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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9

       운이 없다.

       

       엘리는 내게 그리 말하며 걱정된다고 했었지.

       

       하지만 정말 운이 없었던 걸까. 최근 내가 겪은 일련의 사건들은 단순히 불행한 사고인 걸까.

       

       “그건 아니지.”

       

       이는 관점의 차이고, 배경지식의 차이다.

       

       나는 안다. 미래에 모르가나가 어떤 존재가 되는지.

       

       모티브는 미쳐버린 불사자. 그, 왜 흔히 있잖은가. 고상한 척하지만 한 꺼풀 벗기면 바로 추악한 짐승이 되는 계열 말이다. 딱 그런 느낌이었지.

       

       처음에는 강력하고 아름다운 마법사였다. 하지만 어찌어찌 쓰러뜨리지 못할 것도 아닌 수준.

       

       하지만 찢고, 태우고, 부수고, 녹여내도 결국은 흐물거리며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고 마는 것이다.

       

       모르가나는 그럴 때마다 점점 이성이 깎여나가고, 종국에는 자신의 형체조차 잊어버려 눈코입이 이상한 곳에 난다거나, 팔다리의 개수가 달라진다.

       

       마지막에는 광기에 빠져 본능대로 주변의 생자를 포식할 뿐인 괴물이 되는 것.

       

       그것이 내가 설정한 모르가나의 본모습이다.

       

       어떤가. 샤도우와 똑 닮지 않았나. 젊은 모습으로 회춘하는 것이야 베니의 흔적일 테고.

       

       그래. 당시의 내가 두려워한 것은 베니의 죽음이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뿌려둔 위기의 떡밥 때문에 베니가 죽는 것이 두려웠다.

       

       어쩌면 베니를 구하러 간 리디아마저 위험해질지 모른다는 점과, 각성한 모르가나가 판 그레이브에서 저지르는 살육까지 생각이 미치면 절로 몸서리가 쳐질 정도.

       

       물론 처음부터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은 아니다.

       

       베니의 말대로 미궁에서 도망치던 순간. 내게 무언가 있었다.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분명 내게 무슨 일이 생겼었다.

       

       정확한 기억은 없으나, 끔찍했던 감정만큼은 남아있다. 그리고 아직 늦지 않았다는 희망도.

       

       아마 사랑의 여신이 무언가 메세지를 보낸 게 아닐까 싶은데….

       

       어쨌든 그 이후로 나는 최악의 경우를 상상하게 되었고, 좀 위험하긴 했으나 막을 수 있었다는 것에 만족한다.

       

       내게 있어 이번 일은 베니가 죽을 뻔한 것은 물론, 그녀를 구하러 온 리디아와 판 그레이브 전체가 위험할 뻔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엘리는 다르단 말이지.”

       

       엘리에게 이번 일은 단순히 베니를 노리는 미친년에게 휘말려 나도 같이 죽을 뻔한 사건일 테니까.

       

       그러니 운이 없다는 말도 엘리의 입장에서는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내게는 이런 큰 떡밥을 미리 막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운처럼 느껴지지만.

       

       순간 머리가 복잡해졌다. 행운과 불행. 그 사이의 어딘가. 견뎌내면 더 큰 것을 손에 넣으나, 그렇지 못한다면 함께 파멸하고 만다.

       

       어디서 한번 들어본 설정 아닌가.

       

       “럭키 스트라이크.”

       

       목에 건 목걸이를 만지작대며 그 이름을 읊어 보았다.

       

       전직 엘프 여왕이자, 천 년간 살아온 살아있는 역사의 걸작품.

       

       착용자에게 악운을 부여하지만, 극복할 수만 있다면 그 이상의 보상을 약속하는 아티팩트.

       

       말로 들으면 잘 감이 안 올 수 있지만, 운명에 조금이나마 개입할 수 있다는 시점에서 말도 안 되는 마도구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정작 본인은 여왕직에서 내려오며 더는 필요 없다고 여긴 것이지만….

       

       이브가 아직까지 흑막 취급 받으며 두려움과 경외를 한 몸에 받는 데는 분명 럭키 스트라이크의 지분도 한몫했으리라.

