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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8

       그래, 내가 평소에 드레스 같은 것을 입어본 적이 거의 없기는 했지.

        

       앨리스의 표정을 머리 한구석으로 이해하며 나는 생각했다.

        

       “안 어울립니까?”

        

       그래서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았다.

        

       나의 패션 감각을 믿지는 않는다. 내가 전생에 옷을 무척 잘 입고 다니던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도 나는 나의 감각을 믿지 못해서, 보통 옷 가게에 가면 마네킹에 세팅되어있는 그대로 사다가 기억해두고 입고 다니곤 했다. 그게 어울렸을지 아닐지는 또 다른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얼굴뿐만이 아니라 몸매도 그렇고.

        

       ‘실비아 팬그리폰’의 외모는, 다른 사람의 눈으로 보더라도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아름답다고 하면 그게 더 맞는 말일 거다.

        

       그러니, 정말 엄청나게 이상한 복장만 아니라면 어울릴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내가 입은 옷은 하늘색의 드레스였다.

        

       장식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피부가 많이 드러나 보이지도 않았다.

        

       적당히 기품있는 디자인이라고 생각했지만…… 글쎄, 진짜로 황실에서 살아온 앨리스의 눈으로 보기에는 어떨지 잘 모르겠다.

        

       “어, 아, 아냐. 잘 어울려, 응.”

        

       그리고 나는 저 목소리가 정말로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서 하는 말인지, 아니면 사실 눈 뜨고 보기 어려울 정도지만 나에게 직접 말을 해주기 어려워서 일단 칭찬부터 하는 것인지 판단할 능력이 없었다.

        

       내가 최선을 다해 숨기는 표정을 앨리스는 다 읽는데.

        

       불공평하기도 하지.

        

       그렇다고 앨리스한테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낼 생각은 없었기에, 나는 다시 한번 침착하게 물었다.

        

       “이 옷을 입고 그레이스 남작 부부를 마주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나는 일일까요.”

        

       글쎄,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드레스를 입고 다니는 것은 귀족들이라면 다 하는 일이었고, 이 드레스는 별로 싸지도 않았으니까. 혹시나 해서 입학할 때 준비해두고 한 번도 입어본 적 없는 드레스이기는 했지만, 가격을 생각하면 ‘예의’에 어긋나지 않기는 할 것이다.

        

       “아, 그게—”

        

       뭔가 말을 하려던 앨리스는 입을 딱 다물었다.

        

       한순간이긴 하지만 앨리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지는 것이 보였다. 순간 고개를 갸웃거릴 뻔한 것을 최선을 다해서 참았다.

        

       만약 이 복장이 지독하게 어울리지 않아서, 그 자체만으로 예의범절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거라면—

        

       확실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 왜, 정말로 그런 규칙이 있을지 없을지는 전혀 모르지만, 패션쇼 같은 곳에 방청객으로 가는데 누가 봐도 의도적일 정도로 심각하게 옷을 못 입은 사람이 있다면, 그건 예의에 어긋나는 일일지 모른다.

        

       아니면 장례식장에 화려하게 꾸미고 가거나, 결혼식에 참가하면서 기를 쓰고 신부보다 예쁘게 꾸민다거나. 그러니 귀족 사이에도 그런 규칙이 있을지 모르는 거 아닐까. 초대받은 손님이 그 집 주인보다 지나치게 화려하게 꾸미면 안 된다거나.

        

       “—아냐.”

        

       하지만 앨리스의 그 굳은 표정은 금세 풀어졌다.

        

       그리고 앨리스는 얼른, 그러니까 내 눈으로 보기에는 다소 성급해 보일 정도로 급하게 그렇게 말했다.

        

       “그렇습니까?”

        

       그 모습이 이상하게 수상해 보여서, 나는 다시 한번 물었다. 앨리스는 열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잘 어울려. 그리고 예의범절에 어긋나지도 않을 거고. 만약 누군가 트집을 잡는다면 너의 그 복장이 그냥 마음에 들지 않는 거겠지.”

        

       “…….”

        

       나는 앨리스의 그 말이 ‘사실은 엄청 안 어울려’라는 말을 돌려 말하는 것인지 잠깐 고민하다가 이내 그냥 말을 말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앨리스는 적어도 이런 것으로 거짓말을 할 사람은 아니다. 지난 10년 동안 그것만큼은 확실하게 배웠다.

