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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8

       검선은 검 손잡이 위에다 손을 올려놓은 채 하린을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에서 적의는 보이지 않았으나 하린은 경계를 버릴 수 없었다. 방금 전 나설을 죽인 건 분명 눈앞의 무인이었으니까.

       

       하린이 대놓고 날을 세우자 검선이 웃음을 흘렸다.

       

       “경계를 하는 건 좋다만 그런다고 내 검에 대응할 수 있긴 하더냐?”

       

       검선의 말을 하린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면 하린은 목을 내어줘야 할 게 분명했으니.

       

       “얌전히 내 물음에 답하기나 하거라. 너는 이 자칭 무림맹이라는 곳에 소속된 이더냐?”

       “…아뇨. 전 다른 곳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하린은 증명해보라고 하면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하나 고민했지만 검선은 굳이 캐물으려 하지 않았다. 다만 무심한 눈으로 하린을 훑어볼 뿐.

       

       “그럼 다음 질문이다. 그대는 이 대나무 숲을 해하는 데 손을 더한 적 있느냐?”

       

       역시 그거 때문에 화가 난 거였구나?!

       

       어지간하면 자기가 있는 곳에서 벗어나지 않는 사람이 왜 친히 여기까지 발을 옮겼나 했더니 자길 귀찮게 하는 사람들을 사냥하는 중이었나?

       

       생전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자기가 사는 곳을 부수고 제자로 받아 달라며 싸움을 걸면 당연히 화가 나겠지!

       

       여기서 그렇다고 답을 하면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눈에 훤했지만 하린은 차마 아니라고 답할 수 없었다.

       

       오늘은 잠을 자느라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그녀지만 어제 대나무 숲을 배경으로 싸움을 벌인 건 사실이니까.

       

       대나무 숲이 반파된 데에 그녀의 문파가 영향을 끼쳤을 게 분명하기도 하고.

       

       하린이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이자 검선이 검 손잡이를 붙잡았다.

       

       “영향을 끼친 건 사실이지만 그건 어제 일이고! 싸움이 격화되기도 전이라 저는 별 일 안 했어요! 진짜에요!”

       

       죽음이 자신을 노려보는 것에 당황한 하린이 다급히 변명을 내뱉었지만 검선은 검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걱정마라. 네가 저지른 죗값만을 치르게 해 줄 테니.”

       “어차피 죽일 거잖아요!”

       “죽이진 않는다. 팔이나 다리 하나 정도면 받아 가마.”

       

       그거나 그거나!

       

       어차피 사지 결손은 회복할 수 있는 게 아니어서 죽어서 리스폰 해야 한다고요!

       

       하린이 속으로 비명을 내질렀지만 검선은 그녀를 배려해 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럴 것 같아서 빠르게 화음으로 가려고 한 거였는데! 빌어먹을 나설 년!

       

       검선이 검을 뽑아든 순간 주변의 공기가 뒤바뀌었다. 하린과 나설이 벌이던 신경전과는 전혀 다른 한 사람의 존재감이 세상을 짓누르는 듯한 느낌.

       

       하린은 기세에 짓눌리면서도 침착하게 자세를 취했다.

       

       “겁먹지 않는구나.”

       “비슷한 일을 많이 당해 봤거든요.”

       

       지쳐 쓰러질 것 같을 때마다 쏘아지는 살의에 익숙해진 하린에게 이 정도 기세는 그럭저럭 견딜만한 것이었다.

       

       하린의 대답을 들은 검선은 흥미롭다는 듯 하린을 바라보다 검을 아래로 내렸다.

       

       “세 수.”

       “…네?”

       “세 수를 내어주마. 그 안에 내 마음에 든다면 너의 죄를 사하마.”

       

       무슨 변덕이지?

       

       의문이 들기는 했지만 하린은 깊게 고민하지 않았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어차피 죽는다면 들이 박아보고 나서 죽는 게 더 나으니까.

       

       세 수인가.

