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18

        

         

       “예언자라. 예언자. 과거의 것을 알고 미래의 것을 알았으니 이는 천기를 읽고 하늘의 뜻을 그대로 내려받는 존재이니. 그렇다면 이것이 예언자라면, 진정 예언자라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냥 단순한 점쟁이가 아니라 예언이 가능할 수준의 예언자라면 그냥 짐 덩어리를 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계속 연을 이어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지만 통일 대한민국이라는 주술의 불모지에 있으니 주술의 실력 자체는 뛰어나지 않을 것이고, 미성년자이니 세상의 물정을 모르지 않을까? 그렇다면 대가를 줄 때 떠봐서 간을 보고, 대가를 후려치고 자신의 품 안에 넣어서 그 능력을 자신을 위해 사용하게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진성은 오딜리아의 목으로 손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는 아주 가볍게, 간지러울 정도로 부드럽게 그녀의 목을 쓰다듬었다.

         

       하지만 오딜리아는 그 손길에 거부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진성의 시선에 몸을 그대로 굳힌 채 그 손길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 손길이 자신의 목을 금방이라도 죄일 것 같이 느껴졌어도, 자신의 목을 물어뜯을 맹수의 이빨같이 느껴졌어도.

         

       그녀는 압도되어 진성의 행동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엘-라. 열등생 엘라. 그녀가 말했다. 인신공양에서 자신을 구한 주술사의 이야기를. 하지만 그 이야기는 그녀가 정신을 잃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고, 그녀의 속에서 태어난 아나스타시아 역시 제대로 구원받는 것을 목도하지 못하였으니. 그리하여 너는 생각했으리. 미래를 보고 철저한 준비를 해서 구했으되, 그 주술의 실력은 그다지 뛰어나지 않을 것이다. 미래를 보는 것은 커다란 힘을 가진 것이니만큼 다른 것은 분명히 모자람이 있었을 것이다.”

         

       진성은 마음을 읽는 것처럼 행동했다.

       예언자가 미래를 보고 움직이는 것처럼.

         

       모호한 말로 오딜리아가 자신을 오해하도록 만들었으며, 애매하기 짝이 없는 표현들로 살을 붙여 몸집을 부풀렸다. 예언자라고 오해하도록 하여 제 뒤에 휘광을 만들고, 그녀의 마음을 읽고 아무도 모를 그녀의 과거를 툭툭 던지며 자신에게 권위를 심었다.

         

       거기에 육체의 나이를 초월한 정신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그의 영혼이 그 말에 한없이 무거운 힘을 실어주었으니.

         

       그 말의 힘은 오랜 세월을 살아온 그녀조차 거부할 수 없을 정도로 강대했다.

         

       “어찌 은인을 쥐고 흔들려 하였느냐? 어찌 얌전히 말했던 대가를 지불하려 하지 않고 더 많은 것을 탐하였느냐? 이는 귀족처럼 살아오면서도 제대로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지 않은 네 인생이 만들어낸 교만이며, 더 많은 것을 손에 쥐려는 마녀 특유의 탐욕이며, 나를 우습게 본 것은 오직 너 스스로 눈을 가려서 만들어진 오판인즉.”

         

       그는 대마녀의 목을 쓰다듬던 손을 멈추었다.

       그리곤 한 손으로 그녀의 목을 아주 살짝 감쌌다.

         

       “힉.”

         

       하지만 진성이 만들어낸 분위기 때문일까.

       대마녀는 그 가벼운 손길에도 숨통이 턱 막히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는 참으로 용서받지 못할 죄악 그 자체인지라. 과거 분노와 광기에 몸을 맡겼던 신성술사들이 탄압하던 사악한 마녀의 모습과 별다른 바가 없다 하리라. 다만 신성술사조차 최소한의 재판을 거쳤으니 나 역시 얼굴을 직접 보고 성정을 파악해야 옳을 것인즉. 하여 자네에게 접근하였느니라.”

         

       그리고 진성은 그녀와 대화하며 몇 번이나 기이하다는 표정을 지었었다.

         

       그가 알고 있는 그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기에.

       까다롭고 진상인 면모는 그대로 보였지만, 미래에 비해서는 한없이 부드러운 모습이었기에.

         

       미래의 그녀는 청소부들에게 제공할 침실도 아깝다며 밧줄을 하나 걸어두고 거기에 몸을 기대서 자라고 하거나, 사용인들이 자신이 하는 말을 듣고 다른 사람에게 말할까 봐 귀를 지지고 혀를 뽑았으며, 회사 직원들에게 실적에 따라 그 대우가 달라야 한다며 하위권 사람들은 옥수숫가루와 손질하고 남은 고기 비계를 넣은 죽밖에 주지 않았다.

       게다가 그녀의 의뢰를 받고 찾아온 용병들에게도 그 대우가 끔찍했으니. 식사는 유통기한이 지나거나 간당간당한 통조림을 던져주었고, 그나마도 세 끼는커녕 하루 두 번도 간신히 제공했다. 심지어 알아서 숙소를 잡고 쉬라며 회사에서 내쫓았고, 당연히 생필품 같은 것도 제공해주지 않아서 용병들이 직접 구해서 써야만 했다.

