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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9

       세계선에서 가장 높은 산꼭대기에는 한 그루의 불탄 나무가 덩그러니 서 있다.

        뇌명(雷鳴)의 주인 메릴린 다프네스가 과거 탑주와 함께 탑을 세울 당시 사용했던 ‘태초의 뇌전’에 맞은 벽조목(霹棗木)이었다.

        세계선에 흩뿌려져 있는 보상 중 당연 한 손가락에 꼽히는 최고의 마도구이자 상등품의 영석과 맞먹을 정도로 희귀한 물건이지만 그 권역은 누구도 접근할 수 없다.

        봉우리를 둘러싼 구름이 가까이 다가오는 모든 이에게 번개를 퍼붓기 때문이었다.

       

        칠현자의 마력을 걷어낼 정도의 실력자가 아니라면 목숨을 보장하기 어려운 권역에서 클라우디아 아녜스코트는 나무에 등을 기대고 서 있었다.

        담배에 불을 붙이던 그녀는 머리 위의 구름이 돌연 걷히자 인상을 찌푸렸다.

        30층의 거짓된 밤하늘에서 천칭자리를 구성하는 별무리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칼레이도스의 구름을 멋대로 천칭에 얹지 마라, 묘지기.”

        “싫은데? 비바람이 너무 쳐서 꽃들이 다 쓰러지잖아. 게다가 쾅쾅 거려서 시끄럽고.”

       

        태연한 목소리로 치맛자락을 쥔 실낙원의 주인이 마차에서 내렸다.

        안에는 평소 어딜 가든 질기게 싣고 다니는 꽃들과 더불어, 마법사 한 명이 더 타고 있었다.

        발목에 반창고를 붙이고 있는 검은 머리의 여인.

        클라우디아는 그녀를 무시한 채 자신이 있는 곳까지 다가온 리브라에게 말했다.

       

        “이미 네 발로 짓이겨놓고 책임을 내게 돌리다니 어이가 없군. 망혼들을 돌보니 뭐니 하더니 그 짓도 이제 질린 거냐?”

        “이건 얘들이 원해서 해주는 거야. 그보다 최상층에 있어야 할 네가 하층에서 농땡이 피우는 것만큼 큰일도 아닌 것 같은데?”

        “껍데기뿐인 빈 옥좌에는 관심이 없다.”

        “그래서 여기로 왔어? 그를 찾으러?”

        “세실리아가 기청으로 알아본 결과 마지막 행선지가 세계선이더군. 게다가 결계를 부순 흔적도 있으니 확실하다고 생각했지.”

       

        시엔은 마차 안에 가만히 앉아 두 사람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클라우디아 아녜스코트는 지금의 칼레이도스 학파를 이끄는 거물이고 그녀의 입에서 신성학파의 칠현자인 세실리아의 이름까지 나왔다.

        마탑의 기둥이나 다름없는 존재들이 하나같이 누군가를 찾는 듯한데, 그 정체를 좀처럼 짐작할 수가 없었다.

        조금 더 이야기를 듣기 위해 벽에 귀를 붙이자 발 밑에 있던 노란 튤립 줄기가 발목을 타고 올라왔다.

        꺼림칙한 기분을 느끼며 다리를 털어내던 순간, 리브라가 마차를 가리켰다.

       

        “흐음? 내가 저 안에 있는 아이에게 듣기로는 결계를 부순 자는 해주학파 출신의 다른 마법사라고 하던데.”

        “네가 데려온 똘마니는 보나마나 정보부겠지? 흥, 그런 놈들이 뭘 제대로 알 리가 없지. 그분이 하신 일이 확실하다.”

        “세실이 거기까진 말 안 해줬나 보네. 같이 안 왔어?”

        “기청의 대가로 신열(身熱)을 앓는 중이다. 몸을 제대로 못 가누긴 하지만 린지 녀석에 비하면 상태가 괜찮은 편이지.”

       

        마탑의 90층은 요람이라 불리운다.

        신비를 핏줄에 녹여낸 후대를 탄생시키는 마법사들의 성소이자 등반의 의무를 면제받은 이들의 고향.

