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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9

       파파라치의 눈이 가늘어진다.

        

       바로 조금 전만 하더라도 자신이 잡히는 처지라고 생각하다가, 자신을 잡으러 온 것이 아닌 협상을 하러 온 것이라는 것을 들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래? 얼마나 주고 싶은데?”

        

       “그건 천천히 대화하면서 맞춰가도록 해요.”

        

       이수아는 일단 그렇게 말했다.

        

       사실 이수아는 이런 ‘사진’들이 얼마인지 제대로 알지는 못했다. 자본주의 논리에 의해 ‘사고자 하는 사람이 많으면’ 가격이 올라갈 거라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유명 연예인들의 비밀 연애 사진이나, 해외 왕족이나 귀족의 스캔들 사진 같은 것이 비싸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정도가, 이수아가 알고 있는 지식의 한계였다.

        

       사실,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이수아 개인이 가진 돈으로 사기에는 지나치게 비쌀 가능성이 컸다. 대기업 자녀라고 해서 모두 사라처럼 재산이 어마어마한 것은 아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이수아 앞으로 된 재산이 있기는 했지만, 그런 것들은 보통 진짜 이수아 개인의 재산이라기보단 ‘그냥 일단 그렇게 설정해둔’ 재산일 뿐이니까.

        

       만약 상대가 수천만에서 억 단위의 터무니없는 가격을 부른다면 쉽게 살 수는 없으리라.

        

       하지만, 그녀는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다.

        

       지금 저 사람은 절대로 ‘일반적인’ 상황에 있지는 않았을 테니까.

        

       “절대로 싸지는 않을 거라는 거 알고 있지? 일부러 유진 그룹 상속녀를 따라다니면서 찍고 다니는 사람은 나 정도밖에 없으니까. 게다가…….”

        

       파파라치는 이수아를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쭉 훑듯이 올려다보았다.

        

       “……네가 어떤 집안의 아이인지는 알고 있지만, 학생 개인의 돈으로 이런 걸 살 수 있겠어?”

        

       처지가 바뀌었다고 생각했는지, 파파라치는 마치 뽐내듯이 그렇게 말했다. 지금 이곳이 놀이공원 한가운데라는 것을 잊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지나가는 사람 몇몇이 이쪽을 향해 호기심 어린 시선을 보냈다.

        

       외국인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다소 외국인 같은 외모이면서도 한국어가 유창한 이수아가 조금은 신기하게 보였던 모양이다.

        

       “하지만 결코 비싸게 팔 수는 없을 텐데요.”

        

       이수아는 그 면전에 대고 그렇게 말했다.

        

       “뭐?”

        

       상대의 미간이 좁아졌다.

        

       나름대로 자신의 사진 실력에 대해 큰 자신감을 느끼고 있기라도 한 걸까.

        

       “그 사진, 이제 사 주는 곳도 없잖아요.”

        

       이수아는 차분하게 말했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니가 뭘 어떻게 알고?”

        

       이수아는 아버지에게 불려가 자신과 사라의 사진이 나온 기사를 본 이후로 하루도 빠짐없이 인터넷 기사를 확인했다. 종이 신문을 따로 확인한 것은 아니었지만, 보통 이런 사진들은 종이신문보다는 인터넷 기사에 먼저 실리는 법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이후에는 사라에 관한 기사가 단 하나도 올라오지 않았다.

        

       사라는 그 이후에도 항상 친구들과 함께 몰려다녔다. 학교 안에서 뿐만이 아니었다. 등교할 때도, 하교할 때도 언제나 함께였다. 요즘에는 하교할 때 굳이 차를 타지도 않았기에, 그녀들이 하교하는 동안 사진을 찍기도 훨씬 쉬웠을 것이다.

        

       그리고 그 와중에 애정 표현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오히려 시간이 지나고 부끄러움을 덜 느끼게 되어서 훨씬 자연스럽게 스킨쉽을 하고, 더 쉽게 끌어안거나 팔짱을 끼곤 했다.

        

       “사진, 지금까지 꾸준히 찍었죠?”

        

       그래, 사진을 찍지 않은 것은 절대 아닐 거다. 그걸로 먹고 사는 이상 팔지 않으려고 했던 것도 아닐 거고.

