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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9

       ​

        “혜령아, 목경아. 갈 곳이 있다.”

       

        “네?”

       

        “갈 곳…말입니까?”

        ​

        “그래.”

       

        내 말에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 말이 워낙에 뜬금없었던 모양이다.

        ​

        이번 건은 어쩔 수 없이 나 혼자 진행한 부분이 많았으니 모르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 나는 친절하게 행선지를 입에 담았다.

        ​

        “하북팽가.”

        ​

        “하북팽가요…?”

        ​

        “하북팽가를 말입니까?”

        ​

        “경공 연습할 겸 달려서 다녀온다.”

        ​

        최대한 빠르게 달려가면 왕복으로 보름 안에 팽가에 들를 수 있을 터. 나는 가능한 한 빠르게 다녀올 생각이었다. 원작대로라면 설득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을 테고.

        ​

       근육뇌들이 모인 세가가 바로 하북팽가니까.

        ​

        “아저씨, 정말로 가는 거예요?”

       

        “할 일이 있다면 안 따라와도 돼.”

        ​

        꼭 데리고 갈 필요는 없지. 어디 놀러 가는 것도 아니고.

        ​

        “아저씨가 어딜 가든 따라갈 거예요!”

        ​

        “저도 은공을 수행하겠습니다.”

        ​

        “그렇다면야.”

        ​

        어차피 두 사람이 나한테서 떨어질 일이 없다는 것 정도는 이미 예상한 상태. 나는 나갔다 오는 김에 사 온 짐들을 가방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

        “내일 아침까지 준비해놔.”

        ​

        “네!”

        ​

        “알겠습니다.”

        ​

        여행을 한두 번 한 것도 아니니 알아서 잘 준비하겠지. 나는 어둑해진 방의 등잔에 불을 붙이고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

        ——————–

        ​

        “아저씨도 경공을 배우니까 여행이 엄청나게 빨라진 거 같아요!”

        ​

        “좋은 일이지.”

        ​

        “경공을 배운 지 얼마 안 되었는데도 이정도 실력이시라니, 대단합니다.”

        ​

        목경이가 나를 존경의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

        …그렇게 올려 쳐줘도 내 경공 실력은 이류 내지 일류 언저리인데. 이 정도 경지면 당연하게 할 수 있는 답설무흔이나 초상비는 못하고.

        ​

        답설무흔은 꿈도 못 꾼다.

        ​

        애초에 경공이라는 공부가 몸을 가볍게 해서 장거리 이동의 부담을 줄이고 속도를 늘리는 그런 무공이라 경지가 오르면 그런 걸 펼치게 될 수 있는 거지만, 나는 가벼움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

        평범한 무림인의 경공이 말의 달음박질과 같다면, 내 경공은 황소가 미친 듯이 돌진하는 것에 가까웠으니까.

        ​

        다른 경공보다 유연성도 낮고, 섬세함도 부족하다. 하지만 돌파력만큼은 이미 수위에 올라왔다 자부할 수 있었다.

        ​

        조절에 실패해서 바위나 나무에 부딪혀도 부수고 지나갈 수 있었으니까.

        ​

        “아저씨, 괜찮은 거 맞아요?”

       

        “뭐, 그냥 집채만 한 바위랑 부딪혔을 뿐인데.”

        ​

        “은공, 보통 경공을 펼치다 바위에 부딪히면 사람이 죽습니다.”

        ​

        “그런가?”

        ​

        무림인이 고작 바위에 부딪혔다고 죽어?

        ​

        맨날 일권에 바위를 부수니 일검에 바위를 베니 했던 애들이 참 허약하구나. 나는 이름 모를 나무를 부수고 지나가며 생각했다.

        ​

        아무튼 그런 식으로, 여행은 순조롭게 진행 중이었다.

        ​

        애초에 하북팽가를 목표로 내달리는 중이었기에 옆으로 샐 일도 없고.

        ​

        어지간하면 객잔에서 밥 먹고 자고, 사건 터지면 적당히 위협해서 잠재워서 문제도 줄이고 있으니 정말로 평화로운 여행이었다.

        ​

        매일 이렇게 지나갔으면 좋겠다 싶은 정도로.

