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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9

       120. 장례식장에서 절대로 하면 안되는 일(1)

       

       

       교황이 미소지으며 손가락을 튕긴다.

       그와 동시에 가짜 아리아의 허상이 빛으로 변해 사라졌다.

       

       허나, 그런 것은 그녀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안!!”

       

       사랑하는 연인이 쓰러져 있었으니까.

       그런 상황에서 다른 게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아리아가 곧바로 쓰러진 전대에게로 달려간다. 

       

       곧바로 마력으로 단조해낸 벽.

       그녀는 그것으로 외부의 개입을 어떻게든 차단하고선 연인의 모습을 살폈다.

       

       숨을 쉬지 않는다.

       성검은 검게 물들어있다.

       자신조차 버티기 힘들 정도의 저주가 쏟아져나온다.

       

       아무리 봐도 도저히 가망이 없는 상황. 

       허나, 그녀는 포기할 수 없었다. 그에게 눈앞의 남자는 세상의 전부였기에.

       

       찬란한 빛이 몇 번이고 뿜어져나온다.

       연달아서 사용되는 치유마법. 허나, 이 세상 어디에도 죽은 이를 되돌릴 수 있는 마법은 없다.

       

       제발 깨어나라고.

       나는 아직 너와 헤어질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몇 번이고 오열하고, 눈물을 흘려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굉음이 울려퍼진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그녀가 직접 주조해낸 물건.

       그 내구성은 확실히 뛰어나지만. 여기 있는 건 제국의 황제와, 성황청의 교황이였다.

       

       제아무리 단단한 방벽이라고 한들 그 앞에서 버텨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점점 커져만 가던 균열.

       그것이 곧 쩌적, 소리를 내며 갈라진다.

       

       이후 벌어진 건 일방적인 학살이였다.

       쓸데없는 데 마력을 전부 소모한 그녀가 그 둘의 합공에 당해낼 수 있을 리 없었다.

       

       결국 그녀는 용사를 꿰뚫었던 것과 똑같은 검에 의해 심장을 관통당했다.

       

       허나… 안식은 주어지지 않는다.

       그녀가 희망을 잃고 절규하더라도, 저주의 말들을 내뱉더라도 그 두 사람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저들에게 있어 다른 인간이란 그저 판 위의 장기말에 불과했으니까.

       

       장기말의 감정을 헤아리며 게임을 하는 인간 따위는 없다. 결국 그들에게 있어 중요한 건 하나뿐이였다.

       

       이용가치가 있는가 없는가.

       그리고 그녀는 충분히 쓸만한 패였다.

       

       삶과 죽음의 경계.

       교황의 뒤틀린 신성력이 그 사이에 서 있는 여자의 상태를 억지로 고정시킨다.

       

       자유의지를 박탈한다. 기억을 헤집는다. 쓸모없는 인격 같은 건 망가트리고 소거시킨다.

       

       사람이였던 것이 인형으로 전락하고 있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불행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아주 멀리서 작은 발소리가 들려온다.

       누군가가 이곳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이곳에 찾아올 만한 이가 누구인지는 너무나도 뻔했다.

       

       문이 열린다.

       혼자 자는 걸 무서워하는 소녀는, 자다 일어나니 갑자기 사라진 어머니와 아버지를 찾기 위해 절대 열어서는 안 될 문을 열어버렸다.

       

       “……어?”

       

       잠결에 눈을 비비던 소녀가 일순 얼어붙는다.

       그 얼굴이 이내 창백하게 질린다. 호흡이 가빠진다. 눈물이 흘러나왔다.

       

       누구보다 듬직했던 아버지의 심장에는 검이 꽂혀 있었다.

       

       잠에 들지 못할 때마다 그녀를 쓰다듬어주던 엄마의 몸은 이곳저곳이 절단되고, 헤집어져 있다.

       

       그런 율리에게 금발의 노인은 다가왔다.