       

       이걸 착용하고도 오랜 시간 살아남았다는 뜻은, 그만큼 파란만장한 삶을 어찌어찌 헤쳐나왔다는 뜻이니까.

       

       남들이 보기엔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수상쩍은 실눈 엘프였을 터.

       

       아마 지금의 나도 당시의 이브와 크게 다르지 않겠지. 아니, 더 심하려나.

       

       엘프라는 종의 보존이 목적이었던 이브와 달리, 내 목적은 내가 던져둔 세상의 위협을 뿌리 뽑는 것이니까.

       

       더 큰 목적에는 더 큰 시련이 뒤따르는 법.

       

       하지만 내가 도중에 스러질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단순히 최근에 모르가나라는 강적을 쓰러뜨리고 어깨가 으쓱해진 것도 있지만…그보다는 내 뒷배를 좀 실감했기 때문이랄까.

       

       사랑의 여신이 날 밀어주는데 그 정도도 못 하지는 않겠지???

       

       하지만 아무리 여신이라 해도 스스로 미궁에 유폐된 그녀가 행사할 수 있는 힘은 한정적이다.

       

       그러니 나는 가챠를 돌려야 하는 것이다. 오직 가챠만이 사랑의 여신이 직접적으로 해주는 백업이며, 나를 내 목표에 걸맞게 성장시켜 줄 테니까.

       

       가챠를 돌리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고, 지금의 내 주머니는 텅텅 비었으나….

       

       “이제부터 벌면 그만이지.”

       

       베니랑 나누고도 여전히 두둑한 전리품을 팔아서 말이다…!

       

       너무 걱정하지마 모르가나야! 너는 내 가챠가 되어 나와 함께 영원히 살아갈 테니까!

       

       이걸로 모두가 상처받지 않는 세계의 완성이다!

       

       ***

       

       “어머? 요나 씨의 물건은 훌륭하지만 아쉽게도 제가 감당하는 건 불가능하겠네요. 하지만 뭐어.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요.”

       

       이제부터 너를 바가지 씌우고 탈탈 벗겨 먹겠다.(X)

       

       은근슬쩍 야한 농담 해봤는데 안 들켰겠지?!(O)

       

       “에.”

       

       순간 말문이 막혔다.

       

       여느 때처럼 맛이 간 이브어 번역기 때문이 아니라 가챠 할 돈을 못 벌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무엇을 숨기랴.

       

       내 가챠 중독 지수는 지금 꽤 아슬아슬한 수준에 도달했다.

       

       한동안 제대로 가챠를 돌린 적이 없고, 최근에는 목숨이 위험했던 큰 전투가 있었잖은가.

       

       내가 도박 중독자라 그런 것이 아니다! 내 몸이! 영혼이! 아드레날린과 도파민을 원하기 때문이다…!

       

       “아니, 귀한 물건이 있는데! 부르는 게 값인데! 왜 사주질 않는 건가요?!”

       

       “그거야 아직 미성년…흠흠. 저희 가게의 현금이 부족하기 때문이지요.”

       

       황급히 말을 바꾸는 이브. 그녀의 실눈이 미소 짓는 것처럼 친근하게 휘어졌다. 마치 먹잇감의 견적을 재는 사기꾼처럼.

       

       “요나 씨는 제 과거를 아시니 과대평가하실 수도 있지만, 사실 저는 그리 부유하지 않답니다.”

       

       돈이 없어도 될 정도의 힘이 있으니까(X)

       

       진짜 없다. 살려줘(O)

       

       “그거야 잘 알고 있죠. 제가 방문할 때마다 다른 손님이 있던 모습을 본 적이 없고, 옆에는 삐까뻔쩍한 크레이들 상회의 건물이 있잖아요. 거기에 파는 물건들까지 미묘하니…솔직히 월세 내는 것도 아슬아슬하지 않나요?”

       

       “…말이 아프네요. 하지만 맞는 말이죠. 제 눈에는 분명 쓸모 있는 아이들이지만, 다른 모험가들에겐 아닐 테니까요. 아, 그래도 월세는 안 낸답니다. 이거 제 명의로 된 자가인지라.”

