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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

       

       

       

       

       

       “케에에엥!”

       

       몸통에 화염을 직격당해 동굴 벽에 내동댕이쳐진 늑대는 고통에 차 울부짖었다.

       

       어떻게든 뜨거운 불길로부터 벗어나려 몸부림을 쳤지만 화염 줄기는 더욱 거세졌고.

       

       화르르르륵!

       

       “켕….”

       

       더 이상 커먼 울프가 움직이지 않게 되고 나서야 불줄기는 자취를 감추었다.

       

       “…….”

       

       방금까지 사투가 벌어졌던 동굴이, 이제 다시 언제 그랬냐는 듯 고요로 채워졌다. 

       

       화염 줄기로 대낮처럼 밝아졌던 동굴은 다시 깜깜해졌고, 내가 박아 두었던 발광석만이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뀨우…. 뀨….”

       

       나는 해츨링을 바라보았다. 

       

       녀석은 거칠어진 호흡을 고르고는, 늑대를 노려보던 도끼눈을 거두고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뀨우우….”

       

       그러고는, 바닥에 처박혀 흙먼지투성이가 된 나를 마주보았다. 

       

       녀석의 눈에 말간 물기가 차올랐다. 

       

       “삐유우우우우!!”

       

       해츨링은 동굴 밖으로 도망칠 때보다도 더 빠르게, 전속력으로 달려와 내 품에 몸을 던졌다. 

       

       “쀼우, 쀼우우…. 쀼우, 쀼.”

       

       계속해서 나에게 뭐라고 말을 하는 것 같았지만, 인간 언어로 음성화된 말이 아니었기에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대충 무슨 뜻인지는 알 것 같아.’

       

       너무 무서웠다고. 하지만 내가 걱정돼서 다시 왔다고. 이제 괜찮은 거냐고. 

       

       그렇게 묻고 있는 거겠지. 

       

       나는 흙투성이인 손을 살짝 옷에 털고, 해츨링을 애정 어린 손길로 쓰다듬어 주었다. 

       

       “고맙다. 네 덕분에 살았어. 무서웠을 텐데….”

       “쀼우우우…!”

       

       녀석의 눈물로 옷이 축축하게 젖었지만, 나는 신경쓰지 않고 해츨링이 진정될 때까지 머리를 쓰다듬고 등과 엉덩이를 토닥여 주었다.

       

       “뀨우….”

       

       우리 울보 해츨링은 울다가 지쳤는지 내 손가락을 안은 채로 그대로 기절하듯 잠들었다. 

       

       ‘고생했네.’

       

       안 그래도 많이 자지도 못했는데, 한밤중에 늑대 때문에 깼고, 많은 일을 겪은 직후라 긴장이 한번에 풀린 모양이었다. 

       

       ‘그리고…. 마나도 꽤 많이 소모한 것 같고.’

       

       솔직히 말해 놀랐다. 

       

       ‘벌써 이 정도 수준의 마법을 쓸 수 있다니. 언제 이런 마법을 익힌 거지?’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커먼 울프를 죽인 마법은 단순히 1서클 마법인 ‘파이어 볼’ 같은 게 아니었다. 

       

       ‘화염구로 1회성 타격을 준 게 아니라, 커먼 울프가 완전히 숯덩이가 될 때까지 계속해서 불줄기를 뿜어냈으니까.’

       

       레키온 사가를 해 오면서 수많은 마법 스킬들을 봐 왔던 내 눈으로 볼 때, 해츨링이 썼던 마법의 형태는 5서클 마법인 ‘플레임 캐논’과 유사했다. 

       

       ‘그렇다고 녀석의 경지가 5서클이라고 하기에는 「레키온 사가」의 5서클 마법사들이 쓰는 플레임 캐논에 비해 크기가 작고 위력이 한참 낮긴 했어.’

       

       5서클이면 줄만 잘 타면 왕궁에도 취직할 수 있는 꽤나 높은 경지다.

       

       만약 5서클의 마법사가 진짜 ‘플레임 캐논’을 사용했다면 커먼 울프 따위는 케겡 소리를 내기도 전에 그 자리에서 흔적도 없이 소멸했을 것이다. 

