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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9

       이름 김루루, 나이는 제대로 센 적 없어서 몰루. 이 모습으로 지낸지도 엄청 오래 됐으니까. 현재는 학교에 다니면서 마법소녀 『퓨어 로데오』로 활동 중!

       

       그러나 그 진정한 정체는 바로⋯⋯! 

       

       제국 수도 크라운홀의 치안을 수호하는 수도기사단장, 루루!

       

       자색 마탑주와의 대결에서 아주아주 아깝게 패배한 이후, ‘이건 내가 마력이 부족해서 졌다’고 판단한 루루가 식사량을 두 배로 올려버려, 매일 밤 수도기사단 취사병의 곡소리가 들려올 적에.

       

       그녀는 어찌 된 영문인지 꿈을 통해서 다른 세계로 놀러 가는 능력을 얻게 되었다!

       

       그냥 재미있는 꿈을 꿨나 생각했었지만, 부관에게 어떤 꿈을 꾸었는지 내용을 알려주니 아주 호들갑을 떨면서 ‘그건 차원 마법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는 게 아닌가.

       

       그 이유를 물어보니까, 부관은 루루에게 차원 마법 연구의 역사에 대해서 줄줄 늘어놓으려다가⋯⋯ 그냥 눈높이 교육으로 말을 바꾸었다.

       

       부관은 알몸으로 수술대에 누운 루루의 바이탈 사인을 체크하면서 간단하게 말했다. 

       

       “단장, 너는 머리가 텅 비어서 그런 세계를 상상할 능력이 안 돼.”

       

       “아씨, 나 똑똑하다고오!”

       

       “5 곱하기 7.”

       

       “21⋯⋯ 아니, 발음 잘못한 거야. 30⋯⋯ 더하기 5⋯⋯? 갑자기 물어보니까 그래. 마음의 준비도 안 됐는데 그런 걸 물어보면 대체 누가 맞추냐?!”

       

       못된 부관의 음해는 그렇다 치더라도,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이제까지 꿈속에서 새로운 맛을 느끼거나 했던 적은 없었던 터라.

       

       그렇구나, 내가 꿈속으로 다른 세상으로 갔구나! 하고 납득하게 되었다.

       

       툭툭. 부관이 주사기를 튕겼다.

       

       “정기 안정화 시간이니까 푹 자고 와, 단장. 그리고 이번에도 이세계로 가게 된다면, 가능한 한 많은 지식을 빨아들인 뒤에 돌아와서, 나한테 설명해 줘.”

       

       “으, 주사 싫은데.”

       

       “처음 겪는 일도 아니면서 엄살은. 그리고 이거 빈말 아냐. 가능한 한 많은 지식! 알겠지? 하나 제대로 물어 오면⋯⋯ 제국 부서 하나 정도의 수익이 날지도 모르니까.”

       

       부관의 안경알 너머로 욕심이 번들거렸다. 농담조로 가볍게 얘기하고는 있어도 감정이 짙었다. 꿈속에서 친구 사귄 얘기는 귓등으로도 안 들어주더니⋯⋯.

       

       이내 주삿바늘이 혈관 안으로 파고들었고, 루루의 의식은 깊이 가라앉았다. 걸어 다니는 마력 원자로인 육신이 섬세하게 재조정되는 사이, 루루는 다시 한번 꿈을 꾸었다.

       

       그리고 사흘 정도가 지난 뒤에 눈을 뜨고 한다는 말이.

       

       “크레페 맛있더라.”

       

       “크레페가 뭔데?”

       

       “맛있는⋯⋯ 생크림 들어간⋯⋯ 과일이랑⋯⋯ 하튼 그런 거!”

       

       이런 문답이 한 세 번 반복된 이후로는, 부관은 다 내려놓은 해탈한 표정이 되어서. ‘그냥 재밌게 잘 즐기다가 오시고, 사고 칠 거 있으면 거기서 다 치고 와라.’라고 말했다.

       

       어떤 포기는 빠를수록 좋은 것이다.

       

       꿈속에서 수도기사단장의 막대한 마력을 사용할 수 없던 건 조금 아쉬웠지만, 여기서는 대신 『마법소녀』라는 새로운 힘을 갖게 되었다. 

       

       게다가 꿈속 세상은 몹시 너그러웠다.

