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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7

       서늘한 기운.

        

       분명 동여매었을 이불마저 뚫고 냉기가 들어오는 건가. 아직 그렇게 추워질 시기는 아닌데. 처음으로 맞이해보는 가을이라지만, 이런 것도 달라질 수가 있는 거였나.

        

       비몽사몽 간에 이불이나마 조금 더 탄탄히 휘감고자 손을 저어보니,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뭐지.

        

       무거운 몸을 버겁게 돌려, 찌푸린 눈을 침대 밑에 향했다. 암막 커튼의 틈새로 새어 들어오는 햇빛. 그 따스함을 여유로이 쬐는 이불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아. 그러고 보면, 간밤에 무언가를 힘껏 걷어찬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르는 것 같기도 하고.

        

       “으에에…….”

        

       언어로 승화되지 못한 소리를 입에서 흘리며, 침대를 더듬어 핸드폰을 쥐었다. 오후 2시. 잠든 시간에 비하면 늦은 기상이다. 들이켠 알코올에 비하면……그건 모르겠지만.

        

       화면에 떠있는 톡 알림 숫자가 낯설었다. 이 핸드폰으로 처음 보는 광경. 지난 9개월 동안 왔던 톡 전체보다, 간밤에 쌓인 톡이 더 많은 것 같은데.

        

       무겁게 느껴지는 손을 힘겨이 움직여 확인해보니, 대부분의 메시지는 ‘우리가 누구? 초대 우승자’라는 이름의 단체 톡방에 들어차 있었다. 대체 누가 정한 이름인지. 아따먹따먹과 5인의 도적 같은 것보다야 낫지만…….

        

       읽긴 읽어야겠지.

        

       옆으로 돌아누운 채, 이불을 끌어올려 조금 뭉친 후에 가슴 밑에 받쳤다. 침대에서 뒹굴거리다가 몸이 결린다는, 겪어보기 전엔 불가해한 현상을 피하기 위한 기본 자세다.

        

       전날 밤에 만들어진 톡방이었다.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 것 같은데.

        

       약간은 아쉬웠던 인터뷰가 마무리되고, 디스코스 채팅방에 돌아왔었지. 궁탁인가, 그 아저씨가 아주 귀가 아플 정도로 박장대소를 하고 있어서 인상깊었다.

        

       그리고, 뒤풀이……온라인 마피아 게임이라도 하자는 얘기를 하다가, 다음으로 미뤘던가. 그렇게 다들 방종하고, 합방 날짜를 잡을 겸 논의하던 중에 앞으론 디스코스보다는 톡이 좋지 않겠냐고……분명 누가 말했었던 것 같다.

        

       기억이 흐릿하다 못해, 아주 그냥 조각조각 나있는게 느껴졌다. 어제 진짜 많이 마셨구나.

        

       아크 눈치를 보느라 잠시 금주를 했던 반동이기도 했고……대회를 우승한 기쁨 때문이기도 했지만……뭔가 다른 이유가 있었는데.

        

       온갖 이야기가 오간 흔적을 슥슥 내리다가, 막바지 근처에 도착해서 멈칫했다.

        

       [별포크: 우리 그러면 현실 뒤풀이할까요???]

        

       [아크: 앗ㅋㅋㅋ 너무 좋죠!! 근데 다들 괜찮으시겠어요? 궁탁님은 부산이신데, 장소를 서울로 하면 너무 멀 것 같아서요ㅠㅠㅠ]

        

       [궁s: 저도 서울 죠습니다 ㅎㅎㅎ 이런 핑계라도 있어야 서울 나들이 해요ㅠㅠ설거지나 미리미리 빡세게 해야죠 ㅎㅎㅎ]

        

       [BoX: 넵 저도 좋습니다!]

        

       [별포크: 네네네!!! 다른 분들 괜찮으시면 제가 장소 섭외해볼게요!!]

        

       그래. 현실 뒤풀이 얘기가 나와서……술을 들이붓기 시작했구나.

        

       얼마 내리지 않아, ‘여기까지 읽으셨습니다’ 라는 메시지가 등장했다.

        

       그렇게 내가 톡방을 반쯤 떠난 이후에도, 팀원들은 제법 높은 텐션으로 구체적인 일정을 정하고 있었다.

        

       특히 저장하지 않은 번호인 ‘궁s’가 유독 신나 보였는데……프로필 사진을 눌러가며 확인해보니 궁탁인 모양이다. 일을 핑계로 여행을 떠날 수 있게 된 유부남의 기쁨은 상당하구나.

