    교과서도 다시 침대 밑에 고스란히 내려놓았다.

    조금 더 실내를 뒤적거리며 선배가 오기를 기다리다가 책상 위에 놓인 과제도 눈에 띄었다.

    기다리기 심심해서 슥슥 문제를 풀었는데, 어째 이 사람이 도통 보이질 않는다.

     

    ‘외박하시나?’

     

    이름이 신기해서 꼭 한 번 만나보고 싶었는데 아쉽게 됐네.

    아무래도 오늘은 날이 안 좋았나보다.

    그래도 너무 실망하지 말자.

    공친 시간이 아깝지만 오늘만 날인 건 아니니깐.

    다음에 또 놀러와야지!

     

    [당신의 뒷조사를 한 선배의 기숙사실에 침투했다가 간단히 탈출했습니다.]

    [공포유발 경험치+5]

    [청소 경험치+5]

    [등반 경험치+5]

    [자물쇠 따기 경험치+3]

    [감지 경험치+3]

    [탐색 경험치+1]

    [나쁜아이 경험치+1]

     

    그런데 공포유발 경험치는 왜 올랐을까?

    집에 가는 길에 곰곰이 생각하다가 깨달았다.

    갑자기 저절로 청소가 된 집.

    저 혼자 발동한 공포유발 기능.

    합리적인 추론이 번뜩였다.

     

    “아하.”

     

    선배님은 우렁각시 공포증이 있구나!

    청소를 하면 두려워하는 선배라니, 먼가 재밌네.

    나중에는 가서 밥도 해주고 그러면 더 무서워할 것 같고 그래서 더 신이 났다.

    요리 할 일 있으면 꼭 여기도 하나 갖다 줘야지!

     

     

    * *

     

     

    늦은 밤.

    옷장에서의 불편한 취침도 익숙해질 무렵.

     

    덜컹.

     

    잠결에 들리는 창문 흔들리는 소리를 귀가 잡아냈다.

    청력 하나만큼은 하급반 내에서도 수준급이라고 평가받는 페이퍼콤퍼니.

    고층에 사느라 매서운 바람에 창문이 들썩이는 일은 종종 있는 일이었다.

    오늘도 그런 것이겠거니 다시 잠을 청하려고 했다.

     

    덜컹덜컹.

     

    평소보다 유난히 크게 흔들리는 창문소리에 잠이 깨기 전까지는 말이다.

    무슨 바람이 이렇게 거세담.

    모기떼가 창문 앞에서 서성거리기라도 하나?

    옷장을 열고 확인해보려던 그때, 들려서는 안 될 창가의 잠금장치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요즘 모기는 주둥이로 자물쇠도 따나?

    그런 황당한 생각을 할 때까지는 차라리 나았다.

    모기야 떼 지어서 몰려드는 것만 아니라면 때려잡으면 그만이니까.

     

    자박.

     

    하지만 발소리가 났다.

    혹시나 침입에 대비하여 창문 앞에 깔아둔 밟으면 소리가 나는 가루가 제 역할을 했다.

    크기와 달리 체중이 가벼운 모기가 밟아서 날 소리가 아니었다.

    모기가 아니야.

    사람이다.

    그의 생각에 제 정체가 들킨 것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것처럼 한심하게 여기는 목소리가 들렸다.

     

    “선배도 참. 칠칠맞게 다니시네. 너저분하게 흔적을 늘어놓고 다니고. 이렇게 더럽게 살면 쥐새끼가 꼬이는 것이 무섭지도 않으신가?”

     

    이곳에서는 들릴 수도 없고, 들려서도 안 되는 목소리였다.

     

    ‘말도 안 돼. 여긴 10층이라고!!’

     

    사람이 들어올 수 없는 까마득한 높이.

    3학년부터 교육과정이 잡힌 비행마법을 1학년이 배웠을 리가 없는데.

    그렇다면 이 애는 대체 무슨 수로 이곳까지 올라왔단 말인가.

    공포에 질린 뇌가 답을 갈구했다.

    때마침 원치 않아도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으니.

     

    -어느 귀족가에서 암살 교육을 받은 현역 암살자라는 소문도 있다.

     

    그래, 암살자라면 못할 것도 없었다.

    역시나 뒤를 캐고 다닌 것이 들켰다.

    박스 차우더의 말이 옳았다.

    오크노디는 도적이자 암살자.

    분명 자신의 신경을 건드린 건방진 재학생이 마음에 들지 않았겠지.

     

    “이런 거 들키면 죽어버릴 텐데. 킥킥.”

     

    조금의 악의도 느껴지지 않는, 심지어 즐거워하는 기색마저 어린 목소리.

    이 아이는 살인을 즐기고 있다!!!

    페이퍼콤파니는 눈을 꼭 감았다.

    자신이 뜬 눈의 흰자위가 옷장 틈 사이로 보이는 것마저도 두려웠기 때문이다.

    공포 속에 덜덜 떨면서 자신이 어리석었다고, 건드리면 안 될 아이를 건드렸다고 속으로 용서를 구하는 와중에도 오크노디는 떠날 생각을 않았다.

     

    스으윽.

    스으윽.

     

    그의 청각이 예민하다는 것을 아는 것처럼 빗질하는 소리를 내며 방 안을 서성거리고 사람이 사는 흔적을 하나씩 지우기 시작했다.

    무슨 의미지?

    대체 뭘 하려는 거지?

    설마 청소를 하고 싶어서 그러는 건 아닐 테고.

    경고다.

    그래, 이건 경고가 확실했다.

    네가 뭘 잘하는지도 나는 이미 알고 있다고.

    사람의 흔적을 없애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제발 용서해줘 제발 용서해줘 제발 용서해줘!’

     

    두 눈을 감고 애타게 기도하던 페이퍼콤파니.

    눈치 챘을 때에는 밖에서 들어오던 찬바람이 사라진지 오래였다.

    갔나?

    정말 간 거 맞지?

    문 열면 옷장 앞에서 “찾~았다. 킥킥.” 이러는 거 아니지?

     

    “허억…!”

     

    두려움에 벌벌 떨며 조심스레 옷장 밖으로 나온 페이퍼콤퍼니는 쿵쿵 뛰는 가슴을 부여잡고 뒤늦게 숨을 몰아쉬며 헐떡였다.

    사람 사는 흔적이 싹 사라지고 빈 방처럼 반듯하게 정동된 풍경.

    책상 위에 놓인 그의 과제에는 어째서인지 반듯한 글씨체로 해답이 적혀있었다.

    왜 이걸 풀었지?

    심심해서 풀고 갔을 리도 없고.

    무언가 속뜻이 담긴 건가?

    그보다 이거… 강의시간까지 예습하라고 준 과제이기는 해도 다 풀면 먼저 돌아가도 된다고 할 정도로 난이도가 높은 과제인데?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강의시간에 나한테 뭘 시키려고 문제를 다 풀어버린 거냐고!!’

     

    페이퍼콤퍼니는 두려움에 한참을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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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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