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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7

       앨리스는 침대에 누운 채 천장을 뚫어져라 올려다보았다.

        

       잠이 오지 않았다.

        

       남작가의 침대라고 해서 아카데미의 침대보다 딱히 불편하다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사실 침대 브랜드 중 가장 비싼 브랜드는 정해져 있었고, 웬만큼 돈이 있는 귀족 집안, 혹은 부르주아 평민이라면 그 브랜드의 침대를 쓸 테니, 어느 정도 격이 있는 집안에 손님으로 가서 잠자리가 불편할 거라는 걱정을 할 이유는 없었다.

        

       앨리스가 잠이 들지 않은 이유는, 침대가 아니라 실비아 때문이었다.

        

       어쩌면 실비아뿐만이 아니라 클레어나, 그 클레어와 함께 있었던 고아원의 아이들 때문이었는지도.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실비아와 함께 있었던 그 아이들’ 때문이었다.

        

       앨리스는 나름대로 실비아와 오랫동안 알고 지냈다고 자부한다. 다섯 살이라는 나이는 사람의 일생에서 아주 어리다고 할 수 있는 나이였고, 그 시절부터 무려 10년을 알고 지냈으니, 자매라고 당당하게 주장한다고 해서 남들이 뭐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섯 살 미만의 기억을 정확하게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얼마 없기도 할 거고.

        

       하지만…… 오늘 실비아의 표정은, 그 다섯 살 시절의 기억을 제대로 떠올리고 있는 것 같았다.

        

       앨리스가 실비아의 표정을 알아맞힐 때마다 주변 사람들은 놀라고, 실비아는 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듯 기이한 것을 보는 시선으로 앨리스를 바라보곤 했지만, 사실 이 재주는 정말로 별거 아닌 재주였다.

        

       실비아의 표정을 읽고 싶다면, 그 눈동자를 가만히 바라보면 된다.

        

       누군가를 향하는 눈동자. 아니면 어떤 물체를 향하는 실비아의 눈동자는 한순간도 ‘무감정’이었던 적이 없다. 실비아는 언제나 무언가를 생각하고 계산하며 지냈으므로.

        

       그리고, 오늘 실비아가 그 다니엘이라는 사람을 보면서 지은 표정은, 거의 ‘그리움’에 가까운 것이었다.

        

       실비아가 무언가를 그리워하는 표정을 보고 있으니 정말 엄청나게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일평생을 알고 지냈다며 자부하던 사람의 모르는 면을 발견하는 것은 생각보다 그렇게 유쾌하기만 하지는 않았다.

        

       알고 싶기는 했다. 하지만 지금 느끼는 감정은 그렇게 딱 한 가지 단순한 감정으로 요약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깜깜한 방 안의 천장이라도, 눈을 뜬 채로 가만히 올려다보면 그 음영의 사이를 비집고 빛이 들어오는 법이다. 물론 그것은 ‘빛’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미약해서, 옆에 있는 사람의 표정조차 제대로 알아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지만.

        

       고개를 돌려도 손님방의 다른 침대에 누워있는 실비아의 얼굴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다만, 그 형체가 어둠 너머로 흐릿하게 보일 뿐이었다.

        

       생각해보면 앨리스는 실비아가 자는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 애초에 어린 시절부터 다른 방을 썼으니까.

        

       기차에 몇 시간씩 앉아서 가는 중에도 꾸벅꾸벅 조는 일이 없었고, 수업 시간에도, 개인적으로 쉬는 시간에도 마찬가지였다.

        

       실비아가 무척 규칙적으로 생활하며 밤 11시가 되면 어김없이 잠자리에 든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아.”

        

       이제 생각해보니, 실비아는 언제나 잠을 푹 자고 일어났다. 저녁 11시쯤이면 언제나 잠자리에 들어서 아침이 될 때까지는 계속 잤으니까. 의뢰를 수행하러 가야 하거나 어떤 해야 할 일이 있지 않은 이상 실비아는 언제나 그렇게 규칙적인 생활을 했다.

        

       실비아는 잠이 꽤 많은 사람인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이제야 하게 되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언제나 철두철미하고, 계획적이고, 해야 할 일은 반드시 해내고 마는 실비아였으니까—

        

       —지난번, 그 유적에서 뿐만이 아니라.

        

       “…….”

        

       머리 뒤에 총을 겨누는 것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직접 본 것도 아니고, 소리를 들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 살기만큼은 선명하게 느껴졌다.

        

       반드시 죽이고 말겠다는 살기.

        

       한 번도 살기 같은 것을 보여준 적 없는 실비아— 그러니까, 자기 목숨이 걸렸던 순간에조차 살기라는 것을 전혀 보인 적이 없는 실비아가 정면에 있었기에, 그 이질적인 종류의 살기는 앨리스에게 훨씬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이질적이다. 지금껏 어떤 사람에게서도 느껴본 적 없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어딘가 익숙하기도 했다.

        

       뒤로 돌아서 그자를 보았을 때는, 그 손에 들린 총이 보였다.

        

       언제나 실비아가 들고 다니던. 실비아가 가지고 있는 것보다는 조금 낡아 보이는.

        

       그쯤에서, 앨리스는 생각하는 것을 멈췄다.

        

       왠지,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그 이질적인 인간에 대해서 계속해서 생각하면 안 될 것 같은 거부감이 들었다.

        

       “…….”

        

       생각이 너무 많았나.

