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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19

       쿠구구구구궁!

         

       “지, 지진이다!”

       “대, 대피! 대피해라!”

         

       병사들은 땅굴에서 지속적으로 울리는 지진에 공포를 느끼며 허겁지겁 대피 명령을 내렸다.

         

       이러다 땅굴이 무너지면 그들도 같이 죽을 판이기에.

         

       그러나.

         

       “죄수들도 같이 챙기라고 했을 텐데?”

       “하, 하지만 왕자님….”

       “왕자가 아니라 아렌 경이라 불러라! 지금은 공무수행중이다!”

       “흐읍!”

       “명령 불복종은 받지 않는다. 죄인들은 모두 데리고 가도록.”

       “예, 예엡…!”

         

       아렌 팬드래건의 명령에 의해 병사들은 죄수들을 챙겨야 했다.

         

       “비, 빛이다…!”

       “앞에! 빨리 움직이지 못해! 너 때문에 다 죽으면 책임질 거야!!”

       “죄, 죄송합니다!”

         

       죄수들은 간만에 보는 햇빛과 구름에 반가워 할 새도 없이 도망차기 바빴으나, 살았다는 기쁨에 이러한 자연재해를 도리어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원래 같으면 설사 땅굴이 무너진다고 해도 종신형이 확정된 그들은 빠져나올 수 없는 게 원칙적으로 맞았으니까.

         

       허나.

         

       “다시금 말하지만, 이 ‘명단’에 적힌 이들만 데리고 가는 것이다. 엉뚱한 녀석이 섞여 있다면 그 즉시 처단하도록.”

         

       “아, 알겠습니다!”

         

       ‘왕가의 핏줄’은 그 모든 원칙을 뒤엎을 힘이 있는 바.

         

       지저분한 회색머리를 씻어내고 팬드래건을 상징하는 백은발을 흩날리는 아렌의 명령에 병사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병사들은 공포에 떨면서도 불만은 다소 적었는데, 그가 내린 명령이 합당하다 여기기 때문이었다.

         

       “역시 왕가의 핏줄인가, 억울하게 죽게 하는 이들이 없게 하려는 거군.”

       “확실히 지금 명단에 적힌 놈들은 다들 죄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지.”

       “고귀한 백사자라더니, 허명이 아니었어.”

         

       땅굴에 갇힌 이들 중 드물게 죄질이 미약한 자들.

       귀족에게 밉보이거나 모함 혐의가 있는 이들만 구출 중이기에 불만이 없을 수밖에.

         

       찬사 받아도 마땅할 고귀함이 엿보이는 대목이었다.

         

       다만 찬사 받는 입장에선.

         

       “빌어먹을….”

         

       굴욕스럽기 그지없다.

       남의 명성을 훔치는 더러운 기분이었다.

         

       ‘나도 명령을 듣는 처지란 말이다!’

         

       길드를 협박하여 얻어냈다고 하는 명단과, 자신에게 죄수들을 구출하란 명령, 아니….

         

       – 명단에 적힌 놈들 중 한 명이라도 없으면, 한 명당 백 대란 걸 기억해라.

         

       ……불합리하기 그지없는 협박이 있었기에 그는 최선을 다해야만 했다.

         

       왜 왕족인 그가 법마저 어기며 이런 짓을 해야 하나 싶으나 그런 불만을 내뱉었다간 후환이 두려운 아렌이었다.

         

       그러나.

         

       “가, 감사합니다, 기사님! 가,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1, 1년만 버티면 어머니를 만나게 해준다고 했는데, 어머니 얼굴도 못 보고 죽는 줄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기사님…!”

         

       “사,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빌어먹을!

         

         

       그에게 감사 인사를 건네는 죄수들, 아니 선량해 보이는 그들을 보며 아렌의 가슴에 무언가가 벅차올랐다.

       이게 뭐일까?