       게다가 만날 때마다 특정 종교를 믿어야 한다면서 달달 볶지를 않나, 무슨 사이비에 홀린 사람처럼 그 종교를 믿지 않으면 당신들은 이 작전 중에 죽게 될 것이라고 악담을 퍼붓지를 않나.

         

       그야말로 구제할 수 없는 인간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 구제할 수 없는 인간이 과거에는 구제할 수 있는 인간이었으며.

       노망났다고 표현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던 회귀 전의 모습은 그 종교인으로 인해 된 것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또한 자신이 그 종교인을 대신해 올바른 길로 이끌어 줄 수 있으리라는 것도 깨달았으며.

         

       주술을 모으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음 역시 깨달았으니.

         

       “그래. 마녀야. 너는 모두에게 떠받들어지며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 했을 것이니라. 귀족의 예법을 교육받았을지언정 올바른 귀족의 태도는 교육받지 못하였을 것이며, 아이로서 자라왔을지언정 아이를 키우는 법은 몰랐을 것이니. 이 모든 것이 교육의 부재요, 시대에 휩쓸린 자에게 마땅히 찾아올 수 있는 비극이라.”

         

       진성은 권위적이고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액막이, 액막이라! 마녀야. 요새 너는 일이 잘 풀리지 않았으리라. 그리하여 보자. 점쟁이, 그래. 점쟁이에게 갔더니 액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으리라. 하지만 그래 봐야 소용이 없는 법. 이미 썩어 문드러진 물에 향수를 몇 방울 떨군들 거기서 향긋한 냄새가 나겠느냐? 페인트로 알록달록해진 바닥에 세제 몇 방울 떨어뜨린다고 그게 되겠느냐? 천금을 부어 주물(呪物)을 사고, 만금을 부어 액막이 의식을 치르고. 그래, 그런다 한들 소용이 없었으리라.”

         

       그는 눈에 힘을 주고 마녀를 쳐다보았다.

         

       “이는 네 삶과 그 태도 때문에 찾아온 액이기 때문이니라.”

       “어….”

         

       망치로 때리는 듯한 진성의 말에 마녀의 눈이 커졌다.

       그리고 지금 이 시점이 말을 때려 넣기에 가장 좋은 시점이었다.

         

       충격을 받아 반론을 꺼낼 수 없을 때.

       머리가 하얗게 백지처럼 물들어 자신의 말을 새겨넣기 좋을 때.

         

       “아래에 있는 이에게는 원한을 샀느니라. 아래에 있어 본 적이 없으니 아랫사람의 고충을 모르고, 하니 오직 채찍질만을 하는 법만을 알게 되었으니 어찌 원한을 사지 않을 수 있을까. 또한, 윗사람에게는 출신이 천한데 날아오르는 것에 질투와 시기를 받았으며, 동료뻘인 이들에게는 그 오만하기 짝이 없는 태도로 원한을 샀을 것이니. 사방이 적이고, 주위에 마음을 나눌 이들이 거의 없는 형국이다. 다만 구명의 은혜를 입은 이들이 있고, 너의 제자인 아그네스에게는 친절하기 짝이 없었으니 거기서 숨통이 트여 지금까지 큰일을 겪지 않았을 것이다.”

       “수, 숨통이요…?”

       “하지만 그 숨통도 시간과 함께 쌓이고 다져진 액을 막기엔 역부족이니라. 하니 내 조언을 듣고 바꿀 수 있는 것을 차츰 바꾸어 몸에 쌓인 악업과 원한을 덜어내는 것이 네가 살 길이 될 것이며, 그것이 나에게 온전한 대가를 지불할 수 있는 길일 것이니. 너는 오직 내가 말하는 비방을 의심 없이 행하여 나에게 대가를 지불해야 할 것이다.”

         

       진성은 엄한 말투와 부드러운 말투를 오가며 마녀의 혼을 쏙 빼놓았다.

       그리고 마녀가 ‘대가’라는 단어에 대해 질문하려고 할 때, 그는 자연스럽게 말을 이어서 그녀의 궁금증을 해결해주었다.

         

       “다만 마녀야. 셈은 정확해야 하는 법이니. 너는 지금 나에게 수많은 것을 빚졌다. 인정하느냐?”

       “네, 네…?”

       “나는 네가 그토록 사랑하는 아그네스의 하나뿐이었던 제자를 주술사의 위협에서 구해주었으며, 내가 인신공양을 뒤집어 의식을 행하게 만들어 그녀의 품 안에 있던 아이도 살려내었다. 또한, 엘라를 살려냄으로써 너와 네 제자에게 갈 액도 막아주었으니 그 대가 역시 무겁디무거울 것이며, 너의 미래를 보고 그 일부를 말해주었으니 그 복채도 내야 할 것이며. 또한, 나를 속이려 들었으니 그 대가도 지불해야 할 것이며. 그리고 내가 지금 말해주는 비방 역시 대가에 포함될 것이니. 아, 참으로 대가가 크고도 무겁겠다.”

