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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8

       그녀에게 당장 달려들듯 덤비던 마귀였지만, 막상 그녀 앞에 와서는 행동이 조심스러워졌다.

         

       이미 몇 번이나 그녀에게 농락을 당한 그였다.

       혹시 이것도 함정이 아닌가 하고 경계했다.

         

       그는 쓰러진 그녀의 주변을 돌며 코를 킁킁거렸다.

       환상은 아닌 것 같았다.

       그는 그녀를 향해 가볍게 손톱을 휘둘렀다.

         

       그녀의 검은색 원피스와 스타킹이 세 줄기로 쫙 갈라졌다.

       새빨간 피가 솟구쳤다.

         

       “으윽!”

         

       그녀의 입에서 고통스러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익숙한 쾌감이 그의 전신을 타고 흘렀다.

         

       부드러운 속살을 가르는 감각.

       코를 자극하는 피 냄새.

         

       이번에는 환상이 아닌 진짜였다.

         

       그러나 그는 왠지 불쾌함을 느꼈다.

       상대의 태도 때문이었다.

         

       보통 사냥감들은 여기까지 몰리면, 겁에 질려 살려달라고 소리를 지르기 마련이었다.

       그것을 지켜보는 것이 그의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감히 자신을 앞에 두고도 조금도 겁먹은 기색이 없었다.

         

       호흡, 시선, 냄새.

       모두 무색무취였다.

         

       마귀는 자존심이 상했다.

       방금 그녀에게 공격을 받았을 때, 그는 순간이지만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

         

       한낱 사냥감에게 목숨을 위협받은 것도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두려움까지 느끼다니…….

         

       그는 그녀에게 그 이상을 돌려주고 싶었다.

         

       그는 그녀를 단숨에 죽이려던 계획을 수정했다.

       어떻게든 그녀가 겁에 질린 모습을 보고 싶었다.

         

       자카누바는 손톱으로 그녀의 몸 몇 군데를 더 그었다.

       그녀가 입고 있던 옷이 걸레짝이 되고 그녀의 새하얀 피부가 붉은 피로 물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담담한 표정을 유지했다.

         

       안달이 난 마귀가 그녀의 손목과 발목을 짓밟아 모두 분질러버렸다.

       그래도 그녀는 작은 신음 한 번 흘릴 뿐, 끝까지 그가 원하는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마야는 마귀가 자신을 고문하는 것을 보고 안심했다.

         

       다행이었다.

       놈이 시간을 끌어주어서.

         

       여기서 그가 허비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단장님이 살 확률이 높아졌다.

       아니, 어쩌면 피에 취한 이놈이 그분을 잊어버리고 그냥 갈지도 몰랐다.

         

       그녀가 할 일은 최대한 버티는 것이었다.

         

       “끼르르……?”

         

       자카누바는 그 잔인함 때문에 지능이 떨어져 보일 뿐이지 절대 멍청한 짐승이 아니었다.

       눈치도 엄청 빨랐다.

         

       그는 그녀가 다른 뭔가를 위해 이러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과연 그녀가 바라는 게 뭘까?

         

       고민은 길지 않았다.

       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

         

       그녀가 자신의 몸을 내던지면서까지 보호하려던 사람.

         

       마귀는 굳게 닫힌 회관 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 안에 있는 기절한 인간.

       그것이 그녀의 약점이었다.

         

       “아, 안 돼…….”

         

       마야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차렸다.

       얼음 같던 그녀의 표정이 고문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무너졌다.

         

       마귀는 흡족한 듯 웃음을 흘렸다.

       드디어 그녀의 표정에 나타났다.

       두려움이라는 것이.

         

       “……그, 그분은 내버려 둬.”

       “끼끼끼!”

         

       자카누바는 그녀의 떨리는 표정과 목소리를 즐기며 회관 앞으로 다가갔다.

         

       그는 문에 손톱을 찔러 넣고는 그대로 잡아 뜯었다.

       안에는 빗장이 걸려 있었지만 그의 손톱은 쇠도 자를 수 있었다.

       하물며 나무 따위야.

         

       “아아…….”

         

       마야는 회관 안으로 들어가는 마귀의 뒷모습을 보며 절망에 찬 탄식을 토해냈다.

       염동력으로 단장님을 최대한 구석에 숨겨두기는 했지만, 마귀라면 냄새를 통해 금방 그분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피투성이가 된 몸을 움직이려고 애썼다.

       그러나 몸은 약간 들썩이기만 할 뿐 꿈쩍도 하지 않았다.

       간신히 버티고 서 있던 상반신이 무너져 내렸다.

         

       그때, 철 장갑이 그녀의 몸을 받쳐주었다.

         

       “이보시오, 괜찮소?”

         

       손의 주인은 이바넨코였다.

         

       그는 갑옷이 찌그러지고 이마에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살아있었다.

       그 정도 되는 기사가 고작 기왓장과 벽돌에 깔렸다고 죽을 리 없었다.

