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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7

        

       오딜리아는 홀린 듯 그를 바라보았다.

       평소라면 허세를 부리지 말라고 소리치곤 당장 방아쇠를 당겼을 것이나, 이상하게도 이번에는 남자의 말이 허세로 느껴지지 않았다. 도리어 본래 자신이 해야 할 말을 축약하고 숨겨서 만들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가만히 자리를 앉기에는 그녀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세월과 함께 단단하게 굳어진 그녀의 에고는 이런 상황에서 쉬이 무릎을 꿇고 상대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것을 맹렬하게 거부하고 있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해서 일단 눈앞의 남자가 하라는 대로 하면서 정보를 얻고 기회를 얻는 것이 제일일 것이나, 그녀의 자존심이. 대마녀로서의 자존심이 그 선택을 거부하고 있었다.

         

       그렇게 어정쩡한 대치 상태에 있기를 잠시.

       오딜리아는 문득 남자의 말투를 어디선가 들어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 들었을까?

       어디서 저런 특이한 말투를 들었을까?

       노인네의 말투나 다름없는 저 말투를 어디서 들었을까?

         

       한참을 고민하던 그녀는 무언가 떠올랐다.

         

       “주술사.”

         

       그것은 바로 주술사라는 단어.

       하지만 남자는 그 말을 듣고도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다.

       ‘마녀를 심판하는 망치’를 사용하고, 악령과 그림자를 부리는 존재가 주술사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주술사지.”

         

       하지만 마녀는 그 당연한 단어에서 무언가를 유추해내는 데 성공했다.

         

       그녀의 삶을 뒤흔들어버리는 말을 했던 주술사.

       사람을 홀리는 목소리로 그녀를 구워삶았던 주술사.

       지나가는 길에 꼴도 보기 싫은 짐 덩어리가 위기에 처한 것을 보고 구해주러 왔다며 말을 한 늙은 목소리의 그 남자.

       아무도 몰라야 하는 ‘한스’에 대한 이야기로 그녀를 흔든 그 주술사.

         

       “나랑 통화했던 주술사-!”

         

       진성은 오딜리아의 외침에 정답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곤 그녀에게 다가가 오른쪽 어깨를 지그시 누르면서 귓가에 속삭였다.

         

       “알았으면 이제 앉거라.”

         

       그리곤 슬쩍 손에 힘을 주어 그녀를 의자에 앉히곤,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

         

       오딜리아는 진성에 의해 반강제로 자리에 앉게 되었음에도 분노를 터뜨리지 않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분한 표정 대신에 혼란이 가득했다. 그것은 지독한 혼란, 마치 자신의 편인 줄 알았던 사람이 자신을 배반한 것을 목격했을 때의 혼란과 흡사했다.

         

       진성은 그 표정을 가만히 살피다가 물었다.

         

       “마녀야. 무엇이 그리 혼란스러우냐?”

       “어째서….”

         

       대마녀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진성을 바라보았다.

         

       “어째서 이런 짓을?”

         

       수많은 의미가 담긴 질문이었다.

         

       어째서 나한테 말레우스 말레피카룸을 사용한 것이냐.

       어째서 순진한 소년인 척 자신을 여기에 끌어들인 것이냐.

       어째서 자신을 이렇게 핍박하느냐.

       어째서.

       어째서.

         

       그 수많은 물음이 거기에 담겨있었다.

         

       하지만 그 물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것이리라.

         

       “너 마녀야. 너는 궁금할 것이니라. 당신이 말한 것이 모두 이루어졌으며, 능력이 되는 한 원하는 것을 들어준다고 하였는데 어찌 이런 일을 벌이는지. 그것이 궁금할 것이니라. 어찌하여 순순히 대가를 준다고 하는데 이렇게 협박이나 다름없는. 그래, 자네를 억압하고 무서운 분위기를 만드는지 궁금할 것이야.”

         

       어째서 대가를 지불하겠다고 말한 사람에게 이런 짓을 하는지에 대한 의문.

         

       약간 멍한 표정의 오딜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긍정의 표시였다.