       

       밖에서는 어떻던가. 승화급 인물이 함부로 힘을 휘두르면 안 된다면서 본부 건물에만 틀어박혀 있게 하고, 싸우면 싸웠다고 꾸중이나 듣고. 건물 무너진 거 수리하는 데 예산이 얼마가 드느니 뭐니.

       

       할배라도 옆에 있었으면 심심하지라도 않지. 이렇게 출장 가 있는 동안은 몸이 근질근질거렸다. 

       

       심지어 다쳐서 돌아와도 잔소리부터 나오지 않던가. 숲이 갈려 나갔는데 또 사고를 쳤다느니. 아무리 자기가 싸움을 좋아한다지만, 팔 박살 나서 돌아오면 괜찮냐는 소리 정도는 해줄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래, 뭐 언제 또 사람 취급을 받았다고. 걸어 다니는 폭탄이었지. 이젠 포기한 지도 오래다.

       

       하지만 이곳은 다르다.

       

       잔뜩 싸우면 잔뜩 응원해 주고, 칭찬도 받는다. 겸사겸사 마력도 늘어난다. 무한히 이어지는 선순환에, 김루루는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건가 잠깐 걱정했을 정도였다.

       

       그 어떤 잔소리도 듣지 않고 꿈을 만끽하고 있을 무렵.

       

       “제대로 주먹을 쓰라고 하지 않았나!! 내가 알려준 건 대체 어디에 팔아먹고!”

       

       “아~!! 오대수 시끄러워~!!”

       

       꿈속에서 잔소리쟁이가 생겼다.

       

       이 잔소리꾼의 이름은 오대수. 주황색 머리카락을 흩날리는 약간 여우상의 미소녀였다. 가슴 사이즈는 손에 착 감겨서 딱 들어올 정도.

       

       가슴 사이즈는 또 어떻게 알았느냐고 물으면, 오대수가 싸움을 알려주겠다고 해서 이것저것 동작을 따라 하다가, 발을 헛디뎌 넘어져서 그렇게 됐다.

       

       오대수는 재수가 없었다. 깐깐한 게 딱 부관 같아서. 

       

       같이 싸울 때는 사사건건 훈수를 놓고, 뭐만 하면 바보라느니 언성을 높여서 짜증 났다. 답답하면 자기가 움직이면 되는 걸 왜 그렇게 참견을 해 댄담.

       

       그래도 입에 생크림이 묻으면 손수건으로 닦아 주거나, 신발 끈이 풀려 있는 걸 대신 묶어주거나 하는 걸 보면⋯⋯ 그렇게까지 짜증이 나는 녀석은 아니고, 뭐랄까.

       

       귀찮다에 가까울지도⋯⋯?

       

       같은 마법소녀니까 함께 잘 지내보려고 노력도 해 봤다. 좀 친해지면 잔소리가 줄어들 것 같아서. 그래서 큰마음 먹고 칭찬 세례를 퍼부었더니마는.

       

       “야, 오대수 오늘 좀 이쁘다? 러브레터 열 통 받을 듯.”

       

       “아침부터 시비 거는 거냐?!”

       

       “아이씨, 칭찬을 해 줘도 뭐래-!!”

       

       이런다니까.

       

       이쁘다는 소리를 들으면 화를 내는 건 대체 뭐⋯⋯ 무슨 생각이지? 자기는 그냥 이쁜 게 아니라, 엄청나게 이쁘다 뭐 그런 건가?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잔소리 들을 각오를 단단히 하고 온 것이다. 무려, 몰래 귀마개를 꼈다는 말씀.

       

       괴인이 등장했다는 신호에 마법소녀로 변신하고 사건 현장으로 달려가니, 이미 변신한 『퓨어 나이트』가 시민들을 피난시키고 있었다.

       

       커다란 고깔모자를 뒤집어쓴 여자애가 적으로 등장했다. 

       

       엄청 움츠러든 것 같은 모습이면서도, 또 어떻게 보면 도약하기 직전의 고양이를 보는 것 같았다. 

       

       그냥 이렇게만 생겼으면 괴인이 아니라 민간인으로 보였을 텐데, 머리카락 끝을 보라색으로 물들이고 있는 데다가, 고깔모자 아래로 마법의 손이 뻗어 나와 있어서 악의 조직 비슷하게는 보였다. 

       

       “⋯⋯⋯, ⋯⋯⋯⋯⋯!!”

