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18

       

       

       

       

       

       정곡을 찔린 듯, 길드 마스터의 표정이 움찔했다. 

       

       “있군요.”

       

       하지만 길드 마스터는 고개를 끄덕이지 못하고 낭패한 표정으로 아르가 컵을 두 손으로 꼭 잡고 커피를 홀짝이는 모습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무려 정보 길드의 길드 마스터라는 자가 자신의 의뢰자에 대한 정보를 노출한다는 건 길드 자체의 신뢰도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만한 일이니까. 

       

       마스터도 아마 레드 드래곤이라는 단어를 듣지만 않았어도 표정 관리쯤은 아주 쉽게 했을 것이다. 

       

       ‘근데 솔직히 한 사람한테만 들어도 충격적인 단어를 두 사람한테 정확하게 들으니 움찔할 수밖에 없지.’

       

       나는 이어서 물었다. 

       

       “혹시 그자들이 이렇게 생긴 괴상한 가면을 쓰지 않았습니까?”

       

       옆에 있던 비서에게 종이와 펜을 받아 든 나는 헤카르테교 놈들이 쓰던 가면의 모습을 그려 보여 주었다. 

       

       “…허어.”

       

       웬만하면 부정이라도 할 텐데, 이건 너무 정확해서 부정하기도 힘들겠다는 듯한 허탈한 한숨이었다. 

       

       이내 길드 마스터는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했다. 

       

       “…맞습니다. 이전에 이런 가면을 쓴 자가 와서 거금을 줄 테니 레드 드래곤의 레어를 찾아 달라고 한 적이 있었죠.”

       

       역시.

       

       “남부에 있는 것 하나만큼은 확실하다면서, 착수금만으로 50골드를 주고 갔습니다.”

       “와, 통 크네요.”

       

       착수금만으로 50골드면, 최소 완수 시에 100골드, 어쩌면 그 이상의 금액을 약속했을 수도 있었다. 

       

       ‘그래, 솔직히 위험한 일이긴 하지. 어려운 일이기도 하고.’

       

       최소 100골드의 값어치는 충분히 된다고 생각하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놀랍게도 길드 마스터는 내 말에 고개를 저었다. 

       

       “통 크긴 개뿔.”

       

       그렇게 중얼거린 뒤, 마스터는 놀라서 말했다.

       

       “아, 죄송합니다. 화가 나서 저도 모르게 그만.”

       

       마스터는 마치 그 일만 생각하면 화가 난다는 듯, 이를 갈았다. 

       

       “왜 화가 나신 건지…?”

       “완료한 다음, 저희가 레어의 위치를 대략적으로 특정해 알려 주자마자 놈들은 잔금을 치르지 않고 도망쳐 자취를 감춰 버렸습니다.”

       “뭐라고요?”

       

       정보 길드를 상대로 이런 뻔뻔한 사기 행각을 벌이는 건, 보통 배짱으로는 하기 힘든 일.

       

       추적당할 위험을 감수하는 건 물론이고, 앞으로 이곳뿐 아니라 어떤 정보 길드와도 거래가 힘들어진다는 가장 큰 디메리트를 감수해야 가능한 일이다. 

       

       아마 헤카르테교 입장에서는 레드 드래곤의 레어 위치만 알아내면 그 뒤로는 딱히 정보 길드에게 기대지 않아도 되니, 그렇게 먹튀를 하고 지켜 낸(?) 돈으로 가가레일 유적지의 결계를 왜곡시킬 마력석을 사기로 한 모양이었다. 

       

       ‘요약하자면 정보 길드 상대로 한 탕 제대로 해 먹고 튀었다는 소리지.’

       

       길드 마스터는 분이 풀리지 않는 듯 씩씩거렸다. 

       

       “완수하고 받기로 한 돈이 150골드였습니다. 그 때문에 다른 의뢰는 거의 받지도 않고 가용 인원을 전부 투입해 고대 문헌 조사부터 시작해 할 수 있는 건 전부 다 했습니다.”

       “저런.”

       “레어 주변에는 결계가 쳐져 있고 각도에 따라 좌표 왜곡도 있어서 저희로선 범위로 특정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갑자기 그걸로 꼬투리를 잡더군요. 그러더니 돈은 못 주겠다면서 연막을 뿌리고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빌어처먹을 놈들 같으니…. 아,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욕 나올 만하네요.”

       

       길드 마스터는 한숨을 쉬었다. 

       얼마나 이걸로 고생을 했으면, 그새 다섯 살은 더 늙어 보였다.

       

       “물론 그 뒤로 저희도 놈들에게 빚을 받아내기 위해 추적을 실시했습니다. 하지만 때마침 토리온 패거리들이 세력을 확장하는 바람에…. 거기에 무작정 인원을 투입할 수가 없게 되었죠.”