        마탑 역사상 요람에서 태어난 순혈 마법사 중 가장 이름을 크게 알린 이가 바로 현 정령학파의 칠현자 린지 스트리블링이었다.

        당시 그녀에겐 현 차기 니플헤이르의 가주가 될 것으로 여겨지는 비나보다 더한 기대, 그리고 욕망이 쏟아졌었다.

       

        “잘 이해가 안 가는데? 너야 그 사람이 없으면 등반할 이유가 없어서 내려왔다 쳐도 걔는 도대체 왜? 평소 정령계에 박혀있는 애잖아.”

        “말하면 또 그 음습한 석판에 그분에 대해 끄적일 게 뻔하니 내키지 않는군.”

        “어차피 천칭에 올리면 다 나와. 그것만 말해주면 용건만 마치고 빨리 사라져줄 수도 있는데?”

        “하아, 하는 수 없군.”

       

        담배를 비벼끈 클라우디아는 어둠이 드리운 산맥에서 유일하게 움직이는 지평선을 보며 담담히 읊조렸다.

       

        “정령학파의 당주들이 요람에서 나온 녀석을 노트 하나와 함께 정령계의 심계(深誡)에 던져놓았을 때, 그곳에서 나올 때까지 수년간 말을 걸어준 사람이 그분뿐이니까.”

       

       

       

        *

       

        지금의 파딱들과 처음 만난 것은 갤러리가 생기고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입탑 직후의 나는 전지의 비석에 남몰래 이름 새길 기회를 엿보며 시엔과 드잡이질을 하는 틈틈이 기숙사 얼음 정수기 설치 건으로 인한 업체들간의 미팅을 진행하느라 매우 바빴다.

        그러다 보니 하루에 고작 18시간밖에 갤러리를 관리할 수가 없었고.

        이 사실을 알아차린 분탕들은 내가 사라진 틈을 ‘천좌의 공백’이라 부르며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당시 얼마나 많은 파딱들이 갈려나가고 게시판마다 상호확증파괴를 위시한 핵무기 개발에 착수했는지는 직접 겪은 사람들만이 알 것이다.

        하루 중 주딱이 자취를 감추는 마의 6시간.

        그때마다 갤러리 곳곳에서 울리는 총성에 사상자는 갈수록 늘어만 갔다.

       

        상황을 더 이상 두고 볼 수는 없었다.

        치근덕대는 시엔을 쥐어박고, 정수기 업체들에게는 아녜스를 던져놓으며 반드시 이 높이로 만들라고 지시한 나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으로 분탕들을 제압하기 시작했다.

        백 개가 넘는 깡통계를 만들어 그들을 하나씩 사냥하기 시작한 것이다.

        저격, 신상털이, 키배와 마녀사냥까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패배한 녀석들은 빛도 제대로 들지 않는 변방에 게시판을 파서 그곳에서만 글을 쓸 수 있도록 가둬놓았다.

        정기적으로 가석방 심사를 열어 교화된 놈들에 한해 풀어주기는 했지만 그들도 ‘주요 관리 리스트’에 이름이 올라 있었다.

        판결에 불복한 몇몇 분탕들은 계정을 새로 파서 활동하려 했지만 나는 무려 5년 동안 기숙사 사감직을 맡고 있었다.

        위치노트를 잃어버렸다며 받으러 오는 녀석들은 신상을 공개해 철저히 매장시켜 버렸다.

       

        그렇게 모든 수단을 동원해 갤러리의 평화를 지켜냈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버티는 세 놈이 있었다.

       

        분탕들은 높은 확률로 자기 자신, 혹은 사회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들을 잘 달래서 교화시키곤 했으나 이 셋은 당최 말을 안 들었다.

        그래서 결국 최후의 수단으로 선택한 방법이 녀석들을 파딱으로 올려놓고 마리엘처럼 죽도록 굴리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포인트고 나발이고 없었으니 살고 싶으면 알아서 숙이라며 엄포를 단단히 놓았던 기억이 난다.

       

        — 되게 예전부터 오늘 같은 날이 오기만을 꿈꿔왔어. 대숙청의 밤 기억해? 그때 분탕들에게 일침 날리면서 ‘이제부터 내가 하늘에 서겠다’고 말했잖아. 그때부터 쭉 지켜본 거야.

