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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9

       

       

       “후아암···.”

       

       

       어젯밤의 사건 탓에 자꾸 하품이 새어 나왔다.

       

       망할 아빠 같으니라고.

       

       오랜만에 만난 귀여운 딸을 애호해주지는 못할망정.

       

       실력 검증을 하겠다며 덤벼들다니.

       

       

       “끄응, 다리야···.”

       

       

       내일 해야 할 일이 있다면서 말려주던 사람이 없었더라면 지금쯤 드러누워 있지 않았을까.

       

       약 먹으면 괜찮아질 거라면서 약을 주기는 했지만···.

       

       병 주고 약 주는 것도 아니고.

       

       하여튼 너무하다니까.

       

       아무리 아빠의 취향을 까발렸다고는 해도 말이야.

       

       아빠도 내 부탁을 처음부터 들어줬으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거 아냐?

       

       

       “···오, 효과 좋네.”

       

       

       후들후들 떨리던 다리의 통증이, 약을 먹으니 순식간에 조금씩 아물기 시작했다.

       

       역시 최전방이라서 이런 좋은 약을 상비하고 다니는 걸까?

       

       아빠가 건네준 약의 효과에 감탄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분명 여기 주변에 있을 텐데.

       

       

       “도로시? 벌써 일어났어? 빠르네.”

       

       “아, 아멜리아 양. 안녕하세요.”

       

       “안녕. 왜 이렇게 빨리 일어났어?”

       

       “선생님이 다른 분들과 회의하러 일찍 일어나셨거든요. 그 소리에 저도 일찍 깨버려서요.”

       

       

       헤에. 그렇구나.

       

       아무래도 도로시와 하율 선생님은 같은 방을 사용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잠깐.

       

       

       “아르테랑 시우는?”

       

       “···.”

       

       

       고개를 다른 방으로 돌리는 도로시의 모습에, 도로시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저기에 있구나.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시는지 알 것 같아요.”

       

       “나도 그런데. 나만 그 생각 하는 거 아니지?”

       

       “···몰래 한번 볼까요?”

       

       “좋아. 언제나 너랑은 말이 통한다니까.”

       

       “제가 할 말이에요.”

       

       

       도로시와 아멜리아는 알고 있다.

       

       시우와 아르테가 동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둘은 이미 알고 있었다.

       

       아르테를 향한 시우의 감정을.

       

       그리고 아르테가 시우에게 반한 것은 아니지만,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둘이 같은 방을 쓰게 된 거잖아? 그렇다면···.”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죠!”

       

       

       히죽.

       

       도로시는 숨길 생각도 없다는 듯 웃음기를 지우지 않았다.

       

       ···뭐, 나라고 다른 건 없지만.

       

       

       “항상 궁금했어요···. 둘이 뭘 하는지···!”

       

       “우리도 모르게 막 진도 나간 거 아냐? 서로 막···.”

       

       “서, 서, 서, 설마···! 그럴 리가!”

       

       

       꺄악, 꺄악.

       

       다른 사람들이 깰까 봐. 혹시 아르테나 시우에게 들킬까 봐.

       

       우리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발걸음은 가벼웠다.

       

       

       “자, 연다···?”

       

       “네···!”

       

       

       두근, 두근.

       

       우리는 서로의 심장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집중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동거 사실은 알고 있지만, 두 명이 그 집 안에서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들어본 적 없었다.

       

       애초에 말할 리가 없기도 하고.

       

       하지만 궁금한걸.

       

       여태껏 시우와 아르테를 이어주려고 판을 짜고, 잔뜩 노력했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아르테에게 관심 있다고 대놓고 티를 내고 다니는 시우와 그걸 또 눈치채지도 못하고 있는 아르테가 얼마나 답답했는지.

       

       ···그런데 왜 두 사람을 그렇게 이어주려고 했더라?

       

       아니, 그런 사소한 게 중요한 상황이 아니다.

       

       지금은 아르테와 시우의 보금자리를 몰래 구경할 수 있는, 어쩌면 처음뿐인 기회···!

