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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8

    기분좋게 자다가 일어날지 말지 고민을 하게되는 경험을 겪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다가 머뭇거리며 조금 더 잘때 느껴지는 달콤한 감각도 아마 겪어본 적이 있겠지.

    루크 역시도 그런 감각이 좋았다.

    언제나 자신을 옥죄던, 가장 뛰어난 마법사로서 새로운 길을 닦아야만한다는 강박적인 책임감은 이 몸으로 이 시대에 깨어나면서 사라졌다.

    더이상 지켜야 할 것들도 없어졌고, 단지 이 시대에 대해 조금씩 알아감으로 이미 행복했다.

    그러나, 오늘은 그런 감각을 억지로 떨쳐내면서 루크는 몸을 일으켜야했다.

    해야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영혼과 내 몸에 관해 확인해야 할 것이 있다.’

    정말 자신이 ‘불사’인지, 영혼의 ‘격’이 다른게 맞는지, 스스로의 몸상태가 정확히 어떤 상태인지.

    “파이 내가 얼마나 잤지?”

    -얼마나? 그게 뭐야?

    “……하아, 내가 언제나 그렇게 설명을 해줬는데도.”

    파이의 천진한 표정에 루크는 이마를 짚었다.

    도대체가, 그가 평소에 얼마나 열심히 정령에게 ‘시간’이라는 개념을 이해시키려 노력해왔던가.

    어제, 그제, 엊그제, 엊그저께를 비롯한 과거를 나타내는 단어는 물론, 내일, 모레, 사흘, 나흘등의 미래를 나타내는 단어까지 빠짐없이 알려주고 이해시키려 노력했다.

    ‘언제’라는 단어를 온전히 이해시키기 위해선 그것이 필요했으니까.

    —–

    루크는 정령어에 시제가 없는것이 내심 굉장히 답답했다.

    그도 그럴것이, 정령에겐 명확한 육신이 없고, 물질계에 완전히 들어선 존재가 아니기에 시간에 대해 표현하는 방법은 정령어에 없었다.

    따라서 시간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매번 조금 귀찮은 방식으로 우회를 해야만 어떻게든 이해시킬 수 있다.

    예를들어, ‘해가 지기 시작한 순간’이라던가, ‘시계의 침이 7을 가리키는 순간’이라던가.

    그래. 정령어엔 온전히 미래나 과거를 특정할 수 있는 단어가 없다.

    시간이란 마법을 사용함에 있어선 떼어놓을 수 없는 개념인데, 정령은 시간의 흐름에 별 관심도 없고, 어째서 생각을 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는 듯 보였다.

    마치, 어디에나 존재할 수 있어서 공간이라는 개념을 뭉뚱그려서 생각하는 것처럼.

    그래서 루크는 파이에게 정령어가 아닌, 인간들의 언어를 가르치기로 마음먹었고, 그 후부터 파이는 인간의 글자와 언어를 동시에 배우고 있었다.

    언어는 말을 포장하는 역할을 하지만 반대로, 사고를 확장시키기도 하는 것이다.

    표현의 방식이 다양해지면, 다양한 생각도 할 수 있게 된다.

    그날부터 루크는 파이에게 인간의 언어를 알려주기 시작했다.

    “자, 이것이 파이. 네가 그렇게 먹고싶어하던 것들일세. 이 글자가 바로 ‘아이스크림’이라는 글자일세. 자, 따라해보게. 아.이.스.크.림.”

    -아이…….스크림?

    파이가 루크의 울림을 더듬거리며 따라하고는 제대로 발음한게 맞냐며 고개를 갸우뚱 했다.

    “잘 했네. 그래, 이게 바로 인간어로 ‘아이스크림’을 쓰는 방법일세. 기억해두게나.”

    -아이스크림……. 아이스크림!

    루크는 기뻐하는 파이를 보면서 피식 웃었다.

    완전히 루크의 목소리와 억양을 따라하는 바람에 뭔가, 앵무새한테 말을 가르치는 것 같은 모양새지만.

