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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7

       북부에서 돌아온 지 일주일.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보란 듯이 재앙의 파도를 성공적으로 막아낸 프란체는 공작의 침실 앞에 섰다.

         

       똑똑. 가볍게 문을 노크하고.

         

       “공작님, 들어가겠습니다.”

         

       덜컥. 대답도 듣지 않고 들어섰다. 공작은 침대에 누워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있었다.

         

       “…….”

         

       공작은 오러를 다룰 줄 아는 소드 마스터. 회복력이 일반인들과 차원이 달라 지금쯤이면 정상으로 돌아와야 할 터인데…….

         

       ‘진에게 호되게 당한 모양이네.’

         

       딱히 감상은 들지 않는다. 친아버지라 해도 형식상일 뿐이니까.

         

       “…프란체냐.”

         

       쇠를 긁는 듯한 걸걸한 목소리가 그의 몸 상태가 최악이라는 걸 말해준다.

         

       “앉겠습니다.”

         

       적당히 의자를 끌고 와 침대 옆에 자리를 잡았다.

         

       “무슨… 일로 찾아온… 것이냐…….”

         

       고개도 돌리지 못해 눈동자만 굴려 프란체를 바라보는 공작. 눈빛도 탁기에 물들어있다.

         

       “이번 일에 대해서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 그렇습니다.”

         

       공작은 “부탁…?”하곤 눈을 깜빡였다.

         

       “제가 데카르트를 이어받을 겁니다.”

         

       쿵! 잔잔한 호수에 커다란 바위를 내던진 것처럼 공작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무슨… 소리를…!”

       “제 얘기는 아직 안 끝났어요.”

         

       프란체는 공작의 말을 가볍게 끊어주곤 고개를 뻣뻣이 세웠다.

         

       “공작님과 소 공작님께서 재앙의 파도를 막지 못한 건 알고 계시죠?”

         

       공작은 입을 열지 않고 눈만 끔뻑였다. 그에 대해선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최후방까지 후퇴한 상황에서, 제가 지휘권을 이어받아 재앙의 파도를 막아냈습니다. 심지어 토벌대로는 제가 직접 나섰죠.”

         

       프란체는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제가 아니었다면 데카르트의 위신이 얼마나 떨어졌을까요? 저는 가문을 구한 것과 다름없어요. 그렇지 않나요?”

         

       프란체의 요구는 정당했다.

         

       재앙의 파도를 막는 것은 공작가와 황실의 의무이자 책임. 만일 프란체가 아니었다면 데카르트의 명예와 위신이 깎이는 것도 모자라 막대한 손해를 봤을 것이다.

         

       “그건…….”

         

       공작은 그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이미 데카르트를 받는 건 에덴으로 결정된 상태. 인제 와서 후계자를 바꾸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이런 공작의 생각을 프란체는 단번에 눈치채곤 내려앉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제 말이 단순한 부탁 같나요?”

         

       서늘한 프란체의 눈빛이 공작을 쏘아봤다.

         

       “현재 상황을 모르시니 말씀드릴게요. 소 공작님께서는 오른팔을 잃으셨어요. 성녀까지 초빙해 치료를 해봤지만, 혹한의 망령이 저주라도 내린 것인지 회복이 되지 않더군요?”

         

       소드 마스터가 검을 잡는 팔이 잘렸다. 성녀조차 치료 불가능한 상태. 이는 공작에게 있어 청천벽력같은 소리였다.

         

       “그런 상태인데 위신과 명예, 실력을 중요시하는 데카르트의 후계를 잇는 건 불가능하겠죠?”

         

       피식 웃으며 여유롭게 공작과 시선을 마주하는 프란체.

         

       “그렇다고 라인 공자님에게 가문을 넘기자니 아무런 실적도 없고 믿음직스럽지도 못하고…….”

         

       태연하게 미소를 유지한 채, 검지로 볼을 톡톡 건드리기까지 했다.

         

       “후계를 이을 건 저밖에 없겠네요?”

         

       사실상 답은 정해져 있었다. 공작은 그저 도장만 찍으면 되는 일.

         

       “실력주의이자 위신을 그 어떤 것보다 중요시하는 공작님께서 무엇이 맞는 선택인지는 잘 선택해보시길.”

         

       프란체는 싱긋 웃고는 드르륵, 자리에서 일어나 걸음을 옮겼다.

         

       “아, 그리고 현재 공작가의 업무는 제가 다 이행하고 있으니 그리 아시길. 라인 공자님께 맡길 순 없잖아요?”

         

       이것으로 할 말은 끝. 프란체는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은 웃음을 참으며 침실을 나왔다.

         

       ‘정말, 긴 시간이었어.’

         

       그간 그들에게 복수하는 것이 소망이었고, 그것은 갈망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그걸 이루었다.

         

       “후훗.”

