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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8

   “교장선생님께서 이를 아가씨께 전해달라 하셨습니다.”

   

   나크라드를 괴롭혀 쫓아낸 다음 날.

   

   아침 일찍 나를 찾아온 칼은 품 안에서 상자를 꺼내 내게 건넸다.

   

   이 시기에 아카데미 측에서 줄 선물이라면 하나밖에 없지.

   

   소울 아카데미 성적 우수자에게 지급되는 선물.

   

   “듣기로 그 안에 영약이 들어있다 하더군요.”

   

   전교 1등에게 지급되는 보상은 영약이다.

   

   듣는 사람의 수업에 따라서 종류가 바뀌니 나 같은 경우에는 힘과 체력의 영약이 들어있으리라.

   

   원래라면 아카데미 초반에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되는 물건이지만 지금의 내게는 무용지물이다.

   

   아직 영약 3개를 들이키고서 1년이 안 지났으니까 말이야.

   

   그렇지만 귀한 물건인 건 사실인지라 보상을 거절할 이유도 없다.

   

   일단은 인벤토리에 넣어 두자.

   

   어떤 식으로는 쓸 일이 생기겠지.

   

   정 안 되면 몇 개월 후에 들이켜 버리면 그만이고.

   

   보상을 전했으니 이제 다시 제 할 일을 하러가야 할 터이나 칼을 우물쭈물거리면서 내 눈치를 봤다.

   

   얘 왜 이러는 거야?

   

   ‘무슨 일인가요?’

   “허접. 왜 그러는 건데.”

   

   “그것이 어제의 일이 걸려서 말입니다. 제가 부족했기에 실수를 범하지 않았습니까. 제가 조금만 더 강했더라면 그 자를 놓치는 일도 없었을 터인데.”

   

   ‘그러니까 신경 안 쓴 대도요?’

   “귀 청소 좀 하는 게 어때? 더러운 허접 같으니. 신경 안 쓴다고 했잖아.”

   

   어제 나크라드를 괴롭히던 우리지만 결국에 그 녀석을 사냥하는 데엔 실패하고 말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어둠의 권능을 지닌 그 녀석이 마음을 먹고 도망치고자 한다면 쫓을 수 있는 수단이 마땅치 않았던지라.

   

   게임 속에서도 어둠을 붙잡는 지팡이를 얻기 전까지는 나크라드를 죽일 수 없었는걸.

   

   현실이 된 지금도 당연히 잡아 죽일 수는 없지.

   

   애초부터 적당히 괴롭혀준 후에 쫓아낼 생각이었으니까.

   

   어제 그 정도면 충분히 만족스러웠어.

   

   울분에 차서 소리를 지르면서도 어쩔 방법이 없어서 얼굴이 벌개진 채 도주하는 나크라드의 모습은 내 모든 스트레스를 날릴 정도였으니까.

   

   그러니 사과할 이유는 조금도 없었지만 칼은 그게 자꾸 마음에 걸리는 듯 했다.

   

   “아아. 역시 아가씨. 실로 자비로우십니다!”

   

   그런 거 아니고 진짜 괜찮은 거라고.

   

   의무감이 넘치는 기사인 건 좋은데 최소한 주인의 말을 듣는 척은 해야 하지 않겠냐?

   

   내 친구가 예전에 키우던 치와와도 이것보단 더 말을 잘 들었다고.

   

   이 빌어먹을 기사야!

   

   가만 내버려두면 자꾸만 땅을 파고 들어갈게 뻔하니까 다른 데로 이야기를 돌리자.

   

   마침 적당한 화제도 있고.

   

   ‘그런데 있잖아요…’

   “허접. 근데 어제 내가 준 검은 왜 안 들고 온 거야?”

   

   “그 귀물 말입니까? 숙소에 걸어놨습니다.”

   

   …뭐?

   

   “아가씨께서 주신 선물을 어찌 감히 사용하겠습니까. 그러다 상하면 어쩌려고요.”

   

   아니.

   

   “지금 당장은 유리 장식장을 사서 넣어두었습니다만 나중에는 보존 마법을 걸어서…”

   

   ‘왜 그걸 장식하냐?!’

   “이 구제 불능의 허접견아! 쓰라고 줬잖아!”

   

   “허나 아가씨.”

   

   허나고 자시고 나발이고!

   

   그거 꽤 좋은 아이템이라고!

   

   게임에서도 중후반까지 쓸만한 성능을 지닌 녀석이야!

   

   지금 네가 사용하는 검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성능을 지닌 물건이라고!

   

   근데 그걸 왜 안 쓰는데?!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 준 물건이니 죽을 때까지 소장하겠다 그거야?

   

   왜 자기 주인을 가지고 덕질을 하는 건데 이 개새끼야!

   

   할 말이 속에서 미친 듯이 차올랐지만 이걸 입 밖으로 내뱉으면 돌이킬 수 없게 될 것 같아 얼굴을 쓸어내리며 꾹꾹 눌러 담았다.