        

       아무튼.

        

       그러면 BoX가 고라박스인 모양이고……SH가, 레반인 모양인데.

        

       [SH: 네. 날짜 정해보죠.]

        

       조금, 의외였다. 이런 모임에 적극적일 타입은 아닐 것 같았는데.

        

       혹시, 아크나 별포크한테 사심이라도 있는 걸까. 아크랑은 잘 어울릴 것 같기도 하고. 별포크는……레반이 도적으로 전향하기 전까진 안 되지만.

        

       우리 제자가 남자한테 정신 팔려서 스승을 저버리는 무도한 짓거리를 할 거라고 의심하는 건 아니다. 그래도 조심할 건 조심해야지.

        

       옅은 한숨을 내쉬며, 남은 톡을 단숨에 흘리듯 내렸다. 빠르게 전환되는 화면의 끝에, 별포크의 메시지가 남아있었다.

        

       [별포크: 그러면 다음주 금요일로! 혹시 일정 변경 필요하시면 말씀해주세용! @이예나 아따먹님은 내일 일어나시면 뒤풀이 오실 수 있는지 편하게 말씀부탁드려요!! 갠톡 주셔도 돼요 😄]

        

       뒤풀이…….

        

       답장은, 해야 할 텐데.

        

       수마에 심신을 맡긴 채, 도피하듯이 눈을 감았다.

        

       .

       .

       .

        

       그렇게, 약 2시간 후.

        

       [죄송하지만 저는 다음에 참여할게요]

        

       [시간이 되면 갈게요]

        

       [시간이 괜찮을지 모르겠어요. 죄송합니다.]

        

       화면을 두들겨 단어를 나열했다가 모두 지워버리는게 벌써 몇 번째인지. 디스코스와 달리, 내가 메시지를 작성하는 중이라는 표기가 뜨지 않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뒤풀이. 뒤풀이라.

        

       별포크와 아크를 만났던, 그 날의 교습과는 느낌이 너무 다르다. 그건……책임져야 할, 스승 역할을 다하기 위한 거였으니.

        

       그럼에도 그 제안을 보내기 전에 한참을 고민하고, 또 고민하지 않았던가. 하루가 다 가도록.

        

       끝끝내 집을 나선 후에도, 1시간 미리 도착하여 맥주를 들이켜며 얼마나 번민했던가. 지금이라도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집으로 돌아갈까, 하며.

        

       원격으로 참여하겠다는 어처구니없는 변명을 입으로 굴려보던……조금은 부끄러운 기억이 떠올랐다.

        

       그저 친목도모를 하겠다고 사람들을 만나도 괜찮은 걸까- 하는 생각과 동시에, 아직 부대끼는 속에 다시 알코올을 밀어 넣고 싶은 충동이 울컥 올라왔다.

        

       몸이 천근만근 무겁게 느껴져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려나. 두 눈을 가벼이 감고, 이불 속으로 더 깊게 파고들었다.

        

       수 천명을 모아 놓고 방송을 했으면서. 이제 와서 5명을 만나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이리 몸부림 치는 건……우스운 일일까.

        

       하지만…….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 아따먹은, 인터넷에 흘러 다니는 익명의 존재일 뿐이다.

        

       어느 날 나타났듯이, 어느 날 사라질 수 있는.

        

       대체할 스트리머는 얼마든지 있다. 비슷한 스트리머도 있을 거고. 누군가는 궁금해하겠지만, 떠나간 스트리머가 늘 그렇듯 쉬이 잊힐 것이다. 결국은, 인간 대 인간으로 접한 건 아니니까.

        

       인간 대 인간…….

        

       위액이 올라오는 듯한 씁쓸함을 꾸욱 눌러 삼키며, 이불을 고쳐 쥐었다. 조금 더 깊게 파고들고 싶다. 안타깝게도 매트리스도, 이불도, 이미 한계까지 나를 포용해주는 중이지만.

        

       몸을 조금 더 웅크리고, 이불을 머리 위까지 뒤집어쓰는 것으로 갈음했다. 조금……조금은 낫네.

        

       이예나로서, 다른 사람을 만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몸을 온존하기 위해서는 음식을 먹어야 했고, 집을 유지해야 했으니.