       

       “넹?”

       

       자가라니. 그게 말이 되나?

       

       물론 판 그레이브가 빨간 맛 사회라 모든 시민은 집을 소유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애초에 요정과 은화도 엘리의 소유 아닌가.

       

       다만, 몇몇 중요 지역은 예외다.

       

       예를 들면 이브의 가게가 있는 이곳. 놀랍게도 여긴 상업지구 중에서도 노른자 땅에 속하는 곳이다.

       

       길드와 가깝고, 신전과도 큰길로 이어져 있으며, 미궁의 입구는 눈으로 보일 거리에 있다.

       

       즉, 유동 인구가 개쩐다는 뜻.

       

       …새삼 이런 땅에서 장사를 말아먹고 있는 이브가 대단해 보이네.

       

       아무튼 이런 장사하기 좋은 땅이지만, 이를 달리 말하면 전략적 요충지라고도 볼 수 있다.

       

       던전의 모험가들에게 팔 물건이라며 위험한 무기를 잔뜩 들여와도 의심받지 않으며.

       

       물건이 비싸니 보안을 위한 것이라며 가게를 요새처럼 개조해도 뭐라고 하지 못한다.

       

       그런 주제에 핵심 시설과 연결되어 있으니 얼마나 중요한 지역인가.

       

       물론 그럴지도 모른다는 의심만으로 거래가 불가능하게 된 것은 아니다. 이 미친 생각을 실제로 옮긴 미친놈이 있어서 금지된 것이지.

       

       최초의 변절자 바네우스.

       

       황혼을 삼키는 자의 수장이자, 몇백 년간 모종의 방법으로 목숨을 부지해 온 그가 처음 세상에 이빨을 드러낸 것이 바로 위의 방법이었거든.

       

       그래서 소유가 불가능하도록 법이 바뀐 것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언제든 쳐들어가서 수색할 수 있도록 형식을 갖춘 것일 뿐, 유동 인구에 비해 월세 자체는 저렴하다.

       

       땅 위에 세운 건물을 다른 사람과 사고팔 수 있기도 하고.

       

       “어떻게 가능한 거죠…?”

       

       내 질문에 이브가 곤란한 듯한 미소로 볼을 긁적였다.

       

       “실은 아주 오래전에 노후 대비용으로 사둔 땅이라….”

       

       “앗.”

       

       “그때는 법이 없어 거래가 가능했고, 제게서 강제로 땅의 소유권을 뺏어갈 이도 없으니 아직까지 쥐고 있는 것이지요.”

       

       “…….”

       

       세상에. 이건 생각도 못 했는데.

       

       아무리 엘프라도 300년 정도 살면 수명이 다해 죽는다. 그 뒤의 땅은 상속되지 못한 채, 신전에 회수될 테고.

       

       그런데 천년을 넘게 살아온 미친 노괴…아니, 하이엘프라면? 심지어 알 사람은 다 아는 수상쩍은 어둠의 실력자(아님)라면?

       

       이브가 왜 이렇게 장사도 안되는 곳에서 꾸역꾸역 버티는가 했더니 이제야 알겠다.

       

       “건물주는 인정이죠.”

       

       “후후. 제가 사실 현금이 부족할 뿐, 마도구나 부동산은 제법 있답니다. …남자 하나 먹여 살리기엔 충분할 정도지요.”

       

       너를 납치해 지하실에서 감금 사육하기엔 충분하다(X)

       

       아이는 몇 명이 좋을까(O)

       

       어쩌다 이런 결론이 나왔는지 이해할 수 없는 번역 결과를 애써 무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현금을 많이 쌓아둔 다른 사람을 소개시켜주세요. 수수료는 넉넉히 챙겨드리죠.

       

       “돈 없는 이브 씨에게는 볼일 없어요.”

       

       아차! 속마음과 대사가 바뀌었다…!

       

       이게 다 오늘은 가챠를 못 돌릴지도 모른다는 조바심 때문이다.

       

       이렇게 가챠가 위험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완전 속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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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9

EP.119





       운이 없다.