       율리는 지금 이 모든 것이 당황스러워져서, 그리고 너무나도 무서워져서 달아나려고 했다.

       

       허나, 달아날 수 없었다.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떨리는 다리는 그녀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죽이면 안 됩니다. 이 아이가 죽어 다음 대의 성녀가 태어난다면, 피차 곤란해지지 않겠습니까?”

       

       어머니를 헤집고 있던 괴물은 그리 이야기했다.

       

       “그러니, 날개를 꺾어 안전하게 보호해야지요.”

       

       하얀 머리의 사내는 계속해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기억을 지우고 황실에 들이라고.

       자신의 힘을 깨닫지 못하게 하고 ‘그날’이 올 때까지 철저히 감시 아래에 두라고.

       

       “…알고 있다. 너야말로 약속은 지키도록.”

       

       허나 그런 말들을 소녀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상황이 너무나도 두려울 뿐이다.

       

       그렇게 눈물을 흘리는 소녀를 향해서 백발의 사내는 다가온다. 천천히,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부모의 시체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소녀.

       언제나처럼 소름 끼치도록 공허한 미소를 지으며 소녀에게 뒤틀린 신성력을 불어넣는 백발의 사내.

       

       그 광경을 마지막으로 ‘내’ 시야도 점점 어두워져 간다. 

       

       이내, 세상이 완전히 어둠으로 물들었다.

       

       *****

       

       부유하던 의식이 제자리로 돌아온다.

       눈앞에 보이는 익숙한 풍경. 나는 비로소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머리가 어지럽다.

       딱히 술식에 문제가 있었다거나 하는 건 아니였다. 그냥 내가 본 게 워낙 지랄맞아서 그렇지.

       

       주회입마라도 몰려올 것 같은 기분이다.

       

       몇 번 좌절하고 무너지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일어서는 주인공. 그런 주인공을 지탱하는 히로인.

       

       암울하기 그지없는 이야기 속에서 웃음을 찾을 수 있게 해주는 귀여운 딸.

       

       믿음직하기 그지없는 동료들까지.

       

       내가 알던 그 모든 것들이 순식간에 무너진다. 

       

       전작 주인공 머리를 PC떡칠 캐릭터가 골프채로 터트려버리는 후속작이라도 플레이한 기분.

       

       본 앤 블러드에 인생을 바친 나였기에 충격이 더 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괜찮아?”

       

       옆에서 들려오는 시엘의 목소리에 어떻게든 정신을 다잡는다. 일단 지금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상황을 정리할 때였다.

       

       마지막에 용사가 했던 후회.

       그 개인주의적인 마인드가 상태창이 내게 가끔 건네는 조언이랑 묘하게 닮아 있는 것 같다는 식의 불확실한 추측은 일단 제쳐두고.

       

       확실히 알게 된 사실만을 나열하면….

       

       1. 교황은 무언가 괴상한 일을 꾸미고 있었다. ‘그날’이 언젠지는 몰라도, 찾아온다면 아마 세상이 멀쩡하진 못하리라. 

       

       2. 근데 황제도 수상쩍은 건 마찬가지다. 심지어 이쪽은 아예 마왕이랑 손까지 잡은 것 같다.

       

       살육까지 먹어치웠을 터인 지배와 하나가 된 황제. 

       

       지금도 모종의 방식으로 힘을 모으고 있을 걸 생각하면…. 대체 얼마나 강해졌을지 상상도 안 간다.

       

       3. 율리는 기억을 잃은 채 붙잡혔다. 

       

       아마 제 정체도 잊고 황실에 있을 터인데. 이 아이를 구하려면 제국 황제의 앞마당으로 걸어들어가야만 했다.

       

       그러니까 종합하자면….

       

       “안 괜찮은 것 같은데.”

       

       빈말로라도 괜찮다고는 못 할 상황이였다. 

