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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8

       데카르트 공작저의 집무실.

       

       프란체는 검은색 만년필을 들고 밀린 공작령의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흠…….”

       

       대부분 영지 관련 일인지라 복잡하고 어려운 건 없었지만, 자신이 직접 처리하지 않아도 되는 자잘한 일들이 많다.

       

       ‘사업은 엘반 자작이 있으니 공작령 관리에 집중해야겠어.’

       

       현재 사업은 엘반 자작이 임원들을 뽑아 대신 진행 중이다. 매번 수익과 지출을 알려주고, 매장 상황과 전망이 어떨지까지 예상하여 보고서를 작성한다.

       

       ‘괜히 황실 공인 아카데미 엘리트 출신이 아니란 거지.’

       

       일 처리를 잘 해줘서 좋다만, 엘반 자작과는 크게 연이 없다. 만날 일도 딱히 없을뿐더러 자작 본인도 업무가 끝나면 선을 그어버리니.

       

       ‘뭐, 그게 마음에 들어서 뽑은 거지만.’

       

       프란체는 픽 웃고는 다시 업무에 집중했다.

       

       사각사각.

       

       현재까지 진행된 일은 별채의 사용인들을 전부 데려오고, 기존 사용인들은 해고했다.

       

       ‘일방적인 해고로 추천서도 받지 못했으니 다시는 귀족가의 사용인으로 들어가지 못 하겠지.’

       

       사각사각.

       

       선임된 기사들은 전부 모욕죄로 해임했으며 케일과 라데아를 단장과 부단장 자리에 앉혀두고 있다.

       

       ‘기사들을 뽑는 건 케일에게 맡기자.’

       

       케일은 실력도 실력이지만, 의외로 사람 보는 눈이 괜찮다. 기사를 모집한다고 이곳저곳에 전서를 보내뒀으니 많은 지원자가 올 것이다.

       

       사각사각.

       

       ‘그리고 사용인들은…….’

       

       아무리 별채의 사용인들을 데려왔다고 해도 인원수가 부족하다. 본가와 별채는 크기부터 다르니 말이다.

       

       ‘이건 집사장 플뤼겔이 직접 뽑기로 했으니.’

       

       사각사각.

       

       ‘일단 급한 일은 이 정도네.’

       

       공작이 왜 그렇게 온종일 집무실에 처박혀서 일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냥 일을 만들어서 하는 타입이었나?’

       

       그 사람이라면 그럴 만도 하다. 자신이 주도해서 무언가를 계속했겠지.

       

       탁. 급한 일처리가 끝난 프란체는 펜을 놓고 팔을 쭉 뻗어 기지개를 켰다.

       

       “흐아아…….”

       

       잠시 의자에 등을 기대고 명상에 잠기려던 찰나.

       

       똑똑.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공녀님, 집사장입니다.

       

       별채에서 온 집사장이었다.

       

       “들어오렴.”

       

       덜컥. 집사장이 들어오고 뒤따라 헬레나가 다기를 들고 왔다.

       

       “무슨 일이야?”

       “새로운 사용인들에 관해서입니다.”

       “그래? 말해봐.”

       

       새로운 집사장, 플뤼겔은 공작저의 업무를 전반적으로 요약하여 보고서를 가져왔다. 이 사람도 일 처리를 잘 한다.

       

       “흠…….”

       

       별채에서 온 사용인의 숫자는 한참 부족했다. 절반도 채우지 못했으니 말이다.

       

       “뽑을 사람이 많구나.”

       “맞습니다.”

       

       플뤼겔은 자료를 하나 더 건네며 말을 이었다.

       

       “사용인의 숫자도 부족합니다만, 현재 시녀장, 관리인 같은 비어있는 직책이 많습니다. 이전부터 없었던 거 같더군요.”

       

       데카르트 공작저는 기본적으로 공작과 집사장이 모든 일처리를 맡았다. 그러니 다른 직책은 비어있을 수밖에.

