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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7

       

       

       

       

       현장에 부하들을 보내 토리온 패거리가 궤멸했음을 확인한 길드 마스터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기쁨, 어이 없음, 허망함, 그리고 약간의 두려움이 섞인 듯한 표정이었다. 

       

       “허어….”

       

       길드 마스터뿐만 아니라 정보 길드에 있던 모두가 우리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봐바, 아저씨! 우리 거짓말 한 거 아냐!”

       

       아르가 허리에 손을 올리며 배를 쭉 내밀었다. 

       

       드래곤일 때 모습으로 했으면 훨씬 귀여웠을 것 같은 포즈였다. 

       

       “확실히 그렇군요….”

       

       길드 마스터가 영혼이 빠져나간 듯 중얼거렸다. 

       

       사실 그럴 만도 했다. 

       놈들과 정확히 얼마나 세력 전쟁을 벌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로 인해 지금까지 소모한 인적, 물적 자원은 결코 무시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을 것이다. 

       

       가장 골칫거리였고, 점점 숨을 옥죄여 오듯 세력을 확장하던 놈들을 하루아침에 이렇게 정리해 버렸으니 어안이 벙벙하지 않으면 그게 오히려 이상하다.

       

       길드 마스터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 고개를 흔들었다. 

       

       “…좋습니다. 원하시는 정보가 있으시다면 얼마든지 말씀하십시오. 길드의 존립이 불분명해질 정도로 위험한 일만 아니라면 저희의 능력이 닿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 양질의 정보를 제공하겠습니다.”

       

       나이스!

       

       이러면 정보 길드에 쏟아 부으려던 돈은 돈대로 아끼고, 단순히 돈만으로는 사기 힘든 신뢰 관계까지 얻었다. 

       

       “뭣들 하나? 어서 새 방석, 쿠션 대령하고 차와 커피를 종류별로 내 와!”

       “예, 옙!”

       “그리고 스티브! 너 아까 케이크 같은 거 들고 들어가던 거 같은데, 그거 지금 가져와.”

       “엇, 그건 제가 줄 서서 사 온 거… 죄송합니다. 줄은 또 서면 되죠! 바로 가져오겠습니다!”

       

       스티브라고 불린 사내는 마스터의 눈빛에 움찔하더니 곧바로 케이크를 가져왔다. 

       

       정말 먹음직스러운 딸기 케이크가 테이블에 올려졌고, 그 주변으로 각종 비싸 보이는 차와 향긋한 커피가 주전자에 담겨 나왔다. 

       

       “여기 초코 브라우니도 가져왔습니다.”

       “너무 단 걸 싫어하실까 소금빵도 가져왔습니다.”

       

       우리는 푹신푹신한 방석 위에 앉아 맛있는 간식이 차려지는 테이블을 바라보았다. 

       

       “우아아, 아빠! 이거 향 너무 좋아!”

       

       아르는 헤이즐넛 향이 나는 커피가 담긴 주전자 쪽으로 얼굴을 기울인 채 킁킁 냄새를 맡았다. 

       

       “커피? 그러고 보니 우리 아르, 커피 마셔 본 적 한 번도 없구나.”

       “우응! 커피 마셔보고 싶어!”

       

       아르는 새로운 음료를 마셔 볼 생각에 신이 난 모양이었다. 

       

       “자, 뜨거우니까 천천히 호호 불어서 마셔야 해.”

       

       나는 커피를 컵에 따라서 아르에게 주며 신신당부했다. 

       드래곤일 때에는 몰라도, 인간일 때에는 혀 데이는 걸 더 조심해야 한다.

       

       물론 인간으로 변해도 초재생 등의 특성이 없어지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드래곤일 때에 비해 통증에 예민해지는 것까지 어떻게 할 수는 없을 테니까. 

       

       열 살에서 열두 살 남짓 되는 어린 여자아이의 몸은 항상 상상 이상으로 약하다고 생각하고 조심해야 했다. 

       

       “후우, 후우!”

       

       아르는 착하게도 열심히 커피를 불어서 식힌 다음 조심스럽게 호록 마셨다. 

       

       “…!”

       

       아르의 눈이 번쩍 떠졌다. 

       

       “마시써…!”

       

       아직 혀에 커피의 여운이 남은 듯한 발음으로 아르가 감탄했다. 