       “어쩌면 그쪽에 바람을 넣었을 수도 있겠네요.”

       “그럴 수도 있겠죠. 놈들한테는 100골드가 아니라 10골드만 줘도 제대로 난동을 부려 줄 테니까요. 솔직히 전 지금이라도 놈들을 일망타진할 수만 있다면 돈 같은 건 깨끗이 잊을 수도 있습니다.”

       

       그 정도로 놈들에 대한 길드 마스터의 원한은 큰 모양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말을 들은 나는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방금 그 말, 진심이시죠?”

       “예? 그럼요. 진심입니다.”

       “사실은 그놈들 간부진, 저희가 싹 다 쓸었습니다.”

       

       ***

       

       내 이야기를 들은 길드 마스터의 입이 떡 벌어졌다. 

       

       “그러니까, 그게 레드 드래곤의 유물을 이용해 용을 폭주시키기 위해 꾸민 짓이었단 말입니까?”

       “그렇죠. 저희가 그 유물을 선점하고 나오는 길에 마주치는 바람에 불가피하게 전투를 하게 됐고, 그때 한 놈도 남김없이 쓸어 버렸습니다. 물론 놈들의 지부가 하나는 아니겠지만, 어쨌든 지부 하나는 확실하게 몰락시킨 셈이죠.”

       

       길드 마스터의 얼굴은 그새 체한 게 많이 내려간 사람처럼 편안해져 있었다. 

       

       “개 꼬시다, 처죽일 놈들…아,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여튼, 그래서 저희는 레드 드래곤의 레어를 찾아 그 유물을 돌려 주러 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레어의 위치를 찾으시려는 거군요.”

       “네.”

       

       마스터는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저희가 알아낸 정보를 전부 알려 드리겠습니다.”

       “오오, 감사합니다.”

       “그리고, 길드원들을 풀어서 나머지 헤카르테교 지부의 위치도 한번 추적해 보겠습니다. 계획이 실패한 걸 알면 다른 지부에서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테니까요.”

       

       마스터의 눈이 먹잇감을 찾은 맹금류의 눈처럼 빛났다. 

       

       “그렇게 해 주시면 저희야 감사하죠.”

       

       헤카르테교 지부 하나의 간부들을 궤멸시켰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다른 지부들은 건재한 상황. 

       

       지금쯤 다른 지부들은 유물을 가로챈 우리를 찾고 있거나, 레드 드래곤의 화를 돋울 다른 방법을 강구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니 남부에 있는 헤카르테교의 뿌리를 이참에 말릴 수 있다면 우리로선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감사는 저희가 해야지요. 길드원들을 파견할 수 있게 된 것도 전부 여러분께서 토리온 패거리를 처리해 주신 덕분인데요.”

       “아빠! 이 초코 브라우니 맛있어!”

       “뭣들 하나! 브라우니 더 대령해!”

       “옙!”

       

       ***

       

       우리는 결국 생각지도 못하게 바로 레드 드래곤 레어의 위치 정보를 얻게 되었다. 

       

       ‘헤카르테교 놈들이 설마 로멜드의 정보 길드를 이용했을 줄이야.’

       

       제로 베이스에서 레드 드래곤에 대한 단서를 찾기 시작했으면 몇 주가 걸려도 이상하지 않았을 텐데, 헤카르테교 놈들이 먼저 의뢰를 해 놓은 덕분에 시간을 아낄 수 있었다. 

       

       게다가 이제는 토리온 패거리로부터 자유로워진 정보 길드의 힘으로 나머지 헤카르테교 지부의 위치까지 찾아 준다고 하니, 기다리기만 하면 정보가 척척 들어올 터였다. 

       

       ‘그럼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정해져 있지.’

       

       우리는 레드 드래곤의 레어가 있는 곳으로 추정되는 위치까지 갈 마차를 구했다.

       단,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마부를 구하는 게 아니라 마차와 말만 빌리기로 했다. 

       

       ‘무려 드래곤 레어 가까이 가는 건데 일반인을 데리고 갈 수는 없지.’

       

       마차를 몰 줄 아는 실비아가 있었기에, 우리는 마차를 따로 구해 호텔의 마굿간에 주차시켜 두었다. 

       

       ‘좋아. 바로 내일 아침에 출발한다.’

       

       호텔로 돌아온 우리는 조금 휴식을 취하다가 호텔에서 제공하는 석식 뷔페를 이용했다. 

       

       “와아! 아빠, 여기 맛있는 거 엄청 많아! 어, 저기도 많아! 우아아!”

       

       뷔페에 처음 와 보는 아르는 눈이 땡그래진 채 뭐부터 먹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발을 굴렀다. 

       

       “엇! 치킨이다! 아빠, 나 치킨 먹을래!”

