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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7

   EP.117

     

   흘린다.

   받아 낸다.

   밀어낸다.

   쳐 낸다.

     

   나의 검이 놈의 마력과 충돌할 때마다 나는 1초를 기다렸다.

     

   올려친다.

   찍는다.

   벤다.

   찌른다.

     

   그리고 이어진 쉴 새 없는 검무에 놈이 당황한 듯 팔을 허우적거렸고,

   나는 나의 검을 급급하게 받아 내는 놈을 보며 침착하게 다음 수를 노렸다.

     

   -흐으읍!!!

     

   마왕의 입에서 한껏 거칠어진 숨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다.

   처음에는 몰아치는 듯싶었지만 이제는 방어에 몰두하고 있는 마왕의 형세. 그리고 나는 그런 놈을 향해 제대로 만들어 낸 검기를 차분히 내리그었다.

     

   서걱!

     

   -크윽!!!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놈이 뒤로 훌쩍 물러난다.

   허나 나는 놈을 쫓지 않았다. 그저 다음 수를 예측하며 놈의 어깨와 다리와 허리를 훑었을 뿐.

     

   그리고 나의 예상대로 놈은 반격을 하지 않고 자신의 가슴에 생긴 기다란 상흔을 왼손으로 감싼 채, 나를 향해 윽박을 질렀다.

     

   -도대체……!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뭘?”

     

   -스킬이냐?…… 아니, 아니야. 네놈 성좌와 계약을 했구나! 예언의 힘을 가진 성좌와 계약을 한 것이야! 그것이 아니라면 설명이…

     

   “아아, 난 또 뭐라고.”

     

   나의 짧은 한마디에 마왕이 얼빠진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스킬 같은 게 아니야. 성좌 계약 같은 건 더더욱 아니고.”

     

   손에 들린 한 자루의 검이 나의 시야에 들어온다.

   무기라는 것은 단순히 공격할 수 있는 거리를 늘려주는 정도의 도구가 아니었다.

   만약 그런 개념이라면 내가 검보다는 창을, 창보다는 활을 더 자주 사용하는 전투를 선호했을 테니까.

     

   “인간이 왜 만물의 영장이라고 불리는지 알아?”

     

   검劍, 도刀, 권拳, 창槍, 궁弓.

     

   그 외에도 이름 모를 갖가지 병장기가 세상에는 존재했다.

   그리고 그것들을 인간이 사용하는 이유는 각 무기가 가지고 있는 장점이 극명하기 때문이었다.

     

   -빌어먹을!

     

   파지직!!!

     

   나의 말에 놈이 인상을 잔뜩 구기며 양손에 마력을 집중시킨다.

   앞선 잠깐의 싸움에서 자존심이 심하게 상한 모양인지 과도하게 마력을 운용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저 강한 신체를 가졌다고 모든 게 다 해결된다면 검을 배울 이유가 없지.’

     

   나는 놈의 공격에 대비해 하체에 마력을 집중했다.

   중요한 것은 ‘마력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으냐’가 아닌, ‘가지고 있는 마력을 어떻게 운용을 할 수 있는가’ 였으니까.

     

   파츠츳!!!

     

   추뢰신법 追雷身法

     

   2층에서 사천당가의 당휘소로부터 배운 인간의 기술이 나의 발에서부터 발현됐다.

   그리고 내가 잠깐 머물렀던 장소를 마왕의 마력이 꿰뚫으며 나의 흐릿한 잔상을 무자비하게 터트렸다.

     

   -죽어! 죽어! 죽어어어!!!

     

   놈의 손에서부터 뻗어진 수십 갈래의 마력 줄기가 들판을 초토화시키기 시작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츠츳.

     

   단 세 걸음.

   정확히 세 번의 도약과 고개를 한 번 까딱이는 것만으로도 나는 놈의 공격을 모조리 피해낼 수 있었다.

     

   “다 했어?”

     

   나는 검을 들었다.

   뒤로 움찔거리는 놈의 몸을 보니 어디로 피할 생각인지 눈에 훤히 보였다.