    그래도 흥미를 끌기엔 이만한 방식도 없었다.

    -저기, 저기, 이건 먹으면 어떤 느낌이야?

    “맛……. 말인가? 음, 일단 달고 시원하다.”

    -단게 뭐야? 어떤 느낌이야?

    “글쎄……. 맛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떠오르질 않는군.”

    루크는 이마를 짚었다.

    맛을 설명하라니, 시간을 설명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문제였다.

    “그래. 단맛이란, 음악에 비유하자면 오페라의 성악같은 것일세. 가장 돋보이고 화려하지만, 그것만으론 결코 연주가 될 수 없지. 알겠는가?”

    -음……. 알겠어?

    파이의 멍청한 표정을 바라본 루크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모르는군. 하아.” 

    루크는 하는 수 없이 첼로를 들었다.

    역시 정령과 육성만으로 대화하기엔 부족한 감이 있다.

    “자, 파이. 이것이 바로 단맛일세.”

    노트에 큼직하고 또렷하게 단맛, 이라는 단어를 써놓고 첼로를 연주하며 노래한다.

    단 음식을 먹었던 순간의 감정을 전달한다, 딱히 그것 말고는 달리 방법도 없을테니까.

    그렇게 만들어진 루크의 연주는 파이에겐 그야말로 달콤했다.

    ——–

    그 연주 이후로도 파이가 그동안 먹었던 음식들에 대한 맛과 감정을 알려달라며 보채는 통에, 아주 지칠 지경이었지.

    잠깐 기억을 떠올렸던 루크는 한숨을 쉬며 파이에게 물었다.

    “그래서, 지금이 몇시라고?”

    -8시 12분?

    “좋아, 잘 말했군. 훌륭하다.”

    -헤헤…….

    가볍게 마력을 흘려 어루어만져주자, 파이는 기분좋게 웃음을 흘렸다.

    ‘파이가 드디어 시계정도는 볼 수 있게 되었군.’

    루크는 그동안의 개념 쑤셔넣기가 드디어 빛을 발했다는 사실에 약간 감동스러웠다.

    역시, 언어는 사용의 예를 보여줘야만 하는 것이었을까.

    언제와? 라는 질문을 할 수 있도록 교육하기 위해서, 어떤식으로 미래형과 붙여서 쓸 수 있는지까지 전부 가르쳤다.

    내일 와? 모레 와? 사흘 뒤에 와? 나흘 뒤에 와? 등등.

    이 개념을 이해한다면 언젠가 만약 파이가 어딘가로 떨어져야 할 때, 저런 식으로 물어볼 수도 있게 되겠지.

    그동안은 파이가 자신에게 가장 큰 흥미를 갖고 있었기에 바로바로 돌아온 것이지만, 파이는 정령이다.

    그리고 정령은 충동적이다.

    언제 또 자신보다 재미있는 흥밋거리를 찾아서 떠나버릴지는 모를 일이다.

    그럴때, 돌아올 시간을 정해 다시 볼 약속을 할 수 있다면 자신의 걱정도 좀 덜어질 것이고.

    루크는 나름대로 파이에게 꽤 많은 동질감을 느끼고 있었다.

    둘 다 이 세계에선 이방인이고, 이레귤러니까.

    “좋아. 그럼 나는 이제 내 할 일을 해보지.”

    루크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오늘 동물원에서 깨달은 자신의 정보를 바로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유니콘이 내게 아무런 공격성을 띄지 않았다는 것은, 내 영혼이 남성의 티끌하나 담기지 않은 순수한 상태라는 것이겠지.”

    그렇다면 가장 먼저 확인할 것은 영혼을 확인하는 것.

    그러나 유니콘과는 달리, 루크에겐 영혼시가 존재하지 않는다.

    영혼시란 보통 ‘신성력’에 관련된 능력이고, 루크는 신성력과는 담을 쌓은 마법사이기 때문에.

