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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8

       

       

       허울 뿐인 것. (1)

       

       

       

       내가 다짜고짜 별채에 들이닥치기 전에 계획했던 생각은 이런 게 아니었다.

       본래의 계획은 조금 더 예의 바른 방식이었다. 애초에 이렇게 폭력적으로 들어올 생각이 아니었는데 말이지.

       

       원래라면 거래할 생각이었다. 나는 다행히도 남궁비아가 세가로 돌아가지 않아도 되게끔 할 정도의 가치를 지닌 것을 가지고 있었다.

       

       남궁비아가 쓰던 검에 대한 정보.

       정확히 말하자면, 전생의 마검후가 사용하던 검에 관한 얘기였다.

       

       언젠가 말했던가, 세가나 문파가 지니고 있는 귀물은 특수한 효능도 그렇지만,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고.

       그녀가 사용하던 검 또한 이와 같았다. 옛 과거 남궁의 절대자이자, 혈마를 막아냈던 영웅, 뇌천일검 남궁명이 발견한 귀물이자 중원 오대 명검이라 불리는 검이었다.

       

       뇌검(雷劍) 뇌아(雷牙).

       

       현재로서는 아마 천존이 가지고 있어야 할 검이지만, 지금 그의 손에는 뇌아가 없을 것이다.

       얄궂게도 지금 뇌아는 무당이 가지고 있을 테니 말이다.

       

       무당괴선.

       

       무당파의 대표 고수 중의 한 명인 그가 뇌아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일이 어찌 그렇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전생에 마검후에게 직접 들었던 얘기다.

       

       마검후가 제갈혁도 아니고 과연 내게 이러한 걸로 거짓말을 했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건 잃어버린 상징성에 대한 정보다.

       과연 남궁진 같이 가주로서 힘이 부족한 이가 이를 묵인하고 넘어갈 수 있을까? 나는 그렇지 않으리라 예상하고 있었다.

       

       [이러한 정보를 가지고 있음에 대한 건 어찌 설명할 생각이더냐.]

       ‘신의가 준 패가 있지 않습니까.’

       

       개방에 관련된 패는 이러한 일에 도움이 될 것이다. 나는 이 목패가 어떤 쓰임새가 있는지 모르겠으나. 야영중에 검후가 보고 놀랐던 걸 떠올리면, 힘이 없는 물건은 아닐 것이다.

       

       진실에 거짓을 섞어 개방의 이름을 빌리면 어렵지 않게 넘길 수 있는 얘기였다.

       

       [그러다 그 남궁 놈이 개방에 찾아가 묻기라도 하면?]

       

       이 부분에 대해서도 두 가지 방법을 생각해 놨지만, 지금에 와선 쓸모없는 얘기가 되어버렸다.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슬슬 해가 지기 시작할 시점, 내가 이장로에게 물었다. 나름 진중한 사안인지 이장로의 표정도 조금은 굳어있었다.

       

       “남궁 가주와 일장로가 따로 담화를 하고 있다는구나.”

       

       이장로의 말에 내가 혀를 찼다. 듣기만 해도 좋지 못한 향기가 나는 것 같은 말이었다.

       

       

       

       

       

       ******************

       

       

       

       

       나는 처소로 돌아와 위설아와 얘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평소와 딱히 다를 바 없는 분위기였다.

       남궁비아가 묵고 있다는 별채로는 시종을 보내 말을 전해둔 상태였고.

       

       밥을 먹고 나서 시간이 좀 남은 시점이기 때문이다.

       

       마루 앞에 위설아를 앉혀두고 약과를 먹으며 헤실거리는 위설아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오늘은 양 갈래머리네?”

       “언니가 해줬어요! 예뻐서 마음에 들어요.”

       

       위설아의 머리모양은 매일 바뀐다. 그날그날 시종들이 마음 내키는 대로 위설아의 머리모양을 만져주기 때문이다.

       

       오늘은 양 갈래의 날인가보다.