       


       엘리는 내게 그리 말하며 걱정된다고 했었지.


       


       하지만 정말 운이 없었던 걸까. 최근 내가 겪은 일련의 사건들은 단순히 불행한 사고인 걸까.


       


       “그건 아니지.”


       


       이는 관점의 차이고, 배경지식의 차이다.


       


       나는 안다. 미래에 모르가나가 어떤 존재가 되는지.


       


       모티브는 미쳐버린 불사자. 그, 왜 흔히 있잖은가. 고상한 척하지만 한 꺼풀 벗기면 바로 추악한 짐승이 되는 계열 말이다. 딱 그런 느낌이었지.


       


       처음에는 강력하고 아름다운 마법사였다. 하지만 어찌어찌 쓰러뜨리지 못할 것도 아닌 수준.


       


       하지만 찢고, 태우고, 부수고, 녹여내도 결국은 흐물거리며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고 마는 것이다.


       


       모르가나는 그럴 때마다 점점 이성이 깎여나가고, 종국에는 자신의 형체조차 잊어버려 눈코입이 이상한 곳에 난다거나, 팔다리의 개수가 달라진다.


       


       마지막에는 광기에 빠져 본능대로 주변의 생자를 포식할 뿐인 괴물이 되는 것.


       


       그것이 내가 설정한 모르가나의 본모습이다.


       


       어떤가. 샤도우와 똑 닮지 않았나. 젊은 모습으로 회춘하는 것이야 베니의 흔적일 테고.


       


       그래. 당시의 내가 두려워한 것은 베니의 죽음이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뿌려둔 위기의 떡밥 때문에 베니가 죽는 것이 두려웠다.


       


       어쩌면 베니를 구하러 간 리디아마저 위험해질지 모른다는 점과, 각성한 모르가나가 판 그레이브에서 저지르는 살육까지 생각이 미치면 절로 몸서리가 쳐질 정도.


       


       물론 처음부터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은 아니다.


       


       베니의 말대로 미궁에서 도망치던 순간. 내게 무언가 있었다.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분명 내게 무슨 일이 생겼었다.


       


       정확한 기억은 없으나, 끔찍했던 감정만큼은 남아있다. 그리고 아직 늦지 않았다는 희망도.


       


       아마 사랑의 여신이 무언가 메세지를 보낸 게 아닐까 싶은데….


       


       어쨌든 그 이후로 나는 최악의 경우를 상상하게 되었고, 좀 위험하긴 했으나 막을 수 있었다는 것에 만족한다.


       


       내게 있어 이번 일은 베니가 죽을 뻔한 것은 물론, 그녀를 구하러 온 리디아와 판 그레이브 전체가 위험할 뻔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엘리는 다르단 말이지.”


       


       엘리에게 이번 일은 단순히 베니를 노리는 미친년에게 휘말려 나도 같이 죽을 뻔한 사건일 테니까.


       


       그러니 운이 없다는 말도 엘리의 입장에서는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내게는 이런 큰 떡밥을 미리 막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운처럼 느껴지지만.


       


       순간 머리가 복잡해졌다. 행운과 불행. 그 사이의 어딘가. 견뎌내면 더 큰 것을 손에 넣으나, 그렇지 못한다면 함께 파멸하고 만다.


       


       어디서 한번 들어본 설정 아닌가.


       


       “럭키 스트라이크.”


       


       목에 건 목걸이를 만지작대며 그 이름을 읊어 보았다.


       


       전직 엘프 여왕이자, 천 년간 살아온 살아있는 역사의 걸작품.


       


       착용자에게 악운을 부여하지만, 극복할 수만 있다면 그 이상의 보상을 약속하는 아티팩트.


       


       말로 들으면 잘 감이 안 올 수 있지만, 운명에 조금이나마 개입할 수 있다는 시점에서 말도 안 되는 마도구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정작 본인은 여왕직에서 내려오며 더는 필요 없다고 여긴 것이지만….


       


       이브가 아직까지 흑막 취급 받으며 두려움과 경외를 한 몸에 받는 데는 분명 럭키 스트라이크의 지분도 한몫했으리라.


