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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9

       사랑은 뭘까?

         

       나도 황금 사랑하지만 마족 가죽으로 만들어진 책 컬렉션을 구매해 시세 차익을 노리는 심보는 무슨 마음인지 모르겠어.

         

       마족이라고 구분하긴 해도 귀가 뾰족하냐 아니냐의 차이밖에 없으니 그냥 사람이잖아.

         

       으에.

         

       완전 으에에 한 컬렉션.

         

       그런데 그렇다고 엄청 나쁜 동기가 있는 거 같진 않고. 이미 만들어진 서적의 역사적 가치를 높게 판단해 문화재를 선점해 놓는듯한 행동이니.

         

       물품이 이상할 뿐 역사에 관심 많은 투자자의 전형적인 투자 활동이지……?

         

       뿌우…….

         

       이쯤 되면 사랑이 나쁜 거 아닐까?

         

       악마님께 걱정 끼치기 싫어서 일부러 안 물어봤지만 악마님께 한번 사랑이 뭔지 물어봐야 하는 건 아닐까?

         

       실연당한 짝사랑남의 사랑이란 무엇인가 강연.

         

       들어봐야 할지도.

         

       “후작?”

         

       시가를 물고 비밀 계약서를 읽어보던 매케나스 백작이 의아해했다.

         

       “아, 죄송해요.”

         

       비즈니스, 비즈니스.

         

       “저도 슬슬 예술 작품을 후원해야 하나 고심이 들어서요.”

         

       파스텔은 괜히 인피 서적으로 주제가 돌아가기 전에 잽싸게 한쪽을 가리켰다. 황금 컬렉션 사이에 금 액자로 장식된 황금색 꽃 그림이 있었다.

         

       “그림 후원요.”

         

       매케나스 백작이 시가를 입에서 뗐다.

         

       “하긴 후작도 현금 관리가 곤란해질 때가 되긴 했겠군. 1년도 안 돼서인가. 정말 사업 성과가 좋으시오.”

         

       시가가 그림을 가리켰다.

         

       “이쪽 판이 인맥으로 돌아가는 곳이다 보니 고민이 많겠소이다.”

         

       개인의 역량과 별개로 몰락한 가문의 상황을 이해한다는 어투였다.

         

       “후작이 원한다면 아트 갤러리의 초대장을 줄 수는 있소. 초대가 많이 오긴 하지만 본인은 예술을 즐기는 편이 아닌지라.”

       “호의에 감사드려요.”

         

       과하게 쌓여서 처치가 곤란한 현금을 어떻게 예술 작품으로 환원해 탈세하느냐 같은 뉘앙스의 시시콜콜한 잡담은 금방 끝났다.

         

       매케나스 백작이 다시 시가를 입에 물었다. 날카로운 눈빛으로 비밀 계약서를 훑었다.

         

       이 계약서는 제국은행의 뒤통수를 치고 경매를 담합하자는 내용이었다. 매물로 나온 상단은 크래프트 상단이 싼값에 인수하고 대신 마계주식회사는 비밀 수수료를 챙긴다는 구상이다.

         

       이미 제국은행과 담합해 매물을 지정된 경매가에 넘겨받기로 한 매케나스 백작이 제국은행을 뒤통수치는 게 포인트다.

         

       계약서가 테이블에 놓였다.

         

       “난감하군.”

         

       매케나스 백작이 소파에 기댔다. 시가 연기가 입에서 흘러나왔다.

         

       “상인의 도리는 신의 아니겠소?”

         

       난생처음 듣는 도리.

         

       완전 도리도리.

         

       파스텔은 경매 담합하자고 별장에까지 초대해 놓고 튕기는 백작을 어떻게 설득할지 고민했다.

         

       수수료 금액은 높게 측정해 줬으니 역시 크래프트 상단이 철도 상단을 인수한다는 부분이 걸리는 건가?

         

       담합하자고 초대한 것도 경매에 불청객으로 등장한 크래프트 후작을 지렛대 삼아 제국은행과 약속한 가격보다 싼값에 매물을 입찰하려던 속셈 같고.

         

       아예 제국은행과의 약속을 저버리려던 의도는 아니었던 거 같다.

         

       이 마음을 돌려놓는 게 이 자리의 목표다.