       

       ‘운 좋게 빗맞아야 잿가루 좀 날리는 정도였겠지.’

       

       그 정도로 플레임 캐논은 원래 아주 강력한 마법이다.

       그러니 해츨링이 5서클을 달성했다고 보는 건 무리가 있고….

       

       ‘…아니면 혹시 그런 건가. 위력은 낮아도 마법 자체는 서클의 구애를 받지 않고 쓸 수 있다든가?’

       

       본디 드래곤이라는 종족은 마법의 기원, 마법의 창시자라고 불릴 정도로 마법에 있어서는 정통해 있는 종족이라고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인간의 경우 자신의 현재 서클보다 상위 서클의 마법은 쓸 수 없는 게 상식이지만….’

       

       마법의 ‘본질’을 태어날 때부터 자연스럽게 몸으로 알고 있는 드래곤이라면.

       

       ‘마법 수식의 복잡함이라든가, 연산 과정 같은 걸 본능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면, 경지에 상관없이 모든 마법을 다룰 수 있는 건지도 몰라.’

       

       그렇게 완성시킨 마법의 위력이나 효과가 해당 경지의 통상적인 수준에 못 미칠지라도 말이다.

       

       예를 들어서 해츨링이 7서클의 마법인 ‘블리자드’를 쓴다고 하면, 평원을 얼어붙게 만들 정도의 눈보라가 치는 대신 화장실 한 칸 정도 크기의 한랭 지대가 잠깐 펼쳐진다거나 하겠지. 

       

       아니면 뭐 블링크 마법을 쓰는데 한 뼘밖에 못 간다거나….

       

       ‘…진짜 그렇다고 해도 구현할 수 있다는 거 자체가 대단한 거긴 하지만.’

       

       어쨌거나 마나와 마법에 대한 이해도 자체가 인간과는 궤를 달리 한다는 뜻 아닌가. 

       

       ‘근데 내가 본 드래곤 중에서는 서클의 구애는 안 받아도 자기가 즐겨 쓰는 한정된 속성의 마법 위주로만 쓰는 드래곤들도 많았는데…. 이 아이는 어떠려나.’

       

       화염 마법을 썼으니 화염 쪽에 재능이 있는 걸까?

       

       ‘어쨌든 떡잎이 남다른 아이야.’

       

       착하고, 귀엽고, 울보지만 필요할 땐 용기를 낼 줄도 아는 녀석.

       

       “큐우우….”

       

       이러니 어찌 예뻐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아, 자꾸 이렇게 빠져들면 안 되는데.’

       

       나는 괜히 고개를 휘휘 저었다.

       

       정이 들면 들수록 헤어질 때는 마음이 아픈 법이다. 

       

       내가 귀여운 동물들을 그렇게 좋아하면서 랜선 집사를 고집했던 이유 중엔 그런 이유도 있었다.

       

       이 녀석과도 언젠가는 헤어질 수밖에 없을 거고 지나치게 정을 붙여 봐야 나중에 힘들기만 할 뿐이라는 걸, 나는 잘 알고 있었다.

       

       ‘…후우. 쓸데없는 생각 말고 잠이나 자자.’

       

       어차피 지금 당장 헤어지는 건 아니니까. 

       

       ‘그나저나 얘 덕분에 목숨을 두 번이나 구했네.’

       

       하무트교 놈들에게서 벗어날 때 한 번, 그리고 늑대에게 죽을 위기에서 한 번.

       

       전자는 녀석의 의지로 한 게 아니라지만, 어쨌든 녀석이 없었으면 드래곤 레어로 피신할 수도 없었을 거다.

       

       후자는 뭐, 말할 것도 없고.

       

       ‘아까까지만 해도 조졌다는 소리가 절로 나올 만큼 절망적인 상황이었는데.’

       

       커먼 울프의 울음소리를 듣자마자 실제로 뱉은 말이 그거였으니까. 

       

       ‘그래, 조진 건 맞지.’

       

       우리 복덩이가 저 마물을 조졌으니까.

       

       나는 숯덩이가 된 커먼 울프의 사체를 한 번 바라본 뒤, 자리에 누웠다.

       

       그리고 해츨링을 안은 채 잠에 빠져들었다.