         

       “가, 감사 인사 같은 거 하지 말고 얼른 탈출이나 하란 말이다!! 거기 너, 다리가 불편해 보이는군, 얼른 업혀라.”

       “가, 갑옷을 더럽힐 수도…….”

       “두 번 말하게 하지 말란 말이다!”

         

       아렌은 어느 순간부터 괴수가 무서운 게 아니라, 진심으로 그들을 돕고자 노력하는 자신을 발견하는 건 한참 뒤의 일이었다.

         

         

         

         

         

       “-그래도 인성이 영 모난 사람은 아니야.”

       “그러게나 말입니다. 지금만큼은 진짜 ‘백사자’란 이명이 어울리는 분입니다.”

       “확실히 백사자처럼 용맹하면서도 고귀해 보이긴 하네….”

         

       서걱!

         

       아렌처럼 사람들을 탈출시키는 동시에, 사람들에게 섞여 탈출하려는 ‘흉악범’을 처단하는 역할을 맡은 제이크와 요르드는 거침없이 죄수들을 베어내는 중이었다.

         

       몇몇 이들 중엔 투기법을 익힌 놈들도 있었는데, 혈십자군 소속임이 분명하리라.

         

       아마 혈십자군을 배신하고 탈출하려던 놈들일 터.

         

       “의리 따윈 없는 놈들이군.”

       “이교도, 아니 이딴 쓰레기들에게 뭘 기대하겠습니까.”

         

       휘이익!

         

       요르드가 자신을 덮쳐오는 죄수를 향해 재빨리 검을 휘둘렀다.

       바람과 같은 속도로 펼쳐지는 망설임 없는 횡 베기.

         

       싹둑!

         

       끝으로 깔끔하기 그지없는 마무리까지.

         

       극한의 쾌검술이란 말이 아깝지 않았다.

         

       왜 그가 이번 년도 백은사자 신입 중 수석인지를 알려주는 놀라운 실력.

         

       그리고 이에 질 수 없다는 듯 선배 기사는.

         

       후우우웅!!

         

       퍼어억!

         

       “그 녀석처럼 칼이나 화살조차 튕겨내는 수준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도 제법 단단하거든.”

         

       제이크는 적들의 공격을 온몸으로 견뎌내었고, 상처 하나 입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금강.

         

       이한이 생도들에게 경을 가르치기 전 최초로 경을 배운 사람은 다름 아닌 제이크였다.

       실험체 취급이긴 했지만, 원래도 뛰어난 기사였던 제이크의 학습 능력은 생도들보다 좋았다.

         

       그래선지 이한만이 가능한 줄 알았던 금강마저 가능할 따름.

       그렇기에.

         

       “다음 생엔 태어나지 마라, 너희는 숨을 쉬는 것조차 아까우니.”

         

       이교도들 따위가 그를 건드릴 수 없단 뜻이었다.

         

       숭겅!

         

       깔끔한 거합도가 펼쳐지며 순식간에 그에게 덤벼든 이들 전원의 목이 숭겅 잘려나갔다.

       마치 낫으로 곡식을 베어내는 것 같은 깔끔함.

         

       중급 기사에 머무는 자라곤 생각할 수 없는 최상위 기사의 실력이 아닐 수 없는 바.

         

       제이크는 가볍게 숨을 토해내며 땀을 식혔다.

         

       “후우, 어느 정도 다 처리한 건가?”

       “이교도들은 어느 정도 처리한 것 같습니다만, …저희가 없앤 녀석들은 일부분에 불과하겠죠.”

       “…그것도 그렇지.”

         

       제이크와 요르드가 베어낸 놈들의 숫자는 오십을 넘었지만, 그렇다 한들 아직 죄수들이 수백은 남아 있다.

         

       그리고 그 모든 죄수들은.

         

       “저 안에 있겠지.”

       “…이한 선배님 말대로 다른 통로가 있다는 건가…?”

