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19

    끔찍한 장면을 본 탓일까, 예르나는 루크와 단 한시도 떨어져있지 않고자 했고, 덕분에 루크는 또 몰래 손목을 긋는다거나 하는 일은 생각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 탓에, 오랜만에 숲에 왔음에도 루크는 도저히 만족할 수가 없는 중이었다.

    마력을 흡수하는 것이야, 숨쉬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지만, 이렇게 생각할 거리가 있는 경우는 거의 없었으니까.

     

    ‘이상해, 정말 이상하다는 말이지.’

     

    루크는 소파에 앉아 한손으로는 턱을 괴고, 다른 손으로는 실타래를 살살 굴리고 있었다.

    이 몸이 되면서 생긴 ‘본능’탓일까? 가끔 생각이 복잡할 때, 이렇게 실타래를 굴려주면 뭔가 차근차근 생각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루크가 곰곰히 생각하는 것은 이번에도 역시나 마법에 관한 것이었다.

     

    ‘어째서 실패했지?’

     

    ‘실패했다니, 대체 무엇을?’ 이라고 묻는다면 뻔하다.

     

    바로 강령술을 응용해 약식으로 자신의 영혼을 확인하기 위한 마법의 실패다.

     

    화장실의 욕조 위에 이미 흘린 피가 아깝기도 하고, 생각한 사고실험의 결과를 보고싶기도 했다.

    그래서 루크는 욕조에 이미 충분한 혈액들을 이용해 몰래 마법을 사용해봤다.

    만약 성공한다면, 예르나에게 괜찮은 변명거리가 생길 수도 있지 않겠는가?

     

    헌데, 그 마법으로 혈액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문제는 단지 ‘반응없음’ 뿐이 아니었다.

    심장을 타고오는 찌릿한 감각이, 그 마법은 ‘실패’했다고 알려온 것이다.

     

    “윽……!”

     

    무심코 흘린 신음소리.

    그만큼 이 마법실패로 인한 마력역류는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너무 오랜만에 겪어보는 고통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마법이 고위 흑마법에 속하기 때문일까?

    마치 존재의 근간을 흔드는 수준의 고통이 심장을 넘어서 온 몸에 전해진다.

     

    루크의 고통스런 신음과 표정을 본 예르나가 루크를 붙잡고 어쩔 줄 몰라했다.

    “여, 역시 피를 너무 많이 흘린거지……? 어, 어떡해, 구, 구급차 부를까?”

    “그럴 필요……. 없대도…….”

     

    그 탓에 예르나가 더욱 자신을 슬프고 안쓰럽게 보기 시작했을 때는 덩달아 울고 싶을 지경이었다.

     

    만약 옛날의 몸이었다면 바로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마력역류, 처참한 ‘대실패’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너의 생각은 완전히 틀렸다.’라고 세계가 선언한 것이나 마찬가지.

    여태껏 이정도로 세계에게 거부당한적은 단 한번도 없던 그였기에, 이번 실패는 더욱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실이었다.

     

    ‘죽지는 않았으니 됐지만.’

     

    이것은 아마도 이 몸이 불사의 몸이기 때문이겠지.

    지금은 일단 그 정도의 실패 이후로도 두번째 기회가 주어졌다는 사실에 감사해야하나?

     

    아무튼, 어디부터 틀린 것인지 루크는 가설을 다시 세워야 했다.

     

    ‘아무리 검산해봐도 마법논리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 만약 이게 문제였다면 가장 먼저 알아챘을 것이다.’

     

    마법논리는 정말 평생에 걸쳐 다루고 연구한 것이다.

     

    그 옛날도, 어쩌면 지금도, 마력논리의 작성과 응용부분에서는 루크를 따라올 수 있는 사람이 몇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마법 외적인 부분이 문제로군, 음.’

     

    마법을 제외하면 남는 것은 ‘대상의 특수성’과 ‘재료의 특수성’.

     

    ‘대상’은 자신의 영혼을 이르는 말이었고, ‘재료’는 자신의 혈액에 대한 말이었다.

     

    만약에 실패의 원인이 마법의 ‘대상’, 즉.