         

       진성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오딜리아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말투에는 단호함이 묻어있었으니, 그것은 마치 무언으로 ‘설마 거부하지는 않겠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과 같았다.

         

       “대, 대가는 얼마나…?”

         

       오딜리아는 차마 대가를 지불하지 않겠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진성이 보이는 분위기에 눌려서일지도 모르고, 그의 말을 이해하고 받아들였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그 옛날 종교인에게 홀렸을 때 그러했듯이 진성에게 홀린 것일 수도 있으리라.

         

       진성은 대마녀의 질문에 그녀의 머리카락을 한 차례 쓰다듬더니 피식 웃었다.

         

       “지금 알아서 무엇을 하겠느냐? 어차피 알아도 지불을 하지 못할 것이오, 때가 되면 지불할 수 있을 것인데 어찌 미리 알려고 하느냐?”

         

       그는 자신의 손에 묻어나온 대마녀의 머리카락을 집어 들더니 말레우스 말레피카룸 위에 얹었다. 그러자 책에서 백지 하나가 부욱 찢겨 나오더니 머리카락을 감쌌고, 머리카락과 종이가 이리저리 움직이며 이상한 주물을 만들었다.

         

       그것은 뱀들이 어지러이 얽혀 구체의 형상을 이룬 듯한 주물이었다.

         

       그는 그것을 대마녀의 손에 꼬옥 쥐여주며 말했다.

         

       “마녀야. 너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나는 너에게 우호적이며, 네가 나에게 저지른 커다란 무례 역시 대가를 받는 것만으로 용서해줄 정도로 호의적이니라. 다만 가는 것이 있으면 오는 것도 있어야 하는 법. 너는 나의 호의를 배반하지 말고, 내가 너를 위해 해주는 비방을 의심 없이 행하여 오직 나를 믿고 따라야 할 것이다. 그럴 수 있겠느냐?”

         

       그 속삭임은 부드러웠다.

       앞서 그녀를 얼어붙게 했던 권위적인 목소리와는 다른, 그녀의 몸을 부드럽게 풀고 매혹하는 듯한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에 마녀는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진성은 만족했다는 듯 주물을 쥔 대마녀의 손을 두 손으로 꼬옥 붙잡더니 환하게 미소지었다.

         

       “그래. 잘했느니라. 무얼. 그다지 어렵진 않을 것이니라. 네 손 안에 쥔 주물이 네 액을 막아줄 것이며, 나의 비방에 충실히 따른다면 몸에 서린 액도 사라지고 그 대신 복이 자리에 들어찰 것이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에 있을까!”

         

       그리고 대가는 점점 커지게 될 것이다.

       나중에 진성이 100m가 넘는 빌딩을 지어달라고 해도 거부하지 못할 정도로.

         

       대신에 회귀 전처럼 끔찍한 죽음은 겪지 않을 수 있을 터이니.

       목숨값으로는 싼 편이 아니겠는가?

         

       “그래. 가장 먼저 내가 시키는 것을 행하거라. 어렵지는 않을 것이니라. 이대로 방으로 돌아가게 되면….”

         

       진성은 마녀에게 ‘비방’을 알려주었다.

       그리곤 그녀가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총을 들어 그녀의 목을 향해 쏴버렸다.

         

       타-앙!

         

         

        * * *

         

         

         

         

       스위트룸에 진성과 함께 돌아온 대마녀는 기이한 태도를 보였다.

       멍한 표정을 지었다가도 옆에 서 있는 진성의 몸에 닿을라치면 화들짝 놀랐으며, 그러다가도 송구스럽다는 듯 슬쩍 고개를 숙이며 진성의 눈치를 살피기도 했다.

         

       게다가 목을 어루만지기도 하고, 자신의 손등을 쓰다듬기도 했으며, 손에 쥔 이상한 물건을 만지작거리기도 하였다. 게다가 위치크래프트를 사용하지도 않는데 꽃병을 바라보며 손가락을 몇 번이고 튕기지를 않나, 자리에 앉았다가 어색한지 자세를 이리저리 바꾸는 등의 이상한 행동을 일삼았다.

         

       그렇게 한참 동안 이상한 짓을 하던 대마녀는 무언가 결심이 선 듯한 얼굴로 진성을 한 번 바라보더니, 침대에 앉아 있는 엘라에게 말을 걸었다.

         

       “에, 엘라야. 그. 내가 너무 무심했던 것 같구나…. 미, 미안하구나. 그리고 러시아 생활이 고될텐데 피, 필요한 게 있…있다면. 말해줬으면 좋겠구나.”

         

       그리고 그것을 본 엘라는.

         

       “어. 어…어?”

         

       믿을 수 없는 것을 보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얼어붙었다.

         

         

         

         

       

    다음화 보기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