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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7

       느닷없이 헤를라인 선생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다.

       

        “자, 얘들아. 오늘은 던전 탐색을 해 볼까 하는데, 너희들 생각은 어떠니?”

        “던전 탐색이요?”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나?

       

        헤를라인 선생님은 이번 학기에도 강의를 하나 맡으셨다. ‘전투마도기초 및 던전 실습’이라는, 다소 판타지스러우면서도 로망의 향기가 물씬 풍겨오는 과목이었다.

       

        과목이 과목이다 보니 던전 탐색을 한다는 것 자체는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다면….

       

        “첫 시간부터 하신다고요?”

       

        원래 알고 있었던 커리큘럼과는 많이 다르다는 점일까.

       

        “처음 몇 주는 모의훈련을 하는 게 보통 아닌가요?” 

        “그래, 그렇긴 한데…. 때마침 좋은 기회가 생겼거든.”

        “좋은 기회요?”

        “맞아. 좋은 기회! 며칠 전에 아카데미 뒷산에 던전 하나가 생겼어.”

        “…잠깐만요. 아카데미 바로 뒤에 던전이 생겼다는 말씀이신가요?”

       

        아이들은 의아한 표정이었다. 태연한 얼굴로 앉아있는 녀석이라고는 로즈마리가 유일했다. 혹시나 싶어 뒤를 돌아 그녀를 쳐다보니 로즈마리가 입술을 샐쭉 내밀었다.

       

        “왜요. 제 얼굴에 뭐 묻었어요?”

       

        너 이 새끼, 네가 범인이구나.

       

        다 아는 척 딴청피우는 태도가 골때린다. 그래도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는 걸 보니 자기가 했다는 걸 내가 알아주길 은근히 바라는 모양인데.

       

        “걱정할 거 없어, 얘들아. 마굴 자체가 미믹인지 아닌지는 조사가 다 끝난 뒤야. 그러니 어때? 너희들만 괜찮다고 하면 첫 시간부터 실습을 하고자 하는데. 물론 선생님이 보호자로 따라갈 테니 만일의 상황이 생기더라도 걱정 안 해도 돼!”

       

        참 나. 절멸급 마수가 만든 하급 던전이라니.

       

        이상해도 보통 이상한 게 아니었다. 이거 정말 들어가도 되는 건가?

       

        그리 생각하고 있던 와중, 책상에 다소곳이 앉은 채로 연필을 사각거리고 있던 로즈마리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입을 열었다.

       

        “저도 따라가도 돼요?”

        “…물론이지. 우리 공녀님이 괜찮다면 좋은 수업이 될 거라고 선생님은 생각한단다.”

       

        얼씨구. 스스로 움직이시겠다?

       

        “여기 계신 분들 모두 틸레트 아카데미의 특별반 학생이시잖아요. 입학시험 때 전투마도에서도 훌륭한 성적을 거두신 분들이니 하급 던전에서 실습하는 모습을 보면 저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해요.”

       

        사근사근한 투로 자신의 참여 당위성을 설파하는 로즈마리. 나와 붙어 있을 핑곗거리를 만들어내는 솜씨 하나만큼은 탁월하다. 

       

        발화자와는 별개로 로즈마리의 말 자체에는 틀린 것 하나 없었다. 로테나 버멜, 프레이처럼 높은 석차로 입학한 친구들은 마수에 대응하는 능력에도 뛰어났다. 당장 입학식 때 벌어진 드레이크 소동에서 활약했던 신입생이 누구누구였는지를 짚어본다면 답이 나온다.

       

        그리고 로즈마리 본인이 직접 들어간다. 만에 하나 함정을 설치했더라도 발동시키진 않겠지. 발동하면 뭐…. 자기만 마수로 몰리는 거고.

       

        [그게 왜 그렇게 돼요?]

       

        아니, 생각해 봐. 하급 던전이 사실은 미믹이어서 같이 실습하던 학생들이 대부분 함정에 빠져 죽는 와중 자기만 멀쩡하게 살아 돌아온다?

       

        로즈마리라면 거기까지 계산에 넣고 있을 것이다. 아마 그녀가 동행하는 데에는 다른 목적이 있겠지.

       

        예를 들면 나라든가, 나라든가, 나라든가.

       

        [허어, 그건 그렇네요.]

       

        여하튼 피곤한 일이 될 것이다.

       

        “가요, 던전.”  

       

        누군가의 수긍하는 말을 시작으로 우리는 하나둘씩 스태프를 챙겨 일어났다. 

       

        2학기 첫 야외 수업의 시작이었다.

       

       

        ** 

       

       

        던전은 아카데미 북부의 산기슭에 자리해 있었다.

       

        던전 출입구는 수평 동굴처럼 생겼다. 둥그스름한 입구에, 내부는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둡다. 동굴 안쪽에서는 탁한 음기가 뻗어 나왔다.

       

        “미리 말해두지만 이런 형태의 던전은 내부에서 불을 밝힌다고 해서 잘 보이지도 않아. 그만큼 공기라던가 마소가 다른 곳에 비해 떨어진단다.”