    불러들일 영혼의 ‘격’이 다르기 때문이라면……. 딱히 방법이 없다.

    현재 루크가 알고 있는 마법의 법칙으론 강령술로 정보를 불러올 대상이 격상의 영혼인 탓에 마법이 거절당한 경우는 대응 방법자체가 없었다.

     

    하지만 이 경우는 별로 상관 없다.

    그 원인으로 실패한 거라면, 그야말로 루크의 가설대로 증명되는 셈이니까.

    말 그대로 영혼의 ‘격’이 다른 탓.

     

    ‘흠, 만약 그렇다면 지금의 서클론 부족한 권한이 되겠군.’

     

    고작 3서클로 격상의 영혼에 간섭할 수 있는 권한은 없었다.

    자신의 영혼인데 할 수 없는것은 이상하지 않느냐 묻는다면, 이 경우엔 그렇다.

    서클마법에선 아무리 많은 마나를 퍼붓더라도, 그 마법을 사용할 권한이 부족한 것은 어쩔 수 없으니까.

    의지와 추상에 대해 간섭할 권한은 무려 5서클에 해당한다.

     

    지금 루크가 짜올린 마법논리는 서클을 배제하고 클래스의 원리를 응용한 일종의 꼼수였다.

    하지만 클래스마법의 특성상 모든 변수를 예상하고 계산해야하므로, 모르는 부분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애초에 보통의 영혼에는 상하관계가 없다.

    영혼이란 일종의 ‘일련번호’같은 것이니까.

    이론상 용과 인간의 영혼은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드래곤의 영혼이 더 오랫동안 육신에 길들여졌으니 그쪽이 조금 더 선명하게 삶을 기억할 수는 있겠지만, 본질적으로 영혼을 이루는 것이 다른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하지만, 정말로 생물종을 초월한 육신에 담긴 영혼인 탓에 ‘격’이 다른 것이라면…….

     

    그렇기에 영혼의 규격이 논리에 맞지 않는 것이라면 마땅한 방법이 없는 것이다.

     

    뭐, 그러니 일단은 이 문제에 대해선 보류다.

     

     

    지금은 마법의 실패원인 분석이 먼저니까, 일단은 영혼에는 문제가 없다고 가정을 해보자는 것이다.

     

    만약에 재료가 문제라면 순수한 인간의 피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순수한 드래곤의 피도 아니고, 순수한 인간의 피도 아니며, 순수한 마수의 피도 아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그 혼합물은 ‘순수’하다.

    그런 마법재료는 그동안 세상에 없었다.

    그러니 루크가 한번도 다뤄본 적이 없었던 것도 당연한 사실.

    애초에 혈액을 제물로 삼는 마법은 그의 전문분야가 아니기도 했던 데다, 스스로의 혈액의 특성을 100% 파악한 상태도 아니니까.

    현재로선 가장 가능성이 높은 원인이다.

     

    그러나 그걸 확인하자고 다시 팔목을 그을 수는 없다.

    예르나한테 자신을 더 이상 해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기도 했고,

    예르나가 순찰로 나가더라도 키르케와 소르비, 다프네가 돌아가면서 자신을 ‘돌보는’(어쩌면, 감시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지만)중이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살짝 시선을 향하면 저쪽에서 키르케가 작은 아령을 빠르게 들어올렸다 내렸다 하는 가벼운 운동을 하는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루크와 눈이 마주친 키르케는 그야말로 상큼하게 웃으며 루크에게 묻는다.

     

    “왜? 뭐 필요한 거 있어? 혹시 심심해? 놀아줄까? 산책? 아니면 나가서 배드민턴 칠까?”

     

    이미 예르나에게 귀띔을 받은 것인지, 반응이 조금 과도하다.

    루크는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괜찮다네. 하던 일 마저 하게.”

     

    “응, 뭐 필요한 거 있으면 부담갖지 말고 말해. 우리한테 넌 굉장히 소중한 아이니까.”

     

    키르케의 환한 미소에 루크는 굉장히 어색해서 시선을 피했다.

     

    “고맙군…….”