       

       “⋯⋯⋯⋯⋯⋯!!”

       

       오대수는 김루루에게 삿대질을 하면서 뭐라고 막 말했는데, 귀마개 덕분에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래도 무슨 말인지는 알 것 같았다. 공격 신호겠지 뭐!

       

       “좋아, 돌격이다!!”

       

       “⋯⋯, ⋯⋯⋯⋯!!”

       

       오대수가 당장 돌아오라고 손짓했지만 씹었다. 적이 그렇게 강해 보이지도 않고, 그냥 단번에 달려가서 꿀밤을 갈기면 이길 것 같다는 판단이었다. 

       

       그때, 김루루의 모든 뇌세포가 비상벨을 울려댔다.

       

       뭐지. 어째서 그렇게 겁을 집어먹은 거야. 나.

       

       달려가면서 곰곰이 생각해 봤다. 뭔가, 이번 괴인⋯⋯ 어디서 본 것 같지 않나? 아닌가. 왜 이렇게 위험한 것 같지.

       

       “에잇, 쫄지 마! 확실하지도 않은데 겁을 먹을 수는 없──”

       

       “⋯⋯⋯, ⋯⋯『⋯⋯⋯⋯』.”

       

       키이이이잉──!!

       

       괴인의 손끝에서 무지막지한 섬광이 빛나고, 섬뜩한 고주파음이 귀마개를 뚫고 들어왔다. 김루루는 꿈속 세상에서 배운 세련된 표현으로 현재 심경을 간단하게 정리했다.

       

       “좆됐다!”

       

       “⋯⋯, ⋯⋯⋯⋯?!”

       

       휘이익──!

       

       무시무시한 파괴광선에 직격당하기 직전, 오대수는 김루루를 덮치듯이 껴안고 몸을 날려서 공격을 피해냈다. 

       

       후방에 직격한 파괴광선은 하트 모양 대폭발을 일으켰고, 그 후폭풍으로 오대수와 김루루는 아스팔트 위를 데굴데굴 굴렀다. 귀마개 한 쪽도 자연스럽게 빠져서 굴러나갔다.

       

       귀에 울리는 이명이 가라앉을 즈음, 오대수는 김루루의 멱살을 잡고 외쳤다.

       

       “뭐 하는 거냐, 너는!!”

       

       “⋯⋯아, 미안하다고오.”

       

       “제발, 생각이 있으면 생각 좀 하고 행동해! 휘말렸으면 생채기로는 안 끝날 거라고. 제발 좀, 자기가 강철 골렘이라도 되는 양 굴지 마⋯⋯!!”

       

       “아니, 이거 먹힌다니까! 그리고, 그렇게 보기 싫으면, 애초에 나를 그냥 내버려 두며언⋯⋯?!”

       

       어라. 

       

       눈빛이 좀 달랐다. 또 사고 쳤다고 질책하는 시선이 아니었다. 조금, 따뜻하다고 해야 하나. 불탈 정도는 아니고.

       

       뭔가, 옛날에 받아본 적 있었던 눈빛인데. 김루루는 인상을 찌푸리며 자신의 뇌세포를 채찍질했다. 멍청한 머리야, 얼른 생각해 내 봐. 

       

       그러다 번뜩 떠올라서, 김루루는 물어봤다.

       

       “⋯⋯잠깐만, 혹시 지금 나 걱정해 주는 거야?”

       

       로데루스는 김루루의 멱살을 틀어쥔 채로 얼굴을 바짝 붙이고, 답답하고 열받아 죽겠다는 듯이 씩씩대며 소리쳤다.

       

       “그래, 걱정하고 있는 거다 멍청아!!”

       

       “⋯⋯⋯⋯!!”

       

       “내일 오혜인이랑 배드민턴 약속 잡아놓고 다쳐서 입원하면, 아주 재밌겠어. 안 그러냐?! 헛소리는 그만하고 움직여!!”

       

       뭐야, 주변에 관심 없는 척하더니 다 듣고 있었구나. 게다가 그걸 기억까지 해 주고 있네. 자기 일도 아닌데.

       

       기분 요상하네. 걱정이라니.

       

       지금까진 아무도 내 걱정 해준 사람 없었는데.