   

   그런 후에 한숨을 내쉬듯이 칼에게 이야기를 해줬다.

   

   ‘나중에…’

   “허접. 나중에 목줄을 매 줄 테니까 그거나 소장해. 검은 쓰고.”

   

   “정말입니까?! 그래주시면 너무 감사하지요!”

   

   해맑게 웃는 칼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머리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

   

   얘는 원래 이상했던 걸까.

   

   아님 나를 만나고 나서 이상해 진 걸까.

   

   분명 전자일 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저런 미치광이 같은 소리를 자랑스레 지껄일 리가 없잖아.

   

   신이 나서 가벼운 발걸음으로 떠나가는 칼을 본 나는 근처에 있는 벤치에 주저 앉아 긴 한숨을 내쉬었다.

   

   피곤해.

   

   별로 한 일도 없는데 밤새서 던전을 공략했을 때보다 거센 피로가 쌓인 느낌이야.

   

   이게 바로 제멋대로인 대형견을 키우는 견주의 느낌인 건가.

   

   “알른 영애님?”

   

   축 늘어져서 한탄을 하던 와중에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페이비였다.

   

   그녀는 누구라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어색한 웃음을 지은 채 내 앞에 서 있었다.

   

   여태까지 먼저 나를 찾아온 적이 없던 사람인데 무슨 일로 온 걸까?

   

   ‘무슨 일이신가요?’

   “뭔가요? 허접 성녀님?”

   

   “아. 저. 현장학습 파티에 관계된 일입니다.”

   

   현장학습과 관련해서 페이비가 곤란해 할 일이 있나?

   

   RPG류 게임을 해 본 사람이라면 다들 알겠지만 힐과 버프가 되는 성직자 캐릭터는 파티를 구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수가 없다.

   

   파티마다 한 명씩은 꼭 필요한 존재인데 성직자의 절대적인 수는 그리 많지 않으니 다들 성직자만 보면 자기 파티에 들어와 달라고 빌게 되지.

   

   이 법칙은 아카데미 내에서도 똑같이 통용된다.

   

   아카데미에 입학한 성직자의 수는 그리 많지 않는데 파티라면 누구나 성직자를 원한다.

   

   현실이니까 더하지.

   

   자신이 다쳤을 때 치료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얼마나 갈구하겠는가.

   

   평범한 성직자라도 끌어들이기 위해 여러 수작을 부리는 마당에 그 성직자 중에서도 특별한 실력을 지닌 페이비는 말할 것도 없다.

   

   그녀는 단어로 표현하기에 귀족은 모자란다.

   

   왕. 아니 신이라 불러 마땅하지.

   

   바란다면 어느 파티에라도 들어갈 수 있고 어떤 멤버라도 모을 수 있는 현장학습의 여신.

   

   도발 능력 개쩔고 딜러보다 딜을 더 잘 넣을 수 있는 탱커는 귀하지 않냐고?

   

   귀하지.

   

   이게 게임이었다면 성녀님보다 내 우선순위가 더 높았을 걸.

   

   근데 이건 게임이 아니잖아.

   

   사람의 평판이 아주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3박 4일로 현장학습을 하는 동안 파티원이랑 계속 붙어있어야 하는데 평판이 나락에 간 사람이랑 붙어있고 싶겠어?

   

   나 같아도 사양이다.

   

   하지만 페이비는 다르다.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사랑을 받는 페이비는 이런 문제에서 한없이 자유롭지.

   

   아니 인성이 새하야시다보니 가산점이 잔뜩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만큼 페이비가 파티를 구성하는 데 있어서 문제를 겪을 가능성은 존재할 수 없다.

   

   근데 왜 나한테 말을 건 거지?

   

   “영애께서는 파티원을 구성하셨나요?”

   

   ‘대충은요.’

   “대충은 정해져 있습니다.”

   

   조이야 진즉부터 나와 같은 파티를 맺기로 했었고.

   

   나와 마찬가지로 다른 친구가 없는 프레이도 자연스레 내 파티에 합류하게 됐다.

   

   그러니 이제 자리 하나 남아있는 게 문제인데.

   

   원래는 아서에게 부탁을 하려 했다.

   

   전위와 후위를 오가며 제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은 귀하니까.

   

   그치만 말을 꺼내자마자 거절당했다.

   

   나와 같은 파티를 맺으면 나를 이길 수 없다나 뭐라나.

   

   이번 현장 학습에서야 말로 나를 이기겠다 선언하는 아서의 모습에 난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이게 게임일 적에 아서는 저렇게까지 열혈스러운 캐릭터는 아니었는데 말야.

   

   좋냐 나쁘냐를 따진다면 좋은 변화겠지만 걱정되는 부분도 있었다.

   

   나를 라이벌로 삼으면 언젠가 마음이 꺾일 테니까.

