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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9

       “그게 무슨……!”

         

       프란체의 얼굴이 인정사정없이 일그러졌다. 인제 와서 좋은 사람으로 남으려는 건가?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웃기지 마세요!”

         

       갈라질 정도로 격앙된 목소리.

         

       혼자 불행한 과거사를 털어놓고, 사과하고, 용서는 바라지도 않고, 그 끝에는 후련한 미소?

         

       대체 이게 뭐 하자는 짓인가? 프란체는 살면서 가장 큰 분노를 느꼈다.

         

       “나는 당신과 당신 동생 때문에 내가 살아온 20년 중 12년을 고통받았어!”

         

       어디서든 배척받고, 누구에게나 무시당하는 삶이었다.

         

       어떻게든 발악했다. 자신을 바라봐달라고, 무시하지 말아 달라고, 사랑을 받고 싶다고.

         

       갈망했다.

         

       그러나 그것은 작은 소망에 불과했다.

         

       “그런데 모든 게 끝나니까 인제 와서 혼자 후련해지려고? 마음 편해지려고? 절대 용납 못 해. 당신의 남은 삶을 어떻게든 망칠 거야.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게, 살고 싶어도 살지 못하게!”

         

       이렇게 말해도 에덴의 표정에 변화는 없었다. 모든 것을 놓은 듯한 얼굴. 프란체는 더욱더 심기가 불편해졌다.

         

       “대체, 대체… 나는 왜…!”

         

       복수의 끝이 이렇게 허망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속이 시원하기는커녕 찝찝해지기만 했다.

         

       “프란체.”

         

       에덴이 나지막이 말했다.

         

       “나를 용서하지 마라. 평생을 저주하고, 원망해라.”

         

       한치의 흔들림도 없는 얼굴.

         

       할 말이 없었다. 체념한 이에게 아무리 분풀이를 해도 돌아오는 것은 없다는 걸 프란체도 알고 있으니까.

         

       “…….”

         

       프란체는 자신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악귀처럼 구겨졌을까? 허탈한 얼굴을 짓고 있을까? 거울을 보기전까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것은 확실하다.

         

       좋은 표정은 아니다.

         

       “…나는 당신을 평생 저주할 거야.”

         

       쾅! 거세게 문을 닫으며 에덴의 침실을 나왔다.

         

       방으로 돌아가면서도 프란체의 걸음에는 힘이 실려있었다. 그만큼 분노가 치밀었다. 하지만 이 감정을 쏟아낼 존재는 이미 체념하고 사라졌다.

         

       주체할 수 없는 이 감정을 혼자 간직하고 삭히는 수밖에 없는 건가?

         

       ‘웃기지 마.’

         

       프란체는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절대 편하게는 만들어 주지 않을 거다. 평생을 고통에 몸부림치며 살게 해줄 거다.

         

       덜컥. 방에 돌아온 프란체는 문에 등을 맡기며 스르르 미끄러졌다. 기다리고 있던 헬레나가 이를 발견하곤 서둘러 달려왔다.

         

       “공녀님? 무슨 일이세요?”

         

       당혹과 걱정이 가득한 사파이어 같은 눈동자.

         

       “헬레나…….”

         

       헬레나를 보니 눈 밑이 부르르 떨려온다. 당장이라도 이 감정이 녹아내려 무언가 흘러내릴 것만 같다.

         

       “공녀님, 우선 일어나시고 의자로 오세요. 심신에 안정을 주는 따뜻한 벌꿀차가 있어요.”

         

       언제나 늘 친절한 헬레나. 첫 만남을 협박으로 시작했는데도, 진과 관련되어 살기까지 퍼트리며 몹쓸 짓을 했는데도 언제나 미소를 유지하며 자신을 따랐다.

         

       ‘얘도 정말 착하고 좋은 애야.’

         

       프란체는 기꺼이 헬레나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마워.”

       “아니에요. 해야 할 일이니까요.”

         

       그리 말하곤 방긋 웃는 헬레나.

         

       “이리 오세요. 바로 찻잔을 채워드릴게요.”

         

       프란체는 고개를 끄덕이곤 자리에 앉았다. 헬레나는 쪼르르 벌꿀차를 찻잔에 채워주었고, 향이 퍼지기 시작했다.

         

       “후…….”

         

       다정한 헬레나를 보고 벌꿀차를 음미하자 울적했던 기분이, 치솟던 분노가 조금 가셨다.

         

       “마음이 좀 편해지셨나요?”

       “그래. 고마워.”

         

       뿌듯한 미소를 짓는 헬레나.

         

       ‘내가 가주가 되었으니 헬레나도 높은 직책을 줘야겠지.’

         

       가주의 전속 시종으로 집사장과 같은 직급을 주자. 헬레나도 이제 돈 많이 받고 호강해야지. 프란체는 그리 생각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이런 와중에도 잊을 수 없는 인물.

         

       ‘망할 에덴.’