         

       프란체는 자신도 모르게 음흉한 웃음소리를 내었다.

         

       공작이 곧 일어날 테지만 상관없다. 후계를 이어야 하는 에덴은 팔을 잃고 혼수상태. 라인은 뭐, 말할 것도 없다. 무능 그 자체이니.

         

       ‘저주에 걸려 있으니 나한테 절대 대들지도 못하고.’

         

       재앙의 파도가 끝난 시점부터 이미 데카르트는 거진 프란체에게 넘어온 상태라고 볼 수 있었다.

         

       ‘진짜 얼마 안 남았어.’

         

       이제부터는 권력이 물살이 밀려 들어오듯이 생겨날 것이다.

         

       그때는 바렌베르크를 지방 세력으로 해방할 것이고, 진의 지위를 귀빈으로 바꿀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데카르트의 가주인 자신과 이어지는 것도 가능할 터.

         

       프란체의 계획은 완벽했다.

         

       ‘그리고 하나 더 있지.’

         

       카자르의 마법서에서 발견한 영혼 결속의 마법, <간절한 영원의 노래>.

         

       ‘룬어 이해랑 마법식 계산에 실험까지 해서 시간이 오래 걸릴 거 같지만.’

         

       그래도 발견한 게 어디인가? 어차피 앞으로는 남는 게 시간인지라 진과 쭉 같이 있을 수 있다.

         

       “후후.”

         

       다시 한 번 나오는 음산한 미소.

         

       다음 생도, 다다음 생도.

         

       우리는 영원히 함께할 것이다.

         

         

       * * *

         

         

       나는 프란체의 방에서 얌전히 창밖이나 바라보며 기다리고 있다.

         

       프란체가 데카르트를 이어받는 건 기정사실에 가깝다.

         

       내 소멸의 오러로 인해 성녀의 마법에도 에덴의 팔의 치료는커녕,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지도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라인은 뭐, 견제할 필요도 없지.’

         

       프란체가 흑마법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해 감정이 격해졌던 때 호되게 당한 이후로 쥐죽은 듯이 살고 있으니…….

         

       ‘끝났네.’

         

       이대로 공작위를 이어받고, 의회에서 계승을 선포하면 데카르트는 완벽하게 프란체에게 넘어간다.

         

       ‘들어보니 수확제 이전에 마탑도 완성된다고 했지.’

         

       마탑 제작자 이름에 아르몸 도게자가 들어가는 것이 뭔가 조금 무게가 떨어지지만, 별수 있나. 일이 그렇게 됐는데.

         

       ‘정말 많은 게 달라지긴 했구나.’

         

       문득 프란체와 처음 만났을 때가 기억났다.

         

       에덴과 라인에게 꼼짝 못 하고 손찌검을 당했으며,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든 비참한 삶을 이어가야 했다.

         

       사용인들은 음식에 장난을 치거나 하는 등으로 프란체를 괴롭혔고, 가문의 기사들은 무시와 모욕을 일삼았다.

         

       이를 제지해야 하는 기사단장과 부단장은 묵인한 것도 모자라 동조까지 했으며.

         

       유일하게 탈출구라 믿었던 카서스 페르시아는 많은 예물을 받았음에도 일방적인 파혼 통보와 함께 비수와도 같은 말을 프란체의 마음속 깊은 곳에 찔러 넣었다.

         

       프란체의 삶은 그야 말로 모두에게 버림받고, 배신당한 인생이었다.

         

       ‘그때 생각하니 갑자기 눈물 나오려고 하네.’

         

       당시엔 호감을 쌓아 노예를 탈출하고, 파멸이 기다리는 엔딩에서 생존하는 것이 목표였지만…….

         

       ‘내 마음이 움직였지.’

         

       악역으로 태어난 프란체의 기구한 삶을 알게 되면서 여러 감정을 느꼈다. 그래서 원하는 건 무엇이든지 이뤄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1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나는 그 약속을 지켜냈다.

         

       ‘이젠 헤어지는 일만 남았어.’

         

       이것은 내가 유일하게 프란체와 하지 못한 약속이다.

         

       “…….”

         

       쓰디쓴 감정이 휘몰아친다.

         

       창밖을 바라봤다. 찬바람에 꿈틀거리며 흩날리는 눈송이들은 내 마음을 얼어붙게 했고, 겨울의 쓸쓸한 풍경과도 같이 내 마음에는 정적이 흘렀다.

         

       그리움과 이별의 감정은 겨울의 서리와 어우러져 하얗고 차가운 감정을 만들어냈다.

         

       저택에 심어진 나무 위에 남아있는 얼음 결정은 추억을 담고 있었고, 그것이 떨어질 때마다 이별의 시간을 알리는 것 같았다.

         

       “프란체…….”

         

       나도 모르게 문득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내가 듣기에도 나의 목소리에는 애틋함이 담겨 있었다.

