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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9

        

         “……특이한 놈들이네.”

         

         레오나르 경에게 정신적으로 무참히 두들겨 맞고 구석에서 씨근덕거리느라 바쁜 금발 이인조를 감상했다.

         둘은 느끼는 감정이나 사고 방식마저 비슷한 건지, 모욕당해서 잔뜩 화난 와중에도 서로에게 머리를 기댄 채 뭐라 중얼거리고 있었는데. 꼭 보이지 않는 거울에 몸을 의지해 같은 사람이 둘로 늘어난 것 같은 착시 현상처럼 보였다.

         

         귀걸이가 짤랑이며 동시에 얼굴이 움직이고… 아, 눈 마주쳤다.

         호르몬 작용으로 인한 분노는 1분도 지속되지 않는다고 하지 않나? 그러니 지금 니들이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은 나보다는 레오나르 경의 책임이 훨씬 크다고 말해주겠다.

         

         …아무튼! 논리적으로는 하자가 없는 완벽한 반박이니 그런 것이다. 음….

         

         “저… 저기….”

         

         우리 켄 꼬마의 설명을 그대로 믿는다면. 여기서 고속 열차로 한 나절은 꼬박 가야 도착할 수 있는 홀츠 콜로니의 네임드 해커 듀오, 제미니 노드(Gemini Node; 쌍자궁의 연결점) 쌍둥이는 남매다.

         

         그게 생물학적 의미의 진짜 남매인지, 자아 정체성이 남매라는 건지, 그것도 아니면 그냥 시발 본인들이 그렇게 주장하고 싶어서 컨셉으로 미는 건지까지는 잘 모르겠고.

         

         몸에 걸친 옷가지, 액세서리, 사소한 버릇이나 스타일도 통일하는 걸로 공동 작업의 효율을 극한으로 높이고 더 극단적인 상승 효과를 노린다고 하는데….

         

         과학적 근거가 그 주장을 얼마나 탄탄하게 뒷받침하는 지는 의문이지만 실제로 그들은 활동 근거지인 홀츠 콜로니에서 순위권을 다투는 고급 인력이라 하니, 보는 사람을 헷갈리게 하는 것 외에도 이점이 있는 건 분명했다.

         

         한데… 그럼 둘 중 누가 남자고 누가 여자일까?

         ……에이, 설마. 거기까지 손 댔다면 더는 ‘남매’조차 아닐진대 진짜 그랬겠어.

         

         “저기…!”

         

         “…?”

         

         그제야 침 삼키는 소리에도 덮어질 것 같은 작은 웅얼거림이 나를 부르는 소리라는 걸 눈치챘다.

         그마저도 정확하게 들은 게 아니라, 마리나가 어깨를 톡톡 두드려준 덕분에 고개를 들다가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하는 켄의 입술을 보고 유추한 거지만.

         

         “왜?”

         

         다리를 꼬고 무릎 언저리에 올려놓은 팔로 턱을 괸 채로 멍하니 부름에 대답했다.

         별로 애를 상대로 시건방 떨려는 건 아니고, 그저 이름 좀 불렸다고 자세를 고쳐 앉는 것도 이상해서… 그렇게 딱딱한 상하 관계도 아니니까.

         

         타케쿠라 켄이라는 지극히 일본스러운 이름을 가진 꼬맹이는 우습게도 그다지 일본인처럼 생기지 않았다.

         

         약한 곱슬기가 있는 갈색머리는 이마와 눈가, 그리고 귀 윗부분을 덮어 순박한 인상을 풍기는데 크게 일조했으며. 그 밑으로 언뜻언뜻 스쳐 지나가는 눈동자는… 초롱초롱? 똘망똘망…?

         

         …이런 애가 저 금발 양아치 남매를 몇 번이나 제껴서 물 먹인 당사자라니, 장비도 중요하지만 그 이상으로 뇌가 젊고 가상 세계와의 동조율이 높을수록 유리하다는 가혹한 업계 생리를 엿본 것 같았다. 맙소사.

         

         “지… 진짜 28살이에…요? 그치만… 성장 호르몬 억제제를 맞은 것 같지는 않은데….”

         

         “…뭠마, 너도 그 꼴로 성인이래매.”

         

         무슨 약물 부작용이라도 찾는듯 이쪽을 기웃거리는 켄을 타박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해는 넘어갔고, 육체 나이야 모르고, 신분증도 가짜이니, 가장 확실하고 틀림없는 내용물의 정신 연령이 내 기준점이 될 수밖에 없지 않나? 지극히 합리적인 호소라고 생각한다.

         

         아니, 그보다도 갑자기 호르몬 억제제라니? 그런 곧바로 기괴한 의약품과 흉흉한 가능성부터 떠올리는 걸 보면, 역시 겉모습과는 달리 얘도 어엿한 블랙마켓 해커다웠….

         

         “저는 그… 절실할 때, 필요한 영양소 섭취가 좀 어려웠어서….”

         

         “아하.”

         

         생각보다 많이 서글프고 현실적인 이유였기에 말문이 턱 막혔다.