         

       “강도도 스스로 재물을 내놓는 이는 해하지 아니하며, 짐승도 먹을 것을 내놓는 이의 목숨을 빼앗지는 않는 법이니. 한낱 미물과 금수 같은 인간도 그럴진대 어찌 사람과 가까이하며 살아가는 주술사가 돈을 지불하는 이를 해할 수 있으랴? 돈의 망자라 불리는 용병도 제 의뢰인은 해치지 아니하고, 황금 하나로 제 목숨도 팔아치울 상인도 제 돈줄을 스스로 끊지는 않는 법이라! 다만.”

         

       진성은 스산한 미소를 지었다.

         

       “지불을 할 수가 없으면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으나, 그 금액을 깎으려 드는 것은 곧 정당한 대가가 지불되지 않음을 말하는 것인즉.”

         

       그는 물었다.

       네가 진정 대가를 제대로 지불할 생각이 있었냐고.

       주술사가 엘라의 친구의 오빠라는 것을 들었고, 미성년자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미리 생각해놓았던 대가를 정말 곧이곧대로 지불할 생각이 있었느냐고.

         

       “자네는 말로는 백지수표를 내밀었지만, 그것은 주술사가 고명한 사람이라고 여겼을 때. 자, 마녀야. 나에 대해 말해 보아라.”

       “바, 박진성….”

       “출신 국가는 어디인가?”

       “통일 대한민국….”

         

       오딜리아는 분위기에 짓눌린 것인지 진성의 말에 순순히 답해주었다.

         

       “그래. 통일 대한민국 출신의 미성년자이니라.”

         

       그는 쉴 새 없이 오딜리아를 향해 말했다.

         

       “위버멘쉬(Übermensch), 위버멘쉬(Übermensch). 지금은 라이히라는 성을 쓰고 있는 마녀야. 옛날에는 재단사 집안의 딸에 지나지 않았던 마녀야. 슈나이더(Schneider)라는 보잘것없는 성씨가 바뀌고 자네는 무엇을 느꼈나? 허름한 옷가지에 둘러싸여 하루 먹을 끼니조차 걱정하던 삶에서 벗어나 화려하기 짝이 없는 성씨를 하사받았을 때 무슨 생각이 들었느냐?”

         

       진성은 오딜리아에게 슬쩍 얼굴을 가져다 대며 말했다.

         

       “위대한 총통 아돌프 히틀러, 하하하. 그래. 그 위대했던 삼류 마법사 놈이 이렇게 말했지. 오, 여기 아리아 인종의 순수성을 보라. 이 위대한 아리아인의 가능성을 보라. 게르만족이야말로 세계를 지배할 종족이며, 여기 그 증거가 있다. 여기 찬란한 게르만의 가능성이 꽃을 피웠다. 타락하고 쓸모없는 이들의 틈바구니에서 이렇게 꽃을 피웠으니 이야말로 위대한 존재라. 하여 위대한 게르만족의 이름으로 자네의 스승에게 새로운 성씨를 하사하고, 대를 이어 그 이름을 잇도록 할 것인즉. 그 이름은.”

         

       그리고 숨결이 닿을 정도로 코앞까지 얼굴을 다가가곤, 조용히 속삭였다.

         

       “라이히라 하였다.”

         

       덜컹.

         

       그 말에 오딜리아는 벌레가 기어 다니는 듯한 느낌에 자신도 모르고 몸을 뒤로 뺐다. 그러자 의자 다리가 바닥에 끌리며 소리를 내었고, 그 소리에 그녀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진성을 노려보았다.

         

       “…그래. 그래요. 그랬었죠….”

         

       정신을 차린 오딜리아는 그의 말에 긍정했다.

       하지만 온갖 감정을 담아 악다구니를 쓰던 아까와는 다르게 그녀의 말투는 얌전해져 있었으며, 반말과 반 존대를 오가던 말은 어느새 존댓말로 바뀌어 있었다. 이는 그녀가 진성의 분위기에 짓눌렸음을 보여주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진성은 그 모습에 속으로 슬쩍 웃음을 지었다.

         

       ‘강한 자에게 약하고, 약한 자에게 한없이 강한 면모라. 보아하니 회귀 전과는 달리 성질머리는 아직 끝없이 더러운 수준은 아니나, 저 면모는 변하질 않았구나.’