       

       “아빠, 이거 너무 맛있어! 막 달달하면서두, 모라구 해야 하지…. 막 좋은 향이 입에서 퍼지구…. 몬가 깊은 맛이 나!”

       “우리 아르, 벌써 커피 맛을 알아 버리다니 대단한데?”

       

       과연 나도 한 모금 마셔 보니, 내가 지금까지 먹어 본 싸구려 헤이즐넛 ‘향’만 첨가된 커피와는 풍미 자체가 달랐다. 

       

       길드 마스터가 고급으로 내 오라고 하더니, 진짜 고급 중의 고급으로 가져온 모양이었다. 

       

       “와아, 진짜 맛이 깊네요.”

       

       실비아도 감탄했다. 

       

       “허허, 저 남부의 엔체스터 지방에서 나는 원두는 최고급으로 취급받지요. 입에 맞으시다니 다행이군요.”

       

       길드 마스터는 우리가 커피를 마음에 들어하자 한시름 놓았다는 듯 입가에 웃음을 되찾았다. 

       

       호록, 호록.

       

       아르는 처음 마셔 보는 커피가 정말 마음에 들었는지 연신 컵을 기울였다. 

       

       ‘근데 저렇게 어릴 때부터 커피 막 마셔도 되나?’

       

       순간 어릴 때 나에게 커피를 못 마시게 했던 부모님이 생각났다.

       

       ‘뭐, 그래도 명색이 드래곤인데 설마 커피 가지고 잠이 안 오겠어?’

       

       하지만 나는 곧 걱정을 지우고 케이크로 눈을 돌리기로 했다. 

       

       “어디 보자…. 케이크도 맛있어 보이는데.”

       

       출출한 상태라 더 그런지 모르겠지만, 딸기 케이크의 자태는 가히 아름다워 보이기까지 했다.

       

       케이크 위에 빈틈 없이 올려진 신선하고 달콤해 보이는 딸기.

       그 딸기를 마치 쿠션처럼 받쳐 주는 듯한 폭신한 생크림.

       아래의 빵 층은 페이스트리처럼 얇은 겹층으로 되어 있어 바삭하면서도 부드러워 보였다.

       

       그야말로 유명 제과점 ‘성심껏’에서 만든 프리미엄 딸기 케이크를 방불케 하는 퀄리티였다. 

       

       ‘줄을 서서 사 왔다던데, 과연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케이크구만.’

       

       오래 기다렸다는 스티브에게는 좀 미안했지만, 이렇게 된 이상 감사한 마음으로 먹기로 했다. 

       

       실비아는 정확히 케이크를 6등분해 접시에 담아 주었고,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케이크를 베어 물었다. 

       

       “오오…!”

       “맛있는데요?”

       “맛있어!”

       

       생크림 아래에 페이스트리 겹층, 그리고 그 밑에 다시 크림이 얇게 들어가고, 아래쪽에는 또 다른 폭신한 빵층이 있어 한 입에 풍부한 식감을 즐길 수 있었다. 

       

       ‘심지어 안에 들어 있는 크림은 그냥 생크림이 아니라 딸기 크림이야.’

       

       감초처럼 가운데 층에 들어가 있는 분홍색 크림은 이 케이크가 딸기 케이크임을 확실하게 어필하고 있었다. 

       

       “커피랑 먹으니까 더 맛있어, 아빠!”

       “우리 아르, 역시 먹을 줄 아는구나. 장하다, 장해.”

       “헤헤헤. 맛있어, 행복해!”

       

       아르는 입에 생크림과 커피를 묻힌 채 활짝 웃었다. 

       

       ‘아아, 귀엽다….’

       

       아르의 웃음에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길드 마스터도 어느새 아르가 복스럽게 먹고 행복하게 웃는 모습을 보고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나는 실비아가 아르의 입가에 묻은 크림과 커피를 티슈로 닦아 주는 동안 천천히 본론을 꺼냈다. 

       

       “마스터님. 이제 슬슬 본론을 말씀드릴까 합니다만….”

       “크, 크흠. 그렇죠. 말씀하십시오.”

       

       나는 먼저 대륙 동부의 상황에 대해서 마스터에게 물었다. 

       

       “동부 상황이라…. 확실히 요즘 동부 쪽이 좀 시끄럽긴 합니다. 하무트교라는 놈들 때문에요.”