         부드럽게 돌려줄 말이 생각나지 않는 김에 내 기원을 떠올려봤다.

         

         주변에 상시 배치된 의사-겸 과학자-, 서늘한 원통 시험관, 외형과는 달리 점성이라곤 거의 없던 배양액. 어떤 의미에서는 온갖 오염과 위험으로 가득한 외부보다 더 완벽한 성장 환경일 수도 있겠으나.

         

         “……나도 충분히 골고루 못 먹어서 그런가 봐.”

         

         여러모로 불편해진 대화를 급하게 마무리했다.

         몸 다루는 것도 어색해서, 모니터 너머로 게임하는 감각으로 성급하게 달려들다가 뒤늦게 정신차렸던 시절은 떠올리기만 해도… 쪽팔린다.

         

         다른 적들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상황에 위험하게 대규모 전투에 돌입했던 것도 그렇고. 당시에는 최선이라 생각하고 가진 패를 굴렸어도 지나고 나서 보면 미숙했던 점이 적나라하게 보이니 원.

         

         “그래서, 여기 꼬마 켄은 홀츠 콜로니의 떠오르는 신흥 해커라 일부러 꾀었다 치고. 나는 왜 권유한 거야?”

         

         “응?”

         

         옆에서 손바닥만 한 휴대 단말기에 얼굴을 처박고 있던 마리나에게 화살촉을 돌렸고.

         나? 하는 표정으로 어리둥절함을 뽐내는 그녀를 뚫어져라 쏘아봤다.

         

         방금 켄과 떠들면서 재차 확인한 사실이지만. 아무리 만만해 보이는 인간이라 해도 이 자리에 있다는 것 자체가 내세울 비장의 수 한두 개쯤은 보유한 인물이라는 증명.

         

         그러니까 기껏 주어진 여유 시간에 과제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긴커녕, 우리 둘이 신나게 떠드는 동안 슈팅 게임이나 즐기고 있던 이 인간도 필시 비범한 구석이….

         

         “왜냐니… 그야 혼자서 드로이드도 운용하는 능력자를 안 꼬드기는 건 바보잖아? 덕분에 아주 든든하다고?”

         

         “……하.”

         

         잠깐 전투 이후 매번 정비소에서 받아 들게 되는 영수증을 떠올려봤다. ……이런 망할.

         분명 이 해커 같지 않은 쾌활한 수배자를 상대로 더 추궁할 거리가 있었는데 저 웃는 모습을 보니 조목조목 따지려던 내가 진짜 바보 같아졌다.

         

         그래…. 나중에 우리 차례가 되면 어련히 스스로의 기량을 보여줄 테니 기다리면 되겠지.

         

         …엄지손가락 치켜들지 마. 아까 맛깔나게 욕했다고 칭찬하지 마. 수입이 얼마나 되냐고는 더더욱 묻지 마!

         

         

         쿠궁…!!

         

         그렇게 한 십 분 정도 빈둥거렸을까?

         저 통로 건너편으로부터, 듣기만 해도 묵직한 중량감이 느껴지는 충격음이 울려 퍼졌다.

         

         예상보다 빠르다. 그야 빠릿빠릿하게 움직이지 않으면 이 밑에 모인 사람들은 둘째치고, 높으신 사람들이 짜증낼 수도 있는 만큼 어디까지나 합당한 대응일지도 모르겠지만.

         

         “으어… 후딱 해치워보자고!”

         “이거 먼저 매맞은 인간들한테 미안해서 어쩌나.”

         “…….”

         

         부탁한 추가 장비와 개인 짐들의 도착을 직감한 이들이 광장 곳곳에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맨몸, 혹은 싸구려 단말기 정도만 가지고 작업하는 게 대부분인 데다 평범하지 못한 방식으로 일해온 나로서는 와닿지 않았지만, 저들의 반응으로 보건대 작업의 난이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내려가는 건 명백했으니.

         

         드르륵, 드르륵! 거리는 소음을 연주하며 정장이 여기저기 구겨진 마켓 소속 직원들이 가방과 상자 등을 안쪽으로 들여오기 시작했다.

         

         저게 현직 해커들이 일할 때 쓰는 장비들이란 생각에 두 눈을 크게 뜨고 옮겨지는 물건들을 살펴봤는데.

         

         큼지막한 패드나 단말기만 정상이었지, LED 불빛이 감도는 벽돌 같은 물건에 무슨 전선이 줄기줄기 뻗어 나온 장갑.

         심하면 수류탄처럼 생겨 먹은 공이나 정체모를 의료용 흡입기도 있었다. 그리고 저건 또 뭐야, 다우징 로드?

         

         “…아니, 어이없네.”

         

         겉으로만 봐도 그 용도를 알 수 있다면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고집이라도 있는 건지 해괴한 도구들이 줄줄이 나오니 뭐라도 좀 배워보려던 의욕이 싹 사라졌다.

         

         이래 놓고 또 정작 실전에 들어가면 겉으로 드러나는 정보가 없어서 죽치고 시간이 날려야 한다고?