        

       하지만, 아무도 그 사진들을 사 주지 않았을 거다.

        

       재벌 영애가 동성애자라는 말은, 그게 사실이건 아니건 며칠 정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충분한 이야깃거리였다. 하지만 그뿐이다. 애초에 연예인도 아니고, 누굴 사귀면 안 되는 것도 아니다. 고등학생 때 연애하는 것 정도는 그리 이상한 이야기도 아니니까.

        

       만약 사라가 어느 기획사의 연습생이나 아역배우라도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결국 사라는 사람들 눈에는 그저 ‘돈 많은 일반인’일 뿐이다.

        

       사라의 개인 자산이 많다고 알고 있더라도, 사라가 개인적으로 그 자산을 움직일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어머니와 기 싸움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사라가 어린 시절부터 끔찍한 학대를 받고 자랐다는 것도 별로 관심 없을 것이다.

        

       물론 그런 이야기들이 한 번에 터진다면 또 반응이 달라지겠지만, 고작 ‘연애 사진’ 한 장 정도로 그런 이야기들이 한 번에 마구 터져 나올 수는 없다. 사진에는 아무런 힌트도 없었고, 기사 내용도 짤막하게 ‘사진을 설명하는’ 정도였으니까.

        

       그래, 사실 이야깃거리가 ‘전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사라와 붙어 다니는 아이는 하늘이 뿐만인 것은 아니니까.

        

       꾸준히 사진을 올리고 그 후속 기사를 쓴다면 그래도 지금보다는 이야깃거리가 되겠지. ‘재벌 영애’가 한 번에 ‘여러 여자와’ 사귀고 있다. 그것도 그중에 한 명은 유명 기업의 상속녀. 아주 좋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기삿거리 없을 때 써먹기 좋은 내용이었다.

        

       하지만 언론은 그런 기사를 전혀 활용하지 않았다.

        

       이수아는,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어느 기업의 압력이 있었을까요? 유진 그룹? 아니면, 호명 그룹?”

        

       이수아는 파파라치 쪽으로 한 걸음 다가갔다.

        

       언론의 자유니 뭐니 해도, 결국 이 나라는 자본주의국가다. 최소한의 법만 지키면 개인이 자신의 욕망을 위해 돈을 벌고 쓰는 것이 가능한 나라.

        

       그리고, 자신에게 불리한 정보를 숨기기 위해서 돈을 쓰는 것도 가능한 나라다.

        

       언론을 직접적으로 협박하는 것은 어렵다. 언론은 ‘언론’이었으니까. 자신들을 건드렸다는 이유로, 혹은 거슬렀다는 이유로 어떤 사람을 인간 말종으로 만들어버리는 짓도 서슴지 않고 하는 자들이었다.

        

       하지만, 그런 언론도, 자신들보다 훨씬 큰 회사를 거스르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언론들도 결국 ‘돈을 벌기 위해 존재하는 기업’이었으니까.

        

       신문이 아무리 많이 팔려도, 인터넷 기사의 조회 수가 아무리 많이 나와도, 그곳에 달린 광고가 없다면 돈이 들어오지 않는다. 신문 한 장의 가격은 그것으로 이득을 보기에는 너무 저렴하고, 인터넷은 들어가서 읽는 것만으로 독자들이 돈을 내는 것은 아니니까.

        

       그리고, 광고비를 가장 많이 주는 기업들은 당연히 국내에서 한 손으로 셀 수 있을 정도의 순위를 가진 그룹들이다.

        

       유진 그룹의 최나경은 사라를 이상한 의미에서 아낀다. 설령 자기 손으로 망가뜨리는 한이 있더라도, 남이 망가뜨리는 것은 절대 원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면, 그저 자신의 목표가 다른 사람과 애정행각을 벌이는 것이 보기 싫을 뿐이던지.

        

       호명 그룹은, 후계자가 사라와 약혼 중이었다. 비록 서로 사이가 좋지 않더라도 아직 파혼은 하지 않았고, 성인이 되어 결혼할 계획이었다. 이런 기사가 너무 많으면 결혼 뒤에도 반드시 말이 나올 수 있다. 아니, 오히려 그때 가서 더 크게 터질지도 모른다.