         

       그런 사정은 몰랐다. 프란체는 그저 자신이 태어남과 동시에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그런 줄 알았으니 말이다.

         

       프란체에게 화살을 돌린 에덴과 라인의 잘못이 없는 건 아니지만, 따지고 보면 그 둘도 피해자.

         

       결국엔 광란에 빠진 공작이 원흉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공작을 욕할 수도 없었다. 자신이 태어나고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광란에 빠진 것이 아닌가.

         

       “후우.”

         

       큰 한숨과 함께 프란체는 허공을 바라보며 생각을 멈췄다. 지금은 마음이 너무 복잡하여 아무런 고민도 하고 싶지 않았다.

         

       ‘룬어나 해독하자.’

         

       밀려있던 공작령의 일은 다 처리했다. 수확제 준비는 겨울이 오기 전부터 준비했기에 마땅히 할 것도 없었고.

         

       프란체는 마법서를 펼쳐 영혼 결속의 마법 해독에 들어갔다.

         

         

       * * *

         

         

       나는 수확제 파티에 프란체 코퍼레이션의 일원들을 초대하기 위해 바삐 걸음을 옮겼다.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엑시드였다.

         

       “장난하나?”

       “뭐?”

         

       셀다스는 고개를 휘젓곤 잔에 황금빛 술을 따랐다.

         

       “파티는 너희들끼리 해라. 나는 그런 거 관심 없다.”

       “아니, 그래도 엑시드가 준 도움이 얼만데…….”

         

       셀다스의 눈살이 찌푸려진 게 가면 사이로 보였다.

         

       “공녀를 도운 건 어디까지나 우리의 이득을 위해서다. 축하 파티는 너희들끼리 해. 나는 혼자가 편하니.”

         

       그렇게 말한다면 어쩔 수 없지. 예상했던 반응이기도 하고. 사실 예의상 물어본 게 크다.

         

       “그래, 그럼 가본다. 혹시라도 나중에 참여하고 싶으면……”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셀다스는 빨리 나가라는 듯 손을 휘적이며 술잔을 기울였다.

         

       거, 우리가 같이 한 일이 몇 개인데 정이 없네.

         

       ‘뭐, 원래 저런 놈이었으니.’

         

       나는 피식 웃곤 엑시드를 나왔다.

         

       ‘다음은…….’

         

       엘반 자작에게 제안하러 가는 게 좋겠다. 지금 시각은 아직 해가 지기 전. 퇴근하기 전에 빨리 만나야 한다.

         

       지붕을 넘어 프란체 코퍼레이션의 본점에 도착하고, 곧장 건물로 들어갔다.

         

       ‘장사는 잘 되고 있네.’

         

       드레스, 정장, 사치품을 구매하기 위해 빼곡히 모인 귀족들. 프리다에서 넘어온 직원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다.

         

       나는 여유 있어 보이는 직원에게 다가가 물었다.

         

       “공녀님의 명을 받고 왔습니다. 엘반 자작님이 어디 계시는지 아십니까?”

         

       내 얼굴을 보자 눈이 동그래진 직원. 벌떡 일어나서 고개를 숙인다.

         

       “회장님의 호위기사님!”

         

       인사 한 번 부담스럽다. 근데 프란체의 호칭은 결국 회장으로 고정되었구나.

         

       “아니, 그렇게까지 인사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엘반 자작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2층 관리실에 계세요. 바로 올라가시면 되실 거예요.”

         

       나는 “고맙습니다.”하곤 2층으로 걸음을 옮겼다. 관리실로 들어가자 여러 장부를 정리하는 엘반 자작이 책상에 앉아 있었다.

         

       “엘반 자작님?”

         

       내가 부르자 바로 고개를 올려다 보는 엘반 자작.

         

       “아, 진 바렌베르크 씨군요. 여기까진 무슨 일로 오셨는지요?”

       “공녀님의 명 때문에 왔습니다. 수확제 관련해서요.”

         

       일순 엘반 자작의 표정이 굳었다.

         

       “수확제에 뭔가 있습니까…?”

       “공녀님이 파티를 여신다고 하셨습니다.”

       “…….”

         

       뭐지. 반응이 그렇게 좋아보이진 않는다.

         

       “시간이 어떻게 될까요?”

       “저녁 늦게 하겠네요.”

       “죄송하지만 무리입니다.”

       “이유를 여쭤봐도 괜찮겠습니까?”

         

       엘반 자작은 안경을 치켜세우곤 말했다.

         

       “시간 외 노동입니다.”

       “…….”

         

       예상도 못한 답변. 말투에 완고함이 섞여 있어 더 당혹스럽다.

         

       “1년에 단 한 번뿐인 그날은 가족과 시간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제안은 감사하지만, 파티에는 참여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엘반 자작은 가정이 있었지.

         

       ‘영지는 없지만, 작위가 있는 황실 공인 아카데미의 엘리트.’

