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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8

       전쟁에서 군대가 공세를 오래 유지하려면 충분한 보급과 휴식이 필요하듯, 던전 공략에 성공하려면 잠시 쉬어가는 시간도 있어야 한다. 이럴 땐 페이스 배분이 중요한 법이었으니.

       

        “여기서 10분 휴식이야! 그렇다고 퍼지지는 말고!”

       

        인솔자인 헤를라인 선생님의 말씀이 떨어지자마자 학생들의 다리에 힘이 풀리기 시작했다.

       

        다들 어두운 공간에 있었으니 피로가 극심할 터.

       

        우리는 가져온 랜턴을 있는 대로 그러모아 중앙에 두었다. 그리고 그 주변에 원형으로 둘러앉아 서로 등을 맞대고 기대었다. 이렇게 하면 마수의 기습을 예방하는 효과도 생긴다.

       

        “후아.”

       

        바닥에 천을 깔고 엉덩이를 붙이자 체력이 조금씩 돌아온다.

       

        나는 로테와 등을 맞댄 채로 정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다음 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할 연구 계획을 머릿속으로 점검하던 중, 로테가 말을 걸어왔다.

       

        “나, 전에 네 동생이 너와 똑같은 마법을 쓰는 걸 본 적이 있어.”

        “테슬라 말하는 거야?”

        “응.”

       

        로테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카샤인가 뭔가 하는 걔도 마소 조작을 할 수 있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그 녀석이 내 ‘팔정도’를 사용할 줄 안다는 뜻인데…….

       

        …이상하다.

       

        최상급 고유마도인 ‘마소 조작’은 이미 있는 마도였으니까 그렇다 쳐도, ‘팔정도’는 내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하위 개념이다. 그것까지 똑같이 따라 했다는 게 확률상으로 말이 안 됐다.

       

        이런 건 버멜에게 물어보는 수밖에 없는데…. 얘는 진짜 어디 간 거야.

       

        [자퇴한 거 아닐까요?]

       

        그래, 이제 네놈의 헛소리가 못 들어줄 지경까지 왔구나.

       

        아무리 그래도 버멜이 그럴 애는 아니다. 내가 사람을 쉽게 안 믿는 성격이라지만 그것만큼은 확실하다.

       

        특별한 이유 없이 나에게 통보하지도 않고 도망간 건 아니겠지. 뭔가 사정이 있을 거다.

       

        [만약 진짜로 자퇴한 거면 어떻게 하게요?]

       

        그땐 머리에서 탄산을 뿜게 만들어야지.

       

        [……?]

       

        농담 아니라 진짜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인간 부류가 ‘예고도 없이 약속 어기는 새끼들’이다.

       

        버멜과는 마왕을 잡을 때까지 함께 하기로 했으니 그 전에 무통보로 도망을 간 거면 때려죽여야 마땅하다.

       

        […와.]

       

        뭐, 그건 그렇고.

       

        “에테르, 내 말 듣고 있어?”

        “듣고 있어.”

        “그래서 그런데, 네가 아까 사용했던 마법을 괜찮은 곳에 응용할 수 있을 것 같아.”

        “어디, 어떤 곳에?”

       

        고개를 휙 돌린 채 눈빛을 반짝이는 로테를 보자 흥미가 샘솟았다. 어디 좋은 아이디어라도 떠올린 모양이다.

       

        “네 고유마도를 사용하면 제국에 숨어든 인간형 마수를 식별해낼 수 있을지도 몰라!”

        “…와.”

       

        방금 내가 잘못 들었나.

       

        다른 애가 한 말이라면 우스갯소리로 넘어갈 텐데. 수재들만 모인 틸레트 아카데미에서도 천재 소리를 듣는 천하의 로테가 이런 말을 하니까 만감이 교차한다.

       

        그 뒤로 로테는 남은 휴식 시간을 적극 활용하여 자신의 의견을 짧고 굵직하게 설명했다.

       

        그녀가 사고한 과정을 요약하자면 이랬다.

       

        ‘테슬라’는 내가 원하는 전자기파를 쏘아 보낼 수 있는 마도. 로테는 이 전자기파라는 것을 일종의 마력파로 받아들였고, 따라서 마도사가 마소를 사용하여 임의로 조작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느 지점까지는 높은 에너지의 마력파를 프로파게이션했다가, 내가 보고자 하는 위치에서 일부 에너지를 잃게 만들면 우리 눈에 보이는 빛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몰라.” 

        “오….” 