       

       김루루가 멍하니 있자, 오대수는 그녀의 이마를 손으로 짚어보며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너, 혹시 심하게 다친 거냐? 제기랄, 정신만 똑바로 차리고 있어. 괴인은 내가 시선을 끌 테니까, 너는 오혜인한테 연락해서 집으로 도망쳐.”

       

       “⋯⋯⋯⋯.”

       

       아니, 뭐. 여기는 꿈속일 뿐이고. 사실 나는 엄청 강하니까 말야, 오대수.

       

       그리고 다치지도 않았어. 네가 몸으로 막아줘서⋯⋯ 너, 네가 오히려 많이 다친 것 같은데. 그럴 필요 없는데.

       

       두근.

       

       두근두근.

       

       김루루의 심장이 거세게 뛰기 시작했다. 얼굴에 열이 홧홧하게 오르고, 기분이 들뜨며, 어쩔 줄 모르게 되었다. 왠지 오대수의 얼굴을 마주보기가 어려워졌다.

       

       처음 겪는 느낌.

       

       오대수는 김루루를 골목길에 숨겨 놓고, 괴인과 마저 싸우러 나갔다. 뭔가, 평소보다 세상이 조금 다르게 보였다. 한 꺼풀 벗겨진 것 같달까, 한 꺼풀 씌워진 것 같달까.

       

       자신을 위해서 괴인 소녀와 필사적으로 싸우며, 어떻게든 골목길과 먼 쪽으로 전장을 옮기려는 모습이. 오대수가 남기는 푸른 잔향이.

       

       그녀가 짓고 있는 진지한 표정이. 

       

       되게⋯⋯ 되게 요상했다. 진짜로.

       

       전투는 10분 정도 걸려서 끝났다. 그 파괴광선이 필살기였던 걸까? 괴인은 어딘가 다른 곳에 정신이 팔린 사람처럼 허둥대다가, 결국 먼저 물러났다.

       

       “두, 두고 보자, 마법, 마, 마벗, 소녀! 나는, 『무한허무의 존재⋯⋯ 유나리스』! 다, 다시, 다시 돌아올 거야! 나는, 무, 무한하고. 허무하니까⋯⋯!!”

       

       “꺼져!”

       

       “⋯⋯그, 예, 예쁜 사랑 하고! 난 몰라 진짜!”

       

       “꺼지라고-!!”

       

       오대수는 허공으로 사라지는 괴인에게 가운뎃손가락을 세워 날렸다. 그리고 자신을 향해서 다가오는 오대수의 모습이, 간질간질해서.

       

       김루루는 저도 모르게 두 손을 모으고 다소곳하게 고쳐 앉았다.

       

       심장이 자꾸만 빨리 뛴다. 심각할 정도다!

       

       “⋯⋯야, 김루루. 괜찮아?”

       

       김루루는 오대수를 올려다보면서 빠르게 생각을 정리했다. 이거, 알고 있다.

       

       처음이지만 모르는 건 아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뜨겁다는 이 증상, 드라마에서 봐서 알고 있었다. 자신은 바보가 아니었다!

       

       드라마의 남주인공도 호소하던 이 증상의 정체는 바로⋯⋯!!

       

       “⋯⋯대수야, 나 심부전증에 걸렸나 봐.”

       

       “무슨 헛소리냐?”

       

       “편식하지 말고 야채 잘 먹을 걸 그랬다⋯⋯!”

       

       그날, 김루루는 대학병원에 예약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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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강검진을 받은 뒤로 김루루의 행동 패턴이 좀 변했다. 

       

       원래는 누구에게나 “안녕태클!” 이러면서 몸을 던져가며 꽉 끌어안는 식으로 인사를 하던 터라, 오혜인은 받아줬어도 로데루스는 진저리를 치면서 밀어냈었는데.

       

       지금은, 로데루스를 발견하면 황소처럼 우다다 달려오다가.

       

       “안녕태클⋯⋯ 아, 아니. 안녕.”

       

       “⋯⋯⋯⋯.”

       

       앞에서 급정거를 때려버리고 우물쭈물대면서 어색하게 인사를 했다. 

       

       그 외에도 미묘하게 거리를 둔다거나, 손가락이라도 닿을라치면 물가에 떨어진 고양이마냥 파닥닥 물러난다거나. 전체적으로 스킨십이 줄었다고 해야 하나.

       

       전체적으로 덜 성가시게 굴었기 때문에 잘됐다고 여기면서도, 로데루스는 마음 한켠으로는 조금 섭섭함을 느꼈다. 잔소리가 그렇게 싫었나.