        ​

        “은공. 곧 북경에 도착할 것 같습니다.”

        ​

        “북경이라…”

        ​

        이 시절 중국 수도였던가?

        ​

        중국 역사에 무지했기에, 확신이 서질 않았다.

        ​

        내 말에 목경이가 은은한 미소를 짓고는 입을 열었다.

        ​

        “중원에서 가장 커다란 도시입니다. 중원에서 세워지고 무너진 나라들이 북경을 수도로 삼았을 정도로 역사가 깊은 도시이기도 합니다.”

        ​

        “그런 건가.”

        ​

        “북경은 처음 와봐요!”

        ​

        혜령이가 흥분한 듯 팔을 파닥거리며 눈을 빛냈다.

        ​

        시골 촌놈이 서울 구경하러 온 꼴이니 흥분하는 건 당연한 걸까. 

        ​

        현대 사회에서 화려한 도시를 자주 보았던 나는 비교적 담담한 눈으로 북경을 바라보았다.

        ​

        크고 화려하다. 

        ​

        현대의 도시와 비교해도 꿀리지 않을 만큼.

        ​

        “은공, 북경을 보고서는 별로 놀라지 않으시는군요.”

        ​

        “충분히 놀라는 중이야.”

        ​

        나는 적당히 둘러대며 옆에서 소란을 피우는 혜령이를 쳐다보았다.

        ​

        경공을 썼을 때보다 더 크게 팔을 파닥거리는 혜령이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배시시 웃었다.

        ​

        근데 왜 넌 경공 쓸 때도 팔을 파닥거리니. 경공 원래 저렇게 쓰는 거였던가? 목경이는 닌자처럼 달리고 있는데?

        ​

        나는 적절한 경공의 표본이 뭔지 감이 잡히질 않아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

        혜령이는 어쨌든, 목경이는 북경에 못이 박힌 채로 입을 열었다.

        ​

        “어릴 적에 부모님과 한 번 왔던 적이 있지요.”

        ​

        과거를 떠올리는 말에 목경이를 쳐다보니, 목경이는 아련한 눈빛으로 북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

        어릴 적의 추억이라.

        ​

        안 좋은 기억이 떠오르게 만든 거 아닌가. 조금 걱정이 되어 어깨에 손을 얹으니, 목경이는 흠칫거리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

        묘하게 얼굴이 붉어 보이는 건 착각인가?

        ​

        “으, 은공. 저는 괜찮습니다.”

        ​

        “우리가 있잖나.”

        ​

        “예, 예예예예…”

        ​

        왜 이런데.

        ​

        나는 평소의 침착한 모습은 어디 가고 당황스러워하는 목경이를 보곤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

        왜 저러는지.

        ​

        뭐 마음이 심란해서 그런 거겠지? 

        ​

        이 지독한 남초 세상에서 동정을 받는 게 달갑지 않을지도 모르고.

        ​

        원작의 종종 나오곤 했던 상남자 행동을 떠올린 나는 적당히 납득하며 어깨에서 손을 내리고 혜령이를 쳐다보았다. 정확히는 내 팔에 달라붙어 있는 혜령이를.

        ​

        “왜 그래?”

       

        “아저씨, 피곤해요.”

        ​

        “전혀 안 피곤해 보이는 얼굴로 잘도 그런 뻔뻔한 소리를 하는구나.”

        ​

        “그럴 땐 적당히 받아주는 거예요!”

        ​

        그걸 자기 입으로 말하다니, 참 당당하구나. 나는 당돌한 펭귄이 볼을 부풀리는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

        귀엽게 굴기는.

        ​

        “알았으니까 슬슬 다시 출발하자. 오늘 밤을 산에서 보내고 싶은 마음은 없으니.”

        ​

        “저는 아저씨랑 함께하면 풍찬노숙도 괜찮아요.”

        ​

        “나는 굳이 그러고 싶은 마음은 없거든. 목경아, 가자.”

        ​

        “예, 예…”

        ​

        나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목경이를 데리고 북경으로 향했다.

        ​

        ———————–

        ​

        하북팽가.

