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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9

       무한한 공간을 향한 끝없는 추락.

         

       어두운 하늘로 곤두박질치면서 두 마귀가 느낀 감정은 공포였다.

       이는 어비스의 심연을 마주한 인간들이 느끼는 심정과 비슷했다.

         

       의도하지 않게 마귀들에게 역지사지의 교훈을 심어준 바예르는 능력을 사용하는 것을 멈췄다.

         

       아무리 그가 사도라고 해도 마신의 권능을 함부로 남용할 수 없었다.

       마신의 호의에는 항상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었다.

       특히 반전의 권능 같은 강력한 힘에는 더욱 그랬다.

         

       중력이 다시 원상태로 돌아왔다.

       그러나 이미 속도가 붙은 둘은 한참을 위로 치솟은 후에야 다시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 높이는 어림잡아 100미터에 달했다.

       아무리 그들의 몸이 튼튼하다고 해도 이 정도 높이에서 추락하면 죽음을 면할 수 없었다.

         

       그때, 둘은 예상 착지 지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하천을 발견했다.

         

       이런 높이라면 물이라 해도 완충재 역할을 해내기 힘들었다.

       그러나 땅에 들이박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일단 살아만 남는다면 그들은 어비스로 돌아가 육체를 회복할 수 있었다.

         

       자카누바 둘이 대기를 박찼다.

       이 세계와의 반발력을 이용한 공중기동이었다.

         

       바예르는 그들이 하는 짓을 올려다보며 웃음을 흘렸다.

       그는 경험 많은 퇴마사였다.

       놈들이 이렇게 나올 것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그는 강물을 바라보며 합장을 했다.

       그리고 한쪽 손은 그대로 둔 채, 반대쪽 손을 아래 방향으로 비틀었다.

         

       “흘러가는 물이여……뒤집혀라.”

         

       다시 한번 마신 카이랄의 권능이 발현되었다.

         

       그는 ‘흘러가는 물’을 ‘굳어있는 물’로 반전시키려 했다.

       즉, 하천을 얼려서 그들의 몸에 타격을 주려 한 것이다.

         

       그러나 마신의 힘은 그의 예상을 한참 벗어나 작용했다.

         

       세상이 환하게 밝아졌다.

       싸움을 지켜보던 단원들은 갑자기 터져 나온 불빛에 눈을 가렸다.

       아직 한밤중인데도 낮을 연상케 하는 밝기였다.

         

       빛이 뿜어져 나오는 곳은 자카누바가 떨어져 내리고 있는 하천이었다.

       방금까지 콸콸거리는 소리를 내며 흐르던 하천에 커다란 불꽃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물’의 반대가 ‘불’이라는 거냐? 망할 이 능력은 도대체가…….”

         

       바예르는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며 욕을 내뱉었다.

         

       그가 지닌 반전의 권능이라는 것은 상당히 불안정한 힘이었다.

         

       반전과 양면성이라는 것은 말만 들으면 정해진 두 결과 사이의 양자택일처럼 보였다.

         

       그러나 세상을 두 가지로 가르기 위해서는 항상 ‘기준’이라는 세 번째 요소가 필요했다.

       무엇을 기준으로 대상을 뒤집느냐에 따라서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그 기준이 되는 ‘축’은 권능의 사용자 자신이었다.

         

       “끼에엑!”

         

       다행히 결과는 그가 의도했던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었다.

       낙하의 충격에 박살난 그들의 육신은 불꽃이 태워버렸다.

         

       그들은 몇 번 몸을 꿈틀거리더니 그대로 먼지처럼 바스라졌다.

       강렬한 빛에 노출된 마귀의 시체가 맞이하는 운명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바라보는 바예르의 표정은 곱지 않았다.

       의도하지 않은 반전이 가져다주는 부작용 때문이었다.

         

       세계의 위상을 뒤집는 일에 인간이 ‘축’을 담당하는 것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

       반전의 권능을 사용할 때, ‘기준’의 역할을 명확히 해내지 못하면, 사용자 역시 권능에 영향을 받을 수 있었다.

         

       버릇이나 성격이 바뀌는 건 그나마 다행이고, 아주 재수 없는 경우에는 성별이 뒤바뀌기도 했다.

         

       양면성과 반전의 마신.

       그의 대리인으로 살아오면서 바예르는 이제 자신의 원래 성격이 어땠는지도 잊어버렸다.

       다행히 남자인 것은 확실했지만…….

         

       마귀들의 죽음을 확인한 그는 능력을 해제했다.

         

       불꽃은 다시 물로 돌아왔다.

       하천은 달궈진 주변의 온도 때문에 수증기를 자욱하게 뿜어댔다.

         

       바예르는 아까 뱉어낸 담배에 아직 불이 살아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입에 물었다.

       비위생적인 행동이었지만 그는 딱히 개의치 않았다.

         

       “어이, 너희들 괜찮냐?”

         

       낡은 코트를 펄럭이며 그들을 향해 다가오는 남자를 보며 단원들은 한 발자국씩 뒤로 물러났다.