         

       거기에 일도 잘하는데 가족까지 생각하는 다정한 남자. 부인이 축복받았군.

         

       “혹시 그럼 다른 파티도…?”

       “시간 외 노동입니다.”

       “…….”

         

       이전에 초대 안 하길 잘 했다. 그때도 이런 답변이 돌아왔을 테니…….

         

       ‘한 가정의 가장이니 그렇겠지.’

         

       하마터면 소중한 가족과의 시간을 빼앗을 뻔했군. 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공녀님께는 제가 잘 말씀드리겠습니다.”

       “제 사정을 이해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아닙니다, 가정이 있으신 분이시니까요.”

         

       적당히 인사하곤 매장을 나왔다. 장부와 서류들을 보니 엄청 바빠보여서 계속 대화를 나누기에도 그랬다.

         

       ‘공과 사가 철저한 사람이야.’

         

       프란체가 그걸 보고 뽑긴 했는데, 저 정도로 철저한 사람일 줄이야.

         

       ‘그때 파티에 있던 사람들은 알고 있을 거고.’

         

       남은 건 안드레아다. 나는 다시 지붕을 넘어 프란체 코퍼레이션의 작업장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바로 코에 맴도는 차의 향기와 수수한 나무 냄새. 상자에는 가지각색의 옷감이 삐져나와 있었고, 도서관처럼 조용하니 고즈넉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저기요?”

         

       조심히 묻자 시선이 일제히 이곳으로 모인다.

         

       “아, 호위기사님!”

       “무슨 일로 오셨나요?”

         

       다들 안색이 좋다. 역시 금융 치료가 최고라니까. 월급도 두둑한데 성과금도 나오니 분위기부터 좋잖아.

         

       “다들 이번에 수확제 있는 거 아시죠? 그날은 공녀님께서 또 추가금을 내리실 거예요. 그거로 좋은 시간 보내세요.”

         

       사실 내 독단이지만.

         

       “저, 정말요? 여기서 돈을 또 주신다고요? 진짜로?”

       “수확제까지 챙겨주시다니… 어째 공녀님은 어떻게 파도파도 미담만…….”

       “크흡, 저는 여기서 일해서 행복해요. 공녀님께 평생 충성할 거예요.”

         

       시대 불문 만능의 금융 치료인지라 반응은 뜨거웠다.

         

       “자자, 다들 진정하시고. 안드레아는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

       “안드레아 부장님이라면 3층 개인 작업실에 계세요.”

         

       나는 “고맙습니다.”하곤 계단을 올라갔다. 2층, 3층도 프란체 코퍼레이션의 직원들로 빼곡했다.

         

       고개를 적당히 둘러보니 유독 혼자서만 음침한 분위기를 가진 방이 하나 보였다.

         

       ‘아무리 봐도 저기 같은데?’

         

       문을 열고 들어가니 역시나. 안드레아는 새우처럼 허리를 굽힌 채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안드레아.”

       “…….”

         

       또 이 패턴이군.

         

       “안드레아!”

       “네, 넷!”

         

       화들짝 놀라 허리를 바짝 일으키는 안드레아.

         

       “아, 오랜만에 찾아오셨네요.”

       “바쁜데 미안하군.”

       “아니에요, 무슨 일이신데요?”

       “수확제 파티가 있어서 부르러 왔다.”

         

       안드레아는 멋쩍게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제안은 감사하지만, 그날은 친구들과 보내기로 해서요. 죄송해요.”

       “죄송할 거 없다. 다 각자의 일정이 있는 법이니까.”

         

       얘도 거절할 줄은 몰랐다. 이러면 원래 모이던 사람들만 모이는 거잖나.

         

       근데 기껏 초대하러 왔는데 다들 거절하다니, 헛걸음한 것인가…….

         

       ‘다들 사정이 있으니 어쩔 수 없지.’

         

       기존에 모이던 사람들끼리 즐기는 수밖에.

         

       “그럼 가본다. 집중을 방해해서 미안하군.”

       “아니에요. 들어가세요!”

         

       그렇게 작업장을 나오고, 나는 공작령을 거닐었다.

         

       “하아…….”

         

       건조한 하늘 아래에서 뜨거운 입김이 새어 나왔다. 길거리에는 눈이 쌓여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뽀드득, 하고 귀여운 소리가 들렸다.

         

       ‘수확제.’

         

       나와 프란체의 마지막 추억을 쌓는 시간.

         

       이별을 알리는 파티.

         

       ‘이러니 괜히 울적해지네.’

         

       고개를 휘젓곤 쓸데없는 생각을 떨쳐냈다. 이럴수록 망설임은 더욱 키워지니까.

         

       ‘이거로 된 거야.’

         

       나는 프란체와의 약속을 지켰고, 그녀의 바람을 이뤄주었다.

         

       모든 것에는 이별이 있는 법.

         

       우리는 그저 이야기의 끝을 맞이하는 것뿐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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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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