       

       하무트교라는 말에 나는 더욱 집중했다. 

       

       “놈들이 설마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 겁니까?”

       

       남부의 정보 길드에서 이렇게 즉답이 나올 정도라면 최근에 동부에선 꽤 이슈로 떠오른 적이 있다는 소리다. 

       

       ‘날 잡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 있긴 할 거야.’

       

       아직 스토리 상 레키온이 활약할 단계는 아니라 그걸 기대할 수도 없는데….

       

       “다행히 레키온이라는 제국 소속 정식 기사가 놈들의 악행의 덜미를 잡아 소탕 중입니다.”

       

       응?

       

       “이미 숨겨져 있던 지부의 상당수가 기사 레키온과 데보라를 중심으로 한 토벌대에 토벌되었고, 지금도 뿌리를 뽑기 위해 수색 중이랍니다.”

       

       아니, 벌써?

       

       “여기까지는 이미 대외적으로 다 알려진 사실이고….”

       

       그때 마스터가 목소리를 낮추었다.

       

       “저희가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아직 결정적인 증거는 잡지 못했으나 하무트교의 배후에 ‘악마’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나는 그 말에 입을 떡 벌렸다. 

       

       ‘벌써 거기까지 파헤쳐졌다고?’

       

       도대체 어디서부터 스노우볼이 굴러간 거지?

       

       ‘가능성이 있다면…. 하무트교가 날 잡으려고 무리를 하다가 레키온에게 덜미를 잡힌 건가.’

       

       레키온의 소꿉친구 중에는 알렉스라는 황실 정보부 소속의 암살자가 있다. 

       

       원작에서는 하무트교가 나를 죽이는 데에 성공하고 잠적해 지내 알렉스조차 놈들의 뒤를 캐는 데에 오래 걸렸지만….

       

       ‘이번에는 내가 살아서 무사히 도망쳤고, 하무트교는 날 찾으려다가 알렉스에게 꼬리를 잡힌 거라면.’

       

       그렇다면 지금 상황이 말이 된다. 

       

       불의를 참지 못하는 레키온은 곧바로 알렉스에게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하무트교 토벌에 나선 것이다. 

       

       ‘만약 이대로 하무트교가 정말 악마의 세력이라는 것까지 밝혀지면….’

       

       생각보다 일이 더 수월하게 풀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체크하다가, 적당한 타이밍에 레키온과 접촉해서 악마에 대한 정보를 건넬 수 있으면 베스트인데.’

       

       일단 그 계획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우리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리스크를 제거해야 했다. 

       

       그리고 그 리스크는 다름 아닌 ‘레드 드래곤’의 폭주였다. 

       

       “그리고 그 이외의 건으로는 동부에서 마물들이….”

       

       하무트교 이야기 이외에도 잡다한 근황을 들은 나는,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그렇군요. 그럼 이건 조금 다른 이야기인데….”

       “뭐든 물어보십시오.”

       

       나는 조금 직설적으로 묻기로 했다. 

       

       “저희는 레드 드래곤의 레어를 찾고 있습니다.”

       “레, 레드 드래곤 말입니까?”

       

       그 말에 길드 마스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럴 만도 하지.’

       

       아마 정보 길드가 아닌 다른 일반 사람들은 남부에 드래곤이 잠들어 있다는 것조차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 

       

       ‘사실 이 정보 길드에서 묻는 것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물어보는 거지만.’

       

       정보 길드가 레드 드래곤 레어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으리라는 기대는 하지도 않는다. 

       

       우리가 필요한 건 단서였다. 

       

       단서가 없다면, 사람을 풀어 찾도록 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거금을 들일 생각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루이틀 정도로는 어림도 없을 거야.’

       

       그래서 나는 최대한 미리 정보 길드에 조사를 의뢰할 생각이었다. 

       

       ‘…근데 이렇게까지 놀랄 일인가.’

       

       길드 마스터의 표정은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복잡해 보였다. 

       

       ‘잠깐. 설마.’

       

       길드 마스터의 표정을 살피던 나는 문득 어떤 생각을 떠올렸다. 

       

       “길드 마스터님.”

       “네, 네!”

       

       그리고 물었다. 

       

       “…혹시 저희 말고도 먼저 이 내용으로 의뢰를 한 사람이 있었습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꿀꿀도야지님이 AI 팬아트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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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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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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