        “마수는 몸이 기계로 이루어져 있으니까 네 마법으로 투과한 마력파를 매핑하면 인간과는 다른 그림이 나타나지 않을까?” 

       

        쉽게 말해, 마수를 상대로 X-선 촬영 비슷한 걸 해 보자는 뜻이었다.

       

        전자기학이 크게 발달하지 않은 세계에서 방금 보여준 정보만으로도 이 정도 통찰을 해냈다니.

       

        이런 애가 나중에 이세계의 퀴리 부인이나 에미 뇌터같은 사람이 되는 게 아닐까.

       

        “어떻게 생각해?”

        “못할 건 없어.”

       

        이제 부족한 부분을 이쪽에서 알려줄 차이였다.

       

        …옆에 로즈마리만 없었더라면 말이다.

       

        “두 분이 재미있는 얘길 하시네요. 평소에도 이런 학구적인 대화로 시간을 보내시나요?”

       

        부채를 팔랑거리며 다가오는 로즈마리를 보니 위장이 뒤틀린다. 어떻게 틈날 때마다 나타나서 방해를 하는지 원.

       

        “살리에르 언니께서 말씀하신 방법이 유효하다면 곧바로 실험해 볼 수 있겠네요. 에테르 언니가 방금 사용하던 마도와 오토 매핑 마도만 있으면 되니까요.”

       

        잠깐만, 이러면 난감해지는데.

       

        “그래, 실험할 가치는 있겠는걸.”

        “야, 재미있어 보인다! 나도 끼워줘!”

        “…위, 위험한 건 아니겠지?” 

       

        때마침 이야기를 엿듣고 있던 친구들까지 합세했다.

       

        추임새를 넣으며 재촉하는 애들 한가운데에서 로즈마리가 부채로 입을 가린 채로 눈꼬리를 올렸다. 애교살이 접히며 초승달 모양의 얄미운 눈매가 완성되었다.

       

        [퇴로가 막혔네요. 어떻게 하실 건가요?]

       

        머리 하나 좋은 것만큼은 내가 인정한다. 여기선 임기응변으로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그래, 해 볼게. 대신 블랜튼 공녀님께서 먼저, 어때?”

        “잘 부탁할게요.”

        “매핑 결과는 흑백으로 나타날 거야. 마력파가 가시광 영역에 있을 때 그 파동이 금속에 닿으면 전부 반사되어 돌아오거든.”

        “그러면…. 만약 누군가가 마수라면 신체가 전부 새하얗게 찍힌다는 거지?”

        “맞아.”

       

        엄밀히 말해서 X-선 촬영과는 다르다 보니 영상 촬영한 결과를 다르게 해석해야 한다. 

       

        “신체 대부분이 하얗게 매핑되면 괴물, 회색이 적당히 있으면 사람.”

       

        이 사실만을 머리에 넣고 실험 결과를 검증하고자 한다.

       

        로즈마리는 귀금속 목걸이를 풀어 내려놓고 양팔을 벌린 채로 내가 테슬라를 사용하길 기다렸다.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이럴까.

       

        설마 여기서 자기가 마수라는 걸 밝히고 전원 매장할 생각인가?

       

        아니, 그러면 그녀답지 못한 행동이겠지. 그 정도로 참을성이 없었더라면 제국은 열댓 번도 더 멸망하고 말았을 거다.

       

        버멜이 말해준 바에 따르면 지금 로즈마리는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다. 그 때문에 자기 정체를 의심할 만한 행동을 최대한 삼가려고 할 터.

       

        …설마.

       

        [팔정도 제3식 ─ 테슬라(Tesla)]

       

        X-선 대역의 전자기파를 걸어 그녀의 피부 근처에서 가시광으로 격감시킨다. 이후 반사되는 비율을 오토 매핑으로 계측하여 반투명한 판 위에 스크롤 깎아내듯 그려낸다.

       

        딱 그녀의 체구에 알맞은 소녀의 인영이 내 지도에 매핑된다.

       

        “회색!” 

        “회색이네.” 

        “와, 신기하다. 이러면 사람인 거지?”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

       

        플라스몬 이론에 따르면, 눈에 보이는 파장 대역의 빛을 비춰주었을 때 금속은 반짝거려야 한다. 로즈마리의 체내에 대놓고 가시광선을 쏘았으니 반사되어 매핑된 결과는 흰색이어야 한다. 이러면 안 될 텐데.

       

        “제 뼈대가 찍혀 보이네요. 이거, 굳이 마수 판별이 아니라 의료 분야에서도 쓸 수 있겠어요.” 