         

       엘라는 눈앞에서 벌어진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직접 붙어 봤기에 그녀는 저 마귀들이 얼마나 강한지 알고 있었다.

         

       그런데 저 남자는 그놈들을 손짓 몇 번과 말 몇 마디로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았다.

         

       압도적인 강함.

       상식을 벗어난 종류의 힘.

         

       눈앞의 사내는 그녀가 잘 아는 누군가를 연상시켰다.

         

       원더스타인.

       그와 닮았다.

         

       물론 외모나 차림새는 전혀 딴판이었지만, 풍기는 분위기가 비슷했다.

       ‘위험하다.’라는 의미에서.

         

       “네가 이들의 우두머리인가?”

         

       그가 엘라 앞에 섰다.

       담배를 문 채 미소짓는 그의 표정에는 여유가 넘쳤다.

         

       상대가 누구든 약한 모습을 보이면 반은 지고 들어가는 거나 다름없었다.

       원더스타인을 상대하면서 두려움을 숨기는 연기만은 통달한 그녀였다.

         

       그녀는 팔짱을 턱 끼고 짝다리를 짚고 구부정하게 섰다.

         

       “우두머리는 아니지만, 그 바로 아래는 되지.”

         

       그녀의 말에 그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바라봤다.

         

       “버릇없는 꼬마군. 어른들이 대화하는데.”

         

       그의 말에 엘라는 그제야 그가 그녀가 아닌 그 뒤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황당하게도 우몬에게 말을 건 것이었다.

         

       그에게 우두머리로 지적당한 우몬은 뒤통수를 긁적였다.

         

       “제, 제가 제일 어린데요…….”

       “응?”

         

       고개를 갸웃거리는 바예르를 향해 엘라는 허리에 손을 척 올리며 말했다.

         

       “얘는 겉보기와 달리 10살이야. 내가 바로 이 서커스단의 부단장이고.”

       “이런……. 자카누바의 대가리를 깨는 것을 보고 나는 이분……아니, 얘가 대장인가 했는데…….”

         

       그때, 마을 입구에서 누군가 달려 나왔다.

       머리에 부담스러울 정도로 커다란 꽃을 단 분홍색 머리의 여인이었다.

         

       긴장한 얼굴로 튀어나온 그녀는 바예르를 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앗, 대장님!”

       “발렌티나 수녀.”

         

       그녀는 반가운 얼굴로 그를 향해 우다다 달려갔다.

       그러나 그는 떨떠름한 얼굴로 손바닥을 내밀더니 그녀를 그대로 밀쳐버렸다.

         

       “우아앗!”

         

       그에게 밀려난 그녀는 땅바닥을 뒹굴었다.

       그녀는 넘어지자마자 벌떡 일어나 그를 보며 외쳤다.

         

       “무, 무슨 짓입니까!”

       “몸에 가시를 세우고 달려들면 어떡하냐.”

         

       그의 말에 그녀는 아차 하는 표정으로 자신의 몸을 내려다봤다.

       마귀와 겨룰 각오로 온몸에 고슴도치처럼 빛의 말뚝을 세우고 나온 그녀였다.

       마도사인 그에게 있어서 그녀의 포옹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 그래도 너무 하십니다! 말로 하시지 말입니다!”

       “네가 말해서 어디 멈춘 적이 있냐? 이 멍청아!”

         

       그의 말에 발렌티나가 얼굴을 붉혔다.

         

       “우욱! 대장님 또 성격이 이상하게 꼬여버렸지 말입니다!”

       “내가 예전에는 이런 걸 다 안 말하고 참았지? 솔직히 볼 때마다 멍청하다고 생각했어! 이 멍청이! 멍청이! 멍청이!”

       “우우, 그, 그만하시지 말입니다!”

         

       그녀는 두 손으로 귀를 막고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건 그렇고 이쪽에서 느껴지는 자카누바들을 해치운 건 역시 대장님이었습니까? 세 마리나 해치우시다니, 대단하십니다!”

         

       바예르는 어깨를 으쓱였다.

         

       “세 마리 아냐. 두 마리야. 한 마리는 여기 이 사람들이 해치웠어.”

       “에엣, 정말입니까?”

         

       그제야 그녀는 서커스단원들을 발견하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래. 서커스단이라고 하더군. 이상한 힘들을 쓰더니……. 아마 키르쿠스의 인스피라겠지.”

       “서커스? 괴물서커스? 아앗, 설마 당신들이 원더스타인 씨의 부하들입니까?”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들의 연이은 등장에 경계태세를 취하고 있던 엘라가 그녀의 말에 울컥해서 나섰다.

         

       “부, 부하는 누가 부하야!”

       “그럼?”

       “그, 그냥……뭐, 고용 관계지……. 그건 그렇고…… 당신이 그 인간을 어떻게 알지?”

       “알지 말입니다. 제가 그분과 함께 데볼루트에 걸린 사람들을 치료해줬습니다!”

         

       발렌티나는 그동안 드발체프에서 있었던 일을 그들에게 들려주었다.

         

       원더스타인이 저주 역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말에 단원들은 깜짝 놀랐다.