       

       오혜인과 뭉개는 그 꼴을 가만히 지켜보더니 뭔가를 깨닫고는, 저들끼리 수군댔다. 본래 계획상으로는 히로인 자리에 올라야 했던 건 오혜인이었기 때문이다.

       

       “이게 이렇게 풀리나⋯⋯?”

       

       “오혜인, 무슨 소리야?”

       

       “아니, 뭐⋯⋯ 십자말풀이 하는데 예상치 못하게 단어가 이어져서. 그치 뭉개야?”

       

       “그렇다몽. 예상외라고 해야 하나, 그런 느낌이다몽!”

       

       실없는 소리를 하긴. 로데루스는 혀를 쯧 차면서 넥타이를 고쳐 매고, 주름진 교복 치마를 능숙하게 정리했다. 세면대 거울에 오대수의 모습이 비쳤다.

       

       낯선 여자아이의 모습도 이제는 눈썹을 살짝 찌푸리는 선에서 받아넘길 수 있었다. 역시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었다.

       

       시간이 꽤 흘렀다. 꿈과 현실을 두 번 정도 오갔으니까.

       

       현대 문물에 대해서도 적응이 꽤 되었다. 이제는 컴퓨터나 스마트폰도 능숙하게 조작할 줄 알고, 왜 오혜인이 마라탕에 죽고 못 사는지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취미도 생겼다. 학교 끝나고 나오는 길에 김루루랑 PC방에 들려서 랭겜 한 판 조지는 것이다. 부모님의 명예를 건 전장에서 소신을 지키며 결투를 거듭한 끝에, 그는 금장을 달았다.

       

       오혜인(플래티넘)은 “혼자서 다 이겨 먹을 생각 하지 마. 이거 팀 게임이라니까?” 라고 조언했지만, 입에 걸레를 문 천것들이 알면 얼마나 알겠는가.

       

       역사 시간에 배웠는데, 이 나라는 귀족 작위를 사고파는 격동의 시기를 지나가면서 혈통이 많이 흐려졌다고 들었다. 그러면, 인터넷에서 마주치는 놈들은 거의 대부분이 잠재적 쌍놈들이라는 말인데.

       

       그렇다면 귀족의 판단이 옳다.

       

       베인 원챔충 (귀족이라서 골랐다) 오대수 양의 확고부동한 마인드 셋이었다.

       

       그리고 그는⋯⋯ 계획을 세우게 됐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큰 변화였다.

       

       달력에 동그라미를 그리며 다음을 기약했다. 수학여행이라든가, 오혜인의 생일 파티 준비라든가, 이번 시즌 끝나기 전까지 플래티넘을 달고야 말겠다든가⋯⋯.

       

       또, 골목길 맛집들을 하나씩 다 먹어본다든가. 그 빌어먹을 『유리 프로스트러버』를 언젠가 한 번은 이겨보겠다든가. 촉수의 원한은 되갚아 줘야 할 것 아니냐. 아니면.

       

       “엥, 스쿠버 다이빙?”

       

       “⋯⋯멋대로 내 스마트폰 훔쳐보지 마!”

       

       “뭘 어때서! 혹시 폰에 야한 사진이라도 숨겨놨, 악! 아우, 볼따구 잡아당기지 마⋯⋯!”

       

       버킷 리스트가 생겼다거나.

       

       온갖 산호초들로 꾸며진 바다와, 그곳을 헤엄치며 탐험하고 있는 사람들의 사진. 인터넷을 떠돌던 고작 그 한 장의 사진이⋯⋯ 로데루스에게 작은 꿈을 심었다.

       

       바다에 가 보고 싶었다.

       

       그래서 편의점 아르바이트 자리까지 알아봤다. 야간 알바로 돈을 모아서, 스쿠버 다이빙 장비를 구입할 생각이었다. 아직은 꿈에 불과했지만⋯⋯.

       

       시간만 있다면 언제고 이룰 일 아니겠는가.

       

       학교 점심시간 종이 울리고, 마법소녀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옥상으로 올라갔다. 함께 옥상에서 간식을 먹는 건 이제 일상이 되었다.

       

       로데루스는 일행과 나란히 앉아 크레페를 한 입 베어 물었다. 혀가 저릴 정도의 당분이 들어오며 자연스럽게 기분이 들떴다. 그는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근데 대수야.”