       

        마소가 떨어진다. 즉 마수가 서식할 확률이 높다.

       

        ‘마수’라는 이름과는 다르게 마수는 마력 농도가 낮은 곳을 선호한다. 반대로 마소 농도가 높으면 정령이 잘 돌아다닌다고. 물론 이론서에 적힌 내용이라 확실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 지금부터 다섯 명씩 짝을 짓도록 하자!”

       

        조를 편성하는 기준은 헤를라인 선생님의 마음대로였다.

       

        그러나 정작 짝을 짓고 나니까 일정한 기준에 따라 학생을 나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에테르와 로테, 프레이, 그리고 이르카 양은 각 조의 조장을 맡도록 하렴. 조원이 부족한 한 조는 선생님이 뒤에서 이끌도록 할게!”

       

        과연. 어떤 기준으로 조장을 뽑았는지 알겠다.

       

        입학식 때 있었던 드레이크의 난동에서 유연한 대처를 보였던 학생들이 전원 조장을 맡았다.

       

        실로 현명하고 효율적인 대형이다. 이렇게 조를 맺으면 하급 마수에 대처한 경험이 있는 학생들이 그렇지 않은 학생들을 이끌어주면서 집단 전체가 패닉으로 물들 가능성을 낮춰주기 때문이다.

       

        동시에 튜터와 튜티가 나뉘면서 학생끼리 자연스럽게 가르치고 배우는 기회까지 제공한다는 점에서 훌륭한 교수법이다.

       

        “그러면 어느 조부터 들어갈래?”

        “저희부터 갈게요.”

       

        내가 손을 들었다.

       

        절멸급 마수가 만든 던전이라면 내가 선두에 있는 편이 모두에게 안전하다고 생각한 까닭이다.

       

        무엇보다도 내 조에는 로즈마리가 있다. 그 외에도 반장 메이릴과, 반에서 평범하게 지내고 있는 남학생 둘이 편성되었다.

       

        “으아아아…! 어두워! 존나 무서워!!”

        “정신나갈거같아! 정신나갈거같아! 정신나갈거가타아아악!!”

       

        생각해 보니 여기 남학생 둘은 평범하게 지내는 놈들이 아니구나. 1학기 끝날 즈음부터 쉬는 시간마다 반을 시끄럽게 만들던 주범이었지.

       

        “얘들아, 조용히 해 줘!”

        “으아아아아악!!” 

       

        반장이 나서서 타일렀지만 쉽지는 않았다. 

       

        “놔둬. 무섭다잖아.”

        “그래도….”

       

        나는 랜턴을 들어 올리며 손을 휘휘 내저었다. 랜턴이 내는 불빛으로는 코앞의 반장 얼굴이 보이는 게 고작이었다. 그만큼 던전 내부는 이상하리만치 빛이 멀리까지 뻗어나가질 못하고 있었다.

       

        이게 ‘하급 던전’인데다가 선생님의 지도 하에 받은 실습 ‘수업’이니 망정이지, 상급 던전에 보호자도 없었으면 저 괴성은 단말마가 되었을 것이다.

       

        착, 착, 차악.

       

        “…방금 뭐지?”

         

        가끔 뭔가가 동굴 바닥을 긁는 소리도 났다. 그럴 때마다 반장과 두 남학생은 스태프를 치켜 들며 요격 태세에 들어갔다.

       

        마수의 발자국 소리를 들었음에도 전투태세를 취하지 않은 건 나와 로즈마리뿐. 오히려 로즈마리는 입을 가리고 하품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거기 앞에서 가는 조! 뭐 보이는 거 있어?” 

       

        뒤에서 로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메이릴이 아니라고 회답했다. 후열에서 벌벌 떨고 있는 두 남학생의 제안에 따라 하는 수 없이 로테의 조와 합류하기로 했다.

       

        “불을 튕겨도 1m정도만 보이는 게 전부야.”

       

        로테가 만들어내는 불꽃은 신입생이 아니라 틸레트 전체 재학생을 통틀어서도 가장 밝고 맹렬하다. 그야 하스펠트 가문의 뒤를 잇는 화계마도의 명문 아니던가.

       

        그런 로테의 불꽃으로도 한 치 앞만 보일 정도라면 주변 환경에 문제가 있는 거다.

       

        문득 로테가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들은 여기 조사를 마치셨다고 하셨어. 어떻게 하신 걸까?”

       

        조사를 마쳤다는 말은 곧 이 던전에 대한 모든 지형을 파악했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러게. 어떻게 수색하신 거지?”

        “분명 방법이 있을 거야.”

       

        헤를라인 선생님이 수색 방법을 안 알려주신 이유는 분명하다.

       

        보나 마나 이것도 교육의 일환이겠지. 이러한 던전을 만났을 때 어떻게 공략할 수 있겠는지 스스로의 힘으로 깨우쳐 보라는 뜻일 것이다.

