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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8

     

    “권터, 몸은 어떻느냐.”

     

    “괘념하여 주셔서 황공하옵니다, 폐하. 덕분에 스틱스 강을 건너지 않고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병상에서 나온 권터가 황제를 알현해 감사와 사과를 전했다.

     

    리비오를 알아보지 못한 자신의 경솔함으로 그에게 위해를 끼쳤으니 어지간한 과실이 아니었다.

     

    “폐하, 이번에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소자는 황제의 그릇이 아닙니다.”

     

    무릎을 꿇은 권터의 손끝에선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지난 사건의 후유증이 진하게 남아버린 탓이었다.

     

    “어찌하고 싶으냐.”

     

    “제국의 미래를 위해 폐위하여 주시옵소서. 타국으로 유배 보내 주신다면 가장 좋은 후속 조치로 아뢰옵니다.”

     

    “수리하겠다.”

     

    패배자가 된 권터가 고개를 푹 숙였다.

     

    이로써 그는 공식적으로 폐위되어 승계전에서 탈락했다.

     

    지금껏 자신을 따라준 일성궁의 비서와 기사, 시종, 주치의, 모든 궁원들을 볼 낯이 없었다.

     

    “권터.”

     

    황제가 시종을 시켜 술병을 하나 내오도록 했다.

     

    “잔을 받거라.”

     

    그가 마지막으로 보내는 선물에, 권터의 가슴이 벅차올랐다.

     

     

     

    ***

     

     

     

    나는 휴고 팀과 함께 브리핑 룸으로 들어섰다. 클로에와 팔켄하인도 불렀다.

     

    수정구로 자료를 띄운 휴고가 굵직한 목소리로 발표를 시작했다.

     

    “결론부터 말해, 아셀라 황녀 전하께서 품은 저주는 최상급입니다.”

     

    “최상급! 따지자면 7위계 흑마술의 결과물 아니오?”

     

    “카밀라가 모든 걸 바쳐 만들었다는 표현을 쓰기도 했었습니다. 상당한 대가를 지불한 모양이군요.”

     

    휴고가 판단 근거를 제시했다. 반박할 여지가 없는 확실한 자료였다. 논문 내도 되겠는데.

     

    “효과는 영혼 침식입니다. 시전에는 술자, 매개, 대상 세 가지가 필요합니다. 한 번 시전되면 술자의 손을 떠나, 술자의 생사나 마나 여부와 상관없이 가동됩니다.”

     

    “매개가 곧 동력원이란 소리군. 그게 대마녀의 영혼이야?”

     

    “예. 이 저주는 매개인 영혼의 특성을 대상자의 영혼에 전달하며, 최종적으로는 융합시킵니다. 마력, 마나, 신성력, 특정 감정이나 사상도 말이죠.”

     

    “맙소사. 어떻게 보면 부활 아닌가?”

     

    팔켄하인이 충격받아 입을 떡 벌렸다.

     

    대상의 몸과 영혼을 희생해 매개인 영혼을 구현하는 잔인한 효과다.

     

    “조금 다릅니다. 두 영혼이 섞이니 충돌이 나서 어느 쪽도 온전히 유지되지 못하고 미쳐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정말 흑마술사나 만들 법한 주문이네요오….”

     

    “그게 흑마술이 마술이라고 불리는 이유야. 기적을 만드는 마법에 비해 흑마술은 대가를 고려하면 쓸 이유가 하등 하나도 없는 주문들뿐이거든.”

     

    내가 클로에에게 덧붙여줬다.

    시모어는 흑마술이 마법의 하위호환이라고 표현했었다.

     

    “매개인 대마녀의 영혼도 온전한 상태는 아닙니다. 술식화를 하기 위해 단순화해놨습니다.”

     

    “단순화가 무슨 뜻인가?”

     

    “사람의 몸에 주입하기 위해 이만한 사이즈로 압축했습니다. 필요 없는 기억이나 인간성은 잘라냈단 뜻입니다. 술자가 자신의 목적에 필요한 부분만 남겨놨을 겁니다.”

     

    “흑마술을 퍼트리기 위해 필요한 분노나 증오, 파괴에 대한 갈망, 그런 거겠지 뭐.”

     

    내가 심드렁하게 풀어놨다.

    팀원들의 분위기가 확연하게 가라앉았다.

     

    “그리고 카밀라가 자극해서 팽창 중이지.”

     

    “예. 융합하거나 폭주하거나, 조만간 둘 중 한 가지 현상이 일어나리라 봅니다.”

     

    “다들 뭘 그렇게 긴장했어. 그래서 우리가 있잖아. 수술을 실시한다. 리미트는?”

     

    “어읍, 관찰한 바로는 대략 3개월… 연말이 아닐까 해요.”