     

    루크는 다시 생각을 시작했다.

     

    그렇다면 당장 실험해 볼 수 있는 정보는 혈액과 영혼을 바꿔보는 것이다.

    마법이 확실히 작동한다면, 다른 사람의 혈액으로, 다른 영혼에는 통해야 할 테니까.

     

    그러고보니 그동안 루크는 작은 규모의 실험으로 논리를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사고실험이 이미 너무나 완벽한 나머지 가실험을 자주 생략하는 것은 루크의 나쁜 버릇들 중 하나였다.

     

    그렇다면 그 가실험을 할 샘플은 또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아.’

     

    그러고보니 자신과 가장 비슷한 샘플은 찾을 수 있지 않은가.

     

    자신과 같은 ‘드래곤하트’의 보유자.

     

    ‘생각해보니 꽤 가까운 곳에 있었군?’

     

    ——

     

    루크가 자해를 한지 2일.

     

    척 보기에 다시 손목을 그을 생각은 없어 보였지만, 아직은 안심하기 어려웠다.

    그동안은 뭐, 루크가 스스로 손목을 그을 거라고 생각이나 했던가?

    예르나는 코트와 장비를 벗어서 옷걸이에 걸면서 묻는다.

     

    “오늘은 별 일 없었어? 키르케언니가 불편하게 하지는 않았지?”

     

    “물론이네, 내 그녀가 불편할 일이 뭐 있겠는가.”

     

    “그래?”

     

    예르나는 대답하는 루크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어주었다.

    루크는 예전이라면 아주 조금 정도는 거부하는 기색을 띄었는데 그날 이후론 그런 것도 없이 아주 얌전한 상태다.

    손길이 마음에 든 걸까? 얼굴도 살짝 붉어진 것이 기분이 좋은 것이 분명하다.

     

    예르나는 속으로 안도하며 생각했다.

     

    ‘기분이 한결 나아보여서 다행이네.’

     

    역시 루크는 자신의 손길이 그리웠던 것이 틀림없다.

    앞으로는 루크랑 절대 오랫동안 떨어질 생각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한 찰나, 루크가 문득 입을 열었다.

     

    “저기, 예르나.”

     

    “응, 왜?”

     

    “부탁하고 싶은 게 있다.”

     

    “뭔데? 말만 해.”

     

    “그, 혹시 저번에 내가 심장을 고쳐준 남자 말이지. 혹시 연락처가 있나? 내 휴대폰으론 도무지 연락이 되질 않아.”

     

    “서드 말이야?”

     

    “서드, 그래. 그 자.”

     

    서드가 보고 싶다니.

    그 이유는 역시, 같은 처지였던 사람이어서 그런걸까.

     

    예르나는 그동안 루크가 그 남자에게 행했던 헌신을 떠올렸다.

    어떻게든 자신에게서 그 남자를 변호하고, 또 아무런 대가없이 그를 치료하기도 하고, 자신 몰래 연락까지 취하고, 심지어 단 둘이 만날 약속까지 하지 않았던가.

     

    ‘어쩌면, 그 남자가 루크의 소중한 사람일지도…….’

     

    만약 그런 것이 라면 그녀가 말릴 수 있을 리가 없다.

    예르나는 조금 굳은 목소리로 묻는다.

     

    “혹시, 그 사람이 보고싶은 거야?”

     

    “그래. 그 남자를 다시 보고싶다.”

     

    루크의 간절한 목소리에 예르나는 흠칫 몸을 떨었다.

    그정도로 보고 싶은거니? 정말로? 그 험상궂은 남자를?

     

    물론, 그의 얼굴이 그의 잘못은 아니지만…….

     

    ‘……루, 대체 그 남자가 뭘 어쨌길래 그러니.’

     

    ——

     

    서드는 도시에서 벗어나 어느 한적한 숲속 마을에 은거했다.

    더 이상 위험한 일을 하면서 약값을 벌어야 할 필요도 없었으며, 당장에 마력의 공급이 원활한 것이 중요한 상태가 되었고, 추가로 귀족의 추격을 피하기 위함도 있었다.