         

       간신히 잔해를 헤치고 나온 그는 마귀의 뒤를 노리기 위해 접근했다가, 그가 회관 안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고 마야에게 달려온 것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상처를 살피려는 기사의 팔을 붙잡았다.

         

       “저 말고……단장님……. 단장님을……구해주세요…….”

         

       단장이라는 말에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는 회관 안을 돌아보고 눈을 크게 떴다.

         

       “아……! 그, 그래서 그대가 그렇게까지? 하, 하지만 그대를 두고 갈 수는…….”

         

       마야는 고개를 저었다.

         

       “저는……이미 늦었어요……. 부, 부디 단장님을…….”

         

       확실히 그녀가 흘린 피를 보면, 그녀는 당장 눈을 감아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기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그녀를 붙잡고 있는 것은 그녀를 돕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녀의 결의를 짓밟는 행동이었다.

         

       “알겠소! 나만 믿으시오!”

         

       이바넨코는 검을 쥐고 회관 안으로 뛰어들었다.

       마야는 그의 갑옷과 검의 표면에 붉은빛이 일렁이는 것을 보았다.

       기사가 자신의 애병에 담을 수 있다는 무혼(武魂)이었다.

         

       그는 생각보다 뛰어난 기사였다.

       평소라면 턱도 없겠지만, 자카누바가 상처를 입은 지금이라면 어쩌면 그를 이기는 것도 가능할지도 몰랐다.

         

       잠시 후, 회관 안에서 굉음이 들렸다.

       부딪치고 부서지고 울부짖는 소리가 휘몰아쳤다.

         

       마야는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싸움의 결과를 기다렸다.

       자꾸만 감기려는 눈을 간신히 치켜떴다.

       죽을 때 죽더라도 단장님이 무사한 것은 확인하고 싶었다.

         

       그렇게 둘이 싸우기 시작한 지 얼마 안 있어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회관의 벽 한쪽이 무너져 내렸다.

         

       이바넨코였다.

       그는 벽돌을 헤집고 일어서더니 쪼개진 투구를 거칠게 벗어 던졌다.

       그리고 떨어진 검을 주워들었다.

         

       마야는 그가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가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검을 검집에 넣더니 다리를 절뚝이며 그녀가 있는 곳을 향해 걸어왔다.

         

       “괴물……. 무슨 괴, 괴물이…….”

         

       그는 혼이 나간 사람처럼 두려움에 찬 눈빛으로 회관을 돌아봤다.

         

       아무래도 자카누바와 한 번 겨루고 나더니 겁을 집어먹은 듯했다.

         

       자기만 믿으라고 한 지 얼마나 지났다고.

         

       마야는 그를 향해 욕을 내뱉고 싶었다.

       그러고도 당신이 기사냐고 쏘아붙이고 싶었다.

       그러나 기운이 없어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회관 안에서는 무언가 내려치고 부서지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

         

       마야는 마귀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아차렸다.

       놈은 단장님을 망가뜨리고 있었다.

       자신이 충분히 절망할 수 있도록.

         

       먀야의 두 눈에 물안개가 끼었다.

         

       아니다.

       그는 잘못 생각했다.

         

       시체는 죽음 뒤에 남은 부패하는 유기물일 뿐이었다.

       그것이 어떻게 된다 해도 그녀는 아무런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분명 그랬었는데…….

       나는 그런 인간이었는데…….

         

       그녀의 두 눈에 눈물이 고였다.

         

       월리를 길에 버려두고 집에 돌아온 날.

       그녀는 마음에 견고한 논리의 성을 쌓았다.

         

       단단한 그것이.

       그를 만나면서 금이 갔다.

       그를 알아가면서 구멍이 뚫렸다.

         

       그리고 그를 잃으면서 무너져 내렸다.

         

       그녀의 두 눈에 눈물이 흘렀다.

         

       보고 싶지 않았다.

       단장님의 시체를.

       그분의 망가진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때, 건물을 흔들던 소음이 멎었다.

         

       아, 끝났구나.

         

       그녀의 마음을 지탱하던 것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그분이 죽었다.

       혹은 죽는 게 나을 정도로 부서졌거나.

         

       회관 입구에서 무언가 튀어나왔다.

       그것은 주변에 피를 흩뿌리며 철퍼덕거리는 소리와 함께 마야의 앞을 떨어졌다.

         

       마야는 눈물이 흐르는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서 뿌연 실루엣이 형태를 갖추며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을 응시하던 그녀의 동공이 커졌다.

         

       그것은 그녀가 예상하고 있던 게 아니었다.

         

       뿔이 부러진 커다란 토끼 대가리.

       자카누바의 잘려나간 머리통이 혀를 빼문 채 뒹굴고 있었다.

         

       놈이 죽었다.

         

       그녀가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고찰을 하기도 전에 회관 안에서 누군가 걸어나왔다.

       그 구두 소리는 익숙한 것이었다.