     

    “올해 끝나기 전에 수술 날짜 잡기로 하고. 다음은 과정.”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MRI 자료를 지시봉으로 가리켰다.

     

    “저주가 들어찬 위치는 사이즈나 위치로 보아 담이야.”

     

    쉽게 말해 쓸개다. 간에서 소장으로 이어지는 관 옆에 붙어있는 기관이다.

     

    아셀라에게 가끔 찾아오는 복통은 급성담낭염과 비슷할 것이다. 쓸개에 조그만 돌이 생겼을 때 발생하는 증상이다.

     

    담석이 장기 내부를 무작위로 이동하다가 관을 막으면 어마어마한 통증이 찾아온다.

     

    돌이 다시 쓸개 내부로 돌아가면 거짓말같이 통증이 사라지고 일상생활도 언제까지고 가능하다.

     

    저주의 잔여물이 종종 관을 막는 것이겠지.

     

    통증의 정도가 상당해서 심할 땐 거의 출산 수준과 맞먹을 정도다.

     

    복통은 늘 근원이 어딘지 찾기가 힘들어서 환자의 증언만으로는 맹장, 임파선염, 담낭염 등 아예 다른 질병도 구분이 힘들다.

     

    “쓸개는 없어도 조금 불편할 뿐 반드시 필요한 기관은 아니야. 담낭 제거술을 한다. 난이도 자체는 아주 쉬워. 복강경이면 구멍 네 개 뚫으면 그만인데, 그쪽은?”

     

    “필요한 희귀 재료가 있어 제작이 막혔다 합니다. 드워프 장인과 상담해 보시죠.”

     

    “확인. 문제는 제거 시 해주 부분이야. 이걸 떼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대마녀의 영혼이니 최악엔 마법을 난사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렇지? 수술실엔 전신마취한 황녀님이 누워 계실 테고. 당장 5, 6위계 마법이 막 터져서 심폐기 망가져 봐.”

     

    “히이익. 그런 무서운 이야기는 그만해 주세요오.”

     

    클로에가 겁에 질려선 차트를 꽉 쥐었다.

     

    “이전 폐하의 수술에서, 선생님께서 빌려주신 아뮬렛으로 상급 저주는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었습니다.”

     

    “확실히 처음 제거할 때까지는 얌전했지. 해주할 때까지 더 완벽하게 통제만 되면 폐하 때와 큰 차이는 없어.”

     

    문제는 이번엔 상급이 아니라 최상급이라는 거지.

     

    지금의 아뮬렛은 아무 쓸모 없을 거다.

     

    나는 상태창을 열었다.

     

     

    ―――――――――――

     

    · 어둠 화신의 아뮬렛

    – 전설급 아티팩트

    – 사용 효과 : 상급 이하의 저주를 생성하거나 조종합니다.

    – 관련 아티팩트 : 영겁의 폭풍석

     

    ―――――――――――

     

     

    ‘분명 영겁의 폭풍석과 합치면.’

     

     

    ―――――――――――

     

    · 폭풍이 치는 어둠 화신의 아뮬렛

    – 신화급 아티팩트

    – 사용 효과 : 최상급 이하의 저주를 생성하거나 조종합니다.

     

    ―――――――――――

     

     

    신화급 아티팩트가 되어 최상급 저주도 조종할 수 있게 된다.

     

    ‘영겁의 폭풍석, 이건 야만족 중 천둥족 족장이 가지고 있는 전설급 아티팩트였어.’

     

    주어진 시간은 3개월.

     

    그 안에 폭풍석을 손에 넣어야 한다.

     

    ‘야만족이 활동하는 지역은 북부.’

     

    천둥족은 바위족과 달리 비교적 말이 통하는 이들이지만 시간이 없다.

     

    협상이 먹히면 가장 좋긴 한데…

     

    군사력으로 밀어붙일 준비도 필요하겠어.

     

    다만 문제는.

     

    ‘아셀라가 나를 외지로 보낼 리가 없어.’

     

    얼마 전에는 겨우 모의전 참가도 막을 정도였으니.

     

    내게 장기휴가를 주기는커녕, 야만족과 싸우러 간다는 말을 들었다간 또 가두려고 할 게 뻔하다.

     

    혹 원정을 허락해도 전처럼 따라온다고 하겠지.

     

    지금 아셀라는 안정을 취해야 한다. 마법을 썼다간 마력폭주 확률이 늘어난다.

     

    월광궁의 지원은 없다고 봐야 한다.

     

    우선 본가에 연락해서 출정 준비를 해야겠다. 기사와 모험가들로 최대한 구성하고.

     

    ‘아티팩트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나만 아니까 안 갈 수도 없고.’