       

        천문이가 나를 만났을 때 했던 말처럼, 분탕의 왕으로 군림하겠노라는 선언은 그 속에 나름의 계산이 있던 것이었다.

        날뛰는 분탕들을 제어할 수 있는 이들은 그들이 하늘처럼 우러러보는 존재뿐이기 때문.

        탑이 그것을 공언해주었다면 더욱 완벽했겠지만 결국 내가 받게 된 이명은 ‘클락 데스몬드’였다.

        이건 이 세계에 떨어진 후 클락으로 살아온 내게 분탕의 왕보다 더 짙을 수밖에 없는 정체성이었다.

       

        ====

        — 빵이없으면포인트를먹으면되잖아 : 흠

        — 빵이없으면포인트를먹으면되잖아 : 생각보다 늦네?

        — 빵이없으면포인트를먹으면되잖아 : 띵!

        — 빵이없으면포인트를먹으면되잖아 : 동띵!

        — 빵이없으면포인트를먹으면되잖아 : 동!!

        — 빵이없으면포인트를먹으면되잖아 : 날도 춥고 기다리기도 다리 아프고

        — 빵이없으면포인트를먹으면되잖아 : 내가 누굴 기다릴 군번인지도 잘 모르겠고

        — 빵이없으면포인트를먹으면되잖아 : 자꾸 늦고 대답도 안 하면 비슷한 이름의 고닉 하나가 생겨버릴지도

        — 빵이없으면포인트를먹으면되잖아 : 이번에 끌어내려진 파딱도 임기 내내 사칭 때문에 고통 받았던 것이에요

        — 빵이없으면포인트를먹으면되잖아 : 3

        — 빵이없으면포인트를먹으면되잖아 : 2

        — 빵이없으면포인트를먹으면되잖아 : 1

        — 부엉부엉부엉이 : ㅇ나ㅣ야 ㄱㅓ의 도착했어!!

        — 빼미빼미올빼미 : 빼미

        ====

       

        뭐, 그래도 괜찮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지금까지 해온 행동들이 허사는 아니었으니까.

        실제로 부엉이 녀석은 비가 오든 눈이 내리든 수년간 꾸준히 메시지를 보내며 갈궈온 덕에 내 이명이 분탕의 왕이 아니라도 버선발로 달려와 머리를 조아렸다.

       

        — 쾅, 쿠당탕!

       

        거의 하늘에서 내리꽂히듯 내가 있던 관측대 근처 절벽에 떨어졌는데 자기 마법을 제대로 컨트롤도 못 하는지 흙투성이로 나뒹굴었다.

        서둘러 미궁의 안개를 켠 나는 평소처럼, 아니 평소보다 더 위엄있는 모습으로 녀석의 앞에 섰다.

       

        정령의 회랑 이후로 처음인가? 

        그래그래, 주딱은 너희가 노는 사이에 무려 중층에 올랐어.

        이명이 하필 본명이라 말해줄 수는 없지만 일단 자랑은 하기 위해 입을 열려던 순간, 녀석이 먼저 선수를 쳤다.

        정령문이 깃든 손아귀가 내 로브자락을 틀어쥐었다.

       

        “이, 이 개새끼야! 어, 어딜 가면 간다고 마, 말을 해야 될 거 아니야!”

        “응?”

        “내가, 다른 새끼들이 그동안 주, 죽기라도 한 줄 알고 얼마나, 얼마나…….”

        “…….”

       

        바들바들 떨리는 무릎이 천천히 땅으로 가라앉는다.

        나는 부엉이의 하늘거리는 옷이 젖기 전에 그녀의 허리를 받쳐 주었다.

        그렇군, 내가 없는 동안 나름대로 마음고생이 심했구나.

        지금껏 확인해보지 않았지만 아마 관리자 계정에 메시지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겠지.

       

        당연히 갤 관리를 내팽개치고 도망갔다고 생각했는데 설마 나를 애타게 찾고 있었을 줄이야.