         혹시… 레오나르 경에게 들키지 않고 일하는 화면만 어떻게 우회해서 훔쳐볼 수 있나? 아무리 그래도 그건 무리겠지… 여기 보는 눈이 몇 명인데.

         

         어쨌거나 저쨌거나. 어느새 본인들이 애타게 찾던 보조 장치를 찾아 낀 쌍둥이가 무대에 올라선 건 진짜 한숨 푹 자고 일어날까… 고민이 깊어 가던 와중이었다.

         

         ““어이, 거기 싸가지 팀! 실력 차이를 보여줄 테니 똑똑히 봐 둬라…?!””

         

         “아, 예.”

         

         …얼마나 차이나는 지 객관적으로 확인하려면 꽤 오래 기다려야 할 거라는 빈정거림을 간신히 삼켰다. 우리가 마지막 순서라는 걸 모르는 것도 아닐 텐데, 어떻게든 기싸움을 이어가려는 집념은 대단하다고 칭찬할 만했다.

         

         아니면 다른 칭찬거리도 있을지 몰랐고.

         

         지이잉…!!

         

         “오?”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금고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선 제미니 노드가 동시에 단말기에서 뽑아낸 커넥팅 와이어를 금고에 삽입. 개시 신호도 따로 필요없이 해킹에 착수했으니.

         

         나를 제외한 다른 이들은 이미 쌍둥이의 이마와 관자놀이에 끼워진 전자 헤드 기어만 보고도 어떤 풍경이 펼쳐질지 예상한듯 특별한 반응을 보이진 않았지만, 적적하던 시험장에 볼만한 눈요깃거리가 생겼다는 것에 대해선 이의가 없는지 시선은 집중시켰다.

         

         강렬한 전자음이 고막을 유린하고, 기어로부터 뿜어져 나온 빛줄기가 둘의 주변에 홀로그램을 투사했다.

         

         허공에 수놓아진 광채가 그려낸 그림은… 무수한 그래프와 눈 아플 정도로 빼곡한 가상 데이터 라이브러리. 곧이어 각자의 손가락이 미친듯이 자판을 두들기며, 창과 방패의 전투가 벌어지고 있음을 알렸다.

         

         의식을 다이렉트로 연결하는 게 아니라, 기술자 본인은 오롯이 외부에 남은 상태로 순수하게 실력과 크래킹 속도로 대결하는 구시대적인 방법.

         

         저게 주된 해킹 기법이라면, 저들의 메모리에 얼마나 많은 단축 명령어와 매크로가 등록되어 있을지 짐작도 하기 어려웠다. 적어도 나는 절대로 못 따라한다고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었다.

         

         “씹… 패킷 필터링 교란 성공…!”

         “…헤더 데이터만 침입하고 페이로드는 유실됐어. 다시!”

         

         눈을 깜빡이는 것보다도 빠르게 초점이 마구잡이로 움직이며.

         위에서 아래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난잡하게 변화하는 미궁을 따라잡기 위한 침입자들의 고군분투가 계속된다.

         

         시간이 흐를수록 답답한 중얼거림은 점차 줄어가고, 대신 그 빈 자리마저 자판 입력하는 소리가 메꿨다.

         

         5분, 10분, 20분이 지나자 턱은 물론이고 단말기를 조작하는 손가락까지 경련하는 모습이 포착되었기에 나는 저러다 영락없이 실패하는 건가 싶었는데.

         

         철컹!

         

         “으아아…!!”

         

         “…9번 쌍둥이. 23분 41초! 칭얼거린 값은 하는군.”

         

         빠르다. 비록 중간에 이것저것 챙겨 오긴 했어도 한 부대가 달라붙었던 앞 팀보다도 더.

         마침내 화려한 퍼포먼스가 종료되고 헤드 기어를 시원하게 벗어 던졌으니 이번에는 정말 순수하게 박수라도 쳐주려고 했으나.

         

         ““우웨에엑—!!””

         

         “?!”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제미니 노드 쌍둥이는 돌연 바닥을 집고 구토.

         피가 조금 섞여 있었지만 다행히 공복이었던 모양인지 위액으로 추정되는 액체가 대부분, 하지만 끝마무리가 엉망이 되어버렸다.

         

         저런 처절한 모습을 보고도 차마 빈정거리기는 뭐해서 모른 체해주려고 했지만.

       

       

         한바탕 토악질과 돌조각을 내려치는 팔이 지나가고, 그들이 악에 받힌 채로 고개를 쳐들었길래 또 우리나 레오나르에게 지랄할 줄 알았거늘.

         

         이게 웬걸?

         이번에는 그 대상이 완전히 달랐다.

         

         ““이… 이, 씨발련들아—!!””

         “…….”

         

         여태 입다물고 있던, 최초로 금고 해제에 성공한 8인팀. 변변한 장비도 없이 테스트에 임하느라 손해본 줄 알았던 그들을 향해 거친 욕설이 퍼부어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천차만별 해커 생태계.

    VicTim 님이 잘 보고 계시다는 소감과 함께 무려 500코인 후원을…!! 감사합니다! 이모티콘은… 저도 꼭 내보고 싶네요. 네….

    병원 면회 잘 다녀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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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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