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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8

    왜 제임스와 같이 가는 곳에는 언제나 사고가 발생하는 걸까?

    높은 집값을 자랑하던 트리니티 연구소 인근은 제임스와 같이 가는 순간 지옥으로 변모했다.

    골목에서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

    수백 명이 두 눈을 크게 뜨고 광기로 번들거리는 안광을 쏘아내는 모습은 악몽에서나 볼 것 같은 끔찍한 장면이었다.

    게다가 경호원들의 불꽃에 타는 사람의 끔찍한 비명은 귓바퀴에 달라붙어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분명, 영원히 잊지 못하고 악몽으로 꾸겠지.

    제발 살려달라는 내 기도를 신이 들어주셨는지, 이변이 발생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신호에 반응하듯 갑작스러운 변화였다.

    집요하고 끈질긴 관악구 주민들이 갑자기 무언가를 극도로 두려워하면서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때 제임스가 갑자기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았다.

    나도 따라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는데, 이해할 수는 없는 공포가 밀어닥치는 광경을 목격했다.

    마치 괴물의 손톱이 공간을 찢어버린 것 같은 흔적이었다.

    흔적은 금세 사라졌지만, 뭔가 위험한 것이 이곳에 있는 게 분명했다.

    “제임스, 지금 관악구에서 탈출하죠.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요.”

    다행히 제임스의 경호원들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다.

    주민 모두가 오브젝트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지옥도에서 계속 버티는 것만큼 미련한 짓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제임스의 생각은 달라 보였다.

    “아니, 트리니티 연구소로 가자.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꼭 확인해야겠어.”

    제임스는 굳게 닫혀있던 가방 속에 숨겨져 있던 어떤 돌멩이를 꺼내서 확인하더니 터무니없는 소리를 내뱉었다.

    제임스가 손에 쥔 돌멩이는 일정 주기로 밝아졌다, 어두워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마치 심장 박동처럼.

    ***

    그림자로 가득한 공간에서 어둠을 가르듯이 내려오는 존재가 있었다.

    인간의 몸속에 악의를 가득 채워 넣은 이질적인 존재가 자신만만하고 느긋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아, 회색 사신. 여기 있었군.”

    그의 몸에서는 인간에 대한 모독이 흘러넘쳤다.

    어찌나 악의가 짙은지, 황금 사신들은 물론이고 푸른 사신들까지 화가 난 표정으로 그 존재를 노려보고 있었다.

    <나쁜 인간!>

    <나빠!>

    검은 점액으로 자기 몸을 가득히 채우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인간이 희생되었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나는 ‘파괴되지 않는다’라는 개념을 손에 넣었다.”

    그는 양손을 좌우로 벌리며 여유로운 미소를 띠었다.

    “나는 이제 물리적인 수단으로 다치지 않는다. 현대 기술로 부수지 못했던 수많은 오브젝트와는 달리 나는 진정한 불멸이 된 것이다!”

    아… 그래?

    나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헛소리하는 남자를 쳐다봤다.

    내 표정을 본 남자는 얕보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오브젝트에게 괜한 소리를 했나 보군.”

    남자의 그림자에서 커다란 괴물이 솟아올랐다.

    아귀를 벌크업 시킨 아귀 아종.

    익숙한 모습의 오브젝트가 그림자 속에서 나타났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감탄했다.

    이상하게 오브젝트 여러 마리가 뭉쳐있는 듯한 기분을 느꼈는데, 이제야 그 원인을 알 수 있었다.

    저 남자, 도대체 오브젝트를 몇 마리나 몸속에 품고 있는 거지?

    100마리는 넘어 보이네.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오브젝트라도 물리 면역을 얻은 아귀의 힘은 느낄 수 있겠지.”

    내가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했으면서, 입을 잠시도 쉬지 못하는 남자였다. 

    쿵쿵.

    큰 발걸음 소리를 내면서 아귀 아종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황금 사신들도 폴짝폴짝 뛰면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저 아귀 아종의 파괴 조건은 동일했다. 

    <재생력을 고갈시킨다.>

    거기에 물리 면역이 있어 봤자, 황금 사신에게는 별로 상관없는 일이었다.

    위협적인 속도와 힘으로 달려들던 아귀는 황금 사신의 박치기를 맞고, 온몸에 구멍이 뚫렸다.

    황금 사신의 부피만큼 부피를 잃어버린 아귀 아종. 

    검은 점액이 흘러나오며 그 상처를 메우려고 했지만, 황금 사신의 장작이 상처에 남아서 그 재생을 끊임없이 방해했다.

    전신에 구멍이 뚫리고,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던 아귀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

    남자는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도대체, 왜?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건가?”

    정신이 나가버린 사람처럼 표정을 계속 바꾸면서 남자는 계속 중얼거렸다.

    “모르는 것? 아니야, 나는 모든 ‘마도서’를 이해하고 있을 터.”

    “그런 ‘계약’이었으니까. 나는 모르지 않는다.”

    “뭔가 잘못됐어.”

    “아니, 잘못된 것은 없어.”

    횡설수설하던 남자는 갑자기 머리를 움켜쥐고, 소리를 질렀다.

    그와 함께 그림자 속에서 수많은 오브젝트가 솟아올랐다.

    “그래. 나에게는 이렇게나 많은 마도서들이 있었지.”

    남자는 뭔가 홀가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림자에서 오브젝트가 솟아오를 때마다, 연구소가 박살이 났다.

    오브젝트들을 모두 수용하기에는 연구소가 너무 좁았으니까.

    많아도 너무 많다. 