        컨셉충에 입이 좀 험해서 그렇지 부엉이는 기본적으로 좋은 녀석이었다.

       

        “훌쩍, 안 돼, 약한 모습 보이면 정령들이 떠나는데…….”

        “…….”

        “머, 머리 쓰다듬지 말고 무슨 말이라도 해 봐 미친 놈아! 설마 진짜로 무슨 일이 있었던 건…….”

        “빼미.”

        “응?”

       

        그러나 일단 늦긴 늦었으니 자업자득.

        나는 미궁의 핵을 조정해 기존에 쓰던 가면을 새로 만든 올빼미 형상으로 바꾸었다.

        부엉이는 노트를 꺼내 나와 주고받은 메시지를 다시 확인하더니 제 뺨을 더듬거렸다.

        ‘설마 이 인간이 이 정도까지?’라는 생각이 얼굴을 못 봐도 전해지는 듯했다.

       

        “너 지금 나랑 진지한 대화 할 생각이 없는 거지?”

        “빼미.”

        “장난치지 말고 제대로 대답해! 나보고 뭐 어쩌라고?”

        “빼미.”

        “부, 부엉?”

        “그래 부엉아, 진작 그래야지. 이렇게 말 잘 듣는데 왜 대미궁에서 당부한 건 다 까먹었어.”

       

        가볍게 녀석을 놀려준 뒤, 나는 가면을 원래대로 바꿔썼다.

        파딱들이 내 빈자리를 느꼈다는 건 주딱으로서 기꺼운 일이지만 그렇다 해도 갤 관리를 소홀히 한 책임을 묻지 않을 순 없다.

        눈물이 그치자 부엉이 녀석도 제 발이 저린지 조심스레 거리를 벌렸다.

       

        “부엉아, 네가 내 전령이지? 영화에서 그렇게 나온다고 했잖아.”

        “부엉?”

        “오늘 너를 먼저 부른 건 다른 애들한테 제대로 경고하기 위해서야. 나를 찾으려고 이래저래 노력한 건 알겠는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잖아.”

       

        갤러리는 아직도 혼돈이 가득한 상태.

        내가 나서서 이 모든 걸 해결한다면 다른 파딱들이 쓸모없다는 인식이 퍼질 것이고, 결국 녀석들이 손해를 볼 것이다.

        그러니까 여기선 파딱들에게 맡겨야 한다.

        나는 아직까지 한 번도 접속하지 않은 관리자 계정의 노트를 꺼내 흔들었다.

       

        “여긴 내가 만든 땅이고 내가 주인이야. 그러니까 자꾸 기어오르는 녀석들을 가만히 놔두지 말란 말이야.”

        “부엉.”

        “조만간 다시 연회를 열 텐데, 그때까지 싹 다 청소해 놔. 알아들었어?”

        “부엉부엉……!”

       

        이 정도로 당부했으면 잘 하겠지.

        나는 손수건을 꺼내 눈을 비비는 녀석을 위로해 주었다.

        미궁의 안개 때문에 제대로 닦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날 수 있을 정도로 컨디션을 회복한 부엉이는 절벽 앞에 섰다.

        나는 잘 가라고 손을 흔들어 주었다.

       

        “부엉……!”

        “마지막은 말 해도 돼. 내가 듣기 답답하네.”

        “아, 알겠어. 주딱 말대로 할게.”

        “당연히 그래야지.”

        “여긴 정령계와의 연결도 좋고 이래저래 탐나는 재보들이 많이 있지만…… 응, 따지고 보면 전부 주딱 거니까.”

        “뭐?”

       

        사르륵!

        오색찬란한 로브를 두른 부엉이는 한 차례 나를 돌아본 뒤 그대로 낭떠러지를 향해 발을 내딛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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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이세계 마탑의 갤주가 되었다
Score 3.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10 years since transfer to another world

What I do inside the Ivory Tower of Truth isn’t much different from what I did on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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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you missed today’s attendance for the ‘Principles and Understanding of Dimensional Glass’ course, you’ll get a penalty] If you want to kill the professor who suddenly changed the classroom with a phase transition 2 minutes before the start of class, go ahead. Haha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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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why does everyone think I’m the Tower 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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