        ​

        북경에서도 알아주는 가문으로, 듣기로는 구성원 중 일부는 관인이라 이런저런 혜택을 받고 있다던가. 

        ​

        그리고, 근육뇌들이 모인 가문이다.

        ​

        다시 한번 말한다.

        ​

        “…별로 들어가고 싶지는 않은데.”

        ​

        보초들만 봐도 땀 냄새가 나는 것 같아.

        ​

        나는 의복을 찢어버릴 기세로 커다란 근육 덩어리들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

        “우와…아저씨, 아저씨보다 조금 작아요!”

        ​

        “사람이 아니라 곰같이 느껴질 정도입니다.”

        ​

        두 사람의 감상을 한 귀로 흘리며, 나는 하북팽가의 정문으로 당당하게 걸어갔다.

        ​

        하북팽가는 어디서나 당당하게 걷는 자만 인정해주는 세가. 기세에 위축되었다간 하북팽가 문 앞에서 축객령이 내려질 수도 있었다.

        ​

        “누구냐?”

        ​

        “나는 위리엄이라는 사람이오. 하북팽가에 볼 일이 있어 찾아왔소.”

        ​

        삿갓을 위로 젖힌다. 뒤이어 내 얼굴을 본 보초들이 놀란 표정으로 내 얼굴을 쳐다본다. 

        ​

        익숙한 흐름이다.

        ​

        “색목인?”

        ​

        “설마…사자검협?”

        ​

        “알아봐 주니 고맙군. 혹 가주님께서 세가에 계시는가?”

        ​

        “예. 지금쯤 수련을 하고 계실 겁니다.”

        ​

        나는 품에서 제갈현상이 써준 서찰을 꺼내 보초에게 건네주었다.

        ​

        “벽력도제 선배를 뵙고자 무림맹에서 이곳까지 한달음에 달려왔네. 혹 방문을 요청해도 되는지 기별을 넣어주겠나?”

       

        “예,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

        보초는 곧바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남은 한 명의 보초는 헛기침을 하며 나와 내 옆에 서 있는 혜령이와 목경이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

        너도 남자구나.

        ​

        나는 혜령이의 가슴에 시선이 길게 머무른 것을 눈치챘지만 구태여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

        설사 부처님이라도 수박 두 개를 가슴에 달고 다니는 사람을 보면 눈이 안 갈 수가 없을 테니까. 저건 불가항력이었다.

        ​

        자연재해에 준하는 수준으로.

        ​

        그렇게 어색한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보초가 문틈으로 고개를 내밀고 “들어오시랍니다.”라며 겨우 침묵을 깨트렸다.

        ​

        …드디어 하북팽가인가.

        ​

        우리는 보초가 열어준 문을 넘어 하북팽가에 도착했다.

        ​

        “가주님과는 언제 뵐 수 있겠나?”

        ​

        “가주님의 방으로 바로 가시면 될듯 합니다. 마침 할 일이 없으시던 차라…”

        ​

        그건 다행이네.

        ​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빠르게 용건을 마칠 수 있다면 나로서는 좋은 일이니.

        ​

        “너희 둘은 손님방에서 기다려라. 빨리 용건을 마칠 테니.”

        ​

        “잘 다녀오세요!”

        ​

        “일을 잘 마치고 오시길…”

        ​

        나는 곧바로 가주가 있다는 가주전으로 향했다. 

        ​

        “가주님! 사자검협 위 소협이 왔습니다.”

        ​

        “들여보내거라!”

        ​

        호랑이가 포효를 하는 듯한 목소리가 방문을 뚫고 내 고막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

        화통한 목소리로구만.

        ​

        나는 신발을 벗고 방문을 열었다.

        ​

        그리고 하북팽가의 가주와 눈이 마주쳤…

        ​

        “자네, 혹시 홀몸인가?”

        ​

        뭔데.

        ​

        나는 내 몸을 눈으로 훑으며 던진 생뚱맞은 질문에 굳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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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ieval Knight in a Martial Arts Novel

Medieval Knight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소설 속 중세기사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fter two years of being reincarnated as a medieval knight, he finally realizes that he's been reincarnated into a martial arts no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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