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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8

        

         “음….”

         “…….”

         

         안면이 있다던 켄과 걸어온 기싸움을 피하지는 않겠다는 듯 팔짱 낀 마리나.

         그리고 화려한 금발 숏컷에 살짝 품이 넓은 카고 상하의로, 차림새는 물론 머리카락 한 올까지 똑같이 세팅 된 해커 듀오. 제미니 노드 쌍둥이가 서로에게 눈을 부라리며 대치했다.

         

         …그럼 조금 전만해도 발끈했던 나는 뭐하고 있냐고?

         

         “후우….”

         

         천천히 숨을 내쉰다.

         의연하고… 냉정하며… 포용력까지 있는 한 명의 어른답게. 어린 사회 초년생 애들의 실수를 참아주고 있었다.

         

         그래, 상대는 안 그래도 사회성 부족하다고 공공연하게 평가받는 공학도. 그 중에서도 최정상급 재택 근무의 화신인 넷 해커 놈들일지니. 사소한 말실수에 일일이 짜증내는 것도 웃긴 일이다.

         

         준비물에 대한 이의제기? 얼마든지 가지고 할 수 있다.

         아마… 저건 이 자리에 있는 모두의 속내를 대변한 거나 다름없을 테니까.

         

         도대체 어디를 어떻게 봐야 ‘공정한 평가’라는 건지, 알 수 없는 진행방식은 기본.

         아무리 저기 위에서 물주님이 직접 지켜보고 계시다지만 만사가 귀찮아 보이는 담당자.

         

         더군다나 오프라인 면접이랍시고 각자의 보금자리에서 반 강제적으로 호출당해서 먼 길을 온 터라 컨디션도, 가진 장비의 유무도 천차만별인데 무작정 실시된 테스트는 또 어떻겠는가?

         

         오히려 불만을 가지는 게 자연스럽고, 부정에 대한 의구심을 품는 것도 지당하다. 음.

         

         …그렇지만 하필 딱 기폭제이자 예시로 우리 팀을 지목하는 건 예상외의 사태였다.

         뛰어난 관찰력을 가진 건 좋은데, 여기서 굳이 우리가 레오나르 경과 같이 왔다는 사실을 드러낸 건 좀 불순한 의도가 느껴지는 걸?

         

         먼저 고발당한 데다가 관심이 집중된 지금에 와서 우연히 그가 우리를 마중 나온 사람이었을 뿐이라고 해도 얼마나 설득력이 있겠나.

         

         “지랄하기는! 경력도 짱짱한 것들이 왜 갑자기 시비야?!”

         

         “어라~? 시비처럼 들렸나? 우리는 그냥 장비를 가져와도 되는지 담당자 씨에게 물어보는 김에 확인한 건데. …찔리기라도 했어?”

         

         “찔린 건 둘이서 금고에 대가리 처박고 두 시간씩 잡아먹을 예정인 니들이겠지! 안 그래도 우리 부끄럼쟁이한테 들어보니까, 전에 센트럴 타임즈 신문사 건에서도 장부 훔쳐보다가 짤렸다고……. 아, 혹시 이 건 못 따내면 생활비가 좀 간당간당 한가? 응??”

         

         ““……개 같은 년이.””

         

         두 쌍둥이의 음성이 한 줄기로 싱크로 했다.

         와, 얘들은 뭐 수술이라도 받았나? 목소리 높낮이마저 똑같네.

         

         의도한 건지, 우연인지는 몰라도. 외야 관중들이 선동되기도 전에 달려든 마리나가 적나라한 인신 공격으로 논점을 흐리고 제보자의 공신력을 떨어트렸다.

         

         사실 잘 생각해보면 다른 사람들을 굳이 납득시킬 이유도 없긴 했다.

         그렇게 이 상황이 꼬운 놈이 있으면 알아서 그만두고 집에 가서 발 닦고 잠이나 자겠지. 물론 마켓 측에서도 쉽게 포기하지 못하도록 네오 헤이븐까지 행차하게 만들었을 의도가 있겠지만….

         

         “내 드로이드가 문제라면 테스트 때는 안 쓰고 임할게. 그러면 돼?”