         

       제국은행과 크래프트 가문 사이에서 크래프트를 선택하게 설득해야겠지.

         

       멜리사가 설명회 연회에서 수집했던 정보로는 제국은행의 뒤에 황실의 의사가 반영됐을지도 모른다 했지만…….

         

       설마 신용 원칙에 따라 정부와 분리되어야 하는 은행이 황실의 손발처럼 행동하고 있겠어?

         

       매케나스 백작과 마계주식회사가 제국은행과 크래프트 가문 사이에서 어느 쪽에 붙을지 고심하는 게 아니라 황실과 크래프트 가문 사이에서 고심하는 답 없는 상황이거나 할 리는 없다.

         

       응응!

         

       왜냐하면 인생 너무 쉬워 파스텔이니까!

         

       애초에 객관적으로, 은행이 정부 손짓에 휘둘리면 신용 붕괴로 망한다구.

         

       파스텔은 소파에서 일어났다. 황금 컬렉션을 찬찬히 둘러봤다. 매케나스 백작이 소파에 기대 시가를 피우며 응시했다.

         

       소녀의 손길이 황금새 조각상을 만질 듯 움직였다.

         

       “사랑스러워요.”

         

       예술품이니 만지진 않고 황금색 부리를 몽롱하게 바라봤다. 금방이라도 지저귈 거 같은 현실감 있는 조각인데 통짜 황금이다.

         

       백작이 시가를 까딱였다.

         

       “사랑스럽지. 거장의 유작이라오. 시기적절하게 사망해 준 덕분에 벌써 낙찰가의 스무 배가량 가치가 올랐소. 수명을 가늠한다고 고생한 보람이 있더군.”

         

       분홍톤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랑은 그 무엇보다 위대하죠.”

         

       시가의 재가 재떨이에 떨어졌다.

         

       “그렇소이까?”

         

       매케나스 백작이 소파에서 일어나 한쪽으로 향했다. 금화가 가득 담긴 보물상자를 들더니 소녀 근처의 탁자로 가져왔다.

         

       “후작도 이 마음을 안다니 대화가 쉽겠군.”

         

       백작이 보물상자를 쏟자 탁자에 금화가 쏟아졌다. 금화끼리 부딪히며 소리가 났다.

         

       “제국은행에서 온 전갈이라오. 이번 경매에서 조용히 손을 뗀다면 섭섭지 않게 해준다더군.”

         

       분홍 눈동자가 금화 더미를 내려봤다.

         

       “이건 본인의 사견이지만, 그 크래프트 가문이니 마족과의 친분을 탓하는 분위기는 아니더군. 마족을 상대로 어떤 모략을 준비 중인지 공유한다면 크래프트 가문에도 좋은 기회가 될 거요.”

       “제가 모략이라도 준비한다고 생각하세요?”

         

       매케나스 백작이 별말 없이 웃었다.

         

       “백작.”

         

       소녀는 고개를 저었다. 황금 컬렉션을 찬찬히 돌아봤다.

         

       “이 모든 것을 사랑하다면, 그 사랑만큼 마음을 크게 먹으세요.”

         

       백작의 눈동자가 이채를 띄었다.

         

       “얼마만큼 말이오?”

       “백작은 꿈이 뭔가요?”

         

       만인지상의 거부?

         

       무한금고의 자산가?

         

       소녀는 스스로를 짚었다.

         

       “저는 무소불위의 권력자가 꿈이에요.”

         

       손을 천장의 샹들리에로 뻗었다.

         

       “누구도 비난할 수 없고, 누구도 비판할 수 없고, 누구도 쳐다볼 수 없는 권력의 소유자.”

         

       손을 내렸다.

         

       “유치한가요?”

         

       소녀는 살포시 웃다가 탁자를 팔로 쓸었다. 금화 더미가 밀리며 소리가 울렸다. 무수한 금빛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하얀 대리석에 황금색 물결이 일었다. 사나운 울림이 번졌다.

         

       분홍 눈동자가 눈웃음쳤다.

         

       “꿈을 크게 가지세요.”

         

       매케나스 백작은 눈앞의 상대를 멍하니 바라봤다.

         

       무소불위의 권력이란 무엇인가.

         

       머릿속에 번개 쳤다.