       

       

       “뭐 하세요?”

       

       “아.”

       

       “음, 그게···.”

       

       

       그러나 우리의 호기심을 채워줄 수 있는 장면은 존재하지 않았다.

       

       단 하나뿐인 기회라고 생각했는데.

       

       문을 열자, 도대체 어떻게 알아차린 건지 나와 도로시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아르테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아, 아침 식사를 하셨으면 해서요! 슬슬 시간이 되었으니까···!”

       

       “···하아. 알겠어요. 금방 나올 테니까 잠시 기다려주세요.”

       

       

       사, 살았나···?

       

       섬뜩한 기분이 들어, 아르테가 문을 닫고 난 뒤에도 한참 동안 가만히 서 있었다.

       

       

       “후, 후우···. 깜짝 놀랐어요.”

       

       “좋은 순발력이었어, 도로시···.”

       

       

       아르테의 그 싸늘한 눈동자를 보고 순간 서늘함을 느꼈다.

       

       무슨 눈동자가 그래?

       

       깜짝 놀랐잖아.

       

       아르테의 그 수상쩍은 웃음은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익숙해지자 새로운 웃음을 들고 온 걸까.

       

       눈은 웃고 있는데 입은 가만히 있는 게, 마치···.

       

       

       “잘못 건드렸다가는 그대로 썰릴 것 같은 분위기였어···.”

       

       “그러게요···.”

       

       

       도로시와 나는 생각했다.

       

       훔쳐보는 건 다음 기회로 미루자고.

       

       

       

       ***

       

       

       

       “···무슨 일 있어?”

       

       “도로시랑 아멜리아가 찾아온 모양이에요.”

       

       “그 둘이? 빠르네.”

       

       

       하아.

       

       한숨을 내쉬며 자기들 방으로 돌아가는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깜짝 놀랐네. 도로시랑 아멜리아였구나.

       

       하여튼 두 사람도 장난기가 많다니까.

       

       나랑 시우를 놀라게 하려는 생각이었는지, 기척을 죽이며 다가오는 게 마치 시우를 노리는 암살자 같아서 그만 긴장해버렸잖아.

       

       

       [도대체 뭘 그렇게 걱정하고 계시는건지···.]

       

       

       작가님의 중얼거림은 가볍게 무시했다.

       

       자기가 했던 일을 다시금 돌아본다면 저런 소리를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암살자는커녕, 더 어처구니없는 전개로 이어질 수 있을 거라는 확신마저 있었다.

       

       갑자기 이 장소의 영웅 중 한 사람이 사실은 숨겨진 위버멘쉬의 비밀 조직원 1이고, 조직의 복수를 위해···.

       

       뭐 그런 스토리를 짤 수도 있을 거라고.

       

       개연성이 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는 상관없다.

       

       그야 작가님은 재미있어 보이면 그냥 저지르고 보니까.

       

       위험해 보이면 우선 경계하고 보는 게 제일이었다.

       

       

       “그런데 아르테, 어제···.”

       

       “두 명이 슬슬 식사 시간이라고 하던데, 저희도 슬슬 나가볼까요?”

       

       “···아, 응. 알겠어.”

       

       

       

       ***

       

       

       

       시우는 어제의 일을 떠올리며 아르테를 바라보았다.

       

       어제의 일을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걸까?

       

       시우는 아르테를 빤히 바라보았다.

       

       

       “오지 않으시나요?”

       

       “···금방 갈게.”

       

       

       이제 와서 아르테와 같은 방을 쓰는 것 정도야 부끄럽지 않았다.

       

       여태껏 질리도록 해오던 일이었으니까.

       

       새로운 장소에 와서 색다른 느낌이라 조금 어색하기는 했지만, 그것도 잠시.

       

       아르테와 함께 지내는 건 익숙했기에 짐을 풀고 평소처럼 움직였다.

       

       그래. 나는 평소처럼 행동했다. 평소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해서.