     

   월광검법 제이식 月光劍法 第二式

   황홀경 怳惚境

     

   나는 검을 들어 하늘로 마력을 발산했다.

   나의 검끝에서 만들어진 자그마한 검기들이 하늘로 쏘아지며 거대한 환상을 빚어낸다.

     

   마왕은 하늘이 빛으로 온통 뒤덮여 졌다는 착각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그것은 마왕의 눈에 나의 검이 닿았기 때문. 실제로 쏘아진 검기는 손가락만한 작은 줄기들에 불과했다.

     

   콰과과과광!!!

     

   -크아아악!!!

     

   무수한 폭발과 함께 놈의 입에서 고통스러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튕겨지는 마왕의 신형에 나는 곧장 추격을 시작했고 눈을 부릅뜬 놈은 악에 받쳐 이를 꽉 깨물고는 나를 향해 날카로운 손톱을 휘둘렀다.

     

   월광검법 제삼식 月光劍法 第三式

   일섬 一殲

     

   하지만 나의 검이 한 수 빨랐다.

   기다랗게 늘어난 놈의 손톱이 나의 뺨을 살짝 스쳐 갔지만 그것은 뼈를 깎기 위해 내가 스스로 내어준 것.

     

   이윽고 나의 검이 놈의 목을 향해 날아들었고 놈은 아슬아슬하게 팔을 들어 나의 검을 향해 휘둘렀다.

     

   스걱!!!

     

   무언가를 베어낸 서늘한 감촉이 나의 손끝에서부터 뇌까지 전달됐다.

   힘줄을 잘랐을 때의 긴장감. 하지만 그 이후에 느껴진 불쾌한 감각에 나는 내지르던 검을 도로 거두어들이며 놈과의 거리를 벌렸다.

     

   핏!

     

   “으음……”

     

   목에서 느껴지는 뜨끈한 온기에 나는 손을 가져다 댔다.

   은근하게 맺힌 핏방울이 만져졌지만 깊은 상처는 아니었던지 큰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긴장한 탓인가?’

     

   마왕은 5층의 최종 보스답게 가볍게 상대할 만한 적은 아니었다.

     

   내가 놈을 제압할 수 있는 이유는 두 가지.

   하나는 놈이 인간의 모습을 한 채, 나와 전투를 벌이고 있다는 점이었고 다른 하나는 놈의 피지컬이 압도적이었던 탓인지 싸움을 하는 방법을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크으…으으으……!

     

   하지만 지금 보니 놈도 슬슬 나와의 전투에 적응을 하는 중인 것 같았다.

   처음에는 잘 따라오지도 못하던 속도를 슬슬 따라잡고 있었고 내가 놈의 어깨나 다리의 움직임을 보고 다음 수를 예측하듯, 나의 검을 보며 다음 공격을 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근데 팔이 하나 없어져서 어쩌냐?”

   -크아악! 제기랄!!! 죽일 거다! 네놈! 반드시 죽일 거다!!!

     

   나의 도발에 놈이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며 몸부림쳤다.

     

   이미 승기는 나에게로 넘어온 상황이었다.

   목을 지키느라 희생당한 팔이 저만치 떨어져 나뒹굴고 있었고 놈은 이미 반쯤 이성을 잃은 채, 발악을 하고 있었으니까.

     

   “할 수 있으면 해 봐.”

     

   이성을 잃은 적만큼 상대하기 쉬운 것은 없었다.

   침착하지 못한 만큼 공격은 단조로워질 수밖에 없었고 흥분하는 만큼 무리한 공격을 감행할 확률이 높았으니 당연한 이치였다.

     

   하지만 문제라면……

     

   -죽여…… 반드시…… 네놈……!

     

   그 상태가 내가 상상하던 범위를 서서히 넘어서고 있다는 것.

     

   -끄르륵……!

     

   그나마 남아 있던 놈의 날카롭던 눈동자가 완전히 뒤집어지며 흰자위를 드러냈다.