       

       “알겠어. 그러면 그 비어있는 직책을 뽑는 것도 맡길게. 그쪽 일의 담당자는 집사장인 플뤼겔이니.”

       

       플뤼겔은 “공녀님의 신뢰에 감사드립니다.”하고 허리를 숙였다.

       

       “용무는 이게 끝인가?”

       “그렇습니다.”

       “그래, 아까 말한 일은 맡길게.”

       

       프란체는 싱긋 웃으며 미소를 지어주었다.

       

       플뤼겔은 프란체에게 있어 여러모로 고마운 존재다. 자신이 본가에서 배척받는 걸 알면서도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고 프란체를 존중해주었으니 말이다.

       

       그 탓에 프란체는 황도의 별채에서 지내는 일이 많았다.

       

       ‘망할 라인만 아니었어도 거기서만 있는 거였는데.’

       

       인제 와서 생각해봤자 의미없다. 결국엔 모든 게 프란체의 손에 들어왔으니.

       

       그나저나…….

       

       “후훗.”

       

       이미 별채에서 온 사용인들은 프란체를 데카르트의 주인으로 보고 있다.

       

       ‘눈치도 빠르고, 일도 잘하고.’

       

       부족한 게 없는 사람들이다. 봉급도 올려줘야지. 가끔 파티도 열고.

       

       ‘이제 마법서나 해독하러 가자.’

       

       <간절한 영원의 노래>

       

       이 영혼 결속 마법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틈날 때마다 해독에 들어가야지.

       

       “헬레나? 방으로 돌아가자.”

       “네.”

       

       그렇게 집무실을 나와 방으로 돌아가자니, 사용인 한 명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공녀님! 소 공작님께서 깨어나셨습니다!”

       

       에덴이 깨어났다라, 어떻게 나올지가 궁금하다.

       

       “상태는 어떠하시니?”

       

       사용인은 짧고 간략하게 상태를 말해주었다. 소 공작은 이제 막 깨어나 간신히 몸을 움직이고 있는 상태라고.

       

       “그렇구나. 바로 내가 만나러 가볼 테니 하던 일 마저 하렴.”

       “네, 알겠습니다!”

       

       프란체는 턱을 어루만지며 눈썹을 좁혔다. 이미 공작은 이 후계 싸움에서 입지를 잃었다.

       

       ‘에덴이 어떻게 나올지가 궁금하네.’

       

       소드 마스터가 검을 잡는 오른팔을 잃었다. 거기에 모자라서 후계자 자리는 빼앗기기 직전. 그의 반응을 한시라도 빨리 살펴보고 싶었다.

       

       “헬레나? 벌꿀차를 준비해서 먼저 내 방에 가 있으렴.”

       “네, 알겠습니다!”

       

       헬레나는 도도도 벌꿀차를 준비하러 갔고, 프란체는 에덴의 침실로 향했다.

       

       또각. 또각. 그녀의 발걸음 소리가 음산하게 들려왔다. 그렇게 에덴의 침실 앞에 서고.

       

       “소 공작님? 프란체입니다.”

         

       똑똑. 문을 두드린 뒤 바로 들어갔다.

       

       초췌한 얼굴로 침대에 걸터앉은 에덴. 프란체는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걸 애써 참고 의자를 끌어와 그의 앞에 앉았다.

       

       “소식은 들으셨나요?”

       “…….”

       “제가 후계를 이어받을 예정이랍니다.”

       “…….”

       “소 공작님께선 몸상태가 좋지 않으시니까요.”

       “…….”

       

       대답없이 탁기가 가득한 눈빛으로 프란체를 올려다보는 에덴.

       

       ‘웃기네.’

       

       1년 전까지만 해도 거대하게만 보였던 에덴이었다. 눈만 마주쳐도 겁을 먹어야 했고 손찌검을 당하기라도 할까, 심장이 쿵쾅거렸다.