    실제로, 그렇게 한 뒤로는 그 누구도 그를 찾아오지 못했’었’다.

     

    오늘 아침까지는 그랬으니까 말이다.

     

    “……대체 여긴 어떻게 알고 온 거지?”

     

    “그야 추적 마법이죠, 예전에 몰래 걸어 뒀어요. 당신이 귀족에게 해코지라도 당하면 안되니까.”

     

    몰래 추적마법을 걸어 뒀다는 사실을 너무나 당당하게 말한다.

    그거, 불법 아닌가?

     

    ‘뭐, 내가 불법을 운운할 자격이야 없겠지만.’

     

    “그나저나, 무슨 일로 또 나를 찾은 거지? 프로이튼 가문에 대한 것은 기억나는 대로 다 말해줬는데.”

    “그건 잠깐 쉬기로 했어요. 제가 당신을 찾아온 것은 그게 아니라, 당신을 보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어서 그래요.”

    “날 보고 싶어하는 사람이라고?”

     

    그는 살짝 경계심을 끌어올렸다.

     

    ‘역시, 내 과거를 들켰나. 그래서 뒤늦게 잡아가려고?’

     

    이래서 숲지기랑은 엮이기 싫었는데.

    사실은 그가 순순히 프로이튼에 대한 정보를 불어낸 데에는 프로이튼을 쫓다가 뒈져버리라는 심정도 섞여 있었다.

     

    그러나 예르나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루크가 당신을 보고 싶어해요.”

     

    “그 꼬마가?”

     

    ‘역시, 세상에 이유 없는 호의는 없겠지. 내게 은혜를 입혀서 대체 뭘 시킬 셈인 거냐.’

     

    그의 머릿속은 온통 의아함으로 물들었다.

     

    숲지기를 메신저로 사용하다니, 녀석은 대체 정체가 뭐지?

     

    정말 ‘시설’의 작품인가?

    아니, 그럴리가.

     

    ‘시설’은 그럴 능력이 없어.

     

     

    왜냐하면, 그곳의 가장 성공한 실험체가 바로…….

     

    “…….”

     

    역시 뭔가 숨겨진 것이 있는 것인가.

     

    그야 당연하겠지, 그런 힘을 가졌는데.

    뭔가 거대한 야망을 가지는 것도 당연하다.

     

    뭐, 거대 귀족들의 암살이라도 노리나?

    아니면, 뒷세계의 정복?

     

    그래, 그녀에겐 충분히 그럴 능력이 있었다.

    찰나의 순간 느낀 감각은 그랬다, 그녀가 정말로 날뛰기 시작한다면,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그 겉모습에 절대로 속아서는 안 될 거라고.

    그리고 만약 자신에게 제안해온다면, 기꺼이 따를지도 모르겠다고.

     

    그렇게 생각했었다.

     

    ‘……언젠가 대화를 나눠보고 싶기는 했지만, 이런 식으로 부를 줄은 몰랐군.’

     

    그는 심장을 움켜쥐며 표정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에겐 이제 그녀의 야망에 응답할 방법 따윈 없었다.

     

    뒷세계와의 연줄은 대부분 끊겼으며, 그 만이 알고 있던 정보도 지금은 거의 잊었다.

    구조부터 달라진 서클 탓에 기존의 번개를 만드는 능력조차도 잃어버렸다.

    서클을 다룰 수 없는 ‘서클러’라니, 웃기지도 않는 농담이다.

     

    조금 감이 좋을 뿐인 그냥 일반인, 그게 바로 지금의 그다.

     

    “난 이제 아무런 능력도 없어, 그냥 일반인이라고.”

     

    그가 그렇게 머뭇거리고 있으니, 예르나가 재촉하듯 말한다.

     

    “그런 건 전혀 상관없어요. 이제 그만 가죠, 그 아이를 오래 기다리게 하기 싫으니까.”

     

    “……그런가.”

     

    이런 나도, 네 계획에는 필요하다고 하는 건가.

     

    ——–

     

    “그럼, 손목을 좀 여기에 대어주겠나?”

     

    “……선처를 바라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계획에 필요하긴 하죠!
    다음화 보기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