       

       “왜, 혜인아?”

       

       “그⋯⋯ 이런 말 하기 좀 조심스럽긴 한데. 너 되게 여성스러워지지 않았⋯⋯나?”

       

       “⋯⋯⋯⋯.”

       

       툭.

       

       로데루스의 손에서 힘이 탁 풀리며, 크레페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는 떨리는 눈으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자신은 속옷이 보이지 않도록 다리를 다소곳이 모으고, 옆으로 기울인 상태였다. 무척이나 여성스럽게.

       

       언제⋯⋯ 언제부터였지?

       

       자꾸 티셔츠에 예민한 가슴이 쓸리는 게 아파서, 결국 오혜인이랑 손잡고 브래지어를 사러 갔을 때부터 그랬나?

       

       아니면 김루루가 ‘너 그렇게 앉으면 팬티 다 보여! 남자애들도 보잖아!’ 하고, 불편한 진실을 들이민 순간부터 그랬나?

       

       혹은 마라탕이 맛있게 느껴졌을 때부터⋯⋯?

       

       오대수는 안색이 창백해진 상태로 옥상 문을 박차고 뛰쳐나갔다. 그대로 학교를 째고 정문을 통과해, 오혜인의 집으로 달려가 현관문을 쾅 열고 들어갔다.

       

       “뭉개 나와-!!”

       

       남성성의 위기였다.

       

       ===============================================================

       

       오대수는 거의 비명을 지르다시피 했다.

       

       “수리는 대체 언제 끝나는 거야?! 아니, 거냐?!”

       

       “일단 진정해라몽. 심호흡하고, 물 한 잔 마시고.”

       

       “물이 중요한 게 아니다. 지금, 지금 내가 어떤 꼴이 됐는지⋯⋯”

       

       “5일 남았다몽.”

       

       어.

       

       오대수의 몸이 덜컥 굳었다.

       

       “뭐, 뭐라고⋯⋯?”

       

       “5일 남았다고 했다몽. 그래서 그냥 별일 아닌 것 같아서 가만히 있었던 거다몽. 이대로 1년쯤 지나면 모를까, 고작 5일만 있으면⋯⋯ 너는 남자의 몸으로 돌아온다몽.”

       

       “5일, 5일인가⋯⋯.”

       

       다행, 다행이다.

       

       오대수는 진심으로 안도했다. 이러다가 몸도 마음도 완전히 여자로 물들어버렸다가는⋯⋯ 좀, 좀 그렇지 않은가. 그러나 확실한 일정이 나왔다.

       

       고작 5일만 지나면 그는 남자의 몸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

       

       그렇, 다면. 다행인 일인데. 

       

       어째서 마음은 이토록 무거운 걸까. 어째서, 마음 한켠에서 진한 실망감이 번져나가고 있는 걸까. 남자로 돌아가는 건 그토록 바라 마지않던 일이었는데.

       

       오대수가 혼란에 빠져 있을 때, 뭉개가 쐐기를 박았다.

       

       “그렇다몽. 그러면 마법소녀 일을 할 필요도 없으니, 자유의 몸이 되는 거다몽!”

       

       “⋯⋯⋯⋯자유.”

       

       그제야 로데루스는 실망감의 이유를 알았다.

       

       그래.

       

       그는 오대수에서 로데루스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더 이상 마법소녀도 아닐 테고. 그건, 괜찮다. 로데루스는 싸움에서 희열을 느끼는 전투광이 아니었으니까.

       

       사실 싸우는 것보다는⋯⋯ 맛 좋은 간식을 먹거나, 김루루와 PC방을 가거나, 오혜인과 잡담을 나누는 게. 그게 더 좋았다.

       

       그러나, 이젠 끝이다.

       

       오혜인은 변신장치를 되찾을 거다. 그러면, 로데루스가 오혜인의 집에서 더부살이할 이유도 사라진다. 학교를 더 이상 다닐 수도 없을 거다. 

       

       김루루는⋯⋯ 애초에 로데루스가 남자라는 사실을 모른다. 그 사실이 밝혀지면, 속였다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무척이나 싫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데루스가 지금까지 가졌다고 생각했던 건, 모두 오대수의 것이었다. 그리고 결국엔, 오대수는 로데루스가 아니었다.