       

       그러나 아르테는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

       

       

       평소와 같은 모습.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언제나 그래왔다. 자신의 약점을 숨기고, 두려움을 숨기고, 고민을 숨기고.

       

       언제나 아르테는 자신이 약해 보이지 않도록 무언가를 숨겨왔다.

       

       작가님에 대한 것. 사람을 인형이라고 생각하는 것.

       

       그리고 내게 집착하는 것.

       

       이제 슬슬 사소한 일 정도는 이야기해줘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르테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 살짝 기분이 가라앉았다.

       

       아직 내가 미덥지 못한 걸까.

       

       어제, 그 사람이 이곳은 위험하다고 경고했을 때.

       

       그녀는 당당하게 우리는 괜찮을 거라며 이야기했지.

       

       아무도 다치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하지만 아르테는 정말 그렇게 생각했을까?

       

       사소한 일도 걱정하고, 내가 사라지면 금방 불안에 휩싸일 정도로 불안정한 그녀가?

       

       그날 밤.

       

       평소와는 다른 잠자리와 앞으로의 일에 대해 고민하며 밤을 지새우던 무렵.

       

       아르테가 내게 다가왔었다.

       

       

       

       시우야, 자···? 하는 목소리와 함께.

       

       무슨 반응을 보여야 할지 잠깐 망설이던 그때.

       

       아르테는 내가 자고 있다고 판단한 듯 내 침대로 파고들었다.

       

       잠깐 당황하긴 했지만, 등 뒤에서 느껴지는 떨림에 나는 눈을 감았다.

       

       아르테가 한밤중에 나 몰래 그렇게 껴안고 있어야 할 이유를 알게 되어서.

       

       

       “···불안한 거야.”

       

       

       그래.

       

       사실 아르테도 불안했던 거야.

       

       그 사람의 눈앞에서는 괜찮을 거라고. 우리는 죽지 않는다며 당당하게 이야기했던 그 모습은 그저 겉모습일 뿐.

       

       평소와 같이 자신의 약점을 숨기고, 당당하게.

       

       그 사람의 앞에서는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사실은 불안했기에.

       

       내가 다치지는 않을까. 아멜리아와 도로시가 혹시 다치지는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게 아닐까.

       

       

       “···.”

       

       

       말로 위로해주는 것은 별다른 의미가 없겠지.

       

       그렇다면 방법은 간단했다. 지금까지 해왔던 연습들이 헛되지 않도록 할 뿐.

       

       여태껏 시우는 수없이 노력했다.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아카데미에 처음 입학했을 때. 그때까지만 해도 그랬었다.

       

       영웅이 되고 싶다는 가벼운 소망.

       

       그 가벼운 소망을 위해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야.

       

       지키고 싶은 사람이 생겼다. 도와주고 싶은 사람이 생겼어.

       

       그렇기에 노력했다.

       

       아멜리아를 지키기 위해. 도로시를 지키기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 아르테를 지켜주기 위해서.

       

       

       “걱정하지 마, 아르테.”

       

       

       아르테에게 직접 이야기해도 그녀는 믿지 못하겠지.

       

       그녀는 걱정이 많은 성격이니까.

       

       그렇기에 시우는 그녀에게 직접 이야기하는 대신 다짐했다.

       

       그 누구도 다치지 않게 하겠다고.

       

       아르테도, 아멜리아도, 도로시도.

       

       그 누구도.

       

       시우는 발걸음을 옮겼다.

       

       직감은 오늘도 시끄럽게 소리치고 있었다.

       

       이곳에 강대한 적이 있다고.

       

       이곳에 커다란 위협이 있다고. 그러니 어서 도망치라고.

       

       그러나 시우는 도망가지 않았다.

       

       그 어떤 위협도 우리를 상처입히지 못하게.

       

       그 어떤 고난이라도 아르테를 괴롭히지 못하게.

       

       시우는, 그녀를 지키기 위한 방패가 되기로 했으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 님,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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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실눈이라고 흑막은 아니에요!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Why are you treating only me like this!

I’m not suspicious, believe me.

I’m a harmless person.

“A villain? Not at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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