         

         노려보느라 바쁜 놈들 사이에 끼어들어 합리적인 절충안을 제시했다.

         

         전에도 얘기했었는데. 나는 적, 그러니까… 원수를 만들거나 쓸데없는 분쟁을 일으키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지나가다 어깨 좀 부딪혔다고 다짜고짜 주머니칼부터 뽑아 드는 양아치도 있으니 안심하기는 이르지만, 고작 이런 의견 충돌가지고 뒤끝이 심하게 남지는 않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니 저쪽에서 먼저 달려들었어도. 충분히 오해의 소지가 있는 주제인 만큼, 아니꼽더라도 여기서는 양보를 통해 타협점을 찾는 게….

         

         “…꼬마 아가씨. 어른들끼리 얘기하는데 함부로 끼어드는 거 아니야. 뒤에 가서 저 망할 동양 꼬맹이랑 손잡고 놀아.”

         

         “혹시 뒤지고 싶으세요??”

         

         아, 못 참고 면전에다 박아버렸다.

         그래도 이성을 잃은 건 아닙니다? 방금 그게 공격하라는 신호인 건지 아닌지 긴가민가하는 제로가 안 튀어나가도록 붙잡은 것만으로도 저것들은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옆에 소극적인 켄이 있어서 괜히 나까지 한데 묶여 도매금으로 넘어가는 것 같은데 이거.

         

         “무, 뭣?!”

         

         “사람 키 가지고 놀리지 말라고 이 시술소에서 찍어낸 년놈들아. 시험 자체에 불평이 있으면 마켓에다 정식으로 항의만 하고 말 것이지, 왜 자꾸 애꿎은 사람을 긁어 대! 자신 있어?!”

         

         “푸하핫…!!”

         “야, 저기 작은 누님도 좀 치는데?”

         “……어라? 수술 흔적 전혀 없는 미모에 작은 체형, 그리고 흑발? 혹시….”

         

         상대방이 당황한 걸 보고, 내친김에 몇 마디 더 몰아치자 관중석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부추기는 휘파람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구경 중에서 제일 재밌는 구경은 싸움 구경이라고. 본질은 흐려지고 대신 원색적인 비난이 슬금슬금 고개를 쳐들자 그냥 상황 자체를 즐기기 시작하는 인간들이 늘어났으니.

         

         ‘쌍둥이 남매에게 십만 크레딧!’ 이라는 즉석 내기가 벌어지는 소리는 물론, ‘이… 이게 진짜 캣파이트?’ 같은 더럽게 황당한 소감도 얼핏 들렸다.

         

         이젠 모른다. 내 잘못 아니다. 성별 문제였으면 차라리 참고 넘겼을 텐데 안 그래도 불편하고 서러운 신장 이슈를 그러게 왜 건드려.

         

         “그… 귀염둥아? 그냥 기다려줬으면 내가 알아서 마무리했을 텐데.”

         

         “악수하자고 손 내밀었는데 뺨 맞은 게 내 잘못은 아니잖아? 그리고 마리나 너도 계속 이상하게 부르면….”

         

         뒷말은 꺼내지 않고 삼켰으나, 이미 무언의 압력을 충분히 전달받은 그녀는 슬쩍 두 손을 들어 보였다.

         하지만… 저거 아무리 봐도 지금만 빼는 척하고 향후 태도는 그대로일 것 같다. 으휴.

         

         “미친년… 야, 이 미친년아…!! 곱상하게 생긴 게 입은 아주…!”

         “로봇도 따로 운용하는 거 보면 어디 후원자라도 있나? 하긴 인기는 많겠네!”

         

         “…후우.”

         

         그나저나 뒤 없이 들이박았으니. 하다못해 잔뜩 열 받은 저 둘을 완전히 승복시키기라도 해야 후환을 없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어쩌지?

         

         봐라, 지금 내가 마리나와 작전회의를 하는 와중에도 계속 이쪽을 향해 싸가지없는 년이라며 빽빽 대는 꼴은 도저히 실력 있는 엔지니어라고는 상상할 수가 없거늘.

         

         “……그만.”

         

         내가 무조건 합격한다고 단언할 수는 없어도 니들 기록은 어떻게든 찍어 누르고 만다 진짜.