     

    다행히 천둥족 족장은 미래에서 몇 번 협상해 본, 연이 좀 있는 인물이다.

     

    이야기가 잘 풀릴지도 모른다.

     

    “수술은 최상급 저주 대책이 마련되면 즉시 실시하겠어. 그간 전원 준비를 마쳐놔.”

     

    의사들이 힘차게 대답하며 해산했다.

     

     

     

    ***

     

     

     

    오후 진찰을 한 후에, 아셀라가 강력하게 요청해서 월광궁 안뜰로 산책을 나왔다.

     

    햇빛을 받는 일과도 중요하기에 허가했다.

     

    막스에게 프리스비를 던지는 아셀라는 꽤 즐거워 보였지만 여전히 불만이 있었다.

     

    “마법 쓰고 싶어.”

     

    “절대 안 됩니다. 제가 황녀님을 고칠 때까지 금지에요.”

     

     

    [No. 101 : 마력폭주 19% → 20%]

     

     

    지금도 아셀라의 저주는 조금씩 성장하며 그녀를 먹어치우려 하고 있다.

     

    나는 차트를 넘기며 그녀에게 설명했다.

     

    “방법은 찾았습니다. 오래 걸리지 않을 거예요. 그간 지켜야 할 유의사항, 정확히 기억하시죠?”

     

    “외출 금지, 과격한 활동 금지, 마법 금지, 분노 금지, 파괴 행위 금지. 재미없어.”

     

    “비상시 약은요?”

     

    “노랑이 평소에 먹던 진통제. 그게 안 들을 정도로 심해지면 빨강을 하나. 파랑은 잠들게 해 주는 수면제.”

     

    “맞습니다. 반드시 한 번에 한 알만 드셔야 하고 빨강은 특히 이틀 연속 복용하시면 안 됩니다.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혼자선 못 여시게 해놓을 겁니다.”

     

    “왜 그럴 필요가 있어? 공자가 알아서 관리하면 되잖아.”

     

    “제가 자고 있을 수도 있잖아요.”

     

    “주군의 비상사태 땐 알아서 일어나야지, 주치의가.”

     

    “하하. 그도 그렇네요.”

     

    뭐, 내가 없을 때를 대비해서 상기시켜 준 거긴 하다.

     

    아셀라는 똑똑하니 알아서 잘 하겠지.

     

    휙 던진 프리스비를 쫓아 달려가던 막스가 꼬리를 이리저리 흔들더니 결국 받지 못하고 바닥에 넘어졌다.

     

    그런 막스를 향해 아셀라는 바보라고 중얼거리며 한쪽 눈을 감고는 손으로 조준해 마법을 시전하는 시늉을 했다.

     

    “정말 마법을 좋아하시네요.”

     

    “그럼. 아, 답답해! 공자, 나랑 외출 나가기 싫어서 금지령을 내린 거 아니니?”

     

    “에이, 설마 제가 그렇게 고단수겠어요.”

     

    “아니었어? 아니, 아무것도 아냐. 뭐, 잘 됐어. 나도 준비는 필요했거든.”

     

    서민 탐방 동네 마실이야 가볍게 다녀오면 될 일 아닌가.

     

    가고 싶은 카페 리스트라도 적어놓을 모양이지.

     

     

    잠깐 정적과 함께 가을 바람이 우리 사이를 스쳐 지나갔다.

     

    벌써 아셀라와 맞는 세 번째 가을이다.

     

    그리고 네 번째 겨울도 찾아오겠지.

     

    그걸 이겨낼 수 있을지 어떨지는 내 손에 달렸다.

     

    “공자. 폐하에게 했던 치료법, 간호사에게 들었어.”

     

    기밀이었는데. 아셀라의 압박에 못 이긴 클로에가 불었구나.

     

    “내 몸에도 칼을 댈 생각이니?”

     

    덤덤한 태도의 아셀라를 보니 수술을 충분히 납득하는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면 그녀는 내 의학을 가장 먼저 접한 사람이다.

     

    직접 수술의 결과를 보기도 했고.

     

    이쯤 되면 미리 이야기하는 게 환자에게도 이롭겠지.

     

    “배를 전부 열지는 않습니다. 구멍만 뚫게 됩니다.”

     

    “흐응.”

     

    아셀라는 내 대답을 듣고는 홱.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그 바람에 그녀의 긴 금발이 확 하늘로 치솟았다가 천천히 가라앉았다.

     

    아셀라가 조그마한 입술을 움직여, 바람과 함께 말소리를 흘려보냈다.

     

    “라스. 네가 나를 고치면, 그 공을 인정해서 그때야말로.”

     

    평소와 같은 당당한 황녀답게.

     

    “우리의 계약을 이행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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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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