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Please report if you find any blank chapters. If you want the novel you're following to be updated, please let us know in the comments section.

EP.117

       이전의 나설은 이렇지 않았다.

       

       게임에 과몰입을 하는 경향이 있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열정의 영역에 불과했다.

       

       적어도 두 어달 전 하린이 나설을 만날 때엔 그랬다.

       

       그런데 지금 나설은 어떤가.

       

       그녀의 눈에선 이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영화에 나오는 미치광이를 연기하는 것처럼.

       

       “대체 당신의 어디가 그리 특별하기에 화령님의 애정을 받고 있는 건가요.”

       

       하지만 저건 연기가 아니었다.

       

       잔뜩 흥분해서 줄어든 동공에서 느껴지는 진득한 감정은 결코 연기라 할 수 없었다.

       

       저게 정말 연기라면 나설은 화룡무인에서 게임을 할 게 아니라 배우 오디션을 보러 가야 할 터였다.

       

       “대답해요.”

       “뭔가를 한 적은 없어요.”

       

       하린과 화령의 관계는 어디까지나 화령의 호의에서 시작된 관계였다.

       

       하린의 팬심을 화령이 받아주면서 인연이 생겨났을 뿐 하린이 무언가를 한 적은 없었다.

       

       “근데 화령님 같은 분이 당신을 아낀다고요?”

       

       사실만을 말했음에도 나설은 하린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런 일이 있겠냐는 듯 자신을 깔보는 어투에 하린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제가 화령님이랑 가까운 데 문제가 있나요?”

       “그걸 말이라고 물어요? 화령님은 앞으로 수많은 업적을 써내려 갈 분이에요.

       저 분의 발자취가 곧 VR무협게임의 역사가 될 거라고요.”

       

       그 미래를 상상하기만 해도 황홀한 듯 점차 열기가 더해지는 목소리를 들으며 하린의 표정이 점점 썩어 들어갔다.

       

       이 사람.

       

       “그런데 그 역사의 옆에 선 사람이 당신 같은 범인이어서야 되겠어요? 안되죠. 그래선 안돼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왜 멀쩡했던 사람이 이렇게 된 거지?

       

       거슬리는 것을 보듯 자신을 보려보는 나설을 보며 하린은 무심코 이런 물음을 던졌다.

       

       “화령님이 당신의 뭐기에 그러는 건가요?”

       

       지금 나설에게 느껴지는 것은 단순한 팬심같은 게 아니었다.

       

       화령이 좋다거나. 화령을 만나고 싶다거나. 그녀에게 배움을 얻고 싶다거나 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었다.

       

       거기에서 느껴지는 건 그보다 훨씬 무겁고 짙은 무언가였다.

       

       “마땅히 경외해야하는 사람.”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튀어나온 대답을 들은 순간 하린은 이런 어투를 들어본 적이 있단 걸 깨달았다.

       

       예전에 학교 수업시간에 한 선생님이 다큐멘터리를 틀어주었던 적이 있었다. 그건 어느 사이비 종교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거기에 나왔던 한 신도는 자신이 가진 모든 걸. 돈, 시간, 건강, 심지어 자신이 지닌 가족마저도 종교에 내밀었던 사람이었다.

       

       그 때 그 신도가 종교에 관해 떠들던 목소리와 지금 나설이 하는 목소리는 한없이 닮아 있었다.

       

       적어도 하린에게는 그렇게 들렸다.

       

       “화령님이 신이라도 된다고 생각하시나요?”

       

       화령이 대단한 사람인 건 맞다. 바로 옆에서 그녀를 스승처럼 여기며 가르침을 받는 하린이기에 화령의 대단함을 부정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화령은 대단한 ‘사람’이었다.

       

       정색을 하며 싸울 때는 그 누구보다 멋진 무협지 속 주인공이 되는 건 사실이지만.

       

       공포게임에 나오는 인형을 보고 귀엽다며 실없는 소리를 하고.

       

       VR 속 기능을 다루는 게 서툴러서 엉뚱한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고.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고 싶지 않아 고집을 부리기도 하고.

       

       자신이 누군가를 울리면 어찌 수습을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기도 하고.

       

       때로는 짓궂은 장난을 치기도 하는.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면 그 누구보다 환한 웃음을 지을 줄 아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신이라. 그럴지도요.”

       

       지금 나설이 생각하는 것처럼 절대무결하고 신성시를 해야 할 대상이 아니었다.

       

       “미쳤군요.”

       

       하린은 도저히 자신의 속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한 사람에게 질린다는 감정을 느끼고 있었기에 가식을 부리는 게 불가능했다.

       

       “깨달음을 얻었다고 해주시겠어요?”

       

       경멸이 담긴 말에도 나설은 태연했다. 모함을 받는 선지자라도 된 것 같은 어투에 하린이 얼굴을 쓸어 내렸다.

       

       진정. 진정하자. 너무 흥분했어.

       

       결국 저 사람이 원하는 건 내가 화령님 옆에서 떨어지는 거잖아.

