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위 대협께서 그런 정보를 알고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염소수염은 야비한 포커페이스를 유지한 채로 순순히 인정했다. 어중간하게 잡아떼다가 나한테서 어떤 공격이 날아올지 모르기 때문이리라.
나 혼자 적진에 들어온 셈이지만, 누가 갑이고 을인지 따져보면 내가 절대갑일 테니까.
하오문은 무한에서 사고를 칠 수 없다.
하오문은 초절정의 무인을 상대할 무력이 없다.
하오문은 굳이 나와 적대할 이유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자가 배신자일 경우 나를 회유하려 하겠지.
아니라면…나와 협력할 터.
과연 눈앞의 염소수염은 어느 쪽일까.
나는 등받이에 느긋하게 등을 기댄 채로 입을 열었다.
“마교놈한테 빌붙은 놈들 좀 터니까 여러 가지 정보가 손에 들어오더군.”
마나코어에서 조금씩 오러를 풀어낸다.
난동을 부릴 생각은 없지만, 혹시나 허튼짓을 하면 그대로 갚아줄 생각이었다.
…설마 그러겠냐마는.
“역시 위 대협. 강호에 퍼진 위명이 허명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 소리는 됐고. 대답은?”
승낙이냐, 거절이냐.
내가 그를 지그시 쳐다보자, 염소 수염은 조금 공손해진 얼굴로 곧장 대답했다.
“마교 지부에 대한 정보를 알려드리겠습니다. 하지만…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뭐지?”
“배신자를 처단하는 데 도움을 주신다면…그에 관련된 정보는 물론, 원하시는 다른 정보까지 드리겠습니다.”
염소 수염이 내게 고개를 숙였다. 진심으로 부탁하는 건가.
“나한테도 그렇게 시간이 많은 편은 아닌데.”
“방법이 있습니다. 하오문주에게 대대로 내려오는 신물로 소집령을 내릴 수 있습니다. 마침 다음대 하오문주에 관한 일로 이야기가 좀 나오는 터라…자연스럽게 소집을 할 수 있겠지요.
저희가 배신자를 불러내는 데 성공하면…그들을 쳐주셨으면 합니다.”
일이 점점 복잡해지는데.
무림맹주를 살리기 위한 과정이 이리도 길고 복잡할 줄이야.
하오문을 구하고, 정보를 얻어서 마교 지부를 털고, 승계비무 승인을 받기 위한 작업까지.
내가 스스로 자초한 일이지만, 쉴 시간 따위는 없다는 사실에 조금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2년 정도만 바짝 달려서 마교가 아예 전쟁을 못 하게 만들던지, 아니면 마교를 물리쳐서 평화롭게 만들든지 하면 남은 인생을 평화롭게 보낼 수 있겠지.
“그런데 이 이야기도 곧 새어나가는 게 아닌가?”
“천향루에 있는 사람들은 제가 손수 키운 녀석들입니다. 저를 그리 쉽게 배신할 리가 없지요.”
뭐, 자기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
“소집령은 언제쯤 벌어지나?”
“서른 날 후입니다. 하남의 허창에서 모이기로 했으니, 그때 즈음에 호위무사로 위장해 저와 같이 가시면 됩니다.”
“나를 끌어들이려는 이유가 뭐냐.”
염소수염의 눈을 쳐다본다.
그는 내 물음에 진지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며 대답했다.
“하오문이 비록 밑바닥 사람들이 모여 만든 문파라지만, 서로를 지키기 위해 만든 문파입니다. 가족을 배신하는 자는…응당한 처벌을 받아야지요.”
“하오문의 힘으로는 배신자 처단이 힘든가?”
“아시다시피 하오문은 무력이 아닌 정보로 쌓아올린 곳입니다. 배신자들이 마교의 지원을 받는다면…”
마인인가.
“그런 상황에서 소집령을 굳이 거는 건.”
“방심을 유도하기 위함입니다. 아무것도 모른 척 소집하는 거지요. 저들이 모이면 하오문에서 비밀리에 육성한 무인들로 하여금 저들을 칠 생각이었습니다.”
원작에서도 별 내용이 나오지 않아서 어떻게 하오문이 잡아먹혔는지 자세하게 나오지 않았는데. 이런 뒷배경이 있었던 건가.
내가 개입하지 않으면 하오문주가 살해당하고 역으로 하오문이 잡아먹히는 건가. 그리고 하오문의 정보는 마교가 중원을 침공하는 데 아주 큰 역할을 할 테고.
“…하지만 초절정고수에 비하면 조무래기에 불과하지요.”
하긴.
돈 들여 키운다고 모두 고수가 될 거였으면 대문파들이 그만한 품을 들여가며 제자를 들이는 이유가 없지.
뛰어난 무인을 육성하기 위해선 적절한 지원과 스승, 좋은 무공이 필요할 테니.
한때 그런 식으로 육성되었던 나는 과거를 떠올렸다. 훈련소에서 주옥같이 구르던 나날들. 죽기 싫어서 이 악물고 따라가려고 노력 많이 했었지.
“뭐…내 입장에서도 하오문이 필요하니 나쁘지 않은 제안이야. 하지만 시기가 너무 애매하군.”
“시기가 말입니까?”
“그쪽에도 정보가 들어갔는지 모르겠는데…내가 마교에 관한 정보를 요구하는 이유를 아나?”
“…죄송하지만, 그것까지는 모르겠습니다.”
하긴, 원작을 읽어봐야만 내가 마교에 관한 정보를 요구하는 이유를 알 수 있을 테니 모르는 것도 당연했다. 아직 내가 맹주에게 승계비무를 신청하려 한다는 것도 알려지지 않았을 테고.