       

       로데루스는 중얼거렸다.

       

       “⋯⋯자유, 그래. 자유 좋지.”

       

       “기뻐하는 것 같아서 안심이다몽!”

       

       로데루스는 창백한 얼굴을 손으로 쓸어 넘기며, 비틀대면서 자신의 방 문틀에 기대었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지 않고 뭉개에게 말했다.

       

       “⋯⋯그, 오늘은 몸이 좀, 안 좋군. 방에 들어가 있을 테니까 찾지 마.”

       

       “알겠다몽.”

       

       “⋯⋯⋯⋯.”

       

       쿵.

       

       방문이 닫혔다.

       

       ===============================================================

       

       이불을 뒤집어쓰고 웅크리고 있던 로데루스는, 불길한 느낌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창가로 다가갔다.

       

       쿠오오오오오.

       

       날씨가 심상치 않았다. 먹구름이 몰려들고, 기류가 말려들어 가는 나선을 그리며 굽이쳤다. 분명 태양이 얼굴을 비출 시간이건만, 세상은 무채색으로 어둡다.

       

       비가 올 것 같다.

       

       김루루와 오혜인은 아직 하교 전일 텐데, 우산을 가지고 마중을 나갈까.

       

       하지만, 지금 그녀들의 얼굴을 보는 건⋯⋯.

       

       “로데루스-!!”

       

       “⋯⋯뭉개?”

       

       데굴데굴데굴.

       

       마스코트 뭉개는 몸을 굴리다시피 허둥지둥 방 안으로 들어왔다. 분명 들어오지 말라고 했는데. 

       

       한마디 주의를 주려고 했지만, 그렇다기에는 뭉개의 표정이 너무나도 급박해 보였다. 마스코트는 창밖의 소용돌이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선전포고가 왔다몽. 악의 조직으로부터!”

       

       “⋯⋯그게 무슨 소리야.”

       

       “앞으로, 6일 후⋯⋯ 모든 것의 결판을 낼 총공세를 진행하겠다면서. 막아볼 테면 막아보라고, 메시지가 도착해버렸다몽⋯⋯!!”

       

       “갑자기, 그게 무슨⋯⋯!!”

       

       그때, 로데루스와 뭉개는 동시에 무언가를 알아챘다. 서로의 생각이 맞물리며 대화가 끊기고, 싸늘한 침묵이 갑작스레 내려앉았다.

       

       예고된 총공세는 6일 후.

       

       그러나 로데루스의 변신장치가 수리되는 것은 5일 후. 

       

       하루의 차이.

       

       총공세가 일어나는 날, 로데루스는 마법소녀가 아니었다.

       

       침묵 끝에, 뭉개는 어색하게 말을 끝맺었다.

       

       “⋯⋯못 들은 걸로 해라몽.”

       

       “⋯⋯⋯⋯.”

       

       뭉개는 종종걸음으로 나가, 요령도 좋게 꼬리로 방문을 닫았다. 

       

       툭, 투둑. 얕은 빗줄기가 창문을 때리기 시작했다.

       

       폭풍우가 오고 있었다. 현실에서도, 꿈에서도, 그의 마음속에도.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넉넉-하게 담았습니다 마이 프렌즈. 한 주의 시작이로군요.
    그러면 내일 또 봐요. 씨 유 레이터!

    +p.s. 혼란을 드려 죄송합니다 마이 프렌즈. 이름을 루루라고 지으면 행동은 좀 머스마같아도 여자라고 생각해주실 줄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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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herworld TRPG Game Master

Otherworld TRPG Game Master

Another World TRPG Game Master, 이세계 TRPG 게임마스터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wizard of the Illusion Magic School and decided to create a virtual reality with illusion magic to play a tabletop role-playing game (TRPG). It was great to create a virtual reality, but I was in trouble because there were no suitable players. During that time, I received an offer to be the professor from the Royal Academy. The offer was to use illusion magic to fill the students’ lack of practical experience safely. And so, I became a professor at the academy. “Send me back, send me back to that world right now-!” “Outer god, someday an outer god will be our doom, we’ll all die!!” “I am not the bastard of the Redburn Ducal Family. I am the foremost disciple of the Great Namgung Clan, Namgung Qinghui!” But it seems there is a bit of a misunderstanding. This isn’t a spell for dimensional travel, kids. It’s f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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