         

       그녀는 간신히 고개를 움직여 손등에 눈물을 닦았다.

         

       이건 꿈일까?

       죽기 전에 그녀가 환상을 보고 있는 것일까?

         

       그녀는 계단을 걸어 내려오는 그의 모습을 살폈다.

         

       검은 정장에 검은 모자, 그리고 흩날리는 검은 망토.

       어깨까지 닿는 긴 금발에 대리석을 깎아 만든 것 같은 외모를 지닌 남자였다.

       그녀의 스승이 그녀를 바라보며 미소짓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마야 양. 제가 기절했던 동안 많은 일이 있었군요.”

         

       아뇨. 사과하지 마세요.

       그런 말을 들으려고 한 게 아니에요.

         

       “고맙습니다. 당신 덕분에 살았습니다.”

         

       ……그건 듣기 좋네요.

       그리고 저야말로 고마워요.

       당신이 살아줘서.

         

       원더스타인은 자신을 노려보며 경계하고 있는 기사를 지나쳐 그녀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당신 몸을 치료하기 위해 잠시 손을 대겠습니다. 저항하지 말아 주세요.”

         

       저항이라뇨.

       당신의 손길이라니.

       저는 좋은걸요.

         

       마야는 정신이 멀쩡했다면 절대 하지 못했을 낯부끄러운 소리를 마음 속으로 웅얼거리며 눈을 감았다.

         

       따뜻한 기운이 그의 손길이 닿는 곳을 따라 퍼져나갔다.

         

       그녀의 몸이 회복된 것을 확인한 원더스타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이바넨코를 돌아보며 말했다.

         

       “마야 양을 잠시 돌봐주시겠습니까?”

         

       기사는 그의 미소에 흠칫 어깨를 떨고는 말했다.

         

       “다, 당신은 어딜 갈 거요?”

       “도움이 필요한 곳이죠.”

         

       그는 그렇게 말을 남기고는 망토를 휘적거리며 어딘가를 향해 발걸음을 뗐다.

         

       잠시 머뭇거리던 기사는 그의 등을 향해 외쳤다.

         

       “당신은……누구요?”

         

       기사는 아까 회관 안에서 봤다.

       거기에는 또 하나의 괴물이 있었다.

         

       등 뒤에서 솟은 칼날이 달린 다리.

       팔에서 뽑아낸 뼈의 창.

         

       그것은 분명 성당을 습격한 살덩어리 괴물이 쓰던 것과 같은 힘이었다.

         

       원더스타인은 잠시 고민을 하는 듯 그 자리에 서 있더니 그를 돌아보며 미소지었다.

         

       “프랑크 원더스타인. 그냥 평범한 서커스단의 단장입니다.”

         

       그리고 그는 어둠 속을 미끄러지듯 이동했다.

         

       이바넨코는 그가 사라진 방향을 잠시 노려보다가 쓰러진 마야를 품에 안고 마을 회관 안으로 들어갔다.

         

         

       ***

         

         

       두 마리의 자카누바와 마주친 괴물서커스단의 단원들.

         

       한 마리도 버거웠던 마귀가 두 마리나 나타났다!

       거기다 핵심 전력인 우몬이 다친 상황에서!

         

       그들은 꼼짝없이 죽는구나 생각했다.

         

       두 마귀가 그들을 향해 달려들려는 그때, 어떤 남자가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낡은 정장과 낡은 코트에 낡은 모자와 낡은 구두.

         

       깎지 않은 수염과 일주일은 감지 않은 것 같은 머리카락은 외모에도 ‘낡았다’라는 표현이 어울린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는 남자였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신사 대회에서도 복장이 지저분하다는 이유로 출입 거부당할 것 같은 인상을 풍겼다.

         

       항상 깔끔하게 다린 있는 정장을 입고 다니는 그들의 단장과 대비되는 남자였다.

         

       그는 그 앞에 선 마귀 둘을 올려다보며 혀를 찼다.

         

       “그 바보가 또 길을 잃었나 싶어서 와 봤더니, 이상한 일에 휘말려 들었군.”

         

       감히 자신들을 앞에 두고 여유를 부리는 그의 태도에 자카누바들은 성난 듯 이빨을 드러내며 그를 향해 덮쳐들었다.

         

       “키이잇!”

       “누구에게 짖어대는 거냐, 마귀놈들아.”

         

       남자는 둘을 향해 손바닥을 펼쳤다.

         

       “마신 카이랄의 사도가 명한다.”

         

       그는 꼬나물고 있던 담배를 뱉으며 말했다.

         

       “모든 것을 당기는 땅의 힘이여……뒤집혀라.”

         

       마신 카이랄.

       양면성과 반전을 사랑하는 동전과 거울의 마신.

         

       그의 가장 강력한 힘이 발동되었다.

         

       반전의 권능.

         

       “키에에엑!”

       “키르륵?”

         

       두 마리의 마귀가 하늘을 향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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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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