    이미 마력시라는 마안이 존재하는데, 영혼시는 또 있을 수가 없다.

    그것은 모순이니까.

    마력친화력과 정령친화력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은……. 뭐. 그럴수도 있다. 하이엘프도 그런 특성을 지니니까.

    하지만 이건 완전히 다른 문제.

    신을 필터로 사용하는 마법일 뿐이라고 격하하기는 했지만, 분명 그것은 일반적인 마법은 아니었다. 

    마법사는 마력과 자신에 대한 믿음을 빌어 권한을 사용하는 것이지만.

    사제는 마력과 신에 대한 믿음을 빌어, 신의 권능 일부를 빌리는 거니까.

    자신을 믿는 동시에, 신을 믿을 수는 없다.

    그렇기에 마법과 신성마법은 다를 수밖에 없고, 서로 반발한다.

    그것이 바로, 마력시와 영혼시가 동시에 존재할 수 없는 이유.

    그렇다면 영혼을 볼 수 있는 방법은 아예 없는가?

    라고 묻는다면 그것은 또 아니다.

    루크의 방대한 지식은 그런 상황에 대한 꼼수도 존재했으니까.

    자, 간단하게 생각해보자. 이 세상에는 딱히 영혼시가 없어도 볼 수 있는 영혼이 있다.

    그래, 바로 죽은자의 영혼이다.

    그것이 물질계에 존재하는데엔 굉장히 강한 의지가 필요하다.

    깃들 육체가 없는 영혼은 물질계에 존재할 수 없으니까.

    하지만 스스로 사라지기 싫은 강력한 의지가 있다면 사라지는 시기를 늦추는것도 가능은 하다.

    강력한 의지는 마력의 흐름이 되고, 마력은 임시로 영혼을 덧씌우는 몸이 된다.

    그것이 바로 영체.

    마력이라는 체를 얻은 혼.

    유령이라는 존재들이다.

    그리고 루크는 그 마력을 ‘볼’ 수 있지않던가?

    “좋아, 그렇게 하면 되겠지.”

    사고실험을 마친 루크는 곧바로 서랍을 뒤적여서 칼을 꺼내서 날카로움을 확인한다.

    살짝 닿기만 해도 베어질 듯한 예리함.

    이 날카로운 칼날을 고작 근처 마트에서 구매할 수 있을 줄이야, 언제봐도 참 대단한 시대다.

    루크는 곧장 화장실로 들어가 욕조 위에 손을 올렸다.

    피는 과거로부터 훌륭한 마법재료였다.

    단적인 예로, 새벽녘과 황혼에 참수당한 ‘죄인’의 피는 값비싼 마법재료지않나.

    뭐, 이 시대에서 그런걸 구할 수 있을 리는 없다.

    애초에, 제대로 된 종교재판도 없을 것이고, 신의 세례를 받은 사제도 없을 것이니.

    그런 면에서, 자신의 피는 여러모로 완벽한 재료였다.

    순수하며, 완벽하고, 마력이 흘러넘치며, 결정적으로 ‘나의 것’이다.

    이미 그 영혼을 담고있던 그릇이니, 자격또한 충분하겠지.

    ‘사령술에 조금 장난을 치는 거지만……. 이정도는.’

    자신을 흑마법사라고 칭할 정도는 아니겠지.

    ——–

    “…….”

    예르나는 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루크의 손목에 시선을 고정한채 덜덜 떨고만 있다.

    ‘음……. 이래서 보여주고싶진 않았는데.’

    일부러 예르나가 없는 순간을 이용해 빠르게 해치울 생각이었는데, 생각보다 돌아오는게 빠르지 않나.

    ‘다이튼, 그대는 정말……. 단 둘이 있는데도 예르나와 뭔가 더 할 이야기가 없었나?’

    루크가 잘못한 것을 깨달은 것처럼 예르나의 시선을 피했다. 

