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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9

       정말 놀랍게도, 부끄러움은 한 박자 늦게 찾아왔다.

        

       사실 처음에는 그깟 드레스 입는 것이 무슨 대수인가 싶었다.

        

       나는 이미 바니걸 복장을 한 적이 있었다. 윗가슴이 거의 그대로 드러나는 복장이었고, 사실 수치심을 기준으로 생각하자면 보통 사람은 입을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복장이었다. 그러니, 일반적으로 많이 입고 다니는 드레스 정도야 입어도 크게 부끄러울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가슴이 드러나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딱히 어깨가 드러나는 것도 아니다. 그냥…… 다른 귀족 아가씨가 입고 다닐 법한 평범한 복장이었다.

        

       심지어 치마 부분은 내가 평소에 입고 다니는 교복에 비해서도 훨씬 길었다. 당연한 말이다. 솔직히, 미소녀 캐릭터가 메인 콘텐츠 중 하나인 게임답게도 교복의 치마는 현실의 교복 치마와 비교해도 짧은 편이었으니까. 그러니까 ‘수치심’ 수준으로 보자면 이걸 입었다고 내가 부끄러워야 할 객관적인 이유가 없었다.

        

       아침에 나를 본 앨리스도 조금 놀랐을 뿐, 대단히 유난을 떨지는 않았으니까.

        

       하지만, 나는 아침 식사를 하러 나가고 나서야 알았다.

        

       부끄러움이라는 것은 ‘객관적인 노출도’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나의 복장을 보고 보이는 반응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라는 것을.

        

       바니걸 복장을 하였을 때는 나 말고 앨리스도 옆에 있었고, 솔직히 많이 수치스럽기는 했지만, 그런 우리 두 사람의 모습을 본 클레어의 반응은 ‘황당함’에 가까웠다. 게다가 이런저런 댈만한 이유도 있었고.

        

       하지만 이 드레스는, 내가 내 의지로 직접 꺼내입은 것이었다.

        

       그리고 이 복장을 본 다른 사람들은 그 사실 자체에 집중했다.

        

       “와!”

        

       나를 처음 보고 3초 정도 멍한 표정을 지었던 클레어의 얼굴은 순식간에 밝아졌다. 그리고 양손을 모으고 눈을 반짝이며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언니, 엄청나게 잘 어울려!”

        

       그 ‘언니’라는 말에 클레어 근처에 서 있던 남작 부인의 눈썹이 위로 슬쩍 올라가는 것이 보였지만, 부인은 그 동요하는 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지는 않고 기품있게 다가와 말했다.

        

       “어제 보았던 복장도 잘 어울리셨지만, 지금 이 복장도 무척 잘 어울리십니다.”

        

       “그렇습니까?”

        

       그리고 그런 반응들은, 바니걸 복장이던 나를 보고 레오가 얼굴을 붉혔던 때보다 훨씬 더, 그러니까, 간지러웠다.

        

       심지어 그 레오의 반응도 비슷했다.

        

       평소라면 이런 나의 모습을 보고 입을 떡 벌렸을 레오였지만, 자기 집에 와 있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이제 한 학기나 알고 지냈으니 나와 좀 친해졌다고 판단했는지, 얼굴에 ‘주인공 미소’를 띠며 다가온 레오는 내 근처로 다가와 말했다.

        

       “정말 잘 어울려.”

        

       그리고 나는 그제야 떠올릴 수 있었다.

        

       원작에서 실비아 팬그리폰이라는 캐릭터는 없었지만, 만약 그 원작 게임에 이런 장면이 있었다면 그건 분명히 ‘실비아 팬그리폰’의 인연 이벤트일 거라고.

        

       이쪽 세상에서 쓰고 있는 내 이름 아래에 비어있는 하트 칸이 있고, 그 하트 칸 중 하나에 분홍색 색깔이 반쯤 차오르는 상상을 하자 등에 소름이 쫙 돋았다.

        

       “그렇습니까.”

        

       그런데 어쩌겠는가. 여기서 ‘아닙니다’라고 하면 그건 그거대로 클리셰다.

        

       내 캐릭터성이 잘 먹혀들어 가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내가 ‘공략당하고 있다’는 기분을 내고 싶지는 않았다. 여기서 여자의 몸으로 10년을 살았어도 나는 아직 영혼은 남자인 채였으니까.

        

       “분명히 아이들도 훨씬 편하게 언니를 만날 수 있을 거야.”

        

       클레어는 나의 그런 생각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듯 그렇게 말했다. 정확히는 여기 주변의 모두가 그렇긴 했다. 이 세계가 게임 속 세상이라고는 생각도 못 하겠지…… 애초에 이 세계에는 비디오 게임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존재한다고 했어도 그렇다고 상상은 못 하겠지만.

        

       “그렇습니까.”

        

       ‘그렇습니까’라는 말밖에 하지 못하는 나를, 옆에서 앨리스가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 전 방에서 나오기 전에 ‘귀부인 같은’ 부드러운 어깨선을 가지기 위한 일장 연설을 했던 앨리스였다.

        

       앨리스의 표정도 별로 많이 드러나 보이지는 않았지만, 나는 어째서인지 그 안에 ‘만족감’이 자리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

        

       여전히 다니엘은 나를 앞에 두고 얼굴을 조금 붉혔다.

        

       나는 다시 한번 진지하게, 다니엘이 나를 알아본 것이 아닌가 고민해보았다.