       양쪽으로 묶인 매끄러운 머리칼을 만지고 있자니 위설아가 등을 기대듯 품으로 푹 들어온다.

       나는 자연스럽게 위설아의 볼을 쓰다듬었다. 위설아도 딱히 거부하지는 않았다.

       

       “응?”

       

       그렇게 보들보들한 볼살을 만지는데, 손에 들어오는 감촉이 예전과 사뭇 달랐다. 

       

       “너 살 빠졌어?”

       “넹?”

       

       원래의 볼이 손에 꽉 차진 않아도 이렇게 비는 느낌은 아니었는데. 지금의 위설아의 볼은 예전에 비해 한층 홀쭉한 느낌이었다.

       

       ‘그러고 보니….’

       

       위설아의 팔을 잡아 손으로 잡아보았다. 그렇게 보니 확실했다. 살이 빠져있었다.

       몇 달 전만 해도 보기 좋게 살이 올라 귀여웠는데, 이제는 턱선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뭐야.”

       

       먹는 양이 줄었나? 그런 것 치고는 오늘 삼시세끼 전부 밥그릇을 꽉꽉 채워 먹는 걸 내가 봤는데.

       심지어 지금도 내가 쥐여준 약과를 맛있게 먹고 있지 않은가. 내 미묘한 반응에 위설아가 내게 묻는다.

       

       “도련님 왜 그래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왜 이렇게 빠졌지? 남몰래 운동이라도 하나.

       

       혹시 몰라 기감을 넓혀 위설아의 몸을 살펴봤지만, 내기는 몸에 담겨있지 않았다.

       아무것도, 여전히 위설아의 몸은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그릇이다.

       

       일단 무공은 아닌 것 같은데, 그럼 그냥 운동이라도 하는 건가. 

       아니면…. 성장기라서 급격히 살이 빠지기라도 하는 걸까. 키는 좀 큰 거 같은데.

       

       나만 하더라도 올해 들어서 키가 상당히 커졌다. 물론 작년에 비해서 그렇다는 거다.

       

       ‘…딱히 기대는 안 하지만.’

       

       전생에 도달했던 키가 있으니, 이제 와서 엄청 커질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고 있었다. 우선 위설아 같은 경우는 살이 빠져 미모는 더 물이 올랐으나, 뭔가 있던 살이 빠지니 특유의 귀여움이 조금 줄어든 느낌이었다.

       

       “밥을 더 먹여야겠어.”

       “넹…?”

       “아니야, 아무것도.”

       

       빠지면 채우면 되지. 그렇게 마음을 다잡으니 내게 시종이 다가왔다.

       

       “도련님. 이장로님께서 오셨습니다.”

       “이장로님이?”

       

       말을 전해 듣자마자 이쪽으로 거한이 다가온다. 다소 표정이 굳어 보이는 이장로였다.

       

       [저 덩치는 봐도 봐도 적응이 잘 안되는구나.]

       ‘명색이 화산파 사람이신데, 저런 몸이 이상하게 보이십니까?’

       [그거 무슨 개떡 같은 말이더냐? 화산은 도문인데 저 근육덩이랑 무슨 상관이라고….]

       ‘…’

       

       진짜 몰라서 그러는 걸까? 조금 머리가 지끈거리려 하길래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나는 곧바로 이장로에게 물었다.

       

       “이장로님 무슨 일 있으십니까?”

       

       표정이 상당히 좋지 않았다. 항상 걸걸하게 웃고 다니는 양반이 말이다.

       

       “양천아.”

       “예.”

       “아무래도 문제가 좀 생긴 것 같구나.”

       “문제요?”

       

       이장로의 말에 자세를 조금 고쳐 잡았다. 이장로가 저렇게 말할 정도라면 무언가 일이 있다는 얘기니까.

       내가 눈빛을 달리하자, 이장로가 한숨과 함께 말을 꺼낸다.

       

       “남궁 가주와 일장로가 따로 담화를 하고 있다는구나.”