       

       하린은 이전에 비슷한 일을 해 본 적이 있었다.

       

       화령이 심심하면 시키는 게 이런 일이었으니까. 몇 수 안에 주먹이 닿는다면 쉬는 시간을 주겠다는 식으로 말이다.

       

       하린에게 화령이 거는 내기는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것이었다. 닿았다 싶으면 사라져 버리는 신기루 같다는 점에서 그러했고, 가끔 진짜가 존재한다는 점에서도 그러했다.

       

       화령은 악질적이었다. 대개의 경우에는 하린에게 실패를 선사해서 쉴 시간을 빼앗았지만 가끔씩 그녀에게 성공을 선사해서 하린이 희망을 놓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그 때 배운 것을 쓸 날이 올 줄이야.

       

       하린이 달려들자 검선은 느긋이 눈으로 그녀를 쫓았다.

       

       하린과 검선 사이에 있는 격의 차이는 바다와도 같았기에 그를 떨쳐내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속도로 현혹시키는 건 애초에 할 수 없는 일이니 환에 집중할 이유는 없다. 그러니 모든 걸 쾌에 쏟아야 한다.

       

       검선의 앞에 도달한 하린이 내민 첫 수는 의도가 뻔히 보이는 탐색이었다.

       

       하린이 가볍게 내지른 권을 검선이 손바닥으로 받아낸다.

       

       검선은 그 이외의 행동은 하지 않았다. 단지 관찰을 하듯 그녀의 권을 살필 뿐.

       

       정말 세 수를 온전히 받아 줄 생각이구나. 그리 확신을 한 하린은 즉시 다음 수를 준비했다.

       

       하린의 두 번째 수는 전력투구였다.

       

       뒤를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온 힘을 담은 권.

       

       아피스 속 천마의 육신과는 달리 화룡무인에서 하린이 사용하는 몸은 풍류권을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몸이라 해도 무방했다.

       

       그녀의 안에 존재하는 혈도도. 그녀가 단련한 근육도. 관절도. 뼈도. 심지어 호흡하는 것 하나하나조차도 모든 것이 바람을 쫓기 위해 만들어 진 것이었으니.

       

       최속을 위한 준비는 필요하지 않았다. 하린은 언제나 바람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으니까.

       

       설마 탐색의 바로 뒤에 전력이 따라 붙으리라 생각하진 못한 듯 검선이 살짝 눈썹을 들었다.

       

       하린이 준비한 일격은 분명 검선에게 의외성을 선사하는 데 성공했으나 그 뿐이었다.

       

       검선은 검을 쥔 손을 움직이지도 않았다. 그저 그 반대 손으로 하린이 내지른 권을 받아 쳤을 뿐.

       

       하린이 준비한 전력은 검선이 가볍게 내지른 일권에 상쇄되었다.

       

       “나쁘지 않았다.”

       

       이걸로 끝이라 생각했는지 검선은 품평을 하듯 입을 움직였다.

       

       하린이 의외성을 위해 세 번째 수를 포기했다 여긴 것이다.

       

       허나 하린은 달랐다. 그녀는 움직이는 걸 멈추지 않았다. 한 번 전력을 다했다 하여 그 다음이 없다 누가 결정을 내렸는가.

       

       하린은 바람이었다. 끊임없이 흐르는 바람이었다.

       

       한 번 몰아친 바람은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몰아칠 수 있었다.

       

       이전처럼. 어찌 보면 이전보다도 거세진 공격에 검선이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검선이 검을 쥔 손을 슬며시 움직였다. 대단한 무언가는 없었다. 하린도 눈으로 볼 수 있을만한 속도로 아래에서 위로 휘둘렀을 뿐이었다.

       

       허나 그 별 것 없는 일검에 하린이 품었던 바람이 흩어졌다.

       

       “좋았다. 두 번째 수에 의외성을 주고 세 번째 수에 비수를 감추다니 말이다. 이런 일을 한 두 번 해 본 게 아닌 듯한데.”