         

       천천히 눈길을 돌려 황금 컬렉션 중 하나인 세계지도를 응시했다. 제국과 하늘섬과 마계가 그려진 형상을.

         

       무수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군사요충지인 하늘섬을 손에 넣은 자가 대규모 사병집단과 군수품 유통망을 갖춘 회사의 경영 책임자에게 권력을 얘기하는 게 무슨 의미인지.

         

       매케나스 백작은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할 수 있겠소?”

         

       소녀가 여유롭게 대답했다.

         

       “저는 실패하는 모략을 꾸미지 않아요.”

         

       백작의 얼굴에 천천히 웃음이 번졌다. 육중한 몸이 떨리고 탐욕스러운 웃음소리가 울렸다.

         

       “크래프트 후작! 그렇군! 그렇지! 상대가 누구든 그 크래프트가 원한을 잊을 리 없지!”

         

       손바닥이 탁자를 쳤다.

         

       “그 꿈에 얼마만큼의 자금이 필요하신가?”

         

       소녀가 활짝 웃었다.

         

       “세계 전체만큼요.”

         

       매케나스 백작이 웃었다.

         

       “뻔뻔하시군.”

         

       시가가 입에 물렸다.

         

       짧은 정적이 흘렀다.

         

       생각을 마친 백작의 입에서 시가 연기가 짙게 나왔다.

         

       “투자하겠소, 세계 전체만큼.”

         

       우왕.

         

         

         

       #

         

         

         

       구두계약은 사실 의미가 없다.

         

       세계 전체니 말해도 계약서를 안 꺼냈으면 그냥 상황 보며 투자하겠다는 얘기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파스텔은 아카데미로 돌아가는 비공정의 부엌에서 볼을 감싸고 헤헤 웃었다.

         

       “악마님이 그 광경을 보셨어야 하는데! 완전 비즈니스~ 파스텔이었다구요!”

       『몇 번째 말하는 거냐.』

         

       밀대로 반죽을 펴던 악마는 쇼핑에 끌려온 사람처럼 다소 지친 표정이었다. 쇼핑과 다른 점이라면 파스텔이 계속 따라다니며 말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파스텔은 정확히 11번째 자랑을 시작했다.

         

       “무려무려 그 어렵다는 공수표만 던져서 영업하기가 성공!”

         

       그것도 마족인 엘리를 배신하라는 역제안을 넘기고 우정을 지킨 성과였다!

         

       브이! 브이!

         

       파스텔: 백작님! 꿈을 크게 가지세요! 제국은행의 푼돈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구요! 제국은행을 배신하고 저를 선택하면 이런 금화 더미 말고 더 큰 돈 드릴게요!

         

       근데 얼마나 줄진 안 말함.

         

       왜냐하면, 나 지금 현금 없으니까.

         

       전액 밀무역 돌려놨으니까.

         

       헤헤.

         

       근데근데!

         

       백작님이 파스텔의 자신감에 혹하더니 목표로 했던 경매 답함을 뛰어넘어서 크래프트 상단에 투자하겠다는 발언을?!

         

       얼마나 혹했는지 세계 전체 같은 황당한 농담에 어울려 주기까지 했다.

         

       “저 이거 알아요! 젊은이의 자신감에 감동해서 어디 한번 사업해 보라며 큰돈을 투자하는 마음씨 좋은 자산가인 거죠!”

         

       나이 차이도 부모와 자식만큼 크니 백작님 마음에 어떤 감동이 있었는지 알 수 있어!

         

       나도 한때는 이랬지 라는 회한과 추억이 스친 감동이었겠지!

         

       파스텔은 주먹을 꼭 쥐었다.

         

       “백작님! 그 기대에 보답하고 말겠어요! 이 파스텔, 전력을 다해 밀무역을 돌리겠습니다!”

         

       복리 계산의 마법을 보여주겠어요!

         

       『그런 각오하지 마라.』

         

       악마가 밀대로 파스텔의 머리를 콩 때렸다.

         

       “아야!”

         

       으이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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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It’s Mental Immunity

No, It’s Mental Immunity

Status: Ongoing Author:
The guardian demonic sword is troubled and in distress, believing it has been ruined because of me. Does striving for advancement through consuming demonic energy seem too ev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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