        

       만약 우리 둘이 겨뤄야 한다면, 앨리스는 정정당당하게 싸움을 걸어오리라. 어린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알겠습니다.”

        

       내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앨리스는 조금 안심한 듯 보였다.

        

       *

        

       순간적으로 ‘그럴지도 몰라’라고 대답할 뻔했다는 것을 깨닫고, 앨리스는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실비아가 평소에 표정을 숨길 때 쓰는 기술보다 훨씬 못난 포커페이스 실력을 갖춘 앨리스였으니 실비아도 그 표정을 적나라하게 관찰할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실비아의 표정에는 별다른 파문이 일지 않았다. 그저 아주 미세하게 의문이 떠올랐을 뿐.

        

       그렇다고 실비아한테 ‘왜 갑자기 그런 복장을 한 거야?’하고 되물을 수는 없었다.

        

       귀족과 황족, 왕족의 말에는 여러모로 많은 의미가 포함된 법이다. 실비아도 10년간 황실에서 살았으니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앨리스가 그런 말을 하게 되면, ‘갑자기’라는 말에 ‘왜 여기서’라는 말이 숨어있고, ‘그런 복장’이라는 말에 ‘평범한 옷’이라는 말이 숨어있으며, ‘입은 거야?’라는 말에 ‘누구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라는 말이 숨어있다는 것 정도는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숨은 단어를 이어서 생각하면, 그 안에 담긴 단어는 딱 하나로 축약할 수 있었다. ‘질투’.

        

       그건, 좀…… 유치하지 않은가?

        

       평생 한 번도 주장하지 않다가 최근에 와서야 앨리스는 자신이 실비아의 ‘언니’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클레어가 실비아를 ‘언니’라고 부르기 시작한 뒤부터였다.

        

       실비아는 아직 그 사실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는 것 같았지만, 만약 앨리스가 거기서 선을 몇 개 정도만 더 넘어도 실비아는 앨리스가 클레어를 질투하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 질투가 검고 질척질척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그저, 솔직하지 못한 앨리스가 실비아에게 차마 직접 물어보지 못한 질문에 대한 앨리스의 생각과 마음이 담겨있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런 거다.

        

       실비아가 루카스에게 납치되어 황실에 오게 된 것을, 원망하고 있을까?

        

       저 무표정의 가운데서 느껴지는 희미한 감정 너머에 사실은 앨리스를 원망하는 감정이 아주 조금이라도 남아있는 것은 아닐까?

        

       앨리스를 자매라고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고, 그저 황제 자리에 올리기 위한, 그래서 자신이 원하는 미래를 만들거나, 혹은 뭔가를 피하기 위한 도구로 생각하고 있을 뿐인 건 아닐까?

        

       얼핏 보이는 그 인간적인 감정들이, 사실은 그저 앨리스를 속이기 위해 꾸며낸 것은 아닐까—

        

       “시간이 늦었습니다.”

        

       앨리스의 이어지는 생각은 실비아에 의해 끊어졌다.

        

       실비아의 말에 앨리스는 눈을 깜빡였다.

        

       그 깜빡이는 시선 너머에 있는 실비아는 평소처럼 평온해 보였다. 어쩌면 다소 어울리지 않는 그 하늘색 드레스 때문에 더 평온해 보이지 않았을지 모른다.

        

       물론 실비아는 예쁘다. 아마 웬만한 옷은 다 잘 어울릴 거다.

        

       하지만, 뭐랄까.

        

       실비아의 어깨가 너무 빳빳하게 굳어있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저 어깨는 실비아가 교복을 입고 있을 때면 언제나 굳어있었다.

        

       지금 보니 교복 때문이 아니라 원래 그런 모양이다.

        

       평소에 지나치게 군인같이 행동하다 보니 버릇처럼 굳어진 모양이지.

        

       거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앨리스의 어깨에서 힘이 빠져 축 늘어졌다. 코웃음을 치지 않은 것은 거의 행운이었다.

        

       실비아는, 실비아였다.

        

       실비아의 모습이 만약 다르게 보인다면, 그건 그냥 앨리스가 혼자 실비아를 다르게 보기 때문이리라.

        

       “이제 준비를 하시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 전에, 실비아.”

