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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9

       해럴드가 교수로 새롭게 부임하게 되었다는 소문은 검술부 전체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기본적으로 워낙 유명한 놈이니까. 전쟁 영웅이기도 하고.

         

        적어도 제국 내에서 검 좀 다룰 줄 아는 놈이라면 모를 리가 없는 전설의 소드 마스터였으니, 검술부는 물론이고 다른 부서로까지 그 소문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어쩐지 에단이 마지막 가는 날에 저택에 없는 것 같더라니….’

         

         

        설마 그 기간에 아카데미에서 임시 교수를 준비하고 있었을 줄이야.

         

        기어이 루미노르 아카데미까지 쫓아온 해럴드를 처음 마주했을 때는 순간적으로 비명이 터져 나올 뻔했다. 너무 놀라서 그 비명조차도 뱉어내지 못한 게 다행이지.

         

        그가 어떤 경위로 아카데미 교수직을 맡게 되었는지는 대충 알 것 같긴 했다.

         

        애초에 전쟁 영웅인 해럴드가 한가롭게 영지 경영이나 하는 것을 내버려 둘 제국이 아니기도 했고.

         

        이미 왕의 3검 자리는 은퇴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무력 자체는 제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인간이었다.

         

        제국의 온갖 기관에서 이미 러브콜을 받고 있었겠지. 그렇게 평소에는 거절하다가 이번 학기에만 아카데미 임시 교수직을 맡게 된 것일 테고.

         

         

        …임시 교수라고 해도 자기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연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게 임시 교수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설마 아버지가 아카데미까지 오셨을 줄은 몰랐어. 아무래도 저택에 혼자 계시면 적적하실 것 같아서 나오신 게 아닐까, 하하….”

         

        “…네, 매일 계시던 에단 도련님이 없어지게 될 것을 생각하셨더라면 그러실 수도 있겠죠.”

         

         

        에단은 그 와중에 속 편하게 이런 얘기나 하고 있었으니 나는 그에 맞춰 적당히 대답할 뿐이었다.

         

        사실 에단이야 별로 아쉬울 게 없긴 했다. 제 아버지가 검술부의 교수 자리를 맡고 있으면 성적 받는 것은 훨씬 수월해질 테니까.

         

        검술부의 다른 교수들과 비교해도 해럴드의 지위와 업적에 견줄 사람은 거의 없었으니, 대부분은 그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자연스레 성적을 좋게 평가해줄 터였다.

         

        물론 에단이라면 굳이 그런 편법을 쓰지 않더라도 어지간한 과목에서 충분히 좋은 성적을 거두겠지만.

         

         

        …굳이 문제가 있다면, 그건 아무래도 내 쪽이었다.

         

        해럴드가 아카데미에 존재하게 되어버린 이상, 에단과 해럴드의 검술 훈련 또한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이벤트가 되어버렸기에.

         

        일주일에 한 번씩 있는 마법검술의 기초 수업 도중은 물론, 어쩌면 저택에서와 마찬가지로 매주 정기적인 대련 훈련을 하게 될 가능성도 전혀 없지는 않았다.

         

        심지어 마지막 대련에서만 해도 거의 2주일에 한 번 정도는 한 판씩 따던 에단이었는데, 그때보다 조금 더 성장한 지금의 에단이 이전까지의 빈도로 대련에 임하기라도 하면….

         

         

        ‘어쩌면 매주 해럴드에게 한 판씩 따서 돌아올지도 모르겠는데.’

         

         

        곤란했다.

         

        진짜 곤란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나와 에단이 사용하고 있는 기숙사실은 우리 두 사람만이 사용하는 공간이 아니었으니까.

         

        그리 두껍지 않은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사벨이 함께 생활하는 공간에서 이전처럼 가슴…보상을 주는 행위는 여러모로 위험했다.

         

        잘못해서 신음이라도 내뱉어버리는 순간 아마 100% 들키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까지 늘 해오던 것을 하루아침에 그만두는 건 아무래도 내 자존심이 용납할 수 없는 행위였다.

         

        사내자식이 태어나서 한 번 했던 말을 추하게 번복할 수는 없지. …비록 몸은 릴리스의 몸이기는 하지만.

         

         

        ‘뭐, 굳이 벌써 고민할 필요는 없을 것 같기도 하고.’

         

         

        어디까지나 해럴드와 에단의 검술 대련이 성립되고, 그 해럴드를 에단이 검술에서 이겨야만 고민할 의미가 있는 문제였다.

         

        애초에 해럴드도 임시 교수로 부임한 지 얼마 안 되었으니 한동안은 일정이 없어 바쁠 테고, 수업 도중에도 모든 학생과 일일이 대련을 펼칠 수는 없을 테니.