       “…그게 갑자기 무슨 말씀이십니까?”

       

       너무 생뚱맞게 튀어나온 말이었다. 일장로와 남궁진이라니. 무슨 듣지도 보지도 못한 조합인가.

       

       “그런 건 또 어디서 들으셨습니까.”

       “어허, 노부도 다 눈과 귀가 있느니라.”

       “사람은 눈과 귀는 원래 있… 알겠으니까 주먹 내려놓으십쇼, 농담이잖습니까.”

       

       장난 좀 치려고 하니 곧바로 꿀밤을 때릴 기세기에 재빨리 말을 정정했다.

       

       “…이놈이 이게 얼마나 좋지 못한 상황인 줄은 알고 있는 게냐?”

       “안 좋아봐야 얼마나 안 좋다고….”

       

       나는 그저 픽 웃고 말 뿐이다.

       이장로가 이렇게까지 다급해 보이는 것을 보면, 뭔가 문제가 있나 싶지만.

       일장로가 원하는 바를 떠올리자면, 의도의 결말이 그 노인네가 원하는 방향으로 갈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렇게까지 구가를 원하는 건가?’

       

       내 입장에서는 그게 더 신기한 일이었다. 허울 뿐인 자리가 뭐가 그리 탐난다고. 아버지가 앉고 있고 내가 앉을 자리가 그리도 높아 보이는가.

       

       일장로는 모르겠지, 그곳은 왕좌가 아니다. 아버지가 악착 같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걸로 보이는 걸까? 내가 보기에는 누구보다 내려놓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고 있는 거로 보이는데.

       

       일장로의 문제라 하면, 자리와 욕망에 눈이 멀어 아주 가벼운 사실은 정작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장로가 이런 일을 알아 올 정도라면, 아버지가 모를 리가 없다. 알면서도 일장로의 행동을 막거나 구태여 말을 꺼내지 않는 것이다.

       

       이런 이유에 대해 일장로는 아무런 예상도 하지 못하는 걸까.

       

       ‘…그 인간도 하여튼 극성이야.’

       

       구가를 위해 일생을 살아온 일장로에 대한 노고는 인정하나.

       바라고자 하는 신념이 잘못되었고, 얻고자 하는 자리와 의미가 뒤틀려있었다.

       

       전생에 일장로가 어떤 방식의 결말을 맞이했는지 알고 있는 나로서는 참 부질없는 발악이라고밖에 볼 수 없었다.

       

       ‘뱀 같은 늙은이.’

       

       그 두 사람의 담화라.

       정보를 듣고서야 살짝 애매하던 부분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남궁진이 구태여 구가까지 찾아와 담화를 나누고 남궁비아를 데리러 가려 했던 이유.

       그 목적 안에 일장로가 껴있었던 모양이다. 

       

       ‘어쩐지 조용하더라니.’

       

       예전에 구절엽을 팬 뒤로 딱히 움직임을 보이지 않으니 신경을 덜 쓰고 있었는데….

       아무것도 안 하고 있던 건 아닌 모양이다.

       

       “뒤통수라도 맞은 기분이구나.”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기껏 남궁 쪽 장로들과 한바탕해서 약혼까지 끌고 왔더니, 가주라는 작자는 마음이 틀린듯하니 문제지.”

       “…그거 여쭤보고 싶었는데, 대체 어떻게 하신 겁니까?”

       “무얼 말이냐?”

       “남궁과의 약혼 말입니다.”

       

       다른 곳도 아니고 남궁세가다. 어중이떠중이와는 엮이지 않는 고고한 곳일 터인데. 방계도 아니고 가주의 직계 혈족과의 약혼할 수 있었던 이유를 모르겠다.

       

       하물며 파혼 경력이 있는 것은 물론이고, 세간에 조금이라도 알려진 내 소문이라 하면 좋지 못한 것이 대부분인데, 남궁세가쪽에서 이걸 쉬이 받아들였을 리 없었다.