         

       어쩌면 저런 모습이 있기에 그녀가 살아남았을지도 모른다.

       압도적인 강자이자 광기 그 자체였던 나치 독일에 고개를 숙였기 때문에 살아남았으며, 나치에 부역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던 그녀의 스승에게 고개를 숙였기 때문에 지금 대마녀의 경지까지 이르게 된 것이었으리라.

         

       ‘굴복하기 쉽다는 것은 말로 부리기 좋다는 것이며, 쉬이 감화된다는 것은 귀가 얇다는 것이니. 이러니 회귀 전에 종교인에게 된통 걸려서 총기도 잃어버리고 끔찍한 최후를 맞았으리라.’

         

       그녀가 인간말종은 아니었다.

       그녀는 첫사랑이던 한스를 잊지 못해 유대인에게는 따뜻하기 그지없었고, 홀로코스트(Holocaust)에는 절대 연관되려 하지 않았으며, 자신이 손을 쓸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유대인을 탈출시키며 은혜를 입혔다. 그 때문에 전범 재판에서도 멀쩡하게 풀려날 수 있었으며, 라이히라는 성을 그대로 사용해도 된다고 모두에게 인정을 받았고, 자신이 구해준 수많은 유대인의 도움을 받아 세계적인 기업의 오너가 될 수 있었다.

       게다가 아랫사람이라 여기는 이를 함부로 대하는 경향이 있기는 했지만, 거기에는 최소한의 선이 있었고, 사람의 강하고 약함을 잘 파악해서 자신보다 강하다고 생각하는 이를 함부로 대하는 일이 없었다.

         

       하지만 말년에 종교인 하나에 걸려서 돈이란 돈은 다 갖다 바치고, 돈을 더 짜내기 위해 지키던 최소한의 선조차 넘었고, 결국에는 노망이라도 난 것인지 용병에게 돈을 후려치려고 해서 끔찍한 죽음을 맞이했다.

         

       “마녀야. 나는 너를 안다. 너의 과거를 안다. 너의 미래를 안다. 그런데 어찌 나에게 거짓을 말하려 하느냐? 어찌하여 나에게 의도를 숨기려고 하느냐?”

       “그.”

         

       오딜리아는 무언가 말을 꺼내려다가 그대로 삼켜버렸다.

       가까운 곳에서 자신을 노려보는 진성의 말에 압도되었기 때문이었다.

         

       “마녀야. 묻는다. 너는 내가 통일 대한민국 출신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느냐?”

       “…”

       “그래. 이런 생각이 들었겠지. 그 조그마한 나라 주제에 그런 주술사가 있다고? 아, 일본에 합병이 되었던 나라이니 거기서 주술을 배운 이가 있을 수 있겠구나. 그렇다면 필시 나이가 많은 사람이겠다.”

         

       오딜리아는 그 말에 슬쩍 눈이 커졌다.

         

       진성은 그녀가 짓는 표정, 눈동자의 움직임, 동공의 크기 변화, 코의 찡긋거림, 입가의 움직임을 유심히 살피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이럴 수가. 미성년자라는 말까지 들었다. 그렇다면 마녀야. 네 머릿속에는 무엇이 떠올랐을까. 대관절 통일 대한민국의 미성년자 주술사라는 말에 무엇을 떠올렸을까? 말하는 것을 보니 늙은이의 목소리이고, 하는 말은 분명히 주술사인데. 그리고 아무도 모르는 것을 알고 있으니 분명히 사기꾼은 아닌데. 그렇다면 대체 무엇일까.”

         

       진성은 그녀의 표정을 유심히 살피며 천천히 말했다.

         

       “신분을 속인 주술사인가?”

       “…”

       “주술이 만들어낸 불가사의인가?”

       “…”

       “예언자이기에 가능한 일인가?”

       “…”

         

       질문은 셋.

       같은 반응은 둘.

       특별한 반응은 하나.

         

       “그래. 마녀야, 너는 이 모든 것이 미래를 알기에 가능한 일이라 생각했으리라.”

         

       진성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이어갔다.

         

       아무렇지도 않게.

         

       그것은 흡사…답지를 보고 문제를 푸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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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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