       

       먹음직스러운 후라이드 치킨이 쌓여 있는 곳을 발견한 아르가 달려가서 손으로 집으려는 순간.

       

       “아쿠, 아르야. 뷔페는 이용하는 방법이 따로 있단다.”

       “우응?”

       “저어기 아래 접시 쌓여 있는 거 보이지? 저걸 들고 돌아다니면서 이런 집게로 먹고 싶은 음식들을 모아 와서 우리 테이블에서 먹으면 되는 거야.”

       “그런 고야?”

       “응. 그러니까 같이 접시 가지고 오자?”

       “우응!”

       

       설명을 들은 아르는 밝아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접시를 들고 함께 다니며 음식을 담았고.

       

       “하하, 아르야. 접시 하나만 써야 되는 거 아니니까 너무 그렇게 꼭꼭 담을 필요는 없어.”

       “그, 그런 고야?”

       “응. 다 먹고 새 접시 쓰면 돼.”

       

       곧 각자의 취향이 가득 담긴 접시를 테이블로 들고 와서 맛있는 식사를 즐겼다. 

       

       ‘진짜 다양하게 잘 돼 있네.’

       

       각종 구운 고기류, 튀김, 육회, 생선회, 대게 같은 해산물까지도 아주 싱싱한 최상품들이 즐비했다.

       

       “아, 아르야! 그건 게라는 건데, 껍데기는 먹는 거 아니야! 아빠가 살 발라 줄게.”

       

       대게를 껍데기째 와그작 씹어 먹으려는 아르를 간신히 말린 나는 살을 발라 아르의 입에 넣어 주었다. 

       

       “우으응! 맛있어, 아빠! 헤헤, 고마워!”

       “그래, 그래. 우리 아르가 맛있게 먹으니 다행이네.”

       “여보도 아, 해 보세요.”

       “네? 아아. 오! 이거 맛있네요. 되게 부드러운데요?”

       “그쵸?”

       

       나는 실비아가 먹여 주는 블랙 보어 스테이크 한 조각을 먹고 눈을 크게 떴다. 

       

       “아빠, 이것도 맛있어! 이것도!”

       

       아르는 금세 접시 두세 개를 꽉꽉 채워 깨끗이 비웠다. 

       

       “와, 저쪽 테이블 봐. 딸애가 아주 야무지게 먹네.”

       “우리 아들도 저리 먹어야 쑥쑥 클 텐데, 입이 짧아서 고민이에요.”

       “복스럽게도 먹는구먼, 허허.”

       

       아르의 먹방을 직관하고 있는 주변 테이블에서는 종종 감탄사가 흘러 나왔다. 

       

       “아빠, 여기두 커피가 있어! 헤헤.”

       

       배부르게 먹고 후식을 먹을 때쯤, 아르가 커피를 가져왔다. 

       정보 길드에서 마신 커피가 어지간히 맘에 든 모양이었다. 

       

       “아르야, 아빠가 커피 더 맛있게 먹는 법 알려줄까?”

       “우응!”

       “잠깐만 기다려 봐.”

       

       나는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가져와, 아르의 커피를 아이스크림 위에 부었다. 

       

       “우아아!”

       

       아르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위에 아르가 좋아하는 커피가 부어지자, 아르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아포가토라는 건데, 요렇게 해서 먹으면 맛있거든.”

       

       아르는 스푼으로 아포가토를 얼른 떠서 입에 넣었다.

       

       “마, 마시써…!”

       

       아르의 눈이 다시 한번 신세계의 충격으로 물들었다. 

       

       “아르 행복해…!”

       

       아포가토를 한 숟갈 먹을 때마다 아르의 눈이 행복으로 물드는 모습을 보며, 나와 실비아도 미소를 지었다. 

       

       ‘근데 진짜 괜찮겠지? 커피.’

       

       아까도 살짝 걱정했는데, 지금은 저녁 시간이다 보니 아르가 밤에 잘 잘 수 있을지 더 걱정이 되었다. 

       

       ‘아냐, 그래도 명색이 드래곤인데….’

       

       커피 좀 마셨다고 잠이 안 올 리가 없지.

       

       암 그렇고말고.

       

       그리고 잠시 후.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올라온 아르는 곧바로 와다다 달려가 침대에 몸을 던졌다. 

       

       배부르게 먹고 나서 식곤증에 몸을 맡기고 꿀잠을 자는 거야말로 아르의 최고 행복 중 하나.

       

       하지만, 곧 아르는 감았던 눈을 번쩍 뜨며 나를 불렀다. 

       

       “아빠아아! 아르, 잠이 안 와! 히잉.”

       “…….”

       

       아르는 눈물을 글썽이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다음화 보기


           


I Picked Up a Hatchling

I Picked Up a Hatchling

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