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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7

       좋아, 놀이기구는 포기하자.

        

       그 후에 공중에서 빙글빙글 도는 놀이기구에 도전해본 뒤, 나는 깔끔하게 그런 결론을 내렸다. 사라의 몸은 단순히 운동신경이 좋지 않은 것이 아니라, 몸이 격하게 흔들리는 모든 일에 약한 모양이었다.

        

       굳이 적응하려고 노력하면 할 수도 있겠지만…… 놀이공원까지 와서 내내 어지럼증을 느끼고 구토만 하다가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게다가 지금 놀이공원에 와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사라에게 삶의 의지를 심어주기 위함이었다. 트라우마를 심어서 ‘이불 밖은 위험해’라는 생각을 심어주는 것이 아니라.

        

       게다가, 지금 당장 사라가 말로 불평불만을 쏟아내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언짢은 기분이 그대로 느껴졌다. 내가 이 몸에 느끼고 있는 당혹스러움과는 별개로, 사라는 지금 기분이 아주 좋지 않았다.

        

       조금 초조해졌다.

        

       아니, 뭐, 그래. 굳이 오늘 성과를 낼 필요는 없다. 아무래도 나는 사라와 꽤 오랜 시간 함께 지내야 할 사이고, 이런 것은 시간을 들여 천천히 만들어 나가면 될 일이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뭐든지 첫인상이 중요한 법이 아닌가. 처음 먹은 음식에 대한 인식이 나쁘게 박히면 다음에 훨씬 더 맛있게 잘 만들어진 같은 종류의 음식을 보더라도 먹기 꺼려지는 법이다. 지금 여기서 인식이 틀어지면, 사라는 아마 다음에도 이런 곳에 오는 것을 거부할 것이다.

        

       내가 몸을 움직이는 이상 사라가 내가 어디로 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사라를 돕고 싶은 거지, 억지로 뭔가 주입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으니까.

        

       …….

        

       ……음?

        

       왠지 언짢은 감정이 조금 줄어든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사라야, 괜찮겠어?”

        

       벤치에 앉아서 쉬고 있는데, 하늘이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보며 물었다.

        

       “응…… 아마 더 이상 놀이기구를 타는 건 힘들 것 같아.”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오랜만에 왔다는 다른 친구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었지만, 진짜로 더 타다가는 돌아가는 차 안에서 토할지도 모른다. 양혜인은 내 생각보다 훨씬 운전을 잘하긴 했지만, 한 시간 넘는 거리를 가는 와중에 멀미하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그러면 어쩔 수 없지.”

        

       내 옆에 소희가 털썩 앉으며 말했다.

        

       나를 따라다니던 직원들은 다시 돌려보냈다. ‘나 따라다니느라 업무에 지장 가는 거 아니냐?’라는 질문에 직원들은 새파랗게 질려서 흩어졌다.

        

       ……아무래도 정말로 나 따라다니느라 업무가 마비될 뻔한 모양이다.

        

       심지어 그 말을 이 놀이공원 주인에게 들었으니 겁에 질릴 만도 하지.

        

       너무 겁먹은 것 같아서 조금 미안하긴 했다.

        

       “느긋하게 즐기다 가자. 억지로 타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으니까.”

        

       소희는 내 등을 부드럽게 두드려주며 말했다. 음, 토할 것 같은 사람 등을 두드리는 건 토를 하게 만들겠다는 말인가? 나를 걱정해서 하는 행동이라 차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더니, 양혜인이 소희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받은 소희는 자신이 뭔가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는지 슬그머니 손을 내렸다.

        

       ……의외로 사람 다루는 솜씨가 좋다.

        

       하긴, 원래는 저택의 사용인들을 컨트롤하던 사람이었으니까.

        

       최나경은 그 이후에 추가로 사용인을 보내지는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저택의 사용인들 전부가 사실상 방치되어버린 상황이 되었다. 일을 그만두는 사람이 없는 걸 보면 돈은 꼬박꼬박 나오는 것 같지만, 사람들의 얼굴이 언제나 불안했다. 폭풍의 눈 안에 들어왔다고 생각하는 걸까.

        

       나는 신경 쓸 게 줄어서 오히려 좋긴 했지만.

        

       “……나는 괜찮으니까 따로 타고 놀아도 될 텐데.”