    황금 사신이 처리하려면 귀찮을 정도로 오래 걸릴 것 같네.

    어쩔 수 없지.

    나는 허공을 움켜쥐었다.

    뀩.

    허공을 단단히 움켜쥐고, 가로로 있는 힘껏 휘둘렀다.

    끼이이이이익.

    공간이 비명을 지르며 찢어졌다.

    공간이 찢어지며 그 앞에 존재하는 모든 오브젝트와 남자를 반으로 잘라버렸다.

    ***

    소장은 죽음의 문턱에 서자, 아주 오래전의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기억에 저편 속에 숨어있던 과거.

    [이런, 안타깝게도 당신은 연금술사가 되기엔 지성이, 손재주가, 재능이 부족하군요.]

    재능이 없는 연금술사였던 소장이 계약의 마도서와 만나는 순간의 이야기였다.

    계약의 마도서는 소문처럼 수많은 가스램프를 가지고 다니는 남성이었다.

    다만 얼굴을 기억할 수가 없어서 기묘한 인상을 풍겼다.

    “너는 사람들과 계약하고 소원을 이뤄준다며? 계약하자. 대가는 무엇이라도 좋아!”

    위험한 계약이었다. 

    마도서와 엮인 사람이 나오면 마을 전체를 불태워 버릴 정도로 말살하는 것이 당연한 세계였으니까.

    [연금술사가 되고 싶은 것 같군요.]

    [그럼 이런 계약은 어떻습니까?]

    계약의 마도서는 그에게 계약을 제시했다.

    [현재, 그리고 미래. ‘이 땅의 연금술사’들이 알아내게 될 모든 ‘마도서’ 관련 지식을 드리겠습니다.]

    [대신 당신은 새로운 지식을 얻기 힘들어지는 겁니다.]

    [현재의 지식과 미래의 지식을 교환하는 거죠.]

    [계약의 종료는 당신이 죽는 순간입니다.]

    [계약을 수락하신다면, 제 램프를 하나 받아 가시죠.]

    안 할 이유가 없는 계약이었다.

    형편없는 재능을 가진 소장이 얻을 미래의 지식 따위 별 가치도 없을 테니 말이다.

    계약하자, 소장은 순식간에 연금술사가 될 수 있었다.

    연금술사가 되기는 너무도 쉬웠다.

    그 누구도 소장보다 ‘마도서’에 대해 잘 알지 못했으니까.

    근거는 없어도, 그가 아는 것이 진리였다.

    그가 곧 정답이었다.

    그것은 생소한 토지에 발을 딛고 나서도 마찬가지였다.

    이곳은 연금술사도 없는 머저리들의 땅이었으니까.

    그리고 마지막 순간, 그는 계약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나… 나는 대체 무엇을?”

    그는 연금술사의 휘장을 달 수 있게 되었지만, 연금술사는 아니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새로운 지식을 얻을 수 없는 학자라니!

    모든 것을 이미 알고 있고, 새로운 지식을 얻기 힘들어진 소장은 독선적으로 되어갔다.

    그리고 왜 연금술사가 되려고 했는지조차 까먹어 버렸다.

    분명 연금술사가 되는 것은 목표가 아니라 수단이었을 텐데.

    ‘이런 결말을 원한 것이 아니었는데….’

    마지막 순간 연금술사의 유명한 경구가 떠올랐다.

    <마도서의 사용자에게는 언제나 끔찍한 결말만이 기다리고 있다.>

    ***

    트리니티 연구소에 가까워졌을 때, 현실의 구조가 찢어지는 듯한 불안한 소음이 들려왔다.

    너무나 부자연스럽고 본능을 자극하는 불길한 소리였다.

    통역사는 이 소리에 잔뜩 겁을 집어먹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제임스. 역시 돌아가는 게 어때요? 뭔가 심상치 않아요.”

    하지만 제임스는 단호한 얼굴로 말했다.

    “0호 유물 관련은 절대로 타협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야. 자네가 좀 이해해 주게.”

    불안한 통역사의 표정과 달리, 제임스의 표정은 뭔가의 예감을 느낀 것처럼 흔들림이 없었다.

    연구소에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그 처참한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깔끔하고 세련되었던 트리니티 연구소는 이제 예전 모습은 찾아보기 힘든 상태가 되어버렸다.

    건물이 쪼개져서 갈라진 틈으로 진입하자, 진한 석유 냄새와 충격적인 장면이 그들을 반겨주고 있었다.

    트리니티 연구소 건물로 들어서자마자 본 것은 어떤 남자의 하반신이었다.

    상체가 뜯겨나가 그대로 남겨진, 우뚝 선 하반신.

    그 처참한 흔적 앞에, 무심한 표정의 회색 사신이 그 남자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잘린 상반신은 그대로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상반신만 남은 남자는 눈을 희미하게 뜨고 있었는데, 그 초점이 맞질 않아 먼 곳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나… 나는 대체 무엇을?”

    그 남자의 희미한 목소리는 멀리 퍼지지 못하고 허공으로 흩어져 버렸다.

    제임스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의문점이 떠올랐다.

    저 남자는 트리니티 제3 연구소장일 텐데,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하지만 그런 상념은 이어서 들려온 커다란 소리에 사라져 버렸다.

    콰앙!

    트리니티 시설물의 잔해를 뚫고 거대한 오브젝트가 나타났다.

    거대한 몸통.

    주변을 가득 메우고 휘젓는 촉수.

    매끈하고 점액질로 번들거리는 피부.

    커다란 입과 그 입을 가득 채운 날카로운 이빨.

    최고 위험등급 오브젝트, 아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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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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