       

       조금만 바꿔 생각해보면 자기가 좋아하는 스트리머랑 합방을 하는 사람이 마음에 안 든다고 진상을 피우는 사람인 거야.

       

       내 최애랑 니가 왜 달라붙어 있는데! 라면서 화내는 거랑 비슷한 거라고.

       

       여러 방송인과 친분이 있는 하린은 이런 사람에게 대응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무시해야 한다.

       

       저 사람이 무슨 말을 지껄이건 간에 무시하고 개가 잘 짖네. 라는 생각을 하면서 넘겨버리면 그만이었다.

       

       다른 당사자인 화령은 이런 일로 흔들릴 사람이 아니었으니 하린만 저 개소리를 무시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성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지만 감성은 달랐다.

       

       하린의 마음은 전혀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어떤 식으로 만났는지 궁금하다고 하셨죠? 말씀해 드릴게요.

       화령님이 저희 가족이 하는 식당에 식사를 하러 오셨거든요. 그게 인연이 돼서 가르침을 받게 됐죠.”

       “…실제로 만났다고요?”

       “네. 저는 당신이 모르는 화령님의 실물을 알고, 화령님의 전화번호를 안답니다.”

       

       너 따위와는 다르게 자신은 화령과 가까운 사이라는 선언에 나설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하. 운이 좋으셨네요. 어디 맛집이라도 되나 보죠?”

       “물론이죠. 저희 뼈다귀 해장국이 얼마나 유명한데요.”

       “…뼈다귀해장국?”

       

       아니. 왜 뼈다귀해장국이란 말에서 놀라는 거야?

       

       해장국이 무슨 혐오음식도 아니고 누구나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대중의 음식인데 화령님이 먹으러 올 수도 있는 거지.

       

       뭐 화령님이 이슬만 먹고 사는 요정이라도 되는 줄 아나.

       

       아. 생각하면 할수록 열 받네.

       

       지는 뭐 대단한 음식을 먹고 산다고 경악을 한대? 어디 재벌가 따님이라도 되시나?

       

       “나설님. 당신이 저랑 화령님이 같이 있는 걸 보고 싶지 않단 건 알겠어요.

       그럴 수 있죠. 애정이란 게 원래 이성적인 건 아니니까.

       근데 화령님한테 아무것도 아닌 사람 주제에 지랄하지 말아 주시겠어요?”

       

       데스패널티고 뭐고 상관없어.

       

       어차피 그깟 내공 다시 쌓으면 그만이지. 여태 지겹도록 해왔던 일이야. 얼마든 지 할 수 있어.

       

       그렇지만 이 빌어먹을 년의 얼굴에 주먹을 꽂는 건 지금이 아니면 언제 할 수 있을지 모르잖아.

       

       “지랄?”

       

       “네. 지랄이요. 솔직히 좀 징그럽거든요?”

       

       하린과 나설 주변의 공기가 무게를 더했다.

       

       두 사람에 속에 품고 있던 내공을 겉으로 드러내 서로를 압박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린도 나설도 어느 쪽이건 화룡무인 최상위권에 속한 사람들.

       

       둘이 지닌 내공의 양은 무림의 고수를 지칭하기에 조금의 부족함이 없었으니 둘의 기싸움은 단순히 서로를 노려보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 영향을 끼치는 무언가였다.

       

       “덤벼요. 무림은 강자존이잖아요? 어디 절 이겨서 당신이 옳다는 걸 증명해보시죠.”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어요.”

       

       두 사람이 자세를 취한다.

       

       나설이 다루는 것도. 하린이 다루는 것도 권이었다.

       

       다른 것은 어디까지나 서로가 다루는 권의 종류 뿐.

       

       하린이 풍류에 매료되어 바람을 쫓는 동안 나설은 더 강해질 방법을 찾아 효율을 쫓았다.

       

       팔극권.

       

       정확히는 유저들이 자신들의 보정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제멋대로 개량을 한 아류의 팔극권이 나설이 사용하는 권이었다.

       

       먼저 공세를 취한 쪽은 하린이었다.

       

       바람을 추구하는 하린의 권은 끊임없는 움직임에 기반을 둔다. 그렇기에 공세를 유지할 때는 위협적이지만 반대로 수세에 몰리게 되면 무력해진다.

       

       그렇기에 하린은 주도권을 잡기 위해 먼저 권을 내밀었다.

       

       극한의 쾌를 추구하는 하린에게 대응하는 나설의 권은 중에 가까웠다.

       

       나설은 섣부르게 반격을 하기 보단 하린의 권을 받아내며 기회를 지켜보았다.

       

       하린은 날선 나설의 눈을 보며 생각을 거듭했다.

       

       아류 팔극권은 동물로 따지자면 악어와 같은 무술이다.

       

       수면 아래에서 기회를 노리다 한 번의 공격으로 상대의 숨통을 끊는 악어처럼 아류 팔극권은 상대의 공격을 받아 내며 일격으로 승부를 결정지으려 한다.