         

       이런 지진과 폭발음에도 나올 생각이 없는 수백의 죄수들의 행동력.

         

       …믿는 구석이 있다는 거겠지.

         

       “후우, 대체 배신자가 얼마나 있는 거야?”

         

       이제 알기 싫어도 알게 된다.

         

       죄수들을 감금하는 땅굴에 그들도 모르는 시설이 있고, 수상한 세력이 기생하여 그 세력을 부풀리고 있다.

       그저 그런 테러 조직이나 이교도 집단이 아니다.

         

       누군가 뒤에서 도와주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상당히 막강한 힘을 가진 누군가가……!

         

       “…지금은 현 상황을 해결하는 데만 집중하도록 하자. 다른 일에 신경 쓰면서 싸우다 칼침 맞으면 우리만 손해니까.”

       “…….”

       “왜 그렇게 봐?”

       “…지금 발언 이한 선배님이랑 닮아서요.”

       “내, 내가?”

         

       제이크는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자신이 그 막장 기사랑 말투가 닮았다니…!

         

       그럼 자신도 막장이란 말이 아닌가?

         

       “나, 난 그 정도는 아니야!”

       “아니긴요, 똑같은데, 흐흐.”

       “이 녀석이!”

         

       음흉한 웃음을 흘리는 뺀질거리는 후배를 보며 제이크는 혈압이 오를 것 같았다.

       이 녀석, 원래는 성실한 모범생이었는데, 왜 이렇게 변했지?

         

       ‘다, 그 녀석 때문이다.’

         

       이한.

       친구라 말하지만 악우(惡友)에 불과한 녀석.

         

       그 녀석과 엮이고 나서부터 어째 멀쩡한 일이 없는 것 같다.

         

       “하아….”

         

       허나 제이크의 시선은 칠흑과 같은 땅굴을 향하고 있었다.

       저 칠흑 속 어디선가 싸우고 있을 그를 걱정하며.

         

       ‘괜찮은 거냐?’

         

       마음 같아선 도와주러 가고 싶지만, 방해만 될 것을 알기에 참아야 했다.

       홀로 싸울 때 더 활약하는 녀석이었으니까.

         

       다만 마음이 안 좋은 건 맞다.

       이토록 뒤처리나 하고 있는 건 본인의 부족함을 실감하게 했으니 말이다.

         

       “쯧, 지금만큼은 내가 북부의 흑사자였다면 좋겠군.”

       “북부의 흑사자? 흑철사자의 부단장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알고 있나 보지?”

       “그가 쌓은 업적은 북부를 넘어 왕국 전체에서도 유명하니까요, 흑사자 막시무스 아이언 드 라이오넬, 그 유명한 ‘자이언트 슬레이어(Giant Slayer)’ 아닙니까?”

         

       거인 처단자 막시무스.

       홀로 서리 거인을 무찌른 용맹한 기사.

         

       남부 대륙을 대표하는 젊은 기사들 중에서도 그 위업과 명성 등이 차원이 다른 이였으니.

         

       “…저도 얘기로만 들은 게 다입니다만, 그렇게 강한 사람입니까?”

       “나도 딱 한 번밖에 본 적 없어. 그것도 우연히 본 게 다야. …하지만.”

       “?”

       “-강해. 그것도 엄청나게.”

       “…….”

         

       잊을 수가 없다.

         

       그가 한창 스승이었던 아버지에게 기사 훈련을 받던 시절, 북부 근처까지 간 일이 있었다.

       도중 북부의 기사들을 마주쳤는데, 그중.

         

       – 하하, 훌륭한 기사로군!

         

       ‘그’가 있었다.

         

       아직 10대에 불과했으나, 노련한 기사였던 아버지마저 뛰어넘던 존재감과 덩치, 그리고 강렬한 기세까지.