“마교는 내 적이다. 그 정도만 알면 돼.”
“…알겠습니다.”
쉽게 이유를 알려줄 순 없지.
이러니저러니 해도 하오문은 정보를 사고파는 단체. 내 정보를 많이 알려줘 봐야 좋을 게 없었다.
일이 틀어질 경우 내 목을 죄어올 수 있으니까.
나는 느긋한 동작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때가 되면 해남관으로 기별을 보내도록.”
“감사합니다.”
“그래도 서른날은 좀 길군…”
그동안 할 수 있는 일은 해 놓아야지.
나는 기루를 나섰다.
———————
“아저씨, 분 냄새가 나요. 어디 다녀오신 거예요…?”
깜짝이야.
나는 늦은 밤인데도 잠을 자지 않고 기다린 혜령이의 모습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 바가지 긁히는 남편 같은 기분을 느껴야 한다니.
“잠깐 일이 있어서 밖에 다녀왔다.”
“무슨 일인데요…?”
얘한테까지 숨길 이유는 없으니 말해주는 게 낫겠네.
“하오문과 접촉했다.”
“하…오문이요?”
“알고 싶은 정보가 있었거든.”
“개방을 가면 되는 거 아니에요?”
“개방보다는 하오문이 알기 쉬운 정보였거든.”
“무슨 정보요?”
“마교.”
“아…”
혜령이는 내 말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혜령이도 두 세가 사이에서 음모를 꾸미던 놈들을 보았으니 대충 내 의도를 알아서 짐작한 것이리라.
“그런데 몸에서 분 냄새가 나는 거예요?”
“하오문과의 접선 장소가 기루여서 말이다.”
“그런 거예요…?”
“정말이다. 그리고 내가 여자 끼고 놀 사람으로 보이나?”
“아저씨가 한 말이니 믿을래요.”
뭐가 이렇게 걱정이 많은지.
나는 분리불안증에 걸린 아이처럼 구는 혜령이를 보며 피식 웃었다. 이제 보니 펭귄이 아니고 강아지였나. 나는 혜령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내일도 할 일이 있으니, 들어가서 자자. 다음부턴 이렇게 기다리지 않아도 돼.”
“네…”
나는 졸려 보이는 혜령이를 방에 데려다주고, 내 방에 들어갔다.
하오문을 돕는 건 한 달 후.
그 기간 동안에 해둘 수 있는 건 전부 해둔다.
아직 반년 남짓의 시간이 남아있으니 한 달 안에 해남검문과 하북팽가의 승인을 받는다.
소림의 공증을 받으려면…하오문의 일을 끝내고 천천히 받아야겠지.
“할 일 더럽게 많군.”
다 때려치우고 어디 산골 가서 사는 게 속이라도 편하겠다.
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눕는다.
자고 일어나면, 또 바쁜 일상을 시작해야만 하니까.
나는 눈꺼풀을 닫았다.
————————–
“…맹주님과 승계 비무를? 농이 심하구나.”
“…진심입니다.”
내 말에 백장로는 반신반의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이게 농담을 하는 건지 진담을 하는 건지 구분이 잘 안 가는 탓이리라.
나는 그런 그를 설득하기 위해 말을 골랐다.
어떻게 해야 잘 설득할 수 있을까.
고민 끝에 나는 말을 꺼냈다.
“마교와 관련된 일입니다.”
“…뭣이?”
내 말에 백장로의 얼굴이 금세 진지한 빛을 띠었다. 처음에는 황당무계한 소리라고 생각했던 것이 마교라는 단어가 나오자마자 변한 것을 보면 아직 마교의 습격을 잊지 않은 모양.
나는 설득을 위해 말을 이어갔다.
“제가 무당파에 다녀오는 길에 마교의 끄나풀과 마주쳤던 일을 기억하십니까?”
“자네가 그리 이야기했었지. 무림맹에서도 사람을 보내 확인토록 한 것으로 알고 있네.”
“…저는 그때의 일로 무림맹주의 최측근 중에 마교의 첩자가 있으리라 의심하고 있습니다.”
폭탄을 던진다.
이 세계의 사람은 모르는, 오직 나만이 아는 정보를.
“…그 말 장담할 수 있겠나?”
“아직은 가능성입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나?”
“그 도시는 무한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습니다.
무림맹에서 직접 첩보 조직을 운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바, 그렇게 가까운 도시에 있었는데도 눈치채지 못했다는 건 누군가가 정보를 뒤에서 차단했거나 조작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내 말에는 숨길 수 없는 허점이 있다.
하지만, 내가 한 말의 무게는 쉬이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허나, 그게 승계비무로 연결되는 이유를 모르겠군.”
“첩자의 존재를 맹주님께 몰래 알리고 색출하려면 맹주와의 독대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외부인인 저로서는 맹주와 독대할 방법은 비무뿐입니다.”
“허어…그래서 도와달라는 뜻이로군.”
“맞습니다.”
백장로는 잠시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며 수염을 쓸어내렸다.
고민하고 있는 걸까.
문파의 이름을 내거는 것인 만큼 쉽사리 말을 꺼내기 쉽지 않기 때문이리라.
“알았네. 해남검문은 자네에게 진 빚이 있으니 자네의 편을 들어주겠네.”
“감사합니다.”
첫 번째 공증.
다행스럽게도 나는 쉽게 해남검문의 조력을 받을 수 있었다.
다음은…하북팽가로 간다.
어제 저녁부터 갑자기 지표가 폭등했는데 이유를 ㅁ?ㄹ 겠네요.
뭐지?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지?
피디픽 끝났는데?
누가 홍보라도 해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