         

         이런 애들을 단번에 잠재우려면… 감추기로 했던 능력을 좀 드러내야 하나? 과한 관심을 받는 건 사양하고 싶은데…!

         

         

         “Arrêt——!!”

         

         

         “”!!””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전원이 동시에 귀를 막았다.

         대포라도 발사된 것 마냥 공기가 꿀렁이며 일그러지고, 가라앉았던 모래 알갱이들이 일순간 들뜨더니 벽까지 사출된 다음 부딪혀 사방으로 흩어졌다.

         

         …잠깐 잊었었다. 모두를 강제로 납득시킬 수 있는 담당자가 여기 계시다는 걸.

         

         “그래, 용병이 전장으로 향하면서 장비도 다 안 챙긴 주제에 말은 더럽게 많군. 담당 안내인은 얼른 이 덜 떨어진 Connard들에게 원하는 걸 찾아다 주도록…!”

         

         확성기 근처를 감도는 먼지를 휘휘 손을 내저어 치운 레오나르가 다리를 움직였다.

         

         “또 유모차에 장난감 두고 온 Bébé가 있나? …있다면 지금 따로 시간 낭비하지 말고 지금 당장 가져와라.”

         

         한 걸음. 노이즈 낀 것처럼 지글거리는 모니터가 나를 바라보더니 팩 돌아갔다.

         

         “다시 말하지만 내가 당락을 결정하는 게 아니며. 나라고 윗대가리들 의향을 알고 진행하는 것도 아니니 찡얼거려도 별 소용없다.”

         

         두 걸음.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고개가 위로 치켜들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

         

         마지막으로 세 걸음. 코앞에서 마주한 그의 거체가 주는 위압감이 생각보다 강했는지, 금발 씨들의 눈썹이 파르르 떨리는 게 보였다.

         

         어디까지나 친절하게.

         두 사람의 턱주가리를 양손으로 잘 감싸, 실수로라도 혀를 씹지 않도록 붙잡아준 레오나르가 허리를 숙인 채 낮게 씹어 내뱉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먼저 실력으로 증명해라…. 감히 치졸하고 망측한 추측에 너희보다 잘난 인간까지 끼워 넣어서 재미 보려 하지 말고…!!”

         

         풀썩! 하고 해방된 쌍둥이가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래도 나름 경력자인 그들이 찍소리도 못 내고 무너진다는 게 이상했는데, 넘어진 채로도 어안이 벙벙한 걸 보면 예의 그 저주파인가 뭔가로 행동이나 사고를 제약했던 모양.

         

         역시 일처리가 능숙하다. 악역스러운 카리스마도 철철 넘치시고…!

         

         일단 시험은 무서운 아저씨의 명령을 받은 불쌍한 현장 인력이 수험생들의 위시리스트를 완성해서 돌아올 때까지 휴장 상태가 되었다.

         

         과제의 정체도 만천하에 드러났겠다.

         딱 좋은 기회라고 여긴 사람들이 바쁘게 돌아다니며 즉석 그룹의 몸집을 키우거나, 대책 회의에 열을 올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럼 어디… 얘기나 한 번 들어볼까.

         

         벽에 기댄 마리나, 자기 가방 위에 다소곳이 앉은 켄.

         팀다운 시간을 한 번 가져보자는 뜻을 담아 근처 돌무더기에 나도 편하게 앉았다.

         

         그런데 마리나는 자연스레 이름으로 불렀어도 얘는 뭐라고 칭해야 하지?

         왜 동양인은 나이에 비해 굉장히 젊어 보인다고들 하지 않나? 막상 자세히 보니까, 진짜 성인이 맞는지도 의심될 정도로 어려 보이는데… 어….

         

       

       

         ……우선은 켄 꼬맹이라고 불러볼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사실 아나스타샤와 켄의 키 차이는… [ 해당 문장은 상위 관리자 권한에 의해 영구 삭제되었습니다. ]

    모레 병원 면회예약이 또 잡혔습니다. 그래서 미리 죄송하다고 인사를… 네….

    항상 과분한 사랑을 보여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재밌게 봐주세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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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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