         

        아카데미에 다니고 열흘밖에 안 지난 지금 당장 두 사람의 대련이 시작되기에는 여러모로 조건이 그리 좋지 않았다.

         

        어쩌면 일정이 꼬여 대련 자체가 한 번도 성립하지 않을 수도 있고.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지금부터 걱정하는 것 자체가 미련한 짓이겠지. 이렇게 생각하니까 안심이 되기는 하네.

         

         

        ‘애초에 해럴드도 마법검술의 기초 말고 다른 수업은 하지 않는 모양이고, 에단이 다른 수업에서 해럴드랑 검술 대련을 한다고 해도 내가 못 본 것은 증명하기도 힘드니까.’

         

         

        일주일에 한 번만 잘 피하면 된다, 딱 한 번만.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나 자신을 어떻게든 안심시키고 있었으나.

         

        …에단과 해럴드의 검술 대련은 내 예상보다도 훨씬 빨리 돌아오게 되었다.

         

         

         

       ⁎ ⁎ ⁎

         

         

         

        에단과 함께 루미노르 아카데미에 다니기 시작한 지 정확히 2주일이 되는 날.

         

        오늘은 일주일에 한 번씩 돌아오는 에단과의 공통 수업을 듣는 수업일이었다.

         

        해럴드가 하는 그 강의가 맞다. 애석하게도 말이지.

         

         

        오전 수업이 끝나자마자 빠르게 짐을 챙긴 후 서둘러 강의실을 나가 마법부 건물 밖으로 빠져나왔다.

         

        우물쭈물하고 있다가는 이번에도 에단이 내가 있는 마법부 건물 쪽으로 나를 데리러 올 테니까.

         

        2주 연속으로 에단이 나를 데리러 마법부 건물까지 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전속 메이드로서의 불찰….

         

         

        “아, 릴리스. 오늘 수업은 조금 일찍 끝났나 보네.”

         

        “…에단 도련님.”

         

        “아, 혹시나 해서 말해두는 건데, 딱히 릴리스를 기다리고 있던 건 아니었어. 검술부 건물에 가만히 있기에는 시간이 조금 아까워서 아카데미 산책이나 한 바퀴 돌까 하고 있었거든.”

         

        “…우연이군요. 산책을 하시던 도중 마침 제 수업이 끝나는 시각에 맞춰 마법부 건물 앞을 지나시다니요.”

         

        “그러게, 정말 신기한 우연이지?”

         

         

        …에단 얘는 날이 갈수록 뻔뻔해지네.

         

        누가 봐도 대놓고 나를 데리러 마법부 건물까지 와 놓고는 무슨 시치미를 떼고 있는 건지.

         

        고용인으로서 보기 안 좋은 행위라고 주의를 시키자마자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것을 보면, 오히려 나를 곤란하게 하려고 이러는 게 아닐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어버릴 정도였다.

         

         

        “학생식당은 건물은 마법부 건물보다 검술부 건물이 훨씬 더 가깝지 않습니까? 왜 항상 이런 식으로 비효율적인 동선을….”

         

        “배고프니까 빨리 가자, 릴리스. 오늘 저녁에는 아버지 수업이라 지각하면 안 되잖아?”

         

        “물론 그것도 맞는 말씀입니다만….”

         

        “정 신경 쓰이면 그 레이스 커프스랑 헤드 드레스라도 좀 떼고 다니는 게 어때? 그러면 굳이 전속 메이드의 의례를 채울 필요까지는….”

         

        “안 됩니다.”

         

        “…리, 릴리스가 싫다면 어쩔 수 없고.”

         

         

        내가 블랙우드 가문 소속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데 확실하게 인증하고 다녀야지.

         

        게다가 이미 이 상태로 2주일이나 아카데미를 다녔는데 갑자기 떼고 다니면 내가 에단에게 해고당한 거 아니냐는 헛소문이 돌 거 아냐.

         

        귀찮은 일이 생기는 건 여러모로 사절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언제까지고 아카데미를 졸업할 때까지 에단의 전속 메이드 역할에 최선을 다해야만 하는 거고.

         

        그것이 릴리스로 아카데미에서 살아남는 방법이었다.

         

         

         

       ⁎ ⁎ ⁎

         

         

         

        해럴드에게 듣는 마법검술의 기초 수업, 그 두 번째 주간.

         

        오후 수업 시간이 되자마자 실내 대련장에 나타난 해럴드는 모인 학생들을 보고 오늘 수업 내용에 관해 먼저 선언했다.

         

         

        “개개인의 대략적인 실력 파악을 위해, 오늘부터는 둘씩 짝을 지어 대련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다.”