       


       이걸 착용하고도 오랜 시간 살아남았다는 뜻은, 그만큼 파란만장한 삶을 어찌어찌 헤쳐나왔다는 뜻이니까.


       


       남들이 보기엔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수상쩍은 실눈 엘프였을 터.


       


       아마 지금의 나도 당시의 이브와 크게 다르지 않겠지. 아니, 더 심하려나.


       


       엘프라는 종의 보존이 목적이었던 이브와 달리, 내 목적은 내가 던져둔 세상의 위협을 뿌리 뽑는 것이니까.


       


       더 큰 목적에는 더 큰 시련이 뒤따르는 법.


       


       하지만 내가 도중에 스러질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단순히 최근에 모르가나라는 강적을 쓰러뜨리고 어깨가 으쓱해진 것도 있지만…그보다는 내 뒷배를 좀 실감했기 때문이랄까.


       


       사랑의 여신이 날 밀어주는데 그 정도도 못 하지는 않겠지???


       


       하지만 아무리 여신이라 해도 스스로 미궁에 유폐된 그녀가 행사할 수 있는 힘은 한정적이다.


       


       그러니 나는 가챠를 돌려야 하는 것이다. 오직 가챠만이 사랑의 여신이 직접적으로 해주는 백업이며, 나를 내 목표에 걸맞게 성장시켜 줄 테니까.


       


       가챠를 돌리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고, 지금의 내 주머니는 텅텅 비었으나….


       


       “이제부터 벌면 그만이지.”


       


       베니랑 나누고도 여전히 두둑한 전리품을 팔아서 말이다…!


       


       너무 걱정하지마 모르가나야! 너는 내 가챠가 되어 나와 함께 영원히 살아갈 테니까!


       


       이걸로 모두가 상처받지 않는 세계의 완성이다!


       


       ***


       


       “어머? 요나 씨의 물건은 훌륭하지만 아쉽게도 제가 감당하는 건 불가능하겠네요. 하지만 뭐어.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요.”


       


       이제부터 너를 바가지 씌우고 탈탈 벗겨 먹겠다.(X)


       


       은근슬쩍 야한 농담 해봤는데 안 들켰겠지?!(O)


       


       “에.”


       


       순간 말문이 막혔다.


       


       여느 때처럼 맛이 간 이브어 번역기 때문이 아니라 가챠 할 돈을 못 벌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무엇을 숨기랴.


       


       내 가챠 중독 지수는 지금 꽤 아슬아슬한 수준에 도달했다.


       


       한동안 제대로 가챠를 돌린 적이 없고, 최근에는 목숨이 위험했던 큰 전투가 있었잖은가.


       


       내가 도박 중독자라 그런 것이 아니다! 내 몸이! 영혼이! 아드레날린과 도파민을 원하기 때문이다…!


       


       “아니, 귀한 물건이 있는데! 부르는 게 값인데! 왜 사주질 않는 건가요?!”


       


       “그거야 아직 미성년…흠흠. 저희 가게의 현금이 부족하기 때문이지요.”


       


       황급히 말을 바꾸는 이브. 그녀의 실눈이 미소 짓는 것처럼 친근하게 휘어졌다. 마치 먹잇감의 견적을 재는 사기꾼처럼.


       


       “요나 씨는 제 과거를 아시니 과대평가하실 수도 있지만, 사실 저는 그리 부유하지 않답니다.”


       


       돈이 없어도 될 정도의 힘이 있으니까(X)


       


       진짜 없다. 살려줘(O)


       


       “그거야 잘 알고 있죠. 제가 방문할 때마다 다른 손님이 있던 모습을 본 적이 없고, 옆에는 삐까뻔쩍한 크레이들 상회의 건물이 있잖아요. 거기에 파는 물건들까지 미묘하니…솔직히 월세 내는 것도 아슬아슬하지 않나요?”


       


       “…말이 아프네요. 하지만 맞는 말이죠. 제 눈에는 분명 쓸모 있는 아이들이지만, 다른 모험가들에겐 아닐 테니까요. 아, 그래도 월세는 안 낸답니다. 이거 제 명의로 된 자가인지라.”