       

       하지만 이제는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는다. 그저 비웃음만 가득했을 뿐.

       

       “말씀이 없으세요. 아직도 충격이 크신가요?”

       

       조소가 섞인 말투. 명백하게 비웃음이었다.

       

       “…후계자를 이어받는다고 했나?”

       

       그제야 입을 연 에덴. 여전히 눈빛에 생기가 없고 고개를 드는 것조차 힘들어보인다.

       

       “그렇게 되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공작위를 이어받을 건 저밖에 없잖아요?”

       

       반박할 수 없는 진실.

       

       “…….”

       

       에덴은 고개를 숙이곤 바닥을 바라봤다.

       

       “그렇게 된 건가.”

       

       의외로 담담한 에덴. 당장이라도 아픈 몸을 이끌고 반발할 줄 알았다. 그토록 무시하던 여동생이 가문을 이끌게 되었으니까.

       

       하지만 반응은 정 반대. 프란체는 왠지 모를 불쾌함을 느꼈다.

       

       “가문을 잘 부탁한다, 프란체.”

       “…….”

       

       프란체의 눈썹이 들썩이고 눈 밑이 꿈틀거렸다.

       

       “제게 후계자 자리를 빼앗겼는데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 건가요?”

       

       자신도 모르게 나온 질문이었다. 이대로면 찝찝하기만 할뿐 속이 시원하지 않다.

       

       “성녀도 내 팔을 치료할 수 없다고 들었다. 이렇게 되었는데 후계를 어떻게 이어가겠나. 그리고 라인에게 맡길 순 없으니 네가 데카르트를 이어야지.”

       

       냉철하고 이성적인 판단. 프란체는 에덴이 분개하길 원했다. 하지만 이런 반응이라면…….

       

       ‘나 혼자서 자의식 과잉으로 행동한 거 같잖아…!’

       

       받아들일 수 없다.

       

       “대체 왜!”

       

       목청이 울렸다. 프란체의 목소리에는 여러 감정이 섞여있었다. 앙심, 의구심, 반감, 적개심, 원망, 복수심, 불만.

       

       이 많은 감정이 조화를 이루어 프란체 자신도 무엇을 원하는지 잘 모르게 되었다.

       

       “왜, 왜 그렇게 체념하시는 거죠? 당신이 그토록 무시하고, 핍박하고, 미워했던 제가 데카르트를 이어받는 거에 불만이 없으신 건가요?”

       

       에덴은 픽 웃으며 옅은 숨을 내뱉었다.

       

       “지금으로선 그게 최선이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에덴다운 대답. 프란체의 얼굴이 종이 구겨지듯이 일그러졌다.

       

       “그래요. 소 공작님은 항상 그러셨으니 받아들일게요. 그 어떤 것보다 가문만을 생각하셨으니까요.”

       

       프란체는 차분하게 숨을 내쉬곤 말을 이어갔다.

       

       “그럼 이것만 물어볼게요. 왜 그렇게 가문의 위신에 집착하셨던 건데요? 광적으로 보일 정도잖아요.”

       

       에덴은 고개를 들어 프란체와 시선을 마주했다.

       

       “그래야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게 무슨…….”

       

       헛웃음을 짓는 에덴.

       

       “그러고 보니 너는 가장 늦게 태어나 우리와 공작님에 대해서 잘 몰랐지.”

       

       프란체는 당최 이해가 가지 않았다.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궁금한 것이 많을 거다. 왜 나와 라인이 너를 극도로 싫어했는지, 왜 내가 공작님을 단 한 번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는지.”

       

       쿵! 프란체는 뒤통수를 후려맞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에덴은 공작을 아버지라 부르지 않았다.

       

       그것도 아주 오래전부터.

       

       “제가 태어남과 동시에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그런 게 아니었나요? 그때는 분명 그렇게 말씀을…….”

       

       에덴은 픽 웃으며 고개를 휘저었다.