       “절 가르쳐 주시는 분이 비슷한 일을 자주 시키거든요.”

       “과연.”

       

       방금 전 하린이 검선을 상대로 펼친 전략은 하린이 화령을 상대하면서 수립한 것이었다.

       

       ‘수를 내어준다 말했다 하여 그를 순진하게 믿으면 안 된다. 상대가 어떤 의도를 안에 품었는 지 모르니까. 그러니 처음은 탐색을 해야 한다.’

       

       ‘보통 수를 내어주겠다고 하면 말이다. 마지막 수에 자신의 최선을 내미려 한다. 그러니 중간에 필살의 일격을 내밀면 상대를 놀래켜 줄 수 있지.’

       

       ‘전력을 다한 일격이 실패했어도 포기해선 안 된다. 수가 남았다면 끝까지 발악을 해야 하지. 다음에 어찌 될 지는 누구도 모르는 일이니까.’

       

       화령이 해주는 조언을 들으면서. 몇 번이고 바닥을 구르면서. 필사적으로 만들어 낸 논리였다.

       

       검선은 하린이 보여준 것에 만족한 듯 웃음을 짓고 있었다.

       

       “아해야. 이름이 어찌 되느냐.”

       “냥냥권법이라고 합니다.”

       “…허. 어찌 외부인 중에선 제대로 된 이름을 지닌 이를 본 적이 없는 듯 하구나.”

       

       검선이 하는 말을 하린은 차마 부정하지 못했다. 화룡무인을 하는 유저 중에서 괴이한 이름을 지닌 사람들이 어디 한 둘이던가.

       

       하린의 냥냥권법 정도면 멀쩡한 이름이었다. 개중에는 NPC가 자신의 이름을 말해야 한단 걸 이용해 괴상한 이름을 지은 이들도 있었다.

       

       사파의 습격에서 도시를 구원한 팬티 보여줄게가 대표적인 예시였다.

       

       “그래. 냥냥아. 혹여나 해서 묻는 것이다만 권 대신 검을 배울 생각이 있느냐? 기초 정도는 잡아 줄 요량이 있다만.”

       

       검선이 내민 것은 말도 안 되는 호의였다.

       

       그에게 배움을 얻기 위해 유저들이 흘린 피의 수를 생각한다면 가히 기적 같은 일이라 해도 무방했다.

       

       같은 문파에 있는 검수들에게 이 이야기를 해준다면 피눈물을 흘리며 질투를 하겠지.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거절할 이유가 없는 제안이었지만 하린은 고개를 저었다.

       

       “죄송합니다. 전 권을  버릴 생각이 없습니다.”

       “내가 가르쳐준다 하는 데도?”

       “네. 저에겐 이미 권을 가르쳐주는 분이 있어서요.”

       

       화령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으나 하린에게 화령은 평생 따르고픈 사람이었다.

       

       그녀를 내버려 두고서 다른 이에게 가르침을 받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하린이 그리 답을 하자 검선이 혀를 찼다.

       

       “이 놈도. 저 놈도. 본인이 이런 호의를 내미는 게 어디 흔한 일인 줄 아느냐?”

       “죄송합니다.”

       “사과 할 일은 아니다.”

       

       검선은 하린을 위아래로 살피다 문득 떠올랐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혹시나 해서 묻는 것이다만 너를 가르친 자가 얼마 전 이 세계에 들어온 외부인이더냐?”

       “네. 맞습니다.”

       “천마신공을 사용하고?”

       “그걸 어떻게?”

       

       의아함을 느끼면서도 하린이 고개를 끄덕이자 검선이 길게 숨을 내뱉었다.

       

       “역시 그 아해는 평범한 초출은 아니었나보구나. 남에게 자신이 지닌 걸 이리 알려준 걸 보면.”

       “어떻게 아셨나요?”