       


       “넹?”


       


       자가라니. 그게 말이 되나?


       


       물론 판 그레이브가 빨간 맛 사회라 모든 시민은 집을 소유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애초에 요정과 은화도 엘리의 소유 아닌가.


       


       다만, 몇몇 중요 지역은 예외다.


       


       예를 들면 이브의 가게가 있는 이곳. 놀랍게도 여긴 상업지구 중에서도 노른자 땅에 속하는 곳이다.


       


       길드와 가깝고, 신전과도 큰길로 이어져 있으며, 미궁의 입구는 눈으로 보일 거리에 있다.


       


       즉, 유동 인구가 개쩐다는 뜻.


       


       …새삼 이런 땅에서 장사를 말아먹고 있는 이브가 대단해 보이네.


       


       아무튼 이런 장사하기 좋은 땅이지만, 이를 달리 말하면 전략적 요충지라고도 볼 수 있다.


       


       던전의 모험가들에게 팔 물건이라며 위험한 무기를 잔뜩 들여와도 의심받지 않으며.


       


       물건이 비싸니 보안을 위한 것이라며 가게를 요새처럼 개조해도 뭐라고 하지 못한다.


       


       그런 주제에 핵심 시설과 연결되어 있으니 얼마나 중요한 지역인가.


       


       물론 그럴지도 모른다는 의심만으로 거래가 불가능하게 된 것은 아니다. 이 미친 생각을 실제로 옮긴 미친놈이 있어서 금지된 것이지.


       


       최초의 변절자 바네우스.


       


       황혼을 삼키는 자의 수장이자, 몇백 년간 모종의 방법으로 목숨을 부지해 온 그가 처음 세상에 이빨을 드러낸 것이 바로 위의 방법이었거든.


       


       그래서 소유가 불가능하도록 법이 바뀐 것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언제든 쳐들어가서 수색할 수 있도록 형식을 갖춘 것일 뿐, 유동 인구에 비해 월세 자체는 저렴하다.


       


       땅 위에 세운 건물을 다른 사람과 사고팔 수 있기도 하고.


       


       “어떻게 가능한 거죠…?”


       


       내 질문에 이브가 곤란한 듯한 미소로 볼을 긁적였다.


       


       “실은 아주 오래전에 노후 대비용으로 사둔 땅이라….”


       


       “앗.”


       


       “그때는 법이 없어 거래가 가능했고, 제게서 강제로 땅의 소유권을 뺏어갈 이도 없으니 아직까지 쥐고 있는 것이지요.”


       


       “…….”


       


       세상에. 이건 생각도 못 했는데.


       


       아무리 엘프라도 300년 정도 살면 수명이 다해 죽는다. 그 뒤의 땅은 상속되지 못한 채, 신전에 회수될 테고.


       


       그런데 천년을 넘게 살아온 미친 노괴…아니, 하이엘프라면? 심지어 알 사람은 다 아는 수상쩍은 어둠의 실력자(아님)라면?


       


       이브가 왜 이렇게 장사도 안되는 곳에서 꾸역꾸역 버티는가 했더니 이제야 알겠다.


       


       “건물주는 인정이죠.”


       


       “후후. 제가 사실 현금이 부족할 뿐, 마도구나 부동산은 제법 있답니다. …남자 하나 먹여 살리기엔 충분할 정도지요.”


       


       너를 납치해 지하실에서 감금 사육하기엔 충분하다(X)


       


       아이는 몇 명이 좋을까(O)


       


       어쩌다 이런 결론이 나왔는지 이해할 수 없는 번역 결과를 애써 무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현금을 많이 쌓아둔 다른 사람을 소개시켜주세요. 수수료는 넉넉히 챙겨드리죠.


       


       “돈 없는 이브 씨에게는 볼일 없어요.”


       


       아차! 속마음과 대사가 바뀌었다…!


       


       이게 다 오늘은 가챠를 못 돌릴지도 모른다는 조바심 때문이다.


       


       이렇게 가챠가 위험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완전 속물...!
    다음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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