       

        반장 메이릴과 로테를 포함한 반 친구들이 머리를 맞댄 채로 전략을 짜내고 있을 때였다. 때마침 나는 내가 생각해낸 걸 말해보기로 했다.

       

        “왜, 저번 수업 시간에 배운 것 중에 쓸만한 고유마도가 하나 있었잖아.”

        “색적 계열…. 그거 말하는 거야?”

        “그래.”

       

        메이릴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추가 질문을 해 왔다.

       

        “하지만 그건 적이 어디 있는지만 대강 짚어줄 뿐이야. 지형지물까지 확실히 알 수는 없어….”

        “음, 이러면 어떨까.”

       

        나는 스태프를 들고 양장본에서 마력을 조금 빼내어 마법을 전개했다.

       

        [팔정도 제3식 ─ 테슬라(Tesla)]

       

        최상급 고유마도에 해당하는 ‘마소 조작’의 여덟 갈래 중 하나에 해당하는 마도, 테슬라.

       

        테슬라는 원하는 진동수의 전자기파를 만들어내는 기술이다. 보존 법칙에 따라 그 대가로 마력파를 소모한다.

       

        “뭐 하게?”

        “보고 있어 봐.”

       

        이제 마법을 하나 더 전개한다.

       

        [하급 고유마도 ─ 오토 매핑(Auto Mapping)]

       

        시전자가 확인한 지역의 형태를 기술해내는 마도. 간단히 말해서 마소를 활용하여 특정 대상의 위치를 ‘매핑’해내는 마법이다.

       

        당연히 이 던전은 며칠 전에 생긴 것이므로 내가 와 본 적이 없다. 따라서 허공에 띄워진 매핑에는 아무런 정보도 없었다.

       

        그러나 ‘관찰’이라는 개념에는 육안으로 보는 것만 포함되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하면 어떠려나.”

       

        ‘테슬라’를 활용하여 X-선 대역의 전자기파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것을 전방으로 발사한다.

       

        이제 벽에 부딫혀서 투과하고 산란하는 등 파동의 여러 양상을 살펴보며 ‘맵(Map)’에 짜 넣는다. 

       

        마치 베틀을 움직여 실을 직조해내는 것처럼 마굴의 지도를 그려 나간다. 이런 식으로 1분 정도 주변을 탐색하자 반경 수십 미터 내부에서 동굴의 대략적인 구조에 대한 정보를 얻어냈다.

       

        “오오! 이런 방법이!”

        “이걸 이렇게 써먹을 수 있을 줄은 몰랐는걸!”

       

        색적 마법의 색다른 사용 방법을 두고 반 친구들이 놀라워하고 있는 와중.

       

        […주인님 바보세요?]

       

        혼자 툴툴거리는 녀석이 있었다.

       

        오랜만에 책상 서랍에서 꺼내 들고 온 탓에 화가 잔뜩 나 있던 양장본이다. 녀석은 내가 미덥지 않다는 듯 궁시렁거렸다.

       

        [그냥 처음부터 가시광선을 내보내서 주변을 밝혔으면 됐잖아요. 왜 번거롭게 에너지도 높고 위험하기까지 한 엑스선을 만들어 매핑하는 방법을 쓴 거예요? 이러면 마력을 낭비하는 꼴이나 다름없다고요! 비효율적입니다!]

       

        요즘 안 들고 다녔다고 어지간히 삐친 모양이다. 아니, 원래부터 이런 녀석이었지만 여름방학 전후로 더 심해졌다.

       

        나는 코웃음을 치며 뒤를 가리켰다.

       

        “저걸 보고도 모르겠어?”

         

        [뭐요. 뭘 보고 모른다는….]

       

        양장본은 거기서 말을 더 잇지 못했다.

       

        “이렇게 불을 켠 채로 벽을 짚고 이동하면 이쪽 부분만큼은 확실하게 매핑할 수 있어.”

        “우린 수계마도사니까 바닥에 유체를 흘려보자. 물이 흐르는 퍼텐셜에 따라 z축 위치를 그려볼 수 있을 거야.”

        “와, 마력파 말고 그냥 음파를 쏴도 매핑이 되네? 신기하다!”

       

        수업시간에 배운 하급 고유마도와, 각자가 아는 원소마도를 혼합하여 각자의 방법으로 정답을 찾아나가고 있는 학생들.

       

        “네 말대로 처음부터 가시광을 쏘아 보냈으면 나만 대단하다는 소리 듣고 말겠지. 그래선 친구들이 아무것도 못 얻어.” 

       

        학문이란 응용의 총체이다. 쉬운 돌파구만을 찾다 보면 그 방법에만 매몰되어 시야가 좁아진다.

       

        과학이라는 건… 또한 마법이라는 건, 그런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는 학문.

       

        “그리고 가시광을 직접 쏘아 보내더라도 멀리까지 보이진 않았을걸?”

       

        [……왜요?]

       

        “로테의 불빛이나 랜턴으로도 안 보였으니까.”

       

        [아…….]

       

        양장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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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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