        

       이예나에게 필요할 사회적인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이미 휴학 상태였지만, 아니었다면 아마 대학교도 어찌어찌 나가지 않았을까. 학점이 어땠을지는……장담할 수 없지만.

        

       그러나 미래에도 남을 흔적을 새로이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통장에 남아있는 돈을 사용할 때마다 죄악감이 느껴졌듯이, 그러한 흔적이 하나하나 생기는 것 자체가 힘겨웠던 탓이다.

        

       이예나의 삶이니까. 

        

       그 생각이 들 때마다 자연스럽게 따라붙는 의문은, 그러면 나는 무엇인가- 였지만……늘 그래왔듯, 애써 흩어버렸다.

        

       쓸데없이 깊고, 감당하기에 너무 무거운 의문 아닌가. 현실적으로 의미 있는 결론이 나올 것 같지도 않은. 그저, 침잠하게 만드는-

        

       -우우웅

        

       상념을 깨는 소리.

        

       진동음을 토해낸 핸드폰에는, [(방송 알림) 아크 님이 방송을 시작하였습니다!]라는 메시지가 떠올라 있었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을 리는 없고……기습 방송인가 본데. 아무래도, 전 날 대회를 우승한 여운이 가시지 않은 모양이다. 아마, 다시보기를 틀어놓고 일시정지를 남발해가며 자기가 어디에서 어떻게 잘 한 건지 일장연설을 하려고 일찍 켠 거 아닐까.

        

       평소라면 기쁘게 접속해서, 준비된 아스키아트 메모장과 함께 호응했을 텐데.

        

       잠시 망설이다가, 다시 눈을 감았다.

        

       추욱 처져버린 몸이 주는 기시감 탓일까. 아니면, 알코올로 휘발된 기억들을 애써 그러모으려 든 탓일까. 한동안 저 편으로 치워 두었던 과거의 기억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고 있었다.

        

       병원에서 깨어나, 음독으로 인해 위세척을 했다는 설명을 들은 후- 아직 어지러운 정신을 겨우겨우 붙든 채, 주민등록증에 적힌 주소에 의존해 찾은 이 3평짜리 요새에 숨어 보낸 시간이……6개월.

        

       인터넷에만 존재했던 세월이었다. 미묘하게 비틀린 듯 달라진 세상을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 괴로워, 처음엔 인터넷조차 피했지만……결국은, 가상으로나마 누군가와 교류하고 싶다는 절실함이 그러한 두려움보다 우위에 선 것이다.

        

       본래 그렇게까지는 즐겨 보지 않았던 인터넷방송에 깨어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쓰게 된 건, 결코 우연이 아니겠지.

        

       그렇게……어느덧, 9개월이 넘는 시간이 흘렀는데.

        

       내가 그동안 건드려버린 영역은, 어디까지일까.

        

       나오나. 나오나 아이디는, 언제든지 삭제하면 그만이겠지. 내가 삭제하진 못하겠지만.

        

       아따먹, 이라는 인터넷방송인- 목소리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으려나. 하지만 목소리 정도야, 잡아 떼면 그만이겠지. 수사 대상이 되지 않는 이상에야.

        

       하지만 별포크와 아크는…….

        

       생각해보면, 이미 어울려 버린 것이다. 업무의 일환이었느니 뭐니 해도, 제3자가 보기엔 결국은 자기합리화를 위한 핑계를 만든 것에 불과하지 않을까.

        

       진희라는 이름을 들어 놓고도 꿋꿋이 아크라고 불러대는 것과 마찬가지로.

        

       포근한 침대에서 몸을 끄집어내듯 일으켜 세워, 책상 앞에 놓인 소주병으로 향했다. 가득 찬, 뚜껑만 열린 소주병. 쓰러져 잠들기 직전에 조금 더 마시겠노라고 욕심을 부린 흔적이다.

        

       투명한 액체를 컵으로 옮겨 담고, 입에 털어 넣기를 세 차례.

        

       가슴에 따스함이 맴돌기 시작했다.

        

       -후우.

        

       깊은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파묻히듯 주저앉았다.

        

       그래. 확답을 해야 하는 건 아니니까.

        

       [시간이 되면 갈게요. 편하게 일정 정해주세요.]

        

       가겠다는 건지, 안 가겠다는 건지……모임의 총무가 반가워할 메시지는 아니지만. 별포크가 너무 기분 나빠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메시지가 전송된 후 뒤로가기 버튼을 누르자, 늘어진 톡 목록에서 빨간 숫자들이 재촉하듯 손을 들고 있었다. 단체방에서 너무 오래 침묵을 지킨 내게 보내진 개인톡들.