         

       – 하하!! 하얀 고양이치고 제법 튼실하군. 어떻게, 내 일격을 받아보겠나? 생사는 장담할 수 없다만. 뭐, 죽는다면 그것도 어쩔 수 없지, 기사의 싸움이란 그런 거니까, 으하하하하!!

         

       지금껏 그토록 강한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그를 이렇게 평했다.

         

       – 광명의 빛께선 아주 가끔, 한 백년 단위로 어느 한 명에게 과도한 축복을 내려주실 때가 있다. 그야말로 백 년에 한 번 태어날까 말까 한 재능이며, 천만 분의 1의 재능을 가진 자들인 셈이지.

       – 그럼 저는요?

       – 100명 중 한 명은 될 거다, 허허.

       – …….

       – 어쨌든 저런 자와 싸우진 말거라. 지금도 무서울 정도로 강하지만, 저런 자는 계속해서 성장할 거다, 끝도 없이….

         

       제이크는 아버지의 말에 납득했다.

       아니, 납득할 수밖에 없는 존재감과 기세가 아닐 수 없다.

       하며 생각했었다.

         

       앞으로도, 이후로도 저러한 사람을 그의 인생에서 만날 일이 있을까 하고.

         

       …뭐.

         

       ‘그 녀석을 만난 이후 생각이 달라졌지만.’

         

       어찌 보면 천만 분의 1의 확률을 뚫고 태어난 괴물보다 더 특이했던 놈.

       실력으론 그 누구에도 뒤지지 않을 녀석.

         

       막시무스가 소위 하늘에서 내린 재능을 천재라고 한다면, 그놈은 역경과 시련을 통해 힘을 손에 넣은….

         

       이른바.

         

       ‘혼종(混種), 키메라 같은 놈이려나?’

         

       이것저것 특이, 아니 괴상한 걸 잘하는 녀석이니 말이다.

         

       하…!

         

       제이크는 아무리 그래도 사람보고 혼종이라 하는 건 너무한 말이라며 피식거렸고, 미안함을 느꼈다.

         

       ‘나중에 맥주나 한 잔 사주지, 뭐.’

         

         

       ……이 일이 다 무사히 끝나고 나서.

         

         

       숭겅!!

         

       제이크의 검은 다시금 인두겁을 쓴 짐승의 목을 수확했다.

         

       *

       *

       *

         

       그리고 평가받길 천만 분의 1의 재능을 타고난 괴물과 시련을 통해 괴상한 힘을 손에 넣은 어느 혼종은….

         

       “그래서, 당신이 왜 여기 있어?”

       “하하, 잠시 첩자 일을 하던 중이었다네. 한데 이상하게 나를 수상한 놈이라며 쫓길 일쑤더군, 왜 들킨 건지, 원….”

       “…난 그 이유를 너무 잘 알 것 같은데….”

       “음?”

         

       이한과 막시무스.

         

       두 기사는 서로의 목을 향해 칼과 도끼를 겨누는 중이었다.

         

       언제라도 상대방의 목을 수확하기 위하여.

         

       그들은 대치 상태를 유지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보며….

         

       “저기, 저희 생매장 당하는 중인데요….”

         

       쿠구구궁!

         

       데릭은 떨어지는 흙먼지와 바위 등을 가리키며 그만 좀 싸우고 탈출 좀 하자며 절규했다.

         

       다만 안타깝게도.

         

       “당신이 먼저 칼 내려.”

       “네가 도끼를 내리는 게 좋지 않을까?”

         

       “…….”

         

       그들은 양보할 생각이 조금도 없어 보였고, 데릭은 생각했다.

         

         

       ……어느 세상을 가나 남자들이 빨리 죽는 이유는 저 쓸데없는 자존심 때문임이 분명하다고.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환생 30년, 알고 보니 장르가 로판이었다?
Status: Ongoing Author: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the genre was romance fantasy? ...Really, how? I lived as a magician's slave, experimented on, then as an assassin, mercenary, soldier, and even a knight. This is a story where I'm in a genre all by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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