       “가르침을 받는 자에겐 어떤 식으로건 스승의 흔적이 남기 마련이다. 그 아해는 특색이 뚜렷한 편이었으니 모르기가 어렵지.”

       

       고수가 보면 그런 게 다 티가 나는 구나.

       

       하린이 감탄을 하는 동안 검선이 자신의 검을 집어넣었다.

       

       “안 베실 건가요?”

       “말했잖으냐. 나를 만족시킨다면 죄를 사하겠다고.

       그리고 너를 가르친 아해의 성격을 생각해 보면 내가 자기 제자를 죽였다는 걸 알게 된 순간 내게 달려들 것 아니더냐.”

       

       검선 같은 실력자도 화령님을 상대하는 건 버거운 일인 걸까.

       

       하긴 화령님 같은 괴물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달려든다고 생각해보면 좀 무서울 것 같긴 해.

       

       하린이 혼자 고갤 끄덕이며 납득하고 있으려니 검선이 다급하게 뒤에 말을 덧붙였다.

       

       “결코 내가 질 것은 두려워서 하는 말은 아니다. 그 아해가 화경의 수준에 이른다면 모를까 그 전엔 결코 패할 리 없다.”

       “그럼 왜인가요?”

       “그 놈이 여기에 와서 깽판을 쳐봐라. 안 그래도 너희 외부인들 때문에 반파가 된 대나무 숲이 형체도 없이 사라지지 않겠느냐.”

       

       검선이 한 말에 하린은 저도 모르게 납득을 해버렸다.

       

       주먹으로 산 중턱을 날리고, 산에 거대한 길을 내고, 하늘을 가르는 사람이 여기서 검선과 진지하게 혈투를 벌인다면 어떤 꼴이 날지 뻔했으니까.

       

       “난 이 숲이 사라지는 걸 보고 싶진 않으니 얌전히 보내주마.”

       “감사합니다.”

       “감사는 네 스승에게 하거라.”

       

       그리 말하며 등을 돌리려던 검선은 갑자기 떠올랐다는 듯 목소리를 냈다.

       

       “네 스승의 이름은 어찌 되느냐? 그 때 물었어야 했거늘 미처 질문을 하지 못했다.”

       “화… 아니지.”

       

       그건 다른 데서 쓰는 이름이지 화룡무인에서 사용하는 이름이 아니니까.

       

       “민트초코파인애플피자라고 합니다.”

       “뭐?”

       “민트초코파인애플피자요.”

       

       화령의 이름을 들은 검선이 눈이 굳었다.

       

       그는 몇 번인가 더듬거리며 화령의 이름을 따라 말을 하다가 미간을 꾹 눌렀다.

       

       “빌어먹을 외부인 놈들.”

       “하하. 어려운 이름이죠?”

       “그래. 괜히 이름을 물어보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래서 보통 그분은 자기를 민가라고 소개하십니다.”

       “민가인가. 알겠다. 나중에 네 스승에게 전해다오. 다음에 싸우러 올 적엔 무작정 쳐들어오지 말고 싸울 장소로 정한 후에 싸우자고.”

       

       검선은 그리 말을 하곤 나타날 때 그랬던 것처럼 훌쩍 떠나가 버렸다.

       

       그가 저 멀리로 가버린 것을 확인한 후 하린은 바닥에 주저앉았다.

       

       검선이 이 근처에 있을 무림맹을 다 처리한 것 같으니까 좀 쉬다 가도 되겠지.

       

       진짜 정신이 하나도 없네. 게임에 들어오자마자 나설 그 미친년을 만나고, 그 후에 바로 검선을 만나다니.

       

       화령님을 도울 겸 게임을 킨 거였는데 어쩌다…

       

       아.

       

       화령님.

       

       화령님을 도우러 가야 하는데!

       

       그 짧은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기진  않았겠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PD추천픽에 이 작품이 올라갔네요!

    글이 괜찮다고 말씀을 해주신 것 같아 기쁩니다. 더 열심히 쓰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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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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