       

       내 물음에 이장로는 잠깐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내게 말한다.

       

       “알면 다친다.”

       

       이장로의 표정이 씩 웃고 있다. 저건 분명 날 놀리는 표정이었지만, 차마 더 묻고 싶진 않았다. 왠지 모르게 정상적인 방법은 아니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렇게 되면 뭔가 수를 써야겠구나.”

       “수는 무슨 수를 씁니까….”

       “어허! 일이 어찌 될 줄 알고 그리 태평한게야!”

       “아니 그럼, 뭐 어쩌려 하십니까. 남궁 가주와 담판 지을 것도 아니실 테고, 남궁 쪽 장로들이랑 또 한바탕하실 건 아니잖아요.”

       “.…오?”

       “…예?”

       

       ‘오?’라니, 왜 감탄하지…?

       내 불안감은 거짓이 아니라는 듯 곧바로 이장로가 몸을 일으켰다.

       

       “양천이, 너 치고는 참 똑똑한 발상이 아닐 수 없구나, 내 잠시 다녀오마.”

       “아, 어딜 가려고요. 이장로님 잠깐, 잠깐만 진정해보세요, 이 야밤에 갑자기 어딜 가려고요, 우리 우선 천천히 이성적으로…. 아니, 가지 말라니까!”

       

       다급히 붙잡으려 했지만 이장로는 불씨를 툭 남기더니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진다.

       몸에 내기까지 둘러 가며 붙잡으려 했지만, 이미 기척이 사라진 다음이었다.

       

       “이…이 미친 노인네가…!”

       

       경지를 여기까지 끌어올렸음에도 이장로 한 명조차 쉬이 붙잡지 못하다니. 

       

       “진짜 남궁세가로 간 건 아니겠지?”

       

       설마, 진짜 그렇게 미친 행동력을 가진 건 아닐 것이다.

       만약 정말 갔다고 하더라도, 가서 뭘 할 수 있다고? 

       

       ‘…라고 생각하면서 식은땀을 흘리는 내가 싫다.’

       

       저 미친 노인네는 진짜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무슨 뒷배가 그렇게 짱짱하길래 시종일관 저렇게 나설 수 있는 걸까.

       

       “…하.”

       

       한숨을 푹 내쉬고 결국 몸을 일으켰다. 슬슬 시간도 된 것 같고, 가만히 있기에는 글러 먹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가 움직이니 나한테 기대어 살짝 졸고 있던 위설아가 눈을 비비며 묻는다.

       

       “도련님 나갔다 올 거예요?”

       “아무래도 그래야겠네.”

       “같이 갈까요?”

       “어딜 갈 줄 알고 같이 간대?”

       “어디든 괜찮은데….”

       

       하품을 참으며 말하는 위설아의 머리를 손으로 쓱쓱 헝클었다. 

       

       “홍와가 찾기 전에 어디 가서 잠이라도 자고 있어, 금방 올 테니까.”

       “으응….”

       

       잠결에 대답하고서는 졸음을 못 이겨 그대로 마루에 툭 하고 쓰러진다.

       내가 볼 때는 저러다 홍와한테 잡혀 끌려갈 게 보였다.

       

       거기까지 보고서 귀찮음을 참고 걸음을 옮긴다.

       와중에 신 노야가 내게 말을 툭 뱉었다.

       

       […어째 구 씨 놈 중에서는 제정신인 인간이 단 한 명도 보이지 않는구나.]

       ‘그러게 말입니다. 저 빼고 하나 같이 그냥….’

       [시답잖은 얘기 말고 가기나 하거라.]

       ‘…’

       

       머쓱하게 입을 꾹 다물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_ _ )

    다음편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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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CFZ, 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Under the Heavens, The Zenith's Childhood Friend, 천하제일인의 소꿉친구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 Artist: Released: 2021 Native Language: Korean
Instead of struggling meaninglessly, he acknowledged his 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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