        

       벌써 한 달이나 지난 일인데도 그 순간에 대한 기억은 아직도 앨리스의 머릿속 어딘가에 끈적하게 남아서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언젠가 다시 만나겠지.

        

       적어도 그 사람이, 지금 옆에서 자고 있던 사람은 아니기를 바랐다.

        

       실비아가 앨리스를 죽이고 싶어질 정도로 미워하게 된다면, 앨리스는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았으니까.

        

       적어도, 실비아의 안에서 앨리스가 이 영지에 있는 같은 고아원 출신 사람들만큼은 중요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되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앨리스는 그 고아원 출신이 아니었다는 것이, 조금 아쉽게 느껴졌다.

        

       *

        

       어젯밤에는 정말 고민 없이 푹 자고 일어났다.

        

       아침에 해도 다 뜨지 않은 시간에 눈을 번쩍 뜨고, 평소의 아침보다 훨씬 더 개운하고 상쾌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혼자 그 이유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아마, 여기에는 다른 신경 써야 할 존재들이 없기 때문이겠지.

        

       레오는 중요한 인물이다. 주인공이니까. 클레어도 마찬가지고, 그레이스 남작 부부도 스토리상 가벼운 역할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사람들 모두 나를 공격할 이유는 없었다.

        

       앨리스는 더 그렇다. 불과 작년 초만 하더라도 앨리스는 나를 경쟁상대라고 생각했던 모양이지만, 요 1년 사이에 갑자기 어른스럽게 변해서는 내 언니를 자처하고 있었다.

        

       지금은 나보다 더 열심히 잠에 빠져있긴 했지만.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나니 이해가 갔다.

        

       루카스에게 베일 생각도 할 필요 없고, 레오와 클레어가 새벽에 다짜고짜 나가서 의뢰를 수행하러 다니지도 않았고, 길 가다가 다른 귀족들에게 붙들려서 심신을 낭비할 필요도 없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전부 내가 마음 놓고 대해도 될 만큼 정직한 사람들이다.

        

       “허.”

        

       그러면서도 이상하게 허탈한 기분이 들어서 나는 나도 모르게 헛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앨리스 쪽을 보았지만 깊게 잠들었는지 그 소리를 들은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아카데미에 있던 짐 대부분은 이미 황궁으로 옮겨갔겠지만, 그래도 내가 황궁이 아닌 다른 곳에서 잠을 자며 쓸만한 물건들은 일부 가지고 왔다. 커다란 트렁크에 실어서.

        

       침대 밑에서 트렁크를 당겨서 꺼내, 안쪽에 있는 나의 속옷과 옷을 몇 개 주워들었다.

        

       “…….”

        

       그리고 그 주워든 옷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손에 있는 것은 교복이었다.

        

       한없이 군복 같은 교복.

        

       사실 트렁크 안의 다른 옷들도 마찬가지였다. 교복이 아니더라도 내가 입고 다니는 옷은 거의 다 정복 스타일이었다. 평소에 루카스나 제이든이 입고 다니는 것처럼.

        

       하지만, 그래도 드레스 같은 것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클레어를 떠올렸다. 어제는 막 돌아온 참이라서 마지막까지 교복을 입고 있었지만, 오늘도 그럴까?

        

       검을 휘두르는 것을 좋아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 취향까지 전부 남자 같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나는 잠깐 그 교복을 내려다보다가, 다시 트렁크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다른 옷을 꺼내 들었다.

        

       *

        

       여름이긴 했지만, 찬물로 샤워하기는 싫었다.

        

       굉장히 깔끔하기는 했지만, 설비가—내 기준으로는—엄청 오래되어 보이는 샤워실이었다. 하긴, 사실 새로 지어진 샤워실이라고 크게 다를 것 같지는 않았다. 여기는 아직 1900년대 초반이었으니까. 비록 다른 세계고, 내가 살던 세계에서 전기로 해결하던 일들을 마법이나 증기기관으로 대체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막 스마트폰이 있고 그런 세상은 아니었으니까.

        

       스팀펑크 스마트폰이라. 있으면 보고 싶긴 했다. 태엽으로만 돌아가는 디지털시계도 있으니 만들려면 못 만들 것도 없지 않을까?

        

       그런 딴생각을 멍하니 하고 있을 정도로 샤워기에서는 온수가 제대로 나오고 있었다.

        

       김이 서린 샤워실의 가림막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나는 이 샤워기의 온수를 어떻게 증기기관으로 만들어냈을지 생각해보다가 포기했다. 사실 나는 현대 세계의 보일러 작동 원리도 잘 모른다. 뭐 석탄이나 그런 거로 때어서 데운 물이겠지. 예전에는 아파트 중앙 설비에 보일러가 있었다니까.

        

       이쪽 세상에서나 저쪽 세상에서나, 나는 세상 돌아가는 것을 참 몰랐다는 생각이 들어 실없이 웃었다.

        

       이상하게 그 사실이 위안이 되었다.

        

       어차피 모르고 살았다면, 이 세상에서 모르는 게 있어도 별 상관없지 않겠는가?

        

       *

        

       “……실비아?”

        

       내가 샤워를 마치고, 머리를 다 말리고, 옷까지 다 입은 뒤에야 앨리스는 일어났다. 앨리스 기준으로는 늦잠이라고 표현해도 될법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런 앨리스가 나를 보면서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니지, 깜짝 놀랐다는 표현으로는 저 표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나를 보는 앨리스의 표정은 경악에 가까웠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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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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