        

       앨리스는 실비아의 그 말을 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사뿐사뿐 걸어 실비아 앞에 섰다. 아카데미에서처럼 편하게 서는 것이 아니라, 황녀로서의 기품있는 자세로.

        

       파자마 차림으로 그러고 있는 것이 다른 사람의 눈에는 이상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어차피 여기는 실비아와 앨리스 둘뿐이었다.

        

       예전처럼.

        

       “어깨에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갔어.”

        

       “…….”

        

       대답은 없었지만, 실비아의 눈동자는 앨리스를 보고 있었다. 그 깊고 검은 눈동자 안에 의문이 살짝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고 앨리스는 이상하게 안심되었다.

        

       “교복이나 정복을 입을 때는 괜찮겠지만,”

        

       앨리스는 양손을 들어서 실비아의 양 어깨를 탁탁 가볍게 쳤다. 예전에 앨리스가 어렸을 적, 예절을 가르치는 가정교사가 했던 것처럼.

        

       “드레스를 입은 채 어깨를 긴장하고 다니면 너무 경직된 것처럼 보이니까.”

        

       “그렇습니까?”

        

       돌아오는 것은 순수한 의문이었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앨리스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그 한숨에는 조금 전의 고민과 망설임이 녹아서 섞여 있었다. 숨 밖으로 그런 생각들을 뱉어내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좋아, 그러면. 일단 내가 씻고 올 때까지만 기다려. 드레스를 입었을 때 필요한 동작을 속성으로 가르쳐줄 테니까.”

        

       “……드레스 입었을 때의 동작이 따로 있습니까?”

        

       지금 당장이라도 다시 갈아입을까?

        

       손에 잡힐 듯 보이는 그 생각을 읽고 폭소하지 않은 것도 순전히 운이 좋아서겠지.

        

       분명히 같은 가정교사한테 배웠을 텐데, 왜 배운 내용이 이렇게 차이가 나는 걸까?

        

       “알았지? 그대로 기다리고 있어. 황실을 대표해서 여기 왔는데 망신당하면 안되잖아.”

        

       앨리스는 신신당부하고 얼른 샤워실을 향하다가, 너무 기분이 좋은 나머지 자기가 손에 속옷과 갈아입을 옷을 들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돌아섰다.

        

       조금 부끄러운 표정으로 자기 침대로 다시 돌아가, 침대 밑의 트렁크에서 옷을 꺼내 들고, 다시 샤워실을 향했다.

        

       ……정말이지, 방을 실비아와 단둘이서 써서 다행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Ilham Senjaya님, 후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익명으로 후원해주셔서 독자닉네임 기능으로 인사드립니다!

    제 소설 속의 주인공을 좋아해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소설을 쓰는 데에는 여러가지 방식이 있고, 그 비중을 플롯이나 스토리, 혹은 소재에 둘 수도 있지만, 캐릭터 그 자체에 둘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그 모든 것이 소설 속에서 중요한 요소이고, 어느 하나 빼놓아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저는 캐릭터가 부각되는 소설이 취향이네요. 아무래도 어린 시절부터 캐릭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기에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 소설 속의 캐릭터를 좋아해주시는 분을 보면 기분이 좋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독자 여러분을 위한 글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떼이오네 님, 후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게임을 막상 사두고 잘 안해서 그런지, 요즘들어 게임 패키지가 계속 쌓이기만 하네요. 최근에 예약해두고 기다리던 게임이 유통과정의 문제로 늦게 온다는 문자를 받았는데도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보면, 제가 정말 게임을 하는 걸 좋아하는지, 사는 걸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을 때가 많습니다. 그래도 사서 쌓아두면 마음이 풍족해지는 것을 보면 게임 자체를 좋아한다는 것은 변함없는 것 같아 다행이네요. 저도 말씀해주신 게임을 예약구매해서 발매일에 받았지만… 아직도 1장을 깨는 중입니다. 어쩌다가 열시간 넘게 1장만 하고 있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전작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래도 다음 작품 나오기 전에는 깨겠죠?

    저의 소설을 읽어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큰 후원을 해주신 것도 너무나 감사합니다. 독자님께서 저의 소설을 읽으시며 쓰신 돈과 시간이 아깝지 않은 글을 쓸 수 있도록 꾸준히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덕분에 저도 하루하루가 즐겁고 행복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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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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