       그들은 그가 괴물을 단신으로 처치했다는 이야기보다 그 사실에 가장 큰 관심을 보임으로써, 극적인 장면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주먹질을 해보였던 발렌티나를 상당히 무안하게 만들었다.

         

       엘라는 단원들이 왜 그 사실에 동요하는지 짐작이 갔다.

       그동안 그들이 원더스타인에게 꼭 묻고 싶었던 질문이 뭔지 모를 그녀가 아니었다.

         

       사람의 몸을 주무르고 갖고 놀 수 있는 원더스타인.

       그동안 그가 두려워서, 두려움이 해소되고 나서도 혹시나 부정적인 답변이 돌아올까 걱정돼서 묻지 못했다.

         

       뛰어난 의사, 연금술사, 마법사, 사제들도 모른다는 저주받은 기형의 치료 아닌가.

       설마 그라고 해답이 있을까 싶었다.

         

       그래도 마음 한칸에는 늘 의문이 있었다.

         

       설마……

       혹시나……

       어쩌면……

         

       단장님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우리의 몸을 바꿔주는 것이.

         

       그동안 그들이 가슴에 품고도 꺼내지 못한 그 질문.

         

       그런데 오늘 그 실마리가 조금 풀렸다.

       불치병이라는 저주 역병.

       그것은 그들의 근원과 관련된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을 그가 치료했다고 했다.

       그렇다면……

         

       “야야, 이 떠벌이! 무슨 말을 그렇게 많이 하고 다녀? 너, 설마 우리가 검은 마도사 추적대라는 것도 떠들고 다니냐?”

       “……어, 그, 그럴 리 어, 없습니다!”

         

       화들짝 놀라는 발렌티나를 본 바예르의 표정이 구겨졌다.

         

       “……했네, 했어! 아오, 이 방정맞은 주둥이를 그냥 콱!”

       “으아아! 놓으시지 말입니다!”

         

       이변을 가장 먼저 알아차린 것은 엘라였다.

         

       단원들은 뜻밖의 희망적인 소식에 서로 수군대고 있었고, 퇴마사 두 사람은 자기네들끼리 투닥거리느라 바빴다.

         

       오직 주변을 경계하고 있던 그녀만이 그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밤인데도 그곳만이 이질적으로 어두웠다.

       빛을 모두 빨아들이는 것 같은 새까만 커튼이 일렁거렸다.

         

       “저기…….”

       “내가 분명 여기 신부에게 얻을 거 빨리 얻고 약속 장소에 오라고 했지!”

       “하, 하지만 보, 보다시피 역병이 퍼져서…….”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던 엘라는 퇴마사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

         

       “저것 좀 봐…….”

       “네가 여기 도착한 것은 오늘 저녁이라고 아까 말했지 않았냐? 그 전엔 뭐하고 있었어?”

       “우웃, 예테린푸르크에서 조금 놀다가…….”

       “내가 이걸…….”

         

       참다못한 엘라가 빽 소리를 질렀다.

         

       “저것 좀 보라니까!

         

       그제야 사람들의 시선이 그녀가 가리키는 곳으로 모였다.

         

       단원들은 허공에 펄럭거리는 검은색 커튼이 뭔지 몰랐지만, 퇴마사 두 사람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

         

       발렌티나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으며, 자카누바 둘을 상대하면서 여유를 잃지 않았던 바예르조차 당혹스러움을 숨기지 못했다.

         

       엘라는 알 수 있었다.

       둘의 얼굴에 떠오른 감정은 명백한 공포였다.

         

       “뭐냐, 저 크기는?”

       “아앗, 그러고 보니 말입니다! 마반경이 엄청 뜨거워졌지 말입니다!”

       “마반경? 그걸 왜 이제 말해?”

       “다, 단장님이 만나자마자 구박하셔서 미처 말 할 틈이…….”

       “내 진짜 이번 일만 끝나면 너를…….”

         

       떠들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북극 빙하의 틈에서 부는 것과 같은 싸늘하고 날카로운 바람이 검은 막 사이로 흘러나왔다.

       동시에 그곳에 커다란 형체가 나타났다.

         

       그것은 언뜻 보기에 자카누바와 비슷하게 생겼다.

       덩치가 몇 배는 크기는 했지만, 토끼 대가리에 순록의 뿔을 달고, 기다란 팔을 늘어뜨리고 있는 것은 같았다.

         

       그러나 놈은 얼굴에 용의 두개골로 만든 투구를 썼으며, 등 뒤로는 비단처럼 흐느적거리는 검은색 천을 날개처럼 둘렀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특징적인 것은 그의 어깨에 걸친 커다란 칠흑색 낫이었다.

         

       발렌티나는 아까 자신이 읽은 표상이 잘못된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저 자카누바 떼가 몰려 있어서 그런 거였길 빌었는데…….

         

       심연 속에 선 핏빛 눈동자에 불길이 이글거렸다.

         

       ‘사신’이라는 별명이 붙은 어비스의 고위 마귀.

       누아-자카누바.

         

       자카누바 수십 마리에 버금가는 힘을 지녔다는 그가 어비스의 장막을 헤치고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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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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