        

       [아크: 예나님 뒤풀이 오시나요?]

       [아크: 짱 재밌을 거 같은뎋ㅎㅎ]

        

       [별포크: 예나님 예나님]

       [별포크: 불초 제자는 스승님이 보고 싶어요!!]

       [별포크: 뒤풀이 꼭 와주세요!!]

       [별포크: 아 얼굴 노출 부담스러우시죠ㅠㅠㅠㅠ]

       [별포크: 제가 아주아주 프라이빗한 곳으로 잘 섭외할게요!!!]

        

       답장을 하지 않고 다시 채팅방을 나오기를 두 차례. 마지막으로 레반으로 추정되는 아이디로부터 온 톡을 눌렀다가, 잠시 멈칫했다.

        

       [SH: 불편하면 거절해도 돼요.]

       [SH: 저 톡방이 너무 확정된 분위기라 말을 못하나 해서]

       [SH: 정 뭐하면, 별포크님한테만 못 간다고 얘기해도 되니까]

       [SH: 술은 적당히 드시고]

        

       ……평소랑 좀 다른데. 술 마신 건 또 어떻게 알았지.

        

       물어볼까.

        

       [이예나: 술이라니]

       [이예나: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네요]

        

       전송한 톡 옆에 붙어있던 작은 숫자는 메시지를 보내자마자 사라졌다. 놀고 있었나 본데.

        

       [SH: 아니]

       [SH: 댁이 맨정신이었으면 더 문젠데…]

        

       [이예나: ??]

       

       [SH: 맨정신으로 벌목꾼이라고 했단 거잖아요]

       [SH: 요즘 커뮤니티에서 진짜 나무꾼으로 합성한 사진 도배하는 놈들 있어서]

       [SH: 벼르는 애들 많을 텐데]

       

       [이예나: 벌목꾼 정도면 과분하지 않나요]

       [이예나: 혐무꾼이라 한 것도 아니고……]

       [이예나: 아크님도 쓸 법한 표현이란 느낌]

       

       [SH: 아크님은 왜 고소를 안 하시지]

       [SH: 아니 그리고] 

       [SH: ‘레반님한테 호스팅하려고 했는데 매번 일찍 방종해서 못했어요. 여러분 레반님 방송 많이 봐주세요’ 였나. 아무튼 그런 멘트 준비했는데 마지막으로 한 마디하라고 안 물어봐줘서 못했다고 투덜거렸잖아]

       [SH: 그거도 맨정신으로 진짜 하려던 말이었어요?]

        

       아. 그거.

        

       [이예나: 아]

       [이예나: 그건 술 마시기 전이에요]

       [이예나: 은혜는 꼭 갚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SH: 아니 그러면 나중엔 마셨단 뜻이잖아]

       [SH: 아무튼]

       [SH: 혹시 내가 무슨 은혜를 베풀었다면 앞으로는 제발 갚지 말아줘요]

        

       [이예나: 😅]

       [이예나: 그럴 순 없어요]

       [이예나: 원칙에 예외는 없기 때문에]

        

       늦어지는 답장을 잠시 기다리다가, 핸드폰을 한 쪽으로 치웠다.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으니까. 은혜를 달리 어떻게 갚을지는……나중의 일로 미뤄두자.

       

       다른 일에 집중한 덕분일까. 머리를 가득 메우던 생각들이 많이 사라진 느낌이었다.

        

       이걸 이어나가기 위해선, 역시 음주 게임인데. 나오나……를 하기엔, 너무 피곤하고.

        

       그래.

        

       방송, 켤까.

        

       키보드를 두드려 간략한 공지를 작성하고, 방송 제목을 입력했다.

        

       [도적부흥운동 – 도적 메이커(OST 자체 연주)]

       

       이럴 땐, 고전 게임이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주말이네요. 즐거운 주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건강상 사정으로 가까스로 쌓은 비축분을 소모하게 되어서……연참을 한다는 기존 계획은 실패했으나, 대신 조금 눌러담은 회차를 조금 빠르게 올려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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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그런 악질 방송 안ㅣ에요
Score 3.7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am a healthy skill-based broadcaster.

I don’t hate priests.

It’s not that kind of broadcast.

What?

Clarify the controversy that’s been posted on the community?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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