       

       그러니 하린이 추구해야 하는 것은 한 번의 실수도 없는 승리였다.

       

       “화령님을 그렇게 좋아하시면서 천마 신권은 안 쓰시나요?!”

       “그러는 당신도 풍류권을 다루고 있잖아요!”

       “저는 원래부터 이것만 썼거든요!”

       “저도 똑같은데요!”

       

       말로 다투는 와중에도 두 사람은 권을 나누는 걸 멈추지 않았다.

       

       하린은 자신의 권을 받아내는 나설을 보며 이상함을 느꼈다.

       

       나설 쪽이 스펙이 더 높은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린이 아무리 화룡무인의 고인물이라 하지만 눈앞에 있는 미친년만큼은 아니다.

       

       게임 속 세상에 인생을 팔아먹은 것 같은 나설에 비하면 하린도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하린이 이상함을 느낀 건 다른 쪽이었다.

       

       여태까지 화령에게 무를 익힌 그는 이치를 따르는 것과 동작을 따르는 것의 차이를 대략적으로 느낄 수 있게 됐다.

       

       그런 그녀가 보기에 나설은 어설프게나마 이치를 따르고 있었다.

       

       화령님이 이치에 관해 강의를 한 지 얼마나 됐다고 독학으로 그걸 익혔다는 거야? 여태까지의 방식을 버리고?

       

       대단하네. 그건 인정할게. 내가 화령님에게 죽어라 구르면서 익힌 걸 홀로 배울 정도면 얼마나 고생을 했을지 눈에 훤하니까.

       

       그렇지만 아직은 어설퍼.

       

       이치를 쫓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 몸이 오히려 굳고 있잖아.

       

       당신이 나중에 숨을 쉬는 것처럼 이치를 펼칠 수 있게 된다면 그 땐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아직은 내가 이길 수 있을 것 같네.

       

       서로 간의 실력의 격차를 확인한 순간 하린은 빠르게 결착을 내기로 결정했다.

       

       조금 더 시간을 끌면 무림맹의 사람들이 여기로 몰려들 게 뻔했으니까.

       

       하린은 일부러 상대에게 기회를 내어줬다.

       

       아류 팔극권을 다루는 유저라면 노릴 수밖에 없는 틈을. 함정임을 알면서도 들어올 수밖에 없는 상황을.

       

       함정인 게 너무도 뻔한 틈에 나설이 일순 멈칫했지만 그녀는 이내 권을 준비했다.

       

       함정일지라도 저만한 틈이라면 쳐부술 수 있을 거라 확신을 한 것이었다.

       

       허나 그것이야말로 하린이 노린 바였다.

       

       나설이 온 힘을 다해 내지른 권이 하나의 창처럼 내질러져 하린을 꿰뚫는다.

       

       그 순간 승리를 확신했던 나설이었지만 그녀는 이내 무언가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타격감이 없었다.

       

       손에 감촉이 없었다.

       

       꼭 바람을 향해 주먹을 휘두른 것처럼.

       

       그리 생각을 하고 나서 옆으로 시선을 돌리자 자신을 향해 날릴 권을 준비하는 하린이 보였다.

       

       콰앙!

       

       나설의 몸이 날아가 대나무를 부수며 처박혔다.

       

       한 방을 제대로 먹이긴 했지만 하린은 자세를 풀지 않았다.

       

       이 정도로 나설이 나가떨어질 리가 없었다.

       

       그녀의 스펙은 화룡무인에서 최상위. 비슷한 공격을 몇 번은 더 먹여야 쓰러트릴 수 있을 터였다.

       

       비틀거리며 일어난 나설은 이를 악문 체 다시 자세를 취했다.

       

       하린은 그걸 보며 너스레를 떨었다.

       

       “지금이라도 도망치면 봐드릴 수 있는데요.”

       “엿이나 먹어요.”

       

       협상은 순식간에 결렬됐다.

       

       끝까지 가야 하나. 저 사람을 죽이고 무림맹한테 죽을 각오를 해야겠는데.

       

       그리 생각을 하며 하린이 나설의 움직임을 바라보던 그 순간.

       

       갑자기 나설의 몸이 앞으로 기울었다.

       

       당사자인 나설도. 그걸 바라보던 하린도.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지 못했다.

       

       아무런 전조도 없었다. 마이튜브를 보다 실수로 10초를 넘겨버린 것처럼 과정이 사라지고 결과만이 남아 있었다.

       

       나설이 바닥에 쓰러지고 뒤에서 발소리가 들려 왔다.

       

       터벅터벅. 딱딱하고 무거운 나막신의 소리.

       

       “잘 봤다. 꼬마야.”

       

       대나무를 헤치고 모습을 드러낸 것은.

       

       “외부인치고는 썩 나쁘지 않게 싸우더구나.”

       

       검선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잡것들이 자기 사는 데를 박살 내서 화가 난 검선입니다.

    다음화 보기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