         

         

        오리엔테이션 같았던 첫날의 수업은 어영부영 넘어갔지만, 두 번째 주부터는 확실하게 본격적인 수업에 들어가는 모양이었다.

         

         

        “두 사람씩 짝을 지어 대련하기에 앞서, 지금부터 호명하는 네 사람은 따로 앞으로 나오도록.”

         

         

        설마 자신이 호명되는 것인가 싶어 검술부의 학생 몇 명이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고.

         

        해럴드의 입에서 나오는 이름의 첫 마디를 듣자마자 대충 어떤 기준으로 해럴드가 인원을 선정했는지 단번에 파악할 수 있었다.

         

         

        “겧뫄조셰기괏 볼트.”

         

        “에단 리처드 블랙우드.”

         

        “나탈리 샤프.”

         

        “카라함 재뮤얼 오귀스트.”

         

         

        …그래, 보통은 이렇게 되겠지.

         

        첫 이름으로 겧뫄조셰기괏의 이름을 불렀을 때부터 우등생…아니, ‘인외’ 등급의 녀석들이 모인 조라는 것 정도는 단번에 파악할 수 있었다.

         

        지금 루미노르 아카데미의 검술부 1학년 중 그 누구를 데려가도 저기 있는 네 명을 이길 수는 없을 테니까.

         

        저것들을 다른 학생들 사이에 섞어 대련하라고 짝을 지어놓았다가는 괜히 상대하는 녀석만 실컷 두들겨 맞고 끝나게 될 터였다.

         

         

        “너희 네 명은 이 안에서 서로 대련하는 것 외에, 다른 학생들과 대련하는 행위를 일절 금하겠다.”

         

        ““““네.””””

         

        “너희만 따로 빼놓은 이유는 너희들이 가장 잘 알 거라고 믿는다. 그렇지?”

         

        ““““네, 알고 있습니다!””””

         

         

        검 다루는 게 특기인 애들답게 확실히 자신감 하나만큼은 넘치는 대답들이었다.

         

        특히 남자 세 명 사이에서 당당한 표정으로 대답하는 나탈리가 특히 귀엽기도 했고.

         

         

        ‘루미노르 아카데미에 입학한 게 이런 면으로는 확실하게 좋긴 하네.’

         

         

        전생의 최애캐였던 나탈리를 눈앞에서 실물로 보게 된 것만으로도 사실상 내가 아카데미에 입학한 목적 중 절반은 달성했다고 봐야겠지.

         

        아마 누구라도 그녀의 매력을 알면 반할 수밖에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물론 예쁘기도 예쁘지만, 그 이상으로 매력적인 건 그녀의 당찬 성격이었으니까.

         

        마력을 사용할 수 있는 귀족과 용사 사이에서 혼자 아무런 힘도 없는 평민임에도 불구하고 당당한 자세로 대답하는 모습이라든가.

         

        남자들 사이에서 혼자만 여자인데도 위축되지 않는 저 모습을 보면, 여전히 전생에서 본 게임 속 나탈리를 보는 것 같아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만약 전생이었으면 따로 수집하는 CG를 제외하고도 프린트 스크린 키를 거의 표정이 바뀔 때마다 눌렀을 텐데 말이지.

         

        산들바람에 주황색 포니테일을 흩날리는 그녀의 모습을 저장하지 못하는 게 여러모로 아쉬울 뿐이었다.

         

         

        ‘그래도, 뭔가 예전처럼 두근거리지는 않네.’

         

         

        아무래도 『루미노르 아카데미』의 세계에서 릴리스로 지낸 세월이 너무 길어져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네.

         

        뭐, 애초에 이런 몸으로는 나탈리하고 이어지거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애초에 저 애한테는 토마스라는 소꿉친구 짝이 있기도 하고.

         

        주인공인 겧뫄조셰기괏이 굳이 방해하지 않으려고 하는 두 사람의 사랑에 내가 훼방을 놓을 자격 같은 건 애초부터 없었다.

         

        그저 이렇게, 멀리서 전생의 내 최애 캐릭터가 살아 움직이는 걸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기도 했고.

         

         

        “…….”

         

         

        사랑했던 캐릭터에게 더는 이성적인 감정을 못 느끼게 된 것이 한 편으로는 안심되기도 했지만.

         

        …그래도, 한때나마 가지고 있던 감정을 다시 느낄 수 없게 된 것에 우울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릴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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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Maid of the Lout Prince

I Became the Maid of the Lout Prince

망나니 공자의 메이드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transmigrated into a character from my favorite game in my previous life. Moreover, as the character I despise second most in the game. (Not a wasteman) The cover was designed by Deep Dark Wolf, and the typography was done by 유일유화 (Yu Ilyuh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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