        

       내가 그렇게 말하자, 소희는 뭔가 대답하려고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그리고 잠시 고민하다가,

        

       “뭐, 나도 솔직히 놀이기구는 별로야. 기다리는 데 지치기만 하고. 한 시간 반씩 기다리고 타는 건 3분이면 끝나니까.”

        

       그렇게 대답했다.

        

       “나도 그래. 놀이기구 아니더라도 즐길 건 많잖아.”

        

       하늘이가 그 말에 바로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놀이공원에서 놀이기구 빼고 즐길 게 있다고?

        

       아니, 뭐, 그래. 여기는 원래 놀이기구 타라고 만든 곳이 아니라 꽃밭이나 그런 곳을 즐기라고 만들었던 곳이라는 말은 들었다. 그래서 초창기에는 정말로 유럽풍 분위기의 마을이었다가, 후에 다른 테마파크들과 경쟁하기 위해 온갖 놀이기구를 들이면서 이미지가 바뀐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한 사람당 내는 입장료를 생각하면 그냥 그런 것만 즐기다 가는 건 좀 아깝지 않나?

        

       “조금 쉬다가, 컨디션 괜찮아지면 걷자. 마침 봄이기도 하고. 저 위에 가면 꽃도 예쁘게 피어있을 거고.”

        

       소희가 말했다.

        

       그래도 일부러 나를 위해 이렇게 말해주는데 거절할 수는 없었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나중에 조금 더 건강해지면 다시 오면 그만이다.

        

       나는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상쾌한 공기가 폐를 가득 채우면서, 어질어질하던 머리가 조금은 차분하게 가라앉는 것이 느껴졌다.

        

       “아, 그런데 수아는…….”

        

       갑자기 말이 없어진 수아를 찾아 고개를 돌렸더니, 수아는 우리와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서서 한쪽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야를 따라 고개를 쭉 돌려보니, 그 끝에는 무려 유령의 집이 있었다.

        

       ……혹시 이런 거 좋아하는 성격인가?

        

       그런데 생각해보면 또 이게 클리셰이기도 했다. 원래 이런 게임에서 얌전한 애들이 좀 과격하거나 무서운 영화를 좋아하는 법이고, 좀 세 보이는 츤데레 캐릭터는 유독 그런 것에 약한 법이었다.

        

       “가고 싶어?”

        

       “으, 응?”

        

       내가 갑자기 말을 걸자, 수아는 깜짝 놀라서 순간 말을 더듬었다.

        

       “어…… 아, 응. 가고 싶어.”

        

       그리고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차렸는지,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말했다. 속마음을 들킨 것이 조금 부끄러운 탓일까. 얼굴이 살짝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오, 좋네. 저기선 멀미할 일도 없을 테고.”

        

       소희는 아주 여유로운 자세로 앉은 채로 그쪽을 돌아보면서 즐거워했다.

        

       ……아닌가? 여기서는 그런 클리셰가 안 통하려나?

        

       내가 본 하이라이트 영상에서는 놀이공원 이벤트가 없었다. 솔직히 한 번 정도는 있을법한 이벤트였는데도, 그리고 하이라이트에서 빼먹을 정도로 중요하지 않은 이벤트가 아니었는데도 내가 본 적이 없다는 것은 그냥 그런 이벤트가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는 뜻이겠지.

        

       왜일까.

        

       음, 하긴 내가 직접 겪어본 바로, 윤다호는 굳이 이런 곳에 올 만한 성격이 아니었다. 차라리 경치 좋은 비싼 레스토랑에서 데이트를 즐긴다면 모를까.

        

       신소희 루트에서는 이런 걸 즐길만한 정신적인 여유가 안 되었던 것 같고. 학교에서 따돌림당하고 겉도는 스토리였고, 중간에 학교 빼먹고 가출하는 스토리같은 것을 보면 느긋하게 놀이공원 데이트를 즐길 스토리는 아니긴 했다.

        

       그렇기에, 나는 여기 있는 아이들의 취향을 잘 몰랐다.

        

       뭐, 어떻게 보면 정석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관계가 깊다고는 하지만 아직 사귄 지 한 달 정도밖에 되지 않았으니까. 서로 이런저런 것을 알아가는 단계라고 생각하면 되겠지.

        

       계속 앉아있어서 몸 상태가 많이 좋아진 나는,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좋아, 그럼 한 번 가 볼까?”

        

       “괜찮겠어?”

        

       그런 나를 엄청나게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면서 하늘이가 물었다.

        

       “나쁜 것도 없지 않을까?”