        

       그때 가서 사라에게 불리한 쪽으로 터지면 호명 그룹에 유리할지 모르지만, 지금 당장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폭탄에 불과하다. 당연히 말이 나오지 않는 쪽을 선호하겠지.

        

       그리고—

        

       “아니면, 이원양행?”

        

       그래, 그리고, 이원양행.

        

       사실 유진 그룹이나 호명 그룹에 비하면 훨씬 작은 회사이긴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언론사의 고객이 아닌 것도 아니다. 국내에서 거대한 기업 이야기가 나오면 반드시 순위권에 꼽힐 정도로 견실한 기업이기도 했고.

        

       만약 이 셋 중 하나와만 척진다고 하면, 차라리 나을 수도 있다. 광고주들은 조회 수가 많이 나오는 기사를 선호할 테니까.

        

       하지만, 이슈가 될지 안될지도 모르고, 설령 이슈를 만들려고 해도 꾸준히 기사를 올려야 하는 이야기에 대기업 세 개가 치를 떤다. 심지어 그중 두 곳은 온갖 계열사와 자회사, 그리고 그룹 내의 자매 회사들이 즐비한 괴물들이었다.

        

       지금까지 기사가 내려가지 않고 걸려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여기서 거절해도 괜찮아요. 저는 저대로 다른 방법을 찾으면 그만이니까.”

        

       사실 이 사람이 거절하면 훨씬 피곤한 방법으로 돌아가야겠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수아는 그렇게 말하고는, 파파라치의 얼굴을 빤히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이 제안을 거절하고도 다른 곳에 팔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

        

       파파라치는 조금 질린 것 같은 표정으로 이수아를 내려다보았다.

        

       “……그, 아무리 그래도 이 자리에서 바로 팔아버리는 것은…….”

        

       아무리 그래도 가격에 대한 협상은 제대로 하겠다는 말일까.

        

       사실 이수아도 지금 당장 돈을 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기에, 일단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럼. 연락처 교환할까요?”

        

       이수아는 그 파파라치에게 빙긋 웃어 보이며 말했다.

        

       *

        

       오래 걸렸네.

        

       저 멀리서부터 걸어오는 양혜인과 수아를 보고, 나는 속으로만 생각했다.

        

       아무리 그래도 여자들한테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었으니까.

        

       나도 지금은 여자이긴 했지만.

        

       지금은?

        

       “…….”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아, 원래도 다물고 있긴 했구나.

        

       ……그래도, 한동안 이렇게 앉아있었더니 속이 훨씬 편해지긴 했다.

        

       “미안, 길을 헤매서…….”

        

       우리에게 가벼운 걸음으로 달려온 수아가 그렇게 말했다. 얼굴이 환한 것을 보니— 아, 아니다. 이 이상은 생각하지 말자.

        

       나는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럼…… 다른 곳으로 가 볼까?”

        

       내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저 위쪽에 있는 꽃밭으로 가자.”

        

       하늘이가 그렇게 말하며 자연스럽게 내 손을 잡아끌었다.

        

       “괜찮겠어? 그 위로 올라가면 놀이기구는 거의 없는데…….”

        

       “괜찮아, 괜찮아.”

        

       소희가 웃으면서 말했다.

        

       “우린 다 같이 놀러 온 거니까. 같이 있는 게 제일 즐거워.”

        

       수아가 그 말에 동의하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조금 죄책감이 들었다.

        

       사실, 아까 놀이기구들을 탈 때 이 아이들이 참 즐거워하는 것이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누구 하나 때문에 놀러 온 곳을 백 퍼센트 즐기지 못한다는 것만큼 아쉬운 것도 없다.

        

       하지만, 누구 하나 짜증 내지 않는다. 모두가 나를 위해주고 있었다. 혼자 두고 가는 것이 아니라, 다 함께 즐길만한 것을 찾아 함께 하고자 하고 있었다.

        

       ……그래, 모두가 사라를 위해주고 있었다.

        

       …….

        

       사라는 아무 말이 없었다.

        

       하지만, 가슴 한구석이 묘하게 밝아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그저 기분 탓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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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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