       

       ***

       

       “쀼우우, 쀼?”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보인 건 해츨링의 핑크색 손바닥 젤리였다.

       

       해츨링은 내 눈 앞에 한손을 흔들면서, 나머지 한손은 내 뺨에 대고 젤리로 뺨을 꾹꾹 누르고 있었다.

       

       ‘…혹시 여기가 바로 그 천국인가.’

       

       나 사실 어제 늑대한테 죽은 거 아니야?

       

       눈 뜨자마자 젤리에 꾹꾹이라니….

       

       “쀼우우!”

       “으응…. 5분만…. 이 아니라!”

       

       나는 눈을 번쩍 뜨면서 몸을 일으켰다. 

       

       동굴 입구에는 어느새 따뜻한 햇살이 한창 내리쬐고 있었고, 발광석 없이도 동굴 내부가 전부 보일 만큼 날이 밝아 있었다.

       

       바깥에서는 평화로움을 알리는 새소리가 간간이 들려 왔다.

       

       “허….”

       

       나는 잠시 동안 할 말을 잃었다.

       

       ‘나 그때부터 지금까지 완전히 세상 모르고 잔 거야? 요 녀석이 깨울 때까지?’

       

       덕분에 몸은 확실히 개운해진 것 같았지만….

       

       ‘완전히 경계심을 풀고 자 버린 건 좀 위험했는데.’

       

       그나마 늑대 땐 긴장을 하고 잤기에 멀리서 들린 울음소리를 듣고 바로 깨서 대비라도 할 수 있었지, 만약 그 뒤로 다른 마물이나 동물이 찾아와 해치려 했다면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 수도 있었다. 

       

       ‘흔히들 아침에 일어났을 때 개운하면 큰일난 거라고 하는데….’

       

       그게 현대에서만 적용되는 이야기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아무 일도 없었어서 다행이다.’

       

       기지개를 켠 나는, 혹시나 어제 있었던 일이 꿈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에 동굴 구석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커먼 울프(였던 것)의 사체가 기억 속 모습 그대로 있었고, 바닥에는 놈이 콱 물어 부러뜨린 나무 막대가 굴러 다니고 있었다. 

       

       “쀼우!”

       

       내가 커먼 울프의 사체를 바라보자 옆에서 해츨링도 내 시선을 따라가더니,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허리에 손을 얹고 콧김을 뿜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었다. 

       

       “그래, 잘했다. 장해, 아주.”

       “쀼웃!”

       

       더 칭찬해 달라는 듯 머리를 내미는 해츨링을 쓰다듬어 주던 나는, 문득 어제 궁금했던 걸 해츨링에게 물어보았다. 

       

       “근데 어제 그 마법은 어떻게 익힌 거니? 언제부터 익힌 거야?”

       “쀼우?”

       

       해츨링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잠시 동안 무언가를 떠올리려는 듯 심각한 표정을 했다. 

       

       “쀼…. 쀼웃!”

       

       그러더니 잠시 후 눈을 뜨고, 동굴 구석의 부러진 나무 막대를 가리켰다. 

       

       “나무 막대?”

       “쀼웃.”

       

       해츨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 손을 가리키고, 그 다음 공중에 자신의 앞발을 맞대고 빠르게 비비는 시늉을 했다. 

       

       “어…. 아! 어제 내가 불 피운 거 말하는 거야? 그걸 보고 화염 마법을 쓸 수 있게 됐다고?”

       “쀼웃!”

       

       해츨링이 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잠시 동안 멍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머릿속에서 어제 낮의 기억을 되감아 보던 중 짚이는 부분을 떠올렸다.

       

       ‘아, 그러고 보니 불 앞에서 멍하니 굳어 있던 게….’

       

       그제야 나는 그게 불을 무서워하는 것도, 불멍을 때리는 것도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잠깐만. 그럼 얘는 내가 피워 놓은 모닥불 하나 보고 플레임 캐논을 쐈단 말이야?’

       

       나는 순박하게 웃는 해츨링을 보며 입을 벌렸다. 

       

       ‘혹시 이 녀석….’

       

       진짜 천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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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I Picked Up a Hatchling

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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