        

       나는 공포영화를 엄청나게 잘 보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이런 것에 놀라는 것은 별개다. 현실에 귀신이라는 것이 절대로 없다는 것을 마음 깊은 곳에 새기고 있어서 그럴까. 적어도 수학여행 담력 훈련 같은 것을 할 때 크게 쫄아본 기억은 없었다.

        

       어차피 분장하고 튀어나오는 것도 다 사람이 아니겠는가.

        

       영화에서야 그게 진짜라는 설정이고, 나름대로 CG 처리를 하고 나오지만, 분장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아무리 잘해봐야 좀비 영화 분장 정도 아닐까?

        

       귀신의 집 직원이 우리를 때릴 것도 아니고, 내가 무서워할 이유가 없다.

        

       괜찮겠어?

        

       그런고로 나는 괜찮았지만, 혹시 몰라서 사라에게 그렇게 물어봤다.

        

       뭐, 마음대로 한번 해 봐.

        

       여전히 마음이 전부 풀리지는 않은 듯, 사라는 그저 그렇게 말할 뿐이었다. 어딘가 토라진 분위기였는데, 그렇다고 엄청나게 화난 분위기는 아니라 별로 무섭지는 않았다.

        

       그런데, 귀신이 없다는 건 너무 속단한 거 아닐까? 나나 너나,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한쪽이 귀신이라고 생각해도 이상할 게 없는데.

        

       …….

        

       어…….

        

       잠깐만, 그렇게 말하니까 조금 무서워지려고 하잖아.

        

       그렇다. 대놓고 티가 나는 것은 아니지만, 이곳은 내가 지내던 곳과 비교하면 확실하게 ‘판타지’에 가까운 곳이었다. 자살한 사람이 다른 영혼으로 살아난다든가 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강령술 비슷한 게 아닐까?

       

       

       귀신이 귀신을 무서워한다니, 그것도 웃기네. 마음에 들어.

        

       아니, 진짜 그러지 말라니까.

        

       *

        

       아까 사라에게 들은 이야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 예상외로 귀신의 집이 잘 꾸며진 탓일까.

        

       여기 들어온 뒤로, 나는 완전히 겁에 질려서 쩔쩔매고 있었다.

        

       그렇다. 세상에 귀신이 없다고 가정해도 사람은 있었다.

        

       그리고 이쪽 세상에서 나는 누가 옆구리만 찔러도 깜짝 놀라서 해괴한 소리를 지르는 존재였다. 원래의 몸이 담력 훈련을 잘하건 말건, 사라 몸을 쓰는 나는 뭐라도 하나 튀어나올 때마다 기겁해서 소리를 질러댔다.

        

       “흐엑!”

        

       “히엑!”

        

       “히익!”

        

       내 비명이 마음에 들었는지, 귀신이나 좀비 분장을 한 직원들은 참 열심히도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런 내 옆에서—

        

       “괜찮아?”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나를 달래주는 수아가 있었다.

        

       …….

        

       그래, 클리셰는 클리셰다.

        

       손바닥 뒤집기로 결정된 조대로 찢어져 들어오게 된 뒤로, 수아는 깜짝 놀라 몸을 움찔 떨기는 했어도 나처럼 꼴사납게 비명을 지른 적은 없었다.

        

       ……뭐, 그렇다고 다른 아이들이 겁이 많은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참고로, 사라에게서 느껴지는 감정은 두 가지였다.

        

       한가지는 두려움.

        

       아까 별로 겁나지 않는다는 듯 말한 것 치고는, 내가 비명을 지를 때마다 내면에서 함께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아마 옆에 서 있었다면 나나 수아에게 꼭 붙어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한가지 감정은 언짢음이었다.

        

       내가 비명을 지를 때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수아 옆에 꼭 붙을 때마다, 사라에게서 언짢은 기분이 팍팍 전달되었다.

        

       굳이 다른 곳을 두고 이런 곳에 들어온 나에 대한 언짢음일까.

        

       “괜찮아. 조금만 있으면 끝나니까.”

        

       수아가 참 든든하게도 나의 팔을 꼭 안아주면서 말하자, 그 언짢음이 극대화되었다.

        

       ……그래, 최대한 빠르게 나가도록 하자.

        

       그리고 다시는 이런 곳에 들어오지 않기로, 나는 다짐했다.

        

       ……꼭 그것 때문이 아닌데.

        

       참고로 사라는 끝까지 그렇게 허세를 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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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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