       

       “단순히 그런 이유로 그랬겠나? 어머니가 돌아가신 건 네 탓이 아니다. 치유사들의 실수가 문제였지.”

       

       그럼, 그럼 대체 뭐 때문에 그랬던 것인가? 프란체의 정신이 흔들린다.

       

       “이젠 모든 걸 내려놓을 때가 되었으니 말해주어도 괜찮겠지.”

       

       에덴은 초췌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네가 태어나기 전, 공작가는 정말 화목한 가정이었다. 공작님은 엄격하시지만 그 누구보다 우리를 소중히 대하셨고 어머니는 늘 따뜻하셨지.”

       

       프란체가 20년을 살면서 처음 듣는 가정사.

       

       “그런데 네가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는 급격히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하셨고, 이내 돌아가셨다. 성직자들과 치유사들의 실수였지.”

       

       에덴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에게선 그 어떤 감정도 찾아볼 수 없었다.

       

       “나와 라인은 네가 소중했다. 너는 우리가 그토록 사랑했던 어머니가 남기신 마지막 유산이었으니까.”

       

       행동과 말이 맞지 않는다. 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 건지. 혼란스러웠다.

       

       “문제는 그 이후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광란의 저주에 빠지셨다. 나와 라인에게 폭행하는 건 기본이고, 굶기거나 마수가 득실거리는 숲으로 버리기도 하셨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에덴과 라인의 이야기.

       

       “어떤 때는 일반 기사들도 이기지 못할 강한 마수를 만난 적이 있었다. 만약 내가 검에 소질이 없었다면 라인과 같이 그대로 죽었을 테지. 그럼에도 공작님은 우리를 내버려 두셨다.”

       

       말을 이어가면서, 에덴의 눈빛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공작님은 그게 데카르트의 교육이라고 말씀하셨다. 그 교육은 목숨을 걸어야 했고, 살아남기 위해선 절박하고 처절하게 지내야 했지.”

       

       프란체는 그저 들을 수밖에 없었다. 자기가 모르던 시절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유일하게 공작님이 건드리지 않는 게 너였다. 그때부터 나와 라인은 네가 원망스러웠다. 왜 우리만 고통받아야 하는가, 하고 말이지.”

       

       에덴은 “치기 어린 심술이었지.” 하고 말을 이었다.

       

       “그러나 네가 점점 자라나며 공작님도 달라지셨다. 이전과는 달리 폭행도 하지 않으셨고 우리를 사지로 내모는 것도 사라지셨다.”

       

       그러고는 픽 웃는 에덴. 실소에 가까웠다.

       

       “점점 자라나는 너에게서 어머니의 모습을 본 거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광란의 저주에서 빠져나온 거겠지.”

       

       프란체의 에메랄드빛 눈동자가 흔들렸다. 에덴과 라인에게 향한 원망이 사라진 건 아니지만, 이런 사정이 있는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공작님의 정신이 완전히 돌아온 건 프란체, 네가 18살이 되던 시점이다. 이건 너도 알고 있겠지?”

       

       프란체는 멍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까지가 네가 알지 못했던, 나와 라인의 이야기다. 그간 널 못살게 굴어서 미안했다. 당연히 용서는 바라지 않는다. 계속 원망해라. 우리는 벌을 받아야만 하니까.”

       

       주먹을 꽉 쥔 채 말이 없는 프란체. 가슴속에서 알 수 없는 감정이 일렁였다. 복잡함에 어찌 해야 할지 모르겠을 정도로.

       

       “무거운 짐을 덜어내게 해줘서 고맙다, 프란체. 나는 이대로 공작가를 떠날 거다. 호적에서 내 이름을 지워도 좋다. 그리고, 이제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에덴은 그리 말하고 밝게 웃었다.

       

       후련한 미소였다.

       

       반면, 프란체는 형용할 수 없는 분노가 치솟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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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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