         

       잠시 추억에 잠겨 감상하고 있자니, 문이 열리며 프란체가 들어왔다.

         

       “진?”

       “예.”

       “혼자 뭐 하고 있니?”

       “그냥 옛날 생각 좀 하고 있었습니다.”

         

       얼굴이 환하게 빛나는 프란체. 입꼬리가 씰룩이는 걸 보니 대화는 잘 끝내고 온 모양이다.

         

       “아무튼, 대화는 잘 끝내고 왔단다. 공작님께서 아무런 말도 못 하시더구나.”

         

       프란체는 픽 웃고는 걸음을 옮겨 내 앞에 앉았다.

         

       “이제 내가 어떡하면 되니? 데카르트의 대부분은 이미 내게 넘어온 거 같은데. 가장 중요한 공작위가 남았잖아?”

         

       그거라면 당연히 생각해둔 게 있다. 데카르트의 진정한 주인이 되려면 공작위는 필수니까.

         

       “공작에게 이번 사건의 책임을 물어 퇴위시킬 겁니다. 자신의 부족함으로 인해 북부 방어선이 무너질 뻔했으니까요.”

         

       프란체는 천천히 고개를 주억이며 내 말에 경청했다.

         

       “여기서 이 사건을 수습한 공녀님이 계시고, 소 공작은 후계를 이을 수 없게 되었잖습니까? 많은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에메랄드빛 눈동자를 끔뻑이며 입술을 오므린 프란체.

         

       “혹시 재앙의 파도 이전부터 이걸 계획한 거니?”

         

       나는 “맞습니다.”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치밀하구나…….”

         

       뭘 그렇게 칭찬까지.

         

       “아무튼. 이거로 데카르트 공작가는 공녀님의 것입니다.”

         

       내가 씨익 웃자 프란체도 방긋 미소를 보였다.

         

       “그럼 이제 남은 건 데카르트의 기사들 해임과 사용인들을 해고하는 것뿐이네.”

         

       그렇지. 고이다 못해 썩은 데카르트를 물갈이해야지. 이젠 내가 말해주지 않아도 아는구나.

         

       “좋아, 그럼 준비해야지.”

         

       후, 프란체는 크게 한숨을 내쉬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할 게 많구나. 밀린 공작령의 일도 처리해야 하고, 새로운 사용인들과 기사들도 뽑아야 하니.”

         

       새로운 사용인이라, 적합한 사람들이 있지 않나.

         

       “황도 별채에 있는 사용인들을 데려오는 건 어떻습니까? 그들은 공녀님에게 호의적이었으니까요.”

         

       프란체가 눈을 크게 뜨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좋구나. 그들을 공작저로 데려오고 집사장에게 일을 맡겨야겠어.”

         

       왠지 내가 별채에 있는 집사장을 일 지옥에 빠트린 거 같은데. 갑자기 미안한 마음이 몰려들었다.

         

       ‘그래도 공작저의 집사장은 명예로운 자리니까.’

         

       프란체는 눈썹을 좁힌 채 턱을 어루만지며 말을 이었다.

         

       “기사들 선임은… 케일을 단장으로 선임하고 라데아를 부단장으로 선임해야겠구나.”

         

       좋은 선택이긴 하다만…….

         

       “케일과 라데아는 기사 작위가 없습니다. 선임하기엔 무리가 있지 않을까요?”

       “그건 걱정 말렴. 내가 기사 작위 내리는 거야 간단하니.”

         

       아, 지금 프란체는 제국에서 제일 가는 권력자였지…….

         

       ‘내가 만들어두고 까먹고 있었네.’

         

       여기서 마탑주까지 추가될 건데, 내가 생각해도 무섭다.

         

       “아무튼, 나는 급한 일만 마무리하고 올 테니 너는 수확제 준비를 해주지 않으련?”

         

       나는 “수확제요?”하고 되물었다.

         

       “그래. 곧 수확제잖아. 프란체 코퍼레이션의 모두를 모아야지.”

         

       벌써 나의 고별식이 다가왔구나.

         

       “알겠습니다. 수확제 준비는 제가 하고 있을 테니 안심하시길.”

         

       프란체는 싱긋 웃으며 “다녀올게.”하곤 방을 나섰다.

         

       “흠…….”

         

       이번에는 저번에 부르지 못한 안드레아와 엘반 자작도 부르고, 셀다스도 말은 해봐야지.

         

       ‘그럼 사람이 좀 많아지는군.’

         

       카자르, 케일, 셀다스, 라데아, 라이아, 엘반 자작, 헬레나, 안드레아.

         

       모두 프란체 코퍼레이션의 성공에 일조했던 이들이다.

         

       ‘작업장 사람들은 엘반 자작에게 말해서 성과금을 내리면 되겠지.’

         

       좋아, 계획은 완벽하다. 나는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나와 프란체의 마지막 추억을 위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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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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