   그리고 몸을 격렬하게 떨어대던 놈이 바닥에 엎드리더니 등에서부터 무언가가 꿈틀거리는 형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쓰읍… 이건 예상 못 했는데.”

     

   놈의 신체가 서서히 변형되기 시작한다.

   마왕보다 내가 우위에 설 수 있었던 장점 하나가 무용지물이 되어가는 상황.

     

   하지만 나는 아주 정정당당하고 이성적인 ‘인간’이었기에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했다.

     

   스릉!

     

   나는 무명검을 착검하며 아공간 주머니에 잘 모셔두었던 ‘한철검’을 곧바로 꺼내 들었다.

     

   “오히려 기회인가?”

     

   어릴 때부터 나는 책이나 다양한 매체에 등장하는 악당들이 주인공의 변신을 기다려 주는 이유를 납득하지 못 하는 어린이였다.

   변신할 때 총공격을 가한다.

   합체 로봇이 날아올 때 그 연결점을 끊고 단숨에 폭파시킨다.

     

   그리고 주인공이 소환수를 소환하거나 조력자가 오기 전에 상대를 제압하는 것.

   그것이 승리를 고집하는 악당들이 가져야 하는 최선의 덕목이었고 최선의 수라고 ‘어린 시절의 김시인’은 늘 생각해 왔었다.

     

   [‘한기의 심장(S)’을 사용합니다.]

     

   상대가 뭔가를 할 틈을 주지 않는 것.

   필살기를 쓰기 전에 적을 아주 피떡으로 만들어 놓는 것.

     

   푸른 보석을 들고 있는 나의 손에서부터 차가운 냉기가 스며들며 이윽고 그 감각이 심장을 감싸기 시작한다.

     

   한철검에서 뿜어진 냉기로 인해 주변의 온도와 습도가 급격하게 감소한다.

   공기 중의 물은 물론, 목에서 흐르던 따뜻한 피까지 얼려 버린 강렬한 냉기.

     

   음한지기(陰寒之氣)를 넘어 빙(氷)에 가까운 극음(極陰)의 기운을 담은 찬란한 검기가 나의 손끝에서 발현됐다.

     

   꾸욱.

     

   나는 무릎을 굽히며 서서히 커져가는 마왕의 몸집을 가만히 응시했다.

   사람의 형태를 벗어나기 전에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두 번 다시는 없을 절호의 기회.

     

   마왕의 신체는 상상 이상으로 튼튼했다.

   그리고 그런 몸을 절단하기에는 열기보다는 냉기가 적합하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었다.

     

   월광보법 月光步法

     

   나의 발끝에 응축된 음기가 폭발하며 말라있던 땅이 순식간에 얼어붙는다.

   극음의 기운으로 펼치는 천월문의 비전 신법. 하지만 그 찰나의 순간 나는 평소에 느꼈던 감각과는 다른, 낯선 감각을 체험할 수 있었다.

     

   월하신보 月下神步

     

   시야가 좁아지며 청각이 사라졌다.

   세상이 슬로우 모션으로 보이듯, 풀이 움직임을 멈췄고 흩날리던 먼지들이 자리를 지킨다.

     

   마왕과 나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다.

   그랬기에 단 한걸음에 그 차이를 완전히 좁힐 수 있었고 나는 그 자리에서 천천히… 그리고 여유롭게 검을 휘두를 수 있었다.

     

   스으으윽……

     

   내가 있었던 자리를 향해 고개를 치켜들기 시작하는 마왕의 눈이 보인다.

     

   억울함, 분노, 의심.

   부정함이 복합적으로 뒤엉켜 있는 놈의 감정이 눈을 통해 느껴졌지만 나는 무심히 나의 검을 움직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파아아아앙!!!!!

     

   나의 등 뒤로 거대한 폭풍이 일며 뒤늦게 강렬한 폭발음이 터져 나왔다.

     

   소닉붐.

     

   음속을 돌파하며 나온 충격파로 인한 폭발음이 나의 뒤를 따랐고 반절이 되어 버린 마왕의 몸체가 허무하게 바닥을 나뒹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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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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