       

       내가 지끈거리는 이마를 부여잡으며 그리 이야기하자 시엘이 유심히 나를 바라본다.

       

       그 시선에는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결국 나 또한 한숨 한 번에 어떻게든 근심을 털어낼 수밖에 없었다.

       

       뭐… 생각해 보면, 수확 자체는 나쁘지 않았으니까.

       

       소드마스터에 대마법사. 

       조종당하고 있던 용사의 동료. 

       

       제국의 전력을 상당히 소진시킬 수 있었다.

       

       성검의 조각과 10년 전의 일에 대한 정보도 얻었으니, 내가 마경으로 향하려던 목적도 전부 달성한 셈이고 말이다.

       

       나는 아직도 내 상태를 걱정스러운 눈동자로 살피는 시엘의 머리를 쓰다듬고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뭐, 어차피 고민해 봤자 이미 벌어진 일이 없었던 일이 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내가 해야 할 일은 변하지 않았다.

       원래 하던 대로 어떻게든 최선을 다해 부딪혀 봐야지 뭐.

       

       나는 로브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얼마 안 가 다시금 보이는 여자의 모습.

       

       그녀의 시선이 나와 마주친다.

       분명 교황의 손에 의해 본인의 의지조차 없는 인형으로 전락했을 터인데. 

       

       그럼에도 마음만큼은 지워내지 못했는지.

       

       나를 바라보는 그 눈에는 온갖 감정이 복잡하게 얽혀들어가 있다. 

       

       그녀가 입을 벙긋거린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는 알 수 있었다.

       

       부탁합니다.

       나는 그 말에서 무게감을 느꼈다. 이런 말을 전할 수밖에 없는 그녀의 죄책감도 느꼈다.

       

       그녀의 딸.

       세계의 미래.

       누구보다 소중했던 연인의 복수.

       

       그것을 그녀는 이루지 못한다. 누구보다 간절히 그것을 원함에도 이루지 못한다. 그러니 누군가에게 맡길 수밖에 없다.

       

       무거운 책무를 떠안고, 누구보다 괴로워했던 남자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럼에도 나에게 부탁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저렇게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거겠지.

       

       “걱정하지 마세요. 어떻게든 해내 보일 테니까.”

       

       허나, 나는 그리 이야기했다.

       

       무겁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럼에도 감당하겠다고 맹세한 짐이였기에.

       

       무엇도 잃지 않고 모든 것을 지켜내겠다고. 그렇게 엔딩에 도달하겠다고 다짐했으니까.

       

       내 말을 들은 그녀는 안도하면서도, 누군가를 떠올리는 듯 조금은 슬픈 표정을 하면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렇게 죽어서까지 이용당하던 그녀는 안식을 되찾았다.

       

       …원래 그런 결말이 찾아와야 하겠지만.

       

       나는 그녀의 눈꺼풀을 억지로 열었다.

       그녀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든다. 동시에 나도 조금 머쓱해졌다. 좋은 분위기를 깨는 것 같았으니까.

       

       실제로 좋은 분위기를 깬 것도 맞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용사를 속이고, 신을 봉인시키고, 성녀의 날개를 꺾어 제 감시 아래에 두고, 적들이 사기란 사기는 다 치고 있는 상황.

       

       이런 적을 대적하기 위해서는 나도 치트키를 사용할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남편 빨리 보고 싶은 건 알겠는데, 괜찮으시다면 그 일정은 조금만 더 미뤄 주세요.”

       

       나는 미소지으며 입을 열었다.

       

       “제가 어떻게든 당신을 살려볼 테니까.”

       

       …오랜만에 인재를 영입할 시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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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ccidentally Created a Villainous Organization

I Accidentally Created a Villainous Organization

How did you create a dark organization? 어쩌다 흑막 조직 만들어버림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game spoilers turned out to be fake. The characters I gathered thinking they were heroes are actually all villains. In other words, I accidentally created a villainous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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