    그저 예르나의 그 충격받은 표정이 부담스러운 것이었지만, 적어도 예르나에겐 그렇게 보였다는 말이다.

    “예르나, 이건 정말 아무것도 아닐세.”

    “아무것도 아니긴! 이렇게 손목에 피가……! 구, 구급차를…….”

    “부를 필요도 없다네.”

    “뭐?”

    “이미 다 나았으니까.”

    루크가 슬쩍 손목을 들어올리니, 예르나의 예상과는 다른 루크의 손목상태가 보였다.

    피는 잔뜩 묻어있지만 상처는 전혀없는 손목.

    루크는 아무렇지않게 웃으며 손바닥을 내보이며 괜찮다는 제스쳐로 말한다.

    “보게, 흉터도 남지 않았잖은가? 그대가 걱정할 것이 아니라니까.”

    루크의 현재 몸상태는 불사를 자각하지 못하고, 스스로의 육체를 자각하지 못했을때와는 달랐다.

    자신을 고양이라 생각하는 마수는 고양이가 되듯이, 인간이라 생각하는 키메라는 인간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루크 이루시는 불사의 키메라였다.

    그러니 고작 손목을 그어낸정도는 정말이지, 아무런 영향도 줄 수 없다.

    애초에, 육신이 생명적으로 완전히 끝났을때도 단지 서클의 의지력만으로 모든 육체를 다뤄 생을 연명시킨 적도 있다.

    그말은 상시 10서클을 100퍼센트 운용해, 육체의 모든 세포를 일일이 조작해 ‘살아있는 척’을 할 수도 있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온전히 ‘살아있는 육신’에, 삶의 의지를 담아내는건 또 얼마나 쉬운가.

    하지만 이미 완벽하게 복구된 손목을 보고도 예르나는 표정을 풀 수가 없었다.

    정말 이렇게나 ‘완벽하게 회복’했다는건…….

    ‘흉터가 하나도 안 남아서 평소에 대체 얼마나 그었는지 알 수가 없잖아…….’

    “왜 그랬어.”

    “말했잖나, 그냥 실험이라고.”

    실험, 실험이라니…….

    그래, 실험이겠지. 실험의 영향이겠지.

    예르나는 곧장 루크를 끌어안았다.

    “예……르나?”

    “미안해, 앞으론 절대 혼자서 두지 않을게. 아무데도 안 갈거야. 그러니까, 이런건…….”

    “예르나……. 혹시, 우는가?”

    왜?

    루크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손목은 이미 다 나았고, 누가 다치게 한 것도 아니고 스스로 손목을 그은 것이다.

    게다가 자신은 한번도 슬픈 표정을 짓지 않았잖나?

    실험이라는 얘기도 했고. 아무래도 사령술 쪽인데다 가설인지라 마법의 내용을 자세히 말해봤자 예르나는 이해하지 못할테니 설명하진 않았다만.

    방금 자신이 말한 실험이라는 설명에서 예르나가 울만한 부분은 어디에도 없을 텐데…….

    오히려, 위험한 실험을 한다고 혼내는게 맞지않나?

    아무리 생각해도 슬픈 부분이 없는데 말이다.

    그러나 예르나는 루크를 더욱 강하게 끌어안으며 물기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건 이제 안하면 안될까? 언니가 더 잘할게.”

    “……음.”

    ‘미치겠군. 왜 우는지 이번엔 도저히 모르겠어.’

    “예르나, 미안하지만, 대체 왜 우는지 모르겠네. 울지 말게나.”

    “앞으론 하지 말아줘, 부탁이야.”

    루크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루크 : 잠깐 영혼 좀 보려고 한걸세!

    예르나 : ‘영혼을 봐….? 설마, 자해를 하면 실험실에서 먼저 죽은 애들을 본다는 말인가…?’

    루크 : ‘미치겠군.’

    이라는 대화는 또 어떠신가요?
    조금 억지스럽긴 하지만요.

    후…. 예르나 괴롭히는게 왜이렇게 재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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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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