   

   아서가 아무리 유능하다고 해도 나를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만 몇 천 시간을 이 게임에 때려 박은 고인물을 어떻게 이기겠다는 거야.

   

   나중에 흑화할 조임이 보이면 일부러 져주기라도 하든가 해야지.

   

   그러다 일부러 져줬다는 게 들키면 더 화를 내려나?

   

   뭐. 어쨌든 아서에게 거절을 당한 후에 내가 대체재로 선택한 건 비시였다.

   

   그녀는 이미 친구들과 파티를 짜기로 결정한 모양이지만 내 알바야?

   

   비시의 은인인데다 그녀의 약점을 쥐고 있는 나는 그녀의 주인님이나 마찬가지.

   

   노예가 까라면 까야지 어디 자기 사정을 들이밀고 있어.

   

   애버리?

   

   걔는 좀.

   

   무언가를 시키는 데 거부감은 없지만 3박 4일동안 같이 지내기에는 인간적으로 그렇잖아.

   

   내가 엄청나게 착하고 친절한 사람이기는 하지만 내 뒷담화를 까던 인간을 옆에 두긴 좀 그래.

   

   “혹시나 해서 여쭤보는 것입니다만 제가 알른 영애의 파티에 끼어도 될까요?”

   

   ‘…네?’

   “네?”

   

   내가 귀로 들은 말이 맞는지에 대한 의심이 들어서 되물었더니 페이비가 어깨를 움찔했다가 다시금 목소리를 냈다.

   

   “알른 영애의 파티원이 되고 싶습니다만.”

   

   페이비가?

   

   왜?

   

   그녀는 바란다면 어떤 좋은 파티에도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다.

   

   평소 경쟁에 집착하는 스타일도 아니니 적당한 성적에 편안한 분위기를 지닌 파티에서 둥가둥가 받으며 편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텐데.

   

   굳이 나한테 부탁을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아. 조이 때문인가?

   

   그렇겠네.

   

   페이비와 조이는 절친이니까.

   

   조이와 함께하고 싶은 마음에 부탁을 한 거라면 이해가 가지.

   

   “안 될까요?”

   

   ‘물론 되죠!’

   “그렇게 부탁을 하시는데 안 될 건 없죠. 허접 성녀님.”

   

   1티어 힐러가 파티에 합류한다는 데 거절할 이유가 어디 있어!

   

   당연히 환영이지!

   

   인원 수 채우기용 짐덩어리인 비시가 있을 자리에 페이비가 들어오는 건데!

   

   심지어 그런다고 멤버 간의 캐미가 깨지는 것도 아냐.

   

   조이는 페이비가 온다면 환영을 할 테고.

   

   페이비는 나나 프레이가 좀 정신 나간 짓을 벌인다 해도 받아줄 수 있는 멘탈의 소유자니까.

   

   얼빵 영애의 마음을 붙잡은 게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이야!

   

   이 기회를 노려서 현장학습 동안 페이비한테 호감작을 해두자.

   

   똑같이 신성을 다루는 입장이니까 공감대를 잘 형성하면 친해질 수 있지 않을까?

   

   페이비는 호감도 70까지 끌어올리는데 쉬운 축에 속하니까 잘 만하면 이번 현장학습 기간 동안 70을 찍는 게 가능하지 않으려나.

   

   그렇게 찐친이 되는 데 성공하면 허접 주신님의 퀘스트를 클리어하는 것에 더해서 파티에 전문 힐러를 넣을 수 있게 되는 거야!

   

   좋아. 이번 현장 학습은 적당히 하면서 1등만 차지하려고 그랬는데 계획 변경이다.

   

   한 번 이를 악물고 해봐야겠어.

   

   한 번 아카데미 기록을 경신해 보실까.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저야말로요!’

   “네. 허접 성녀님. 발목을 잡는 허접은 아니셨으면 좋겠네요.”

   

   “아하하. 노력하겠습니다.”

   

   페이비와 인사를 나누며 즐겁게 웃고 있던 중 한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성녀와 파티원으로 쓸 수 있게 된 거잖아.

   

   그럼 이게 게임이던 시절 소울 아카데미 던전에서 써먹었던 꼼수를 그대로 써먹을 수 있게 된 거 아닌가?

   

   ‘저기. 페이비.’

   “허접 성녀님. 이번 주 토요일에 시간 되세요?”

   

   “네?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시간을 내려면 낼 수 있죠.”

   

   그렇단 말이지.

   

   마침 잘 됐다.

   

   안 그래도 소울 아카데미의 던전공략을 끝마쳤어야 했었는데.

   

   이번 주에 끝을 내 놓도록 할까.

   

   머릿속으로 계획을 짜며 미소를 지었더니 페이비가 어깨를 움찔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왜 그러는 걸까?

   

   지금 내 표정이 이상했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루시 특급. 하루 만에 던전 1층에서 100층까지 공략을 보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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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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