       

        가능성은 둘 중 하나였다.

       

        얘가 실제로는 마수가 아니거나.

       

        아니면….

       

        몸이 금속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마수도 존재하거나.

       

        그 뒤로 호기심 왕성한 몇몇 학생이 자기 몸도 조사해 달라고 부탁하는 바람에 같은 마도를 몇 번이나 써야 했다. 그러다가 양장본에 저장된 마력이 동날 것을 예상하여 적당히 횟수를 끊었다.

       

        아무래도 이 이상 사용하면 만약의 상황을 대비하지 못하게 되니까 말이다.

       

        그러나 하늘도 무심하시지.

       

        “언니도 한번 해 보세요.”

       

        바로 로즈마리의 재촉이 들어왔다. 예상하던 바였다.

       

        나는 고개를 내저으며 변명거리를 떠올렸다.

       

        “테슬라에서 쏘아 보내는 빛은 이 행성을 1초에 일곱 바퀴 넘게 돌 정도로 빠른 속력으로 움직이거든. 내가 쏜 빛에 맞는다는 건 불가능해.”

        “거울을 놓고 반사한 걸 사용하시면 되잖아요.”

        “유전체에 한 번 반사되면 흡수나 투과하는 것도 생겨서 원래 보고자 했던 데이터가 손상돼.” 

        “아예 그 마도를 출력하는 스크롤을 만드시는 건 어떤가요?”

        “쉬운 일이 아니야.”

       

        적당히 거짓을 섞어가면서 로즈마리의 모든 공격을 막아낸다. 거 더럽게 힘드네.

       

        앞으로 이런 머리싸움을 계속해야 한다는 사실에 속이 메스껍다. 차라리 하스펠트에게 갈굼당하는 게 낫지.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소리다.

       

        “안타까운 일이네요.”

       

        로즈마리는 씨익 웃으며 쉬고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이거 한 방 먹었다. 이러면 내가 이 녀석한테 인간 보증 수표를 만들어 준 꼴이잖아.

       

        “자, 얘들아. 다시 움직이자.”

       

        헤를라인 선생님이 생성하신 상급 골렘들의 보조를 받으며 걸어가다 보니 점차 최심부에 가까워졌다.

       

        보스룸처럼 보이는 커다란 철문을 발견하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무래도 하급 던전이다 보니 여기까지 도달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고.

       

        보통의 RPG 게임에서 묘사되는 것처럼, 이 세계의 던전에는 보스와 클리어 보상이 있다. 하급 던전이니 보상은 형편없을 걸로 예상하지만, 이번 실습에서는 그게 목표가 아니니까.

       

        기껏 해 봐야 드레이크 한 마리 나오려나? 로즈마리가 여기서 이상한 수작만 안 부리면 좋을 텐데.

       

        그리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쾅!

       

        “선생님! 들어온 문이 닫혔어요!”

        “뭐? 분명 골렘들이 안 닫히게 막고 있었을 텐데…!”

       

        당황하기도 잠시, 헤를라인은 허둥지둥대는 아이들을 최대한 보살피면서 상급 지계마도를 들어온 문에 때려 박았다.

       

        “보통 이 정도면 깨져야 하는데….”

       

        일반적으로 던전의 수준은 그 규모와 구조물의 강도, 그리고 출몰하는 마수의 강함에 비례하여 책정한다. 하급 던전의 벽은 상급 마법 정도로 쉽게 부수고 나가야 할 수 있어야 할 터였다.

       

        그러나 그것 또한 절멸급 마수의 기만.

       

        “선생님, 아, 앞에 마수가…….”

        “저게 뭐야!!”

       

        300평 남짓한 밀실. 이 거대한 방의 저편에서 철의 송곳니를 지닌 마수가 걸어오고 있었다.

       

        “펜릴이다!!”

       

        재앙급으로 분류되는 날렵한 괴물이자, 마왕성 앞마당에는 널리고 널린 멍멍이.

       

        주변을 둘러보니 로즈마리는 자연스럽게 학생 사이로 몸을 숨기고는 쥐 죽은 듯 사태를 관망했다. 학생들은 패닉에 빠져 로즈마리 한 명을 따로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쿵, 쿵, 쿵.

       

       점차 다가오는 펜릴. 헤를라인은 남은 골렘을 총동원하여 제자들을 지키려 함과 동시에 요격을 준비했다.

       

       그러나 의미가 없는 준비였다.

       

       왜냐.

       

       [끼잉.]

       

       이 멍멍이가 내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엎드렸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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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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