        

       살아생전 한 번도 내가 누군가의 첫사랑이 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원래의 나는 누군가의 첫사랑이 되기에는…… 어, 별로 잘생기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실비아 블랙’의 외모는 다르다.

        

       그 고아원의 모든 아이가 꽤 반반하게 생겼었지만, 클레어나 나처럼 명확하게 ‘미소녀’의 형상으로 자라나고 있는 아이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다들 그러기에는 너무 어렸으니까.

        

       게다가 나는 그 고아원이라고 불러주기도 뭣한 곳에서 아이들에게 친절하게 대해주었던 몇 안 되는 사람이었다.

        

       나를 향해 동경의 감정이 있다고 해도 나는 놀라지 않을 것이다. 클레어가 그랬던 것처럼.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남작 부인은 식사 후 일찌감치 자리를 비켜주었다. 바쁘다는 말을 들었지만, 아마 반 정도는 그냥 내가 다른 아이들과 재회하는 자리를 방해하지 않겠다는 의도이기도 할 것이다.

        

       “다들 모여있는 모양입니다.”

        

       “아, 네.”

        

       다니엘의 뒤를 따라가면서 물어보자, 다니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완전히 같은 방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맡을 일이 비슷한 아이들끼리는 아무래도 비슷한 공간에서 생활하게 되니까요.”

        

       확실히 그렇긴 했다.

        

       집사와 하녀의 공간이 같을 수 없고, 경비원의 공간도 같을 수 없다.

        

       게다가 아무리 좁은 영지라고는 하지만 두세 사람이 지킬 수 있을 정도로 좁은 영지도 아니었다. 24시간 주변을 지키고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가정하면 수가 꽤 많이 필요할 거고, 만약 고아원의 아이들을 전부 고용했다고 하면 대부분은 경비원이 되었을 것이다.

        

       고아원의 아이 중 절반 이상이 여자애였다는 것은 그렇다고 쳐도.

        

       “여기입니다.”

        

       다니엘이 멈춘 곳은, 본관과는 떨어진 곳에 있는 별관이었다. 영지에 들어오면서 바로 보였던 곳 중 하나이기도 했다.

        

       단순히 ‘숙소’라고 하기에는 꽤 훌륭한 건물이었다. 만약 여기가 사용인들이 지내는 숙소라면 그레이스 남작가는 정말로 꽤 괜찮은 복지를 사용인들에게 베풀고 있는 셈이다.

        

       다니엘은 곧장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우리가 다 들어갈 때까지 문을 잡고 기다려주었다.

        

       나보다 키도 작은 남자애가 그런 일을 하니 뭔가 어색하고 불편한 기분이 들었지만, 이 세계가 그러니 그건 어쩔 수 없겠지. 심지어 클레어나 레오, 앨리스도 당연하다는 듯 행동했으니까.

        

       건물 안으로 들어오자 뜨거운 공기가 조금은 가라앉은 것 같았다. 여기도 모종의 냉방 시스템이 있는 모양이었다. 증기 기관이건, 마법이건.

        

       의외로 내부는 호텔 같았다. 막 비싼 호텔 같지는 않았지만, 유럽 어딘가 시골에 있을법한 오래되고 고풍스러운 여관. 하지만 로비 카운터에는 사람이 없었다.

        

       “방 하나에 두 사람씩 함께 생활합니다. 황녀님께서 만나고자 하시는 사람들은, 그……”

        

       다니엘의 시선이 클레어에게로 향하자, 클레어는 얼굴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랑, 너랑 같이 지내던 애들.”

        

       “알겠습니다.”

        

       다니엘은 다시 한번 나의 눈치를 보았다.

        

       “그러면…… 불러오겠습니다.”

        

       다니엘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로비의 의자에 몇 분 정도 앉아있자, 한두 명씩 로비에 얼굴을 비추기 시작했다.

        

       그때 함께 탈출했던 아이의 수는 나, 클레어, 다니엘을 포함해서 열 두 명이었다.

        

       한두 명씩 쭈뼛거리며 나오는 애들은, 다니엘과 나이 차이가 크게 나지는 않아 보였다.

        

       다만 대부분 다니엘보다는 컸다. 여자애건, 남자애건.

        

       “안녕!”

        

       “언니!”

        

       클레어가 손을 흔들자, 짙은 갈색의 단발머리를 한 활발해 보이는 인상의 여자애는 그렇게 외쳤다가 클레어 뒤쪽에 있는 우리를 보고 얼른 입을 다물었다.

        

       그렇구나.

        

       아무래도 그때 함께 도망쳐 나온 아이들은 모두 서로 의지하며 살았던 모양이다. 형제자매처럼.

        

       나와 앨리스를 보고 바로 ‘귀족’이라고 판단했는지, 달려오려던 아이는 금방 발걸음을 조신하게 바꾸어서 우리 쪽으로 왔다.

        

       그리고 스커트를 살짝 잡은 채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안녕하신가요.”

        

       “…….”

        

       나는 이 아이의 이름을 기억해내려고 노력하고 있었기에, 그 인사에 대답해줄 만한 여력이 없었다.

        

       그 아이가 자기 이름을 말하기도 전에, 복도를 통해서 다른 아이들이 계속 나왔다.

        

       붉은 머리, 금발, 회색, 파란색…… 인제 보니 머리 색이 참 다양하기도 했다. 어쩌면 그때 그 노파가 아이들을 사들이는 기준에는 머리카락 색도 포함되어있었을까?

        

       혼자 생각에 빠져있던 사이에 아이들이 모두 모였다.

